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운 목사의 황금사슬 설교 9회에 대한 소감 7(마지막)

정대운 목사의 황금사슬 설교 9회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1:28~22:36분>
“‘이게 율법폐기주의가 얼마나 엉성한 이야기인지 말씀을 드릴께요. 요한계시록 22장 14절 말씀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 이 두루마리를 빤다는 것이 뭐냐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항상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걸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화 자체도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화가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매일마다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어떤 복이 있느냐?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하려함이라’(계 22:14). 이렇게 나왔거든요. 역으로 해석해 볼께요. ‘그들이 두루마리를 빠는 자가 아니면, 복이 없나니 저희가 생명나무에 들어가지 못하며 문을 들어가지 못하며 성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거에요.

여러분! 율법의 3용도 순종. 하나님 말씀에 순종. 그것에 대해서 우리들의 기쁨으로 그 일을 일해 나가는 것(이부분이 잘 안들려서 정확하지 못해요 목사님~) ... 이게 없는 자는 천국에 못가겠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대운)

성도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는 어려운 내용입니다. 율법폐기론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율법폐기론은 율법을 폐기해 버렸다는 뜻이라기 보다, 율법이 지적하는 죄를 범해도 구원 받은 성도의 신앙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그릇된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의 요구대로 대신 죽으신 공로로 구원 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곧 '정죄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율법의 억압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대운이 율법폐기론이 잘못되었다고 설교하는 것은 틀린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폐기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목적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성도의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흔들기 위함이므로 심각합니다. 정대운은 율법폐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을 인용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요 22:24)

이 말씀이 한번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이상한 분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 9:26)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죄를 위한 '단번의 죽으심'으로 모든 자기 백성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때까지의 죄만 용서받고 이후의 죄들은 그 사람의 회개로 용서받는다고 합니다. 완전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믿는 순간 영원하게 완전하게 용서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회개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로를 덧입은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이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안경을 통하여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버려지거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르심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평생 동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으므로 만일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꺼이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흔들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대운은 성경 말씀을 고약하게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영원한 구원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시시때때로 회개하지 않으면 영생을 잃어버린다고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역으로 해석해 볼께요. ‘그들이 두루마리를 빠는 자가 아니면, 복이 없나니 저희가 생명나무에 들어가지 못하며 문을 들어가지 못하며 성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거에요.” (정대운)

정대운은 청교도 신학의 율법주의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율법이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또한 구원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율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정대운이 보통 장로교회가 강단교류하지 않는 감리교 목사이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대운은 장로교 목사이고, 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혁주의 속에서도 최고의 개혁주의라고 자랑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됩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영원성은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은혜와 주권에 달려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한번 얻은 구원이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이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9)

정대운이 이상하게 인용한 요한계시록 22:14절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어(적용받아) 구원 얻은 참 성도에게서는 지속적인 회개와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15절도 문자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진정으로 생명나무(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회개)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특성을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 22:15)

이 구절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하였으므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성(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전체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앉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하며 사는 특징을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서철원 박사님은 14절을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참으로 예수 믿는 자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정대운이 청교도 신학의 율법주의에 사로잡히니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필연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23:30~24:40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버렸으니 ... 이렇게 나가면 성화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계시록 말씀처럼 두루마리를 빠는게 없으면 생명나무에 접근할수 없으니 여러분이 덜컥 겁이 납니다. 웬 줄 아십니까? 우리는 행위를 하므로 구원받지는 않지만, 구원 받은자에게는 당연한 행위가 있어야 되고, 그 당연한 행위가 없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22장 말씀이 나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삶에서 선한 행위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없이 천국 갈 생각은 아예 말아야 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규칙을 가르키는 것은 율법입니다. 이 2개는 양손과 같아서 우리를 구원시키고, 우리를 마지막에 영화까지 갈 때, 한 손에는 율법 한 손에는 복음으로 2개를 가지고 우리를 끌고 갑니다.” (정대운)

정대운이 여기서도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없다고 하는군요. 계속 율법주의 신앙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거룩하게 변해가는 삶의 성화를 보이게 됩니다. 성화없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열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적용하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삶의 변화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대운은 이 진리를 당당하게 왜곡해 버렸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자세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행위를 하므로 구원받지는 않지만, 구원 받은자에게는 당연한 행위가 있어야 되고, 그 당연한 행위가 없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22장 말씀이 나오는 겁니다.” (정대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는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 합당한 행위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그릇된 구원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 리차드 백스터라고는 유명한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는 하지만, 이후 삶에서 회개와 순종이 얼마나 나타나는가에 따라 구원이 완성되기도 하고 박탈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신자들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기는 하지만, 이후의 삶을 평가하는 최후의 하나님의 심판에서 떨어져서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 새관점 학파들의 구원론로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허물면 이단입니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 진리를 세우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을 다시 개혁했다고 자랑했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신칭의를 허물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를 여전히 말했지만, 사람의 역할이 첨부되어 효력을 발휘하는 이신칭의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청교도주의와 칼빈주의는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정대운은 청교도들의 잘못된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정대운의 이 말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삶에서 선한 행위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없이 천국 갈 생각은 아예 말아야 됩니다.” (정대운)

선한 행위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없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의 신앙의 어디에 세워야 하나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었는데, 다시 율법에 순종해야만 우리가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것으로 만드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선행의 열매와 율법의 정신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는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야 진정한 목사입니다. 정대운처럼 가르치면 십자가를 거스리고 파괴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함께 저주받게 됩니다.
 

24:49~25:28분>
“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음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절대로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전부 다 외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어떻게 만드냐? 율법을 기쁘고 자원하는 맘으로 지킬 수 있는 맘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복음이 없는 상태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모두 외식이고 가식인 것이에요. 왜냐하면 복음만이 우리가 기쁨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는 맘을 주시니까.” (정대운)

복음의 은혜를 받으면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게 된다는 정대운의 주장의 뿌리도 청교도들의 그릇된 신앙입니다.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키신 공로로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우리들에게 구원을 위한 율법준수 의무는 더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셨으므로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도리인 율법준수를 더 잘하게 되고, 또한 그것이 구원의 열매이고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 어디에도 성도에게 구원의 열매와 증거로서 율법준수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몸을 죽임으로 제 할 일을 다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죄인을 대표하여 그리스도가 율법대로 죽으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이미 율법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4)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의 요구대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한 성도는 오직 믿음과 성령으로 삽니다. 믿음과 성령의 열매를 맺으므로 처음의 율법의 요구가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죄에 찌들어 사는 옛사람(엡 4:22)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새사람(엡4:24)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약의 진리입니다. 그러데 정대운은 뭐라고 했습니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음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절대로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정대운)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키셨는데, 정대운은 우리가 더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율법을 더 잘지키기 위해 예수 믿는 것으로 기독교를 왜곡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신약 성도의 신앙을 왜곡하였습니다.

청교도 신학의 율법주의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요구대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율법에서 해방된 신약의 성도들에게 다시는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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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