존 페스코의 저작 <삼위일체와 구속언약>을 후반부부터 읽기 시작했다. 평소 가지고 있었던 의문에 더 기름을 끼얹어 주는 내용을 보았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사역의 권능이 그리스도의 신성의 능력이었는지, 또는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실 때부터 내주하신 성령의 능력이었는지에 대한 평소의 의문을 증폭시키는 내용이었다. 

성령에 의해 창조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은 죄를 빼고 우리의 몸과 영혼과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처럼 유한하시다. 성자 하나님의 몸이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고난 당하시고 피 흘리리시면 죽으신 그 몸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부활하신 후에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몸과 우리의 몸은 동일하게 공간의 제약을 받는 유한한 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은 지으신 만물이 계시는 곳에 언제나 계시고, 아니 계시는 곳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계시는 그곳에만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는 결코 진짜 그리스도의 피와 몸일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은 지금 현재 천국에만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인성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일들을 넉넉하게 감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거의 모든 일들은 우리와 동일한 속성이신 그리스도의 인성이 할 수가 없는 일들이었다. 친구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그리고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신 일(마 9:1-8)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인성의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눅 7:11-17)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실 수 없는 일이었다.

고난과 멸시의 십자가에 달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저주스러운 죽음 당하시는 일도 그리스도의 인성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대신 고난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을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엄청난 일을 감당하셨을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어떤 방식으로 메시야의 직분을 감당하셨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탁월한 선생이 결코 아니다. 다만 존 페스코의 책 <삼위일체와 구속언약>(The Trinity and The covenant of redemption, 전광규 역, 부개사, 2019)을 읽던 평소의 궁금증이 더 촉발되었고,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 보라고 이 글을 쓴다.

페스코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을 의지하여 메시야 사역을 감당했다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구속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위이다. 성부는 성자를 보내시고 성자는 언약의 보증인 직임을 실행하시며 성자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택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보내신다. 그러나 성자의 보증인 사역은 성령으로 충만하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직임을 실행하시는 것이다” (368 페이지).

성자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거주하셨던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신자들에게 보내신다는 것에 대한 페스코의 말에는 아무도 의문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메시야 직분을 감당하셨다는 페스코의 말에는 상당한 논란이 따른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한 인성과 자신의 인격을 연합시키신 성자 하나님의 신성의 기능과 역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그리스도의 인성이 메시야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으셨다고 하면 분명 심각한 논란이 일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약 시대의 특별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의 능력(기름부음)에 힘입어 삼손과 같은 사사가 되고, 선지자, 왕이 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스코는 그렇게 설명하였다. 페스코는 삼손 등의 사사들과 사울에게 여호와의 성령(기름부음)이 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었던 사례들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성자께서도 성령이 힘입어 사역을 감당했다고 설명했다.

성령은 성자의 직임에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면, 성자의 생애와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해 사탄과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종말론적 출애굽을 시작하게 하셨다” (372 페이지).

“성자의 직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에 대한 추가적인 확증은 신약 전체에 걸쳐 여로 곳에서 나타난다. 맨 처음부터 성령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져오신다 (마 1:18-20; 눅 1:35). 그리스도는 위에서 임하시는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 예수님은 구속 언약의 조건대로 하늘 아버지에게 성령을 힘입은 순종을 드리셨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신 이후, 그리스도의 직임을 지원하는 성령의 사역은 여러 중요한 지점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귀신을 내쫓는데 성령을 사용하신다 (372-373 페이지).

“또한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나타낸다(딤전 3:16)” (373 페이지)

“그러므로 성자는 성령의 무관하게 자기 사역을 수행하지 않으신다. 성자는 언약 보증인의 사역과 직임을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하신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전통은 이를 인정해 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 점을 강조하지 않았다” (373 페이지)

이와 같은 페스코의 말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계속 의문이 따라온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영원히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자 하나님의 신성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모든 사역이 성령에 힘입었다면 그리스도의 인성과 영원히 분리되지도 않으시고 또한 혼합되거나 혼재되지 않으시는 성자 하나님의 신성은 계속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그냥 계셨다는 것인가?

페스코는 계속하여 성자의 인성의 사역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존 오웬의 말들을 소개했다. 다음은 존 오웬의 말들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모든 도덕적 활동에서 역사하셨으면 직접적인 원리이셨다” (375 페이지).

(성령은) 그리스도가 직무를 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상한 능력과 은사를 그리스도에게 기름 부으셨다” (375 페이지).

“(성령은) 시험과 순종과 고난 가운데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 내내 그리스도를 인도하고 위로하면 지원하셨다” (376 페이지)

(성령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리실 때 그리스도를 떠받치셨다 (376 페이지)

페스코가 인용한 존 오웬의 말들도 전부 그리스도의 인성이 메시야 직분을 감당하도록 성령이 능력을 공급했다는 내용들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영원히 연합되어 계시는 성자 하나님의 신성의 역사와 기능은 전혀없다. 존 오웬이나 존 페스코는 마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사람의 인성을 입으신 성자 하나님의 신성은 절대로 자신의 인성의 메시야 사역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신학을 전개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메시야 직분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시는 과정 속에 그리스도의 신성의 기능과 역할이 없었을 수가 없다. 또한 성령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이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사역(직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두 설명해야 바른 신학이다.

그러나 존 페스코와 존 오웬은 오직 성령만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붙드시어 메시야 사역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처럼 설명한다. 이 두 사람의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직분에 대한 설명의 심각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직분의 원리와 구약의 삼손이나 다윗 등 특별한 인물들이 직분을 감당한 원리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신.구약의 사람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는 하나님의 성신(성령, 영)이 임하심으로 지혜와 능력과 은사가 나타났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직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에게도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주심으로, 즉 하나님의 신이 임재하심으로 메시야의 사명을 충분하게 감당하였다는 것이다. 차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에는 죄가 없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페스코와 오웬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사역의 원리를 설명하면, 반드시 어떤 심각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메시야로서 합당한 조건을 성취하였다는 부처 그리스도론과 유사한 이단사상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일반 사람이 하지 못하는 율법준수를 완전하게 하심으로 의로움을 얻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율법주의 이단사상이다.

사실 페스코와 오웬은 모두 거짓된 행위언약과 아담이 실패한 행위언약을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으로 성취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존 페스코의 다른 책 <역사적, 신학적으로 읽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면, 그가 기독교를 파괴하는 율법주의 행위언약 신학을 얼마나 열렬하게 신봉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존 페스코가 <삼위일체와 구속언약>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의 능력으로 메시약 직분을 감당했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율법주의의 이단사상인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 개념, 그리고 그리스도가 친히 율법의 행위로 대신 아담이 파괴한 그것을 대신 성취했다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이단 사상이 그대로 나온다.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에덴동산에 두셨을 때 아담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도록 되어 있었다” (377 페이지)

위 내용은 아담이 율법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고 아담을 자기 백성으로 삼기로 했다는 거짓된 행위언약을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구속에서 성자가 하는 역할은 성령을 힘입은 순종에 대해 아담이 성령과 맺었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구속 언약의 조건에 따르면, 이것은 성자가 직임을 수행하도록 성부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성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했음을 의미한다. 성자는 언약의 조건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을 드리셨다. 또한 성령은 성자의 직임을 지원하도록 기꺼이 동의하셨다” (377 페이지)

페스코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율법에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었어야 했으나 실패하였는데, 성부께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성령을 주시어 아담이 하지 못한 일을 성공하게 하셨다고 설명하였다.

페스코의 문제는 무엇인가? 심각한 율법주의 이단사상인 행위언약과 능동순종을 영원히 신봉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이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신 원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존재와 기능과 역할을 말도 못하고 아무 행동도 못하는 벙어리 보릿자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의 실체와 그림자를 제거해 버렸다.

페스코는 신성은 없고 오직 한 인간일 뿐이신 그리스도에게 삼손과 다윗에게 임재하신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고, 그리하여 능력있게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신 것으로 각색하였다.

페스코에 의하면, 인간 아담과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동일하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두 사람에게는 동일하게 그 기회를 선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성령의 능력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였고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을 잘 활용하여 성공하였다는 것이 페스코의 신학이다. 이런 식이면 사실상 이단이다. 내가 보기에 페스코와 오웬은 매우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단이다. 그렇지 않은가?

율법주의 이단사상인 행위언약과 능동순종을 부정하는 서철원 박사의 신학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연합하여 메시야의 직분을 감당했는지 잘 설명되고 있다.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는 그의 신성의 힘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그의 인성에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입어 죽음에 이르도록 판정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 없다 ... 이 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은 그 신성의 힘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능히 감당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실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107)

인성 자체로는 진노를 감당할 수 없으나 신성의 힘으로 신성에서 그 진노를 감당한다. 진노를 감당해야 할 주체는 바로 인간 본성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성의 힘으로 인간 본성에서 그 진노를 감당하는 것이다. 영원한 진노를 신성의 힘으로 감당한다. 하나님이 인간 안에 계셔서 그 진노를 인성으로 감당하게 하신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108)

“피 흘려 죄용서를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통을 신성의 힘으로 감당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신성의 힘으로 감당하신 이유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108)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힘의 도움으로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하시고 죄용서, 곧 의를 획득하셨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108)

“피 흘려 죄용서를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통을 신성의 힘으로 감당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신성의 힘으로 감당하신 이유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123)

페스코와 오웬에 의해 전부 성령의 도우심이었다고 설명된 부분들을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사역과 기능으로 교정하였다. 그렇다고 서철원 박사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령의 관계가 실종된 것이 아니다. 서철원 박사의 신학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조성하시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드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공로를 신자들에게 적용시키시는 일을 한다.

“남자의 개입 없이 성령이 마리아의 피에서 하나의 인성을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수태시부터 조성하셨다. 죄의 오염과 부패가 전혀 전달되지 않게 마리아를 지키고 그의 육을 깨끗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죄가 전혀 없는 인간 예수가 탄생하셨다. 죄과의 전달도 전혀 없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완전한 의인이요 죄의 오염이 완전히 배제되어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출생하셨다.” (그리스도론, 67)

“주 예수는 완전한 의인으로 출생하셨다. 죄책과 오염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인성은 중생의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무죄하고 거룩하였다(막 1:24, 눅 4:34). 그리스도는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출생하여 죄성과의 투쟁을 알지 못하였다. 그의 인성이 성령의 역사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죄의 오염과 죄과가 개입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론, 72)

“그러므로 우리에게 실제로 오신 분은 성령이셔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체현한다. 요컨대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적용함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하시고 연장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기독론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그리스도는 성령과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으므로 영적 기독론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성령론도 동일하게 기독론적 성령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령신학, 288)

율법주의 행위언약과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이나 그와 유사한 내용을 가르친 적이 없는 칼빈은 어떠했을까? 칼빈도 메시야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이 성령의 능력을 활용했다는 설명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역사했다고 설명하는 말은 더 많이 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을 통해 직접 역사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그 신성(神性)을 판단한다면, 한층 더 그리스도의 신성은 명백해질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태초로부터 성부와 함께 이제까지 일하신다고 말씀하시자(요 5:17), 주님의 다른 말씀에 대하여는 극도로 둔감했던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그리스도께서 신적 권능을 행사하신다고 느꼈다. 그 결과 요한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여기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는데도 이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기독교강요, 1.13.12).

칼빈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메시야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이적들이 성령이 도우심으로 일어났다고 설명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성의 역사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신격(신성)이 이적에서 얼마나 명백하고 얼마나 확실하게 입증되어지고 있는가! 선지자나 사도들이 그리스도가 베푸신 이적과 똑같거나 그와 비슷한 이적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사를 나누어 준 데 반하여 그리스도의 이적은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셨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적과 그리스도의 이적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님은 이적을 행하실 때, 성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가끔 기도를 하셨다(요 11:41).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님 자신의 권능이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로 다른 사람에게 이적을 행할 것을 위탁하신 분이 어떻게 이적의 참된 창시자가 되지 못하겠는가?” (기독교강요, 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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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