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투스 선교회 대표 정성우 목사의 회심준비론 (서문 세 번째)

 

오늘은 정성우 목사(이후 정성우)가 자신의 책의 편집자 서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는 세 번째 시간이다.

“준비교리는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하는 교리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죄의 각성을 통하여 참된 겸손으로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성우, 17 페이지)

정성우는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 준비교리가 꼭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고 한다. 아주 그럴싸한 말이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준비교리)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성우의 말이 맞다고 할 것이다. 정성우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성우가 성경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성우의 ‘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 ‘죄의 각성을 통하여 참된 겸손으로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교묘하게 비트는 말이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경적 신앙에 대해 혼동에 빠지게 하는 이단사상이다.

정성우의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해 회심준비론 목회(준비교리)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살펴보자. 교회는 구원 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딤전 3:15). 그러므로 교회의 거룩성은 곧 구원 받은 사람들의 거룩성과 같다.

정성우의 준비교리는 불신자들이 잘 구원받록 준비되게 만드는 방법을 다루는 내용이다. 정성우가 말하는 ‘교회의 거룩성 회복’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거룩하게 만든 후 구원받게 함으로 만들어지는 교회의 거룩인 셈이다. 정성우가 다른 책에서 했던 똑같은 말을 보자.
 

 

“준비론은 성도들이 죄를 미워하며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치며 인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율법적 원리를 통해 죄의 각성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비참함을 볼 수 있게 하고, 중생의 역사 안에서 복음적 겸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죄의 수치를 더욱 알게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죄를 미워하거나,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정성우,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28)

여기서도 정성우는 현대 교회는 거룩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 원인이 신자들이 죄를 미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게 만드는 회심준비론 목회의 부재 때문이라고 했다. 회심준비론 목회(준비교리)를 통해 신자들이 구원되기 전에 죄를 미워하게 만들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그런 신자들로 구성되는 교회는 거룩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정성우의 이 주장의 문제는 무엇일까?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되기 전에 먼저 율법의 기능으로 죄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야 나중에 그들로 구성되는 교회가 거룩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기 전에 먼저 율법의 기능으로 사람이 죄를 미워하게 만들어야 나중에 그들이 모이는 교회가 거룩해진다는 가르침이 없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2)

정성우의 이론에 의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이런 거룩한 모습이 회심준비론을 거쳐서 구원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전혀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살해한 유대교주의자들로부터 큰 위기를 당한 사도들과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29-32)

이 내용 바로 다음에 모든 신자들이 자기의 소유를 교회에 바쳤고 서로 한 가족이 되어 교회를 이루고 기도하며 힘써 복음을 증거했다고 한다. 교회의 거룩성은 정성우가 주장하는 회심준비론을 통해 영적으로 품종개량이 된 후에 교회에 가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오직 성령의 충만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된다. 회심준비론을 시행하여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성우의 이론은 사이비 사상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죄만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율법의 기능을 가르쳐야 한다.” (정성우, 17 페이지)

정성우의 말이 이상하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고 성도는 이미 구원을 완전하게 받은 사람이다. 정성우는 구원 받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회심준비론을 말하고 사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성우에게 성도라는 말은 단지 교회에 나오는 사람, 즉 한국에서 ‘집사님’과 같은 용어인가? 율법의 기능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보니, 청교도 회심준비론 옹호 차원에서 하는 말이 분명한데, 정성우는 성도들과 집사님들을 상대로 회심준비론을 시행하고 있는 것 같다. 

정성우의 말이 참 이상하다. 대체 지금 어느 교회가 성도들에게 죄를 묵상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구원받기 전에 죄를 묵상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정성우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데, 우리가 오해했었는가?

정성우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신자들에게 율법의 기능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성경 어디에 근거하는 말인가?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알고자 원하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율법의 실체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구약의 율법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고 동서양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율법은 죄인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만들려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보다 먼저 보내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19,20)

율법은 사람이 구원을 위한 자기의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먼저 왔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22)

율법에 의해 미리 증거를 받으신 후에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알고자 원하는 한 제자에게 율법이 증거한 자신을 만나고,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정성우는 어찌하다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비틀고 부정하는 이단이 되어 버렸을까? 하나님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 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율법을 먼저 보내셨다. 정성우는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이 진리를 모르거나, 부정하거나, 대적하는 사람이다.

정성우는 죄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율법을 시대를 초월하는 완전한 의의 기준으로 신봉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율법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율법 조항을 지킴으로서 율법을 충실하게 섬겼다고 믿는 이단사상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정성우는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하고, 구원 후에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 율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율법주의 이단사상을 섬긴다. 정성우뿐 아니라 청교도주의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정성우의 친구 청교도주의자 정대운도 동일하게 율법을 의의 기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완전한 길로 믿고 가르친다. 그들은 그리스도마져도 율법에 순종하여 우리를 구원했다고 한다. 이 더러운 율법주의를 어이할꼬!

“이 책을 통하여 회중교회 청교도들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며, 성도들의 참된 각성을 통하여 교회가 더욱 거룩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성우, 17 페이지)

여기서 정성우는 자신의 사상의 뿌리가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회심준비론의 원래 출처가 장로교회파 청교도가 아니고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었음을 천하에 공표하고 있다. 진실은 이렇게 드러나는 법이다.

정성우는 필자가 웨신서의 어떤 내용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니, 웨신서를 온전하게 믿는 자신이 비판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정성우 자신이 지금 웨신서를 거부하는 노선에 서 있다. 정성우는 이제 이것을 알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웨신서를 만들 때 자주 이견을 보였고, 어떤 회중파 청교도 총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완전한 구원을 주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로 그 이단 회중파 청교도 총대의 주장,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우리를 천국에 가게 했고 십자가로는 단지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만 했다는 구원론이 천하에 유포되어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이다.

유능한 정치인이고 회중파 청교도 신자였던 올리버 크롬웰로 인해 회중파들이 득세하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성우는 아는가? 잉글랜드에서, 그리고 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장로파들과 장로교회를 거의 말살해 버렸다. 잉글랜드에서는 이후 다시 장로교회 설립 운동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회중파들은 웨신서를 폐기했고, 자신들만의 사보이 신앙고백(1658년)을 따로 만들었다. 정성우는 지금 웨신서를 버린 그것들의 신학을 자신의 신학으로 삼고있다.  정성우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마치고자 한다.
 


1) 웨신서에 없는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2) 입으로 웨신서 들먹이고 신앙과 삶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3) 장로교의 웨신서를 버리고 사보이 신앙고백을 따로 만든 회중교회 신학을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