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교수(이후 김재성)는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로움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하시어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이단사상을 추종한다. 그래서 합동 교단의 이대위 조사 대상이 되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김재성은 자신의 신학을 더 주장하기 위해 정대운 목사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2021년)을 출판하였다. 오늘은 이 책의 91페이지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의로우신 요구들에 부합하기 위해서 만족함을 완전히 실천하였다 (롬 3:26).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서 옳다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선언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율법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의 시험을 완전히 통과하셨기에 의로운 분이시다.” (김재성, 91)

김재성의 이 말은 참으로 심각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의로운 삶을 살았는지 율법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림자가 그림자를 만들어 낸 실체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던가? 성경은 먼저 온 율법이 나중에 오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 9:24)

구약의 율법은 왜, 어떻게 지상에 오게 되었을까?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자의 십자가 제사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율법이 왔다. 율법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자를 통하여 이루어질 구원을 설명하고 준비하는 특별계시였다. 율법은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동시에 선포하였다. 1) 모든 사람은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되었으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한다. 2) 하나님이 보내신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충족시키는 특별한 사람, 즉 무죄하고 의로운 한 사람이 다른 죄인들이 받아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르면 구원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신 분, 하나님의 성육신자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지적하는 죄성이 처음부터 없는 특별한 사람으로 오셨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스도는 사시는 동안 한번도 간음죄를 범하시지 않았는데, 그리스도께서 매일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기셨기 때문이 아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인격을 가졌고 인간의 죄와 무관하게 성령으로 잉태되이어 출생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반드시 다음과 같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지시와 요구가 다 완전하게 실현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의롭고 거룩하고 죄와 무관하신 하나님의 성육신 자! 그래서 성경은 율법을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하고 완전하고 의로운 분이셨다. 율법은 그와 같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려고 오신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특별계시였다. 구약 성경이 말하는 메시야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고난받으면서 죗값을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는 메시야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6-8)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무엇을 배우거나, 경험하거나, 훈련되거나, 능력을 받음으로 구세주로서 완전함을 인정받았다는 가르침이 없다. 그런데 김재성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옳다고 인정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선언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율법이다.” (김재성, 91)

김재성의 말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율법을 준수함으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죄인을 살리는 길이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죗값을 대신 치르는 것 하나뿐이므로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어주시고자 성육신하셨음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죄와 무관하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의 것으로 인정됨으로 얻어지는 칭의를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런데 김재성은 그리스도가 땅에서 율법준수하여 의로움을 얻으셨다고 한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셨음으로 의인이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장을 위해 김재성을 다음의 말씀을 근거로 인용하였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6)

김재성은 마치 그리스도가 땅에서 의로워지신 후 자기를 믿는 자들까지 의로워지게 만드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내용을 찾아서 인용하였다. 그러나 바로 앞 구절과 함께 붙여서 다시 읽어보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5, 26)

그리스도가 자기의 목숨(피)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려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으므로 믿는 자들에게 칭의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 4-5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의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하였다. ‘율법의 마침’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종결짓는 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으로 도덕적인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고 계명에 따라서 ‘율법의 목적’을 이뤘다는 의미이다.” (김재성, 92)

자기의 주장을 위해 앞에서 교묘하게 성경을 왜곡하였던 김재성은 여기서 또 성경을 왜곡하였다. 롬 10:4절의 믿는 사람들이 칭의를 얻도록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대신 충족시켰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재성과 능동순종 파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다 완전하게 준수함으로 칭의의 근거를 만드셨다고 한다. 김재성은 롬 10:5절을 빌미삼아 원래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자에게 영생의 의, 즉 칭의를 얻는 길이 기독교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일반 죄인들이 무능하여 그리하지 못하므로 그 원리가 사장되어 있었는데, 유능하신 그리스도께서 최초로 완전한 율법준수를 행하여 영생을 위한 의(칭의)를 얻었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이는 김재성의 허튼 짓에 불과하다. 롬 10: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가 정말 그리스도의 100% 완벽한 율법준수를 통한 칭의 획득을 말하는 내용인가? 그렇다면 왜 성경 속의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시려는 특별한 열정을 보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율법으로는 구원(의로움)을 얻지 못다는 다음의 명백한 말씀은 대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의로움을 획득하였다는 김재성의 신학은 거짓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롬 10:4절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처음부터 충족시키고도 남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고 있는 죄인들의 죗값을 자기 몸으로 대신 완전하게 지불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를 찬송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롬 10:5절,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가 기독교 속에 원래 율법적 칭의 신학이 있었으나 무능한 일반 죄인들이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는데, 유능하신 그리스도께서 최초로 성공했다는 김재성의 성경해석도 거짓이다.

롬 10:5절을 얼핏 보면 정말 율법적 칭의가 가능하다는 말씀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 후의 6-10절을 보면, 인간에게 칭의를 주기 위해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한다. 사도가 5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최초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칭의의 길을 여셨다고 말하고, 바로 그 다음부터 반대되는 내용, 즉 우리의 칭의를 위해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이 일어났다고 말하였을까?

원래 기독교 속에 율법적 칭의의 길이 있었으나 연약한 사람들이 그 방법을 이용하지 못하였고, 최초로 유능하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율법준수로 칭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했다는 김재성의 신학은 거짓이다.

이런 주장이 특히 위험한 이유가 있다. 로마교회에서 간신히 개혁하여 나온 종교개혁 교회를 다시 로마교회 신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매우 나쁜 사상이기 때문이다. 로마교회는 사람이 율법을 행하여 완전한 칭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완전한 율법적 칭의에 이르기 전에는 아무도 구원의 확신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김재성의 신학은 로마교회의 율법적 칭의신학이 단지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로 적용되게 하는 신학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칭의가 나온다고 하므로 결국 로마교회의 칭의 신학과 비슷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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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