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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가 행동의 절제 부족이라며 그리스도의 구원 방식을 비트는 신종 개혁주의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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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가 행동의 절제 부족이라며 그리스도의 구원 방식을 비트는 신종 개혁주의 이단
  • 정이철
  • 승인 2022.01.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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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박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소감 6

 

김재성 교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집요하게 주장하다가 합동 교단의 이대위에서 조사를 받는 일생일대의 수모를 당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통해 자신과 우리의 영생을 위해 필요한 자격, 즉 의를 얻어서 전가했다는 것이다.

능동순종 교리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영생이 불가능하고 단지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담 역시 능동순종(율법준수)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획득하도록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영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총신 신학의 아버지, 박형룡 박사도 서구 신학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아무 의심없이 수용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행치 않으셨더면 그의 인성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충분히 응수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속죄가 불가능하셨을 것이다. 또 최종으로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에게 부과된 형벌을 받을 셨을 뿐이면 그의 사역의 열매를 분참(分參)한 자들은 아담이 타락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박형룡, 저작전집 4권 351-352 페이지)

박형룡 박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만 받았다면 우리는 단지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로 복귀할 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도록 창조하셨으나, 아담이 그리하지 못했으니 십자가의 죄용서는 여전히 구원이 없는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만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담을 그렇게 생각한다. 

확실히 능동순종 교리의 출발은 아담의 처음 상태에 대한 오해이다. 영생 안에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영생을 잃었다는 성경적 이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아담이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는 공로를 통해 스스로 영생을 얻어야 할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심각한 오류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실패한 영적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실행했다고 주장한다.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공로가 없이 단지 십자가만 지셨다면 죄용서만 있고 영생이 없다고 한다. 

“아담은 불순종했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불순종한 아담과 달리 그리스도는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자기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었다”고 신앙고백하지는 않는다. 똑 같이 아담의 불순종을 말할지라도, 그 불순종의 내용이 뭐냐에 대한 이해가 서로 심각하게 다르다. 

아담의 불순종을 김재성 교수(이후 김재성)처럼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모세에 율법에 대해 완전한 순종으로 우리의 영생의 자격이 발생했다고 믿는다. 김재성이 능동순종에 대한 논쟁이 한참 뜨거웠던 2021년 말에 출판한 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유발한 원인인 ‘아담의 불순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인간의 모든 비극과 참담함은 아담의 불순종에 기인한다. 아담에게 내려진 형벌로 인해서 모든 인생은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김재성, 81-82)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아담의 불순종이라는 내용은 지극이 원론적이고 맞는 내용이다. 문제는 아담의 불순종을 어떤 내용의 불순종으로 설명하는가이다. 계속 읽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얼마나 위대한 희생이었던가를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담의 불순종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김재성, 83)

김재성이 아담의 불순종을 매우 중요하고 예민하게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담의 불순종의 내용이다. 계속 보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셨다. 그것은 순종이었다. 낙원에 있던 모든 것을 허용하시되, 아담에게 명료하게 기준을 제시하고, 단순한 순종을 요구했다: ‘그 동산 나무에서 나오는 모든 자유롭게 네가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2:16,17).” (김재성, 83)

아담의 불순종에 대한 김재성의 여기까지의 설명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과일 하나를 먹지 말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사실이고 아담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이 그 명령에 대해 불순종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담이 그 과일을 왜 범하였는가, 바로 그것이다. 배가 고팠던 것일까? 다른 과일들에 대해 특별한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담이 무슨 이유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금하신 그 과일을 범했는지,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 6:7)

호세아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의 죄가 아담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반역한 죄라고 설명했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래전에 시내산에서 중보자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그 선조들의 후손들이었다. 시내산에서 그 선조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언약식을 훗날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상징하는 짐승의 피를 증거 체결하였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동적으로 그 선조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수혜자들이고 의무자들이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 백성들의 삶의 원칙으로 부과하신 모세의 율법을 힘써 준수했어야 했다. 율법대로 우상을 섬기지 않았어야 했고, 살인하지 말았어야 했고, 모든 율법이 지적하는 죄들을 범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의무와 마땅한 도리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등의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곧 아담의 죄악과 같았다고 설명하셨다. 하나님의 섬기는 백성으로 살기로 하나님과 언약한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사탄의 충동을 즐거이 따르기로 결단하고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시하는 못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아담의 불순종’이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사탄의 충동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벌였다는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담의 불순종이라는 말의 핵심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사탄이 기뻐하는 죄악을 결행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시하였다는 사실이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과일 하나에 대한 하나님의 중요한 명령을 거역한 것의 본질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사탄의 충동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해 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탄의 유혹이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왔고, 즐거이 그 유혹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바로 이것이 ‘아담의 불순종’이었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을 영원히 저주하여 사형에 처하신 이유이다. 무슨 율법 몇 가지를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담의 불순종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반역하였으므로 아담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고, 그 어디에도 살길이 없었다.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창조주에 대한 반역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서철원 박사가 우리들이 자동적으로 부착되어진 아담의 죄(불순종)의 본질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자.

“내 죄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창조주에 대한 반역은 영원한 멸망과 죽음과 영원한 고통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반역이 무효화되기 전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반역죄를 무효화할 길이나 방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나에게는 영원한 멸망과 고통밖에 다른 것이 없다. 너무도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한 번 범함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졌다. 나는 죽고 멸망하고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 한다 ... 주 예수께서 피 흘려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다. 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 그 피로 내 죗값을 다 지불하사 내 죄와 반역을 무효화하였다. 이렇게 나를 내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셨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46)

영원히 죽어야 할 반역죄를 범한 아담을 다시 살려 낼 수 있는 방법이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에게 나올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아담의 반역죄에 대한 죗값을 스스로 지불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인격을 동정녀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된 한 사람에게 일치시키는 성육신이었다. 무죄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또한 언제나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으로 아담과 달리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드리시었고, 모질고, 외롭고, 멸시천대 받는 십자가의 길을 넉넉하게 완수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세주가 세상에 오셨다.

아담의 죄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반역죄였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아담이 실패한 영생의 의를 획득하여 전가했다는 거짓된 신학을 주장할 수가 없다. 아담의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반죄였음을 알면 하나님의 성육신자가 자기의 목숨을 반역죄로 죽어야 할 사람들 대신 내 놓으심으로 구원이 일어난다는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다. 능동순종을 미치도록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원죄를 왜곡하는 이단들이다.

그러면 과연 김재성이 아담의 불순종의 본질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음을 알았는지, 끝까지 몰랐는지 확인해 보자.

“그처럼 좋은 낙원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고 있던 아담에게 행동의 절제를 요구하신 것이다.” (김재성, 83)

김재성은 아담의 원죄를 하나님이 아담에게 요구하신 행동의 절제를 어긴 것이라고 한다. 사과였는지 복숭아였는지 모르겠으나, 단지 그 과일을 따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지지키 않은 것이 아담의 원죄였고, 그것이 전체 인류의 불행의 원인이었고, 그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능동순종하셨어야 할 이유라고 보는 것이다.

참으로 웃음 밖에는 달리 나오는 것이 없다. 이것이 웨스트민스터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성경 이해이다. 이것이 구원론과 직접 연관된 성경의 핵심에 대한 신학 박사의 이해이다. 포크레인을 끌고 가서 김재성이 나온 미국의 그 신학교들을 뭉개버리고 싶다. 아담에게 행동의 절제가 부족하여 결국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김재성의 신학이라는 것이 웃기지도 않다.

“아담의 순종은 그가 대표하는 모든 후손들까지도 주어질 종말적인 영생을 보장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과 실패가 초래한 결과는 참담한 죽음이었다 (고전 15:22, 롬 5:14).” (김재성, 85)

이처럼 아담의 순종과 불순종을 이야기하면 누가 김재성이 틀렸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김재성이 말하는 아담의 불순종이란 단지 행동의 절제의 부족이었을 뿐이다. 아담의 불순종을 왜곡함으로 교묘하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을 왜곡하는 김재성은 무지하고도 집요하다. 아담의 불순종을 왜곡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분지르는 신종 개혁주의 이단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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