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1 13:50 (금)
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의 영속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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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의 영속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 정이철
  • 승인 2022.03.0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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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제일교회 정대운 목사(이후 정대운)의 설교 “황금사슬” 10회를 살펴보겠습니다.


3:22~4:14분>
“이 견인 교리가 완전히 비기독교적 교리인데, 이 견인교리가 완전히 지배를 하고 있는 게 지금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왜 그러냐 그러면, 나는 일단 구원의 열차 올라타 버리면 그 속에서 계란을 까먹든 "계란이요, 계란이요" ... 계란을 까먹든 귤을 까먹든, 오징어를 까먹든 영양갱을 먹든 아무 상관이 없는 거에요. 그냥 앉아만 있으면 칙칙폭폭 칙칙폭폭 하면서 주님 차장되시니깐, 칙칙폭폭하면서 천국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율법폐기론적 견인입니다. 이게 바로 율법폐기론적 견인이에요. 이 견인 이론이 너무나 강력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걸 견인이라고 생각하고, 이걸 견인이라고 생각하니깐 견인차 교리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정대운)
 

4:55~5:19분>
“율법폐기론적 견인은 뭐냐 그러면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버렸으니'에요. 올라타 버렸으니 나는 염려없어요. 이게 율법폐기론적인 견인이란말이에요. 근데 정확하게 개혁교회의 견인은 뭐냐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 돌아갈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 계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달라도 너무 다르는데....” (정대운)

“나는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욕망대로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 진짜 구원 받은 사람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될까요? 구원받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정말 얼마나 될까요? 

혹시 구원 받은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매우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 대해 많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해 낸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옛날 부흥사들의 설교처럼) “그 사람의 다리 몽댕이를 부지르거나 사업이 망하게 해서라도” 반드시 회개시키고 변하게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격이나 행실이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이라도 좋은 구석이 있었으므로 구원이 주어진 경우는 아담의 타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구원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나의 죗값을 하나님께 완전하게 배상하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것마져도 완전히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성령이 복음을 전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성령이 미련하고 마귀에게 속박된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춰주시고, 구원을 받게 설득하여 주심으로 된 일입니다. 마치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니 우리의 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간주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죗값을 완전하게 갚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법적인 의로움으로만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파송하시고 영원히 내주하시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성령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이전과 전적으로 다른 새 사람으로 다시 창조하시는 분으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처음의 창조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 작정을 따라, 성자 하나님께서 집행(실행)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질서를 부여하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죄를 범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과 나라를 가지시려고 시작하신 처음의 창조(백성과 나라)가 파괴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죄로 죽고 망가진 백성과 나라를 다시 회복하여 처음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뜻 을 이루시고자 성육신하여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의 죗값을 자기 목숨으로 하나님께 배상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효력을 죄로 죽었던 우리들에게 적용하시어 다시 살리시고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은 처음의 창조 때 모든 피조물들에게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셨던 하나님입니다. 이제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적용하심으로 이전과 다른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정대운의 말처럼) “나는 구원 열차에 이미 올라탔으니 계란이나 까먹고 귤이나 찢어서 먹으면 되지, 거룩이니 순종이니 ... 그런 것 신경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19-23)

사도 바울은 성령의 재창조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열거하면서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은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막는 힘이나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첫 창조에 생명과 질서를 부여하심으로 창조를 아름답게 완성하시고 계속 유지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으면 다음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이제 성령 하나님은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여 다시 살리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갱신)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피의 권세를 적용하여 죽은 자기 백성을 다시 살리시고, 또한 남은 죄를 이기고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성령 하나님의 내주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피조물로 변합니다. 재창조(갱신)의 은혜와 신비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에게 사람이 협력해야만 그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은 구약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 바로 그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무에서 무엇을 만드실 때, “내가 너를 있게 하고 싶은데, 너 나에게 협조하여 있어 줄테니?”라고 물으셨습니까?

우리가 죽었을 때, 창조주(성부, 구약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 백성 삼기를 기뻐하셨고, 창조주(성자, 구약의 여호와 )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죗값을 자기 목숨으로 갚으셨습니다. 동일하신 창조주(성령,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 속죄의 공로에 근거하여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재창조의 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는 일체 개입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정대운의 말처럼, 성령 받은 사람이 구원 열차에 올라타서 계란이나 까먹으면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독교를 모르고, 성령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고 ... 어쩌면 정대운 자신이 복음과 구원과 무관해서 이런 설교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에 대해 바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견인 교리가 완전히 비기독교적 교리인데, 이 견인교리가 완전히 지배를 하고 있는 게 지금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정대운)

이처럼 성도의 견인 교리를 쉽게 부정하거나 흔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도의 견인이란, 사람이 힘써 자기의 믿음을 지킴으로 결국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예정된 은혜를 따라 구원 받고, 이후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버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호 속에서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주권에 의해 우리가 받은 영원한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입니다 .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의 역할이 구원을 유지하는데 작용을 한다는 거짓 신학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정대운에게 그것이 나타니다.

“율법폐기론적 견인은 뭐냐 그러면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버렸으니’에요. 올라타 버렸으니 나는 염려없어요. 이게 율법폐기론적인 견인이란 말이에요.” (정대운)

정대운은 ‘율법폐기론적인 견인’이라는 말장난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구원을 흔들고 있습니다. 정대운의 말을 뒤집으면, 율법을 지키는 노력, 삶, 열매로 견인이 유지된다는 것 아닙니까? 율법이 지적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올바른 삶으로 성도의 견인이 가능하다는 것 아닌가요?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요? 죄와 싸워서 이기는 삶(성화)을 전적인 성령의 열매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자극을 받아서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성도의 견인이 가능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성화구원론, 행위구원론, 로마교회 구원론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청교도주의자들의 구원론이 이것들과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대운은 구원 받기 전에 율법을 통해 사람이 죄를 깨닫고 구원을 사모해야 하는 회심준비론 이단사상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은 후에는 율법이 실현되는 삶을 살아야 구원의 유지, 즉 성도의 견인이 가능해진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율법주의의 특징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구원받은 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으로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스스로 하거나, 사람이 성령에게 협조함으로 되는 것처럼 왜곡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견인은 뭐냐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 돌아갈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 계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정대운)

정대운은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참고 인내함으로 성도의 견인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창조주이신 성령의 권능과 주권을 무시합니다. 사람이 제 역할을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구원의 언약이 완성된다는 청교도 신학의 영향입니다. 거룩한 삶을 향한 사람의 의지나 노력 그 자체도 성령의 열매임을 무시하거나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대운의 사상과 설교 속에서 일관되게 타나는 특징은 사람의 이성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비성경적 주장들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사람의 이성과 의지가 구원을 위하는 방향으로 역사한다고 합니다. 구원을 받은 후 성도의 견인이 이루어지도록 사람의 의지와 이성이 주체적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결국 구원은 사람 자신의 완전한 작품이거나, 또는 절반의 작품입니다.

정대운이 성도의 견인 교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성경의 인물 야곱의 구원과 삶을 연구해 보기를 권장합니다. 구원과 삶의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신 자기 백성을 반드시 변화시키고 결코 다시 잃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성화와 구원의 영속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거나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야곱의 때에는 아직 율법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율법폐기론이나 말하며 성도의 견인이 당사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설교하는 사람은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목사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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