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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영생 주었다는 신학 고집하면 이단시비 못 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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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영생 주었다는 신학 고집하면 이단시비 못 피합니다
  • 정이철
  • 승인 2022.02.12 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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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박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소감 7

 

김재성 교수(이후 김재성)는 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했다는 신학에 미쳐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여 영생의 의를 얻었으므로 믿는 자들이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합동 교단의 이대위의 조사 대상이 되는 수모까지 당하고 있다.

김재성이 능동순종 논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입장을 더 공고하게 굳히기 위해 펴낸 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2021년)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86페이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에서 설명한 핵심은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법을 거역했고, 그로 인해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죽음에 처해졌다.” (김재성, 86)

김재성은 하나님이 다른 과일들은 모두 먹을 수 있느나 단 하나, 선약과를 먹지 말라 명하신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다고 한다. 87-88페이지에서 “아담과는 정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전 생애 기간 동안 모든 율법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시고”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다는 김재성의 말은 아담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했다는 뜻이다.

성경에 의하면, 율법은 인간의 범죄가 있은 후 범죄하여 죽은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다시 살리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안에서 나중에 도입되었다. 먼저 범죄한 자들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결국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와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율법을 보내셨다 (롬 5:20; 갈 3:23).

그러므로 김재성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율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로 창조하신 자기 백성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해 율법을 보내셨다는 것인가? 아직 타락하지 않았으나, 감추어진 어떤 죄가 아담에게 있었으므로 율법을 그에게 보내 정죄하시었다는 것인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하나의 율법이었다면, 또는 전체 율법의 상징이었다면, 훗날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왜 필요한가?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 죽었으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셨어야 마땅하다. 율법 하나를 지키지 않은 자를 다시 살리기 위해 굳이 십자가에 달려 대신 저주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과연 그리스도께서 오버(over)하신 것인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관통되어야 올바른 성경 해석이다. 원죄 이해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코드와 맞아야 한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논쟁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코드로 해결해야 한다. 아담의 원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서로 연결되는 동일한 코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담의 원죄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설명되어야 한다.

김재성처럼 하나님의 선악과 명령을 율법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원죄이면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켜서 원죄를 상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능동순종 교리의 치명적인 문제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코드의 절대성이 허물어진다. 그렇다고 십자가를 버릴 수도 없으니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는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고 율법으로 영생을 주었다는 이단적인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된 자신의 신분과 사명을 버리고자 결단하였다. 창조주를 섬기는 피조물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체계를 수립하기 원하였다. 마귀가 유혹했던 것처럼,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기 원하는 패역한 욕망에 순종하여 반역을 결행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영원한 저주와 사망의 형벌에 처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죄로 죽은 자기 백성 아담을 살리는 방법은 아담의 죗값을 하나님 자신이 대신 감당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아담의 죗값을 친히 지불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의롭다고 하는 선언을 듣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의롭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골고다에서 이뤄졌다거나, 십자가에서 수행되었다는 지적이 없다.” (김재성, 89)

김재성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맞는 말인데, 무슨 뜻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단적인 주장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말이다. 구약 성경은 우리의 죄용서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5-10)

이처럼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죄로 죽은 자기 백성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분으로 예언하였다. 그리스도는 무죄하고 의로우신 분으로서 죄로 죽은 하나님 백성들의 죗값을 자기의 몸으로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분으로 구약 성경에 계시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구약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영생의 자격, 즉 의로움을 획득한다는 이론은 구약 성경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불의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기를 믿는 자들이 의인으로 인정될 것이라고만 예언하였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사 53:11)

신약 성경도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이 받아야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믿는 자들이 의인으로 인정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8)

이처럼 신약 성경도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죄있는 백성들의 죗값을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었다고 가르친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고, 그 분의 순종의 최고 정점이 십자가였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의로운 어린양으로 오시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오신 후 고난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고 수행하심으로 의로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배우거나, 경험하거나, 무엇에 순종하심으로 의로움을 얻으신 분 즉 ‘후천적으로 되어진 의로운 어린양’이었다면, 그 분은 ‘부처 그리스도’이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도’일 수 없다. 김재성의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었다는 주장은 매우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골고다에서 이뤄졌다거나, 십자가에서 수행되었다는 지적이 없다.” (89)

이와 같이 김재성은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뜻을 향한 순종을 십자가 사역과 분리시킨다.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신.구약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뜻을 향한 순종의 정점이 십자가의 수난이라고 말하는데, 김재성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가와 분리시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왜곡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구원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예수 그리스도는 전 생애 기간 동안에 모든 율법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시고, 아담의 실수를 온전히 회복하셨다.” (김재성, 87-88)

“신약 복음서는 인류의 구원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서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 생애와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다루었다.” (김재성, 88)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시는 모습을 얼마나 볼 수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이 여러 종류이기 때문인가 성경을 보는 인간의 눈이 여러 종류이기 때문인가?

김재성은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자기 몸으로 대신 받으심으로 죄용서와 칭의와 구원이 일어났다는 기독교와 성경의 핵심 사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집을 부리고 있다. 김재성은 집요하게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다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찾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4-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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