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도록 하자.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창조주 하나님이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한 사람이 되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죄로 인해 죽은 자기의 모든 백성을 위해 대신 저주받으시고자 창주주께서 친히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결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켜 영생의 자격(의)를 획득하려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아담 안에서 자신에게 반역죄를 범한 모든 자기 백성들의 죗값을 자신이 대신 죽음으로 갚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0)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서 고난 속에서 참으시어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구절이 능동순종의 근거라고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요구하신 것을 이행하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들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율법의 정당한 요구대로 모든 고난을 다 받으셨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지불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히 2:17)

하나님이 성육신하시어 우리와 같은 사람(형제)이 되신 것은 우리 대신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의(영생의 자격)를 얻으시려 함이 아니고, 자기의 흠 없는 몸과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려 함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으로 속죄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는 완전하게 사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려고 성육신하셨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4)

이 내용이 히브리서의 가장 큰 주제이다. 흠없고 거룩한 자기의 몸과 생명으로 속죄의 제사를 직접 집도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신 대제사장이라고 한다.

원래 구약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황소와 염소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나아가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대제사장의 제사는 우리의 죄를 조금도 사하지 못하였다. 단지 훗날에 일어날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를 흉내냈을 뿐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고대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묘사하는 히브리서의 메시지 속에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영생의 의를 얻어서 우리에게 전가한다는 가르침을 전혀 없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흠 없는 몸과 피를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하게 해소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가르침이 히브리서의 핵심이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의 직무는 율법의 정죄를 받는 하나님 백성을 위해 대신 소와 양을 죽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구약의 대제사장 개인에게 누구보다 율법을 잔 준수하여 율법이 주는 영생의 자격(의)을 얻으라는 사명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설명하는 히브리서 저자에게도 그리스도는 오직 자기의 목숨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여 죄용서와 구원을 주시는 분이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영생의 의를 획득하여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고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는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교리와 히브리서는 무관하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능동순종 거짓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말씀을 자신들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약점을 다 아시고 공감하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죄를 범하시지 않고 시종일관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 해 드리는 순종의 삶을 사셨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완전한 만족을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첫 아담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진리를 말하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조롱하고 멸시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복음을 말하면, 사람들은 가차없이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시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으셨다. 

히브리서의 이 내용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다. 성자 하나님에게 우리 죄인들의 형제로 성육신하여 죗값을 대신 지불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완벽하에 이행하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온전한 자세로 다 당하시면서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아버지께 완전한 만족을 드리셨고, 조금도 범죄하지 않았다.

히브리서 속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심으로 의를 얻었다는 내용은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신 상태에서 우리들의 약함을 다 공감하시면서 하나님의 속죄의 어린양의 길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중요한 강조 사항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으니라.” (히 5:7)

우리처럼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 완전한 율법준수를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게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어 시종일관 아버지 하나님을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순종의 삶을 실천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는 순종의 삶을 사심으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엡 5:2)이 되셨다는 의미이다.
 

“그가 아들이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 5:8,9)

비록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을지라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대신 죗값을 치르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는 의미이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을 석가모니가 고통스럽게 수행하여 완전함(득도)에 이르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고난 가운데 힘을 다해 순종하고 율법을 준수하심으로 의롭고 온전한 구세주가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큰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리스도는 그 모든 고난 속에서도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수행하시었다. 결국 십자가에 달려 자기의 몸으로 죄인들의 죗값으로 대신 갚으시는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 그리하여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완전하게 책임지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되시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이다. 

 

맺는 말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히브리서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사상이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다시 말하자면, 히브리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삼아 십자가에서 제사드리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게 책임지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렸으므로 사실상 죄용서를 전혀 주지 못했다. 단지 훗날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를 바라보게만 만들었다. 또한 구약의 제사자들은 그 자신들도 죄인이므로 자기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연약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무관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하고 의롭고 완전했다. 우리에게 주실 영생의 의가 없는 상태로 성육신하신 분이 아니다. 자신이 무르는 무슨 의를 얻고자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죄와 무관하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오셨으므로 자기 자신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는 완전한 제사를 친히 집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대제사장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으로 제사를 드려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선물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속에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에 들어가게 했다는 거짓된 주장은 ‘짐승의 표’를 받은 거짓 선생들의 말에 불과하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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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