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넓어진 선교관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선교(宣敎, mission)는 주 예수께서 교회에 명하신 전도의 사명을 가리켰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 얻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귀하고 중대한 임무이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에 대한 이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개념이 변질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를 죄인들의 영혼 구원의 활동으로만 보지 않고, 교회가 세상 속에서 행할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선교관이 넓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예들을 들어보자.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회(지금의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다른 소위 ‘1967년 신앙고백’을 채택했는데, 그 고백서는 교회의 사명[선교]에 대해 이렇게 진술하였다: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은 그의 화목케 하시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보내지는 것이다. 이 공동체 곧 세계적 교회는 하나님의 화목의 메시지를 위탁받았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적의(敵意)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수고에 참여한다(2.1.1).

교회의 회원들은 화평의 밀사(密使)들이며 정치, 문화, 경제면에서 세력 있는 자들이나 집권자들과 협력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 세력들이 인간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가장(假裝)과 부정(不正)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1.3.1).

인간을 향한 그의[그리스도의] 봉사는 교회가 모든 형태의 인간 복리를 위하여 일할 것을 위탁한다. 그의 수난은 교회가 인류의 모든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여 각종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도록 만든다(2.1.1).

교회는 모든 민족 차별의 폐지를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으로 인해서 상해를 받은 자들을 위하여 봉사한다(2.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인간생활 전체 곧 사회와 문화, 경제와 정치, 과학과 기술, 개인과 단체, 전부를 포괄한다(3.1.1).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강조되는 선교관도 이런 선교관이다. 1980년 멜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계선교 및 전도대회는 말하기를, “인권을 위한 투쟁에의 참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위로 선포할 교회의 전체적 선교의 중심적 요소이다”라고 하였다.

WCC의 전 총무 필립 포터도 주장하기를, “우리는 경제적 정의와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쟁을 하나님의 선교를 통한 세계의 전체적인 해방의 요소들로 본다”고 하였다. 심지어,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사회적인 전도 개념을 말하기를, “복음 전도에서 우리는 개인적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창조세계 질서 전체의 변혁을 목표한다”고 하였다.

WCC 1983년 선교와 전도 선언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개인의 회개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 . . 복음 전도는 이 세상의 구조들,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해 말한다”고 말하였다.

WCC의 이런 선교관은 특히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IMC)가 WCC 세계 선교 및 전도위원회로 통합된 후 그 위원회장이었던 필립 포터의 지도 아래 나타났다. 그 후에, 그 선교관은 1968년 WCC 웁살라 총회에서 제안되었고, 1973년 방콕에서의 세계 선교 및 전도 대회에서 강조되었다. 이것이 소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혹은 ‘전체적(holistic) 선교관’이다. WCC의 현재의 선교관은 이전 역사의 계속일 뿐이다.

미국의 9개 교단의 통합을 추구하는 교회연합 협의회(COCU)도 선언하기를, 교회의 공동적 선교(사명)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라고 했다. 레온 왓츠 같은 이는 심지어 사회 활동을 교회의 일차적 사명[선교]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넓어진 선교관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퍼져 있다고 보인다. 1996년, 한국 개혁신학회 제1회 학술심포지엄에서 장로회신학대학(예장통합)의 이형기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나아갈 방향: 선교신학의 입장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믿지 않는 자들을 회심시키는 일에 초점을 두었던 19세기 선교 개념이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교회의 사회 참여 측면을 포함하게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이 두 흐름의 선교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전체적(whole)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유행하는 ‘전체적 선교 개념’ 즉 ‘넓어진 선교관’이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런 ‘넓어진 선교관’을 받아들인다. 1974년 복음주의자들의 로잔 언약은 교회의 사명에서 전도가 일차적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전도와 사회정치활동 간의 불가결의 연관성을 강조함으로 선교 속에 두 요소를 포함시키는 경향을 이미 보였다.

로잔 선교대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죤 스토트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마 28:19]의 결과들뿐 아니라 그 실제의 부탁 자체가 전도의 책임뿐 아니라 또한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나는 지금 더 분명하게 본다”고 하였다.

개혁주의에큐메니칼협의회(RES) 총무 폴 슈로텐보어도 말하기를, “전도는 일차적이지만 또한 예비적이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인적 회심과 구조적 개혁을 요청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선교가 아니고, 심지어 전도에 대해 ‘전체적 개념’을 주장한 것이다!

밀라드 에릭슨은 교회의 네 번째 직무로 사회적 관심을 들며 교회가 세상에서의 궁핍이나 상처나 잘못을 보는 모든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웨인 그루뎀도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사역은 전도와 구제이며 전도가 우선적 사역이지만 그와 병행되어야 할 사명이 구제사역이라고 말했다.

1990년 9월에 예장 합동측이 주최한 서울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한 선교사 100명 중 설문에 응답한 64명 중에, 선교가 전도를 뜻한다고 대답한 자들은 50%뿐이었고, 전도와 문화적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지만 전도가 우선이라고 대답한 자들이 32.8%, 우선 순위를 두지 말고 둘 다 감당해야 한다고 대답한 자들이 14%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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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