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투스 선교회 대표 정성우 목사의 회심준비론 (서문 두번째 분석)

 

정성우 목사(이후 정성우)가 자신의 책의 편집자 서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이다. 

“하지만 회심준비론이라는 제목 하에 어떤 이들이 이것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회중교회 청교도들을 이단시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분명 회중교회 청교도들을 가톨릭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한 회심준비론에 대하여 분명히 반대하고 있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 겸비케 하시는 역사만을 인정해 왔다.” (정성우, 16 페이지)

1) 회중교회 청교도들은 이단사상과 무관한가?

정성우는 회중교회 청교도들을 이단시하는 풍토가 매우 그릇되었다고 한다. 정이철 목사가 <바른믿음>을 통하여 지난 2-3년 동안 했던 일들에 대한 불만의 말이다.

그러나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시하는 것은 정이철 목사만의 독창적인 자세가 아니고 개혁교회의 역사에 부합하는 정당한 자세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프랑스에서 회중교회 이론이 최초로 나타났을 때,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프랑스 개혁교회가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관련자들을 추방시킨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1562년, 칼빈이 죽기 2년 전에 프랑스에서 모렐리(Jean Merely)라는 사람이 자신의 저술 <기독교의 권징과 정치 제도에 관한 논문>(Treatise on Christian Discipline and Policy)에서 프랑스 개혁교회의 정치가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였다. 모렐리는 노회보다는 지역 교회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통치의 주체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나 그 위의 노회가 아니라 교회의 회중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모렐리가 주장한 이론이 나중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 실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회중파 청교도 운동이다. 웨신서를 작성하던 무렵에는 이들이 ‘독립파’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리워졌다.

모렐리의 회중교회 사상이 확산되자 프랑스 개혁교회 목회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1562년 프랑스의 오를레앙 지역 노회는 모렐리의 사상을 연구하 후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오는 사악한 교리”라고 판정하였다. 모렐리에게 제네바 컨시스토리(제네바 시 당회)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으라고 명령하자 모렐리는 비겁하게 도주하였다. 계속되는 출두 요구로 결국 모렐리는 조사 받았고 최종적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의 책들은 모조리 수거되어 소각되었고 그의 주장에 동조한 사람들도 제네바시로부터 영구히 추방되었다. (양신혜 2020, 324-326)

정성우를 비롯한 청교도주의자들은 그 사건의 의미를 축소한다. 단지 교회 정치에 대한 문제로 칼빈의 개혁교회가 회중교회주의를 이단으로 판정했을 뿐이라고 한다. 신학사상으로 인해 이단판정 받은 것이 아니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회중주의 정치를 선택한 훗날의 영국 청교도들의 신학도 사실상 이단으로 판정되어진 일이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졌다. 예장 합동 이대위가 합신의 김병훈 교수 등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조사한 후 성경적 근거가 없는 신학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2021년 예장 합동 총회에 보고하여 승인받았다는 사실이다. 칭의(구원) 신학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곧 이단사상이라는 의미이다. 칭의신학이 성경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이단적인 칭의신학을 처음 주장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회중주의를 교회 정치로 선택하였던 영국의 그 청교도들, 회중파 청교도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이단적인 칭의신학을 주장하고 발전시켰다.

정이철 목사는 신호섭 교수의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작성한 자신의 학위논문의 출판물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읽고 능동순종 교리가 청교도신학이라는 것을 파악하였다. 신호섭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고 발전시킨 초창기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리처드 십스, 1635년 사망
랄프 로빈슨, 1655년 사망
윌리엄 브릿지, 1671년 사망
토마스 굿윈, 1676년 사망
토마스 브룩스, 1680년 사망
존 오웬, 1683년 사망
데이비드 클락슨, 1686년사망
토마스 왓슨, 1686년 사망
존 번연, 1688년 사망
오바댜 그류, 1689년 사망
로버트 트레일, 1716년 사망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회중에 의한 교회 통치, 즉 회중주의를 추구하였던 청교도들이라는 사실이다. 회중주의는 1662년 프랑스 개혁교회에 의해 이단판정 받았고, 회중주의 청교도들이 주장하고 발전시킨 칭의신학(능동순종)의 2021년 한국의 예장 합동에 의해 사실상 이단판정을 받았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지 정이철 목사의 사견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성우가 자신의 책 서문에서 말한 다음의 내용은 잘못되었다.

“회중교회 청교도들을 이단시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정성우)
 

 

2) 구원받기 전에 영혼을 겸비하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

많은 독자들이 정성우의 다음의 이 말로 인해 또 혼동되었을 것으로 우려된다.

“분명 회중교회 청교도들을 가톨릭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한 회심준비론에 대하여 분명히 반대하고 있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 겸비케 하시는 역사만을 인정해 왔다.” (정성우, 16 페이지)

자신의 회중파 청교도 사상을 개혁교회의 신앙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정성우는 회중파 청교도들이 로마교회와 알미니안들의 구원론을 반대하고 오직 “오직 성령의 역사로 겸비케 하시는 역사만을 인정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정성우의 이 말 속에 교묘한 트릭이 있음을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첫째, 성령의 역사만이 아니고 율법과 성령의 역사로 겸비해진다는 것이 청교도 회심준비론이고 정성우의 본래의 신학이다. 항상 율법이 선포되고 성령이 역사함으로 사람에게 ‘영적각성’이 일어나 죄를 깨닫고 겸비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모하게 된다고 회심준비론자들은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성우는 단지 ‘오직 성령의 역사로 겸비케 하시는 역사’라고 하니, 독자들에게 혼동이 생기게 만든다.

둘째, 개혁교회는 사람이 구원을 향하여 겸비해지는 것과 중생되는 것 사이의 시간의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 개혁교회는 1)죄인이 죄를 깨닫고, 2)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고(겸비해지고), 3)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4)죽은 영혼이 되살아나는 거룩한 일들이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눅 19:9)라고 하셨을 때, 그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개혁교회는 이해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 신학을 개혁신학이라고 우기는 정성우는 죄인이 겸비해진 상태와 복음과 성령에 의해 영혼이 거듭난 상태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반드시 영혼의 거듭남 이전에 율법의 성령에 의해 영적각성과 겸배해짐이 먼저 온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정성우가 한 말을 보자.

“청교도들은 회심(conversion)을 순간적 또는 단번의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정성우, 31 페이지)

정성우는 자신의 회심 개념을 영어 단어 conversion으로 표현했다. conversion은 불신자 또는 이교도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을 의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무관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conversion이므로 성경대로 ‘회개’(행 11:18, ‘생명얻는 회개’)라고 해야 마땅하다. 성경을 보면, 처음에 생명을 얻는 회개는 분명히 단회적이고 순간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 사상을 개혁신학이라고 우기는 정성우는 불신자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것을 ‘회심’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이 결코 순간적 사건이나 단번의 사건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면 필연적으로 긴 과정 동안 점진적으로 연속적으로 중생이 이루어진다는 연속중생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하고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기울이지게 된다. 정성우의 사상이 이 정도로 심각한 이단사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

개혁교회의 위대한 신앙 문서인 웨신서는 죄인이 성령의 역사로 믿음을 선물 받을 때, 그 믿음 안에서 칭의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율법과 성령의 사역으로 아직 살아나지 못한 영혼이 단지 겸비해진 단계가 있고, 그리고 어느 정도 후에 그리스도의 공로가 적용되어 중생하게 되는 단계가 있다고 정성우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효력 있게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하시되, 그들 속에 의(義)를 부어 넣으심으로가 아니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며 그들 자신을 의롭게 여기시고 받아들이심으로이며; 그들 안에 이루어진 혹은 그들에 의해 행해진 어떤 것 때문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며; 믿음 자체 즉 믿는 행위나, 다른 어떤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그들에게 전가(轉嫁)시킴으로써가 아니고, 그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할 때, 그의 순종과 만족(satisfaction, 속상[贖償])을 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인데; 그 믿음도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WCF 14:1)

한국 교회의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서철원 박사도 율법이나 무엇에 의한 어떤 준비과정이 없이 오직 성령의 은혜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고 영원한 구원에 도달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사람이 주 예수를 자기의 유일한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 그 믿음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신다 (롬 3:22; 10:10). 피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하시로 정하셨기 때문에 (롬 3:24-26); 4:23-25; 5:6-9),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다 (롬 5:1; 3:22024). 왜냐하면 주 예수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갚은 죗값을 내가 갚은 것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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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