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다. Christ did not obeyed the law, but obeyed his Father's will. And He achieved his Father's will. (고경태 목사)

이상은 필자가 만든 문장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순종하셨다는 청교도주의 주장이 있는데, 요한복음을 강해하면서 느낀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성취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아버지를 아는 자는 아들을 알며, 아들에게 순종하며, 아버지께 보냄 받은 자를 믿는다.

아버지께 보냄 받은 자를 믿는 것은 곧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hge)이라고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우스가 말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조창훈 목사가 페북에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칼빈의 제시를 밝히고 있는데, 아버지의 경륜에 순종하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청교도주의에서는 율법에 순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빈의 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 아닌 아버지의 경륜에 순종하신 것을 밝힐 수 있다.

둘째, 청교도주의는 율법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배웠다"는 것을 문자로 적용하여 배움으로 성장하여 완성되었다고 표현한다.

셋째, 청교도주의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전하지 않고, 순종의 삶(능동적 순종)의 전가의 필수성을 주장한다. 우리의 구원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에 관련된 어느 부분도 구원에서 제외될 수 없다. 다만 요한 사도의 가르침으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위한 지식이 완전하다.

기록할 수 없는 수많은 양의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는(요 20:30-31) 우리가 침묵해도 구원에 문제가 없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보고이다. 청교도주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생애(능동적 순종)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천상 통치가 소홀하게 되었다.

필자는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사랑의 법을 성취하신 것으로 제시하려고 한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사랑하고,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완성이다. 그래서 순종의 법이 아닌 사랑의 법이 우리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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