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믿을 때 얻은 구원의 영원성에 대해 이 교파는 이렇게, 저 교파는 저렇게 가르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 얻은 구원의 영원성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가 이단성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한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구원을 받았으나 교파마다 이해가 다를 뿐이라고 합니다. 특히 웨신서를 입으로 조아리는 청교도파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영원함을 부정하는 사람의 신앙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고 단지 이론적으로 구원에 대해 사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이 우리에게 영생을 준다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일 2:25)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1)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4)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5)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이 우리에게 어느 날에 왔다가, 다시 어느 날에 갔다가, 또 다시 어느 날에 왔다가 ...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은 처음에 올때 영원하게 옵니다. 우리에게 왔던 영생이 다시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질이나 노력이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죄와 무관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고, 중생이나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시어 시종일관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죗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여 주심으로 얻어진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노력이나 자질에 근거하여 구원이 왔다면, 그런 구원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질이나 자격이 구원을 얻을 정도로 완전할 수도 없고, 혹 일시적으로 그런 수준에 도달했을지라도 그 다음 날에는 다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이나 자질에 근거하는 구원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는 자들을 창세 전에 미리 택하셨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불가항력적 은혜를 따라 선물하여 주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소를 도살장에 끌고 가듯이 믿음을 억지로 주입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의 영혼에 진리의 빛을 조명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복락에 이를 수 있는 구원의 진리를 알도록 설명하시고 믿도록 설득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먼저 임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그 은혜가 임하지 않는 사람들은 천하에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시어 믿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명이라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기뻐하시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를 구원받게 할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사람들 외에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를 구원하는 사람은 역사 속에서 한명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로 창세 전에 작정하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하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이 방해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할 수 있는 자연적 인간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웨신서에도 오직 영생에 이르도록 예정된 사람을 성령이 부르시어 믿도록 마음을 변화시켜주신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한 모든 사람을 또 그들만을 그의 정한 그리고 받는 때에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효력 있게 부르되, 그들이 본질상 처해 있는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로 부르기를 기뻐하셨다. 그 때 그는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그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밝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돌 같은 마음을 제하며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며,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결심시켜 선한 일을 위하게 하시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효력 있게 이끄신다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원하는 자가 되어 지극히 자유롭게 온다." (WCF 10:1).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모든 자들을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분 때문에 자녀로 삼으시는 은혜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것에 의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에 들어가며 그들의 자유와 특권들을 누리고, 그의 이름이 그들 위에 붙여지며 양자(養子)의 영을 받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고,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고, 아버지와 같이 그에 의해 불쌍히 여김을 받으며 보호함을 받으며 공급함을 받으며 징계를 받고,러나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으며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고 영원한 구원의 상속자들로서 그 약속들을 이어 받는다.  (WCF 12:1).

이와 같이 웨신서는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한다.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 이유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복음을 주시고 성령이 믿도록 역사하심으로 일어난 구원이기 때문이다.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이 얼마나 좋은지,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찌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도 지식도 없는 택하심 받은 죄인에게 성령이 복음을 주시고 성령이 믿게 하심으로 일어난 구원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

구원은 구원은 고사하고 1원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오직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전적으로 그 지속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속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7원이나 3원으로 영혼이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9)

구원은 성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택하신 자를 성자 하나님에게 위탁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인생들이 오다 가다 우연하게 얻는 구원이 아닙니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5)

구원은 구원을 얻도록 성부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성자 하나님에게로 나와서 믿어지게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구원을 받은 사람이 다시 구원을 잃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에게 맡겨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역사의 인들을 떼시는 역사의 주권자이시므로 아무도 그리스도에게서 구원 받은 영혼을 다시 탈취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9)

구원 받은 사람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위탁되기 전에 이미 성부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여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므로 아무도 구원 받은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한번 구원이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라는 성경적 증거는 너무도 많습니다. 이 진리를 왜곡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화로 구원을 흔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성화는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때 성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을 때에도 여전히 죄인이나, 오직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으니 더 이상 갚아야 할 죄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주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백성다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성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성화의 정도와 여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고 어떤 사람은 더딥니다. 어떤 사람은 화끈하고 어떤 사람은 꾸물거립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성령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가 성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진짜 부모가 아니거나 정신이 돈 사람은 자식이 백혈병이 걸려서 낫지 않으면, 자식이 평생 절름거리고 살면, 어느 순간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어 구원한 자기의 백성을 영원히 인정합니다. 그가 혹 간음에 빠지고, 혹 도적질에 연루되고, 혹 감옥살이를 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은 결국에 야곱처럼 말하면서 인생을 회고하게 만드십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 받은 사람에 대해 쉽게 구원파적인사람들입라는 말로 폄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율법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의 행위가 필요하고,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율법의 행위가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이 잘 지켜지는 삶을 성화라고 합니다. 율법주의는 곧 성화주의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성화가 요구되고, 구원을 지속시키기 위해 합당한 수준의 성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어집니다.

율법주의와 성화주의 신앙에 빠지면, 교황처럼 “감히 네가 처음에 예수 믿고 얻은 구원의 영속성에 대해 확신해? 참람하도다!”라고 설교하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 대신에 지속적으로 자신에게서 성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가르칩니다.

율법주의와 성화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 청교도신학을 추종하는 목사들의 교회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먼저 율법을 배우고 경험함으로 죄를 깨닫고 겸비해져서 자신의 지옥에 가야 할 운명에 대해 통회하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는 회심준비론은 신자들에게 율법주의 멍에를 초장부터 쒸우는 죄악된 짓입니다. 그 이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공적인 수단들, 즉 목사의 설교 듣기, 성경공부하기, 죄를 회개하기, 기도하기, 그리고 에드워즈가 강조했던 자선활동 등에 매진하면서 구원을 사모하라는 것은 곧 구원을 위해 성화를 이루어가라는 성화주의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공로가 적용되어 이신칭의되었다고 해도 율법주의와 성화주의의 멍에는 신자들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비록 구원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를 통해 이루어졌을지라도,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율법준수의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가르칩니다. 구원 이후에도 신자들은 지속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지속으로 율법이 준수되는 삶을 그들은 성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대의 청교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처음에 믿음으로 얻은 구원에 대한 확신은 그릇된 신념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참고: 정대운의 '처음에 믿을 때 얻은 구원'='영원한 구원' 부정하는 이단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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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