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신학회 - 박상봉 교수의 논문 소감 1

 

합신 역사신학 박상봉 교수(이후 박상봉)가 ‘정암신학회’(21년 11월 16일)에서 발표한 논문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 루터, 츠빙글리, 칼빈을 중심으로”를 살펴보는 첫번째 시간입니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논쟁은 1588년 봄에 독일 나싸우-딜렌부루크(Nassau-Dillenburg)의 요한 6세의 궁정에서 행해진 결혼식의 설교에 대해 요한 피스카토르)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 그는 죄인을 의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관련해서 십자가 죽음이라는 수동적 순종이 옳고, 율법의 순종이라는 능동적 순종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상봉)

“피스카토르의 논쟁을 통해 개혁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분의 대속사역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분되었지만, 이 두 가지 용어에 따른 논리적 개념은 종교개혁자들에게서 전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상봉)

능동순종 논쟁이 피스카토르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촉발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로 분류되는 피스카토르가 능동순종 교리에 대해 최초로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미니안들은 기본적으로 법정적 칭의론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죄용서 받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믿는 자의 것으로 인정되어 영원하고 완전한 칭의를 받는다는 신학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알미니안들은 실질적 칭의론을 주장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구원)가 시작된 후 신자가 철저한 순종과 회개의 실천으로 인해 하나님의 눈에 실제로 의로워진 사람으로 인정됨으로서 칭의(구원)가 완성된다는 실질적 칭의론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피스카토르가 능동순종을 거부했던 이유와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와 반대하는 이유는 완전히 다릅니다.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는 죄와 무관한 출생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한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심으로 자기를 믿는 우리에게 법정적 칭의를 선물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영원한 칭의를 얻은 성도는 이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을 따라 실제로 거룩해지는 성화를 반드시 이루어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가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1) 성경 어디에도 율법이 자기를 지키고 따르는 자에게 영생의 의를 준다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의가 되어주시고자 친히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시었는데, 그 분에게 우리를 위한 의가 부재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그것을 얻었다고 하니, 성육신과 율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3)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율법준수로 자기의 칭의를 완성하라 가르친 로마교회의 칭의사상이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 이전된 같은 율법주의 칭의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전통적인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 으로 이해했다. 죄인이 구원을 얻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순종으로 확신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그분의 대속사역에 대한 완전성과 직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이 17세기 신학자들처럼 두 개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단순히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된 수동적 순종으로만 생각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결코 옳지않다.” (박상봉)

박상봉은 종교개혁자들은 칭의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만 했는데,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수동적 순종’으로만 우리의 칭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서철원 박사나 정이철 목사 등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은 수동적 순종만으로 칭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는 ‘능동적’, ‘수동적’이라는 말과 개념 자체를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쓸모없는 사람의 철학적 사변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셨다. 그리스도는 반역한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자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엡 5:2)으로 드리심으로 믿는 죄인들이 칭의를 얻게 하셨다.” (서철원 -정이철)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의 칭의론은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했다는 사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칭의론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던 분이라면,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만족을 드린 ‘하나님의 어린양’, 또는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했음을 인정하면 그만인데, 왜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는 능동순종 교리를 극구 반대할까요?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 기둥인 십자가를 허물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또는 ‘율법에게’) 순종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드리셨음으로 죄용서와 칭의가 발생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찾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4-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성경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내놓으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가 곧 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교리에 의하면, 죄용서의 원인은 십자가이고 칭의를 얻어 의인이 되는 것의 원인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입니다. 결국 십자가로만 말미암는 칭의를 무너뜨리는 마귀의 작전이 종교개혁 교회 속으로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칭의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았다는 마귀 신학을 종교개혁 교회들이 추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철원 박사와 정이철 목사는 능동순종을 극구 반대하는 것입니다.

“칭의에 대한 종교개혁자들과 로마카톨릭교회 사이의 첨예한 논쟁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와 관련된 칭의의 근거와 죄인의 신분이 법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관련된 칭의의 유익에 그 초점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칭의의 원인이 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깊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박상봉)

박상봉은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를 상대로 법정적 칭의신학을 진리로 세우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인에게 칭의가 주어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사상은 본질적으로 로마교회의 칭의론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어 칭의가 시작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실제로 의로워져야 하나님의 칭의가 완성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로마교회의 율법적 칭의론에 의하면,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구원을 절대로 확신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죄를 범하면 그때까지 이루어가던 칭의 공적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입니디.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에 의하면,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얻습니다. 그때부터 얼마든지 자기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죄와 무관하고 시종일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기쁘시게 한 예수 그리스도가 죗값을 갚으로는 하나님의 (또는 ‘율법의’) 정당하고 의로운 요구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이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의 요구를 따라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사상은 로마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율법적 칭의 획득 요구를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 이전시켰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홀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셔 얻으신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분여되어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의가 절대로 율법에게서 나온 의가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진리를 사뿐하게 밟아버렸습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9)

사도 바울은 본래 율법에서 나온 의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과정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변형되었다고 믿었던 것일까요? 바울은 그리스도보다 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인데, 왜 자기의 의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사실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의를 다 가지신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와 ‘화해’가 곧 칭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순종 사상은 십자가를 허물고 다시 율법을 도입하는 거짓 신학입니다.

“이를 통해 세 종교개혁자가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능동적인 면과 수동적인 면을 명확히 밝혔음을 알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측면으로 개념화된 그리스도의 순종이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정통주의의 신학적 연속성과 관련하여 개혁신학의 주류적 입장임을 확신시키려고 한다.” (박상봉)

박상봉은 세 종교개혁자(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신학 속에 이미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 개념이 있었으므로 자신이 그것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루터와 츠빙글리와 칼빈의 신학 속에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는 단지 우리의 죄용서를 만들어 냈고, 평생 모세의 율법을 잘 준수하심으로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신학은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칭의론을 주장했다면, 그들은 로마교회의 아류들이었습니다.

과연 박상봉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속에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거짓 이단사상이 있었다는 허무랭랑한 이론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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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