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웨신서를 매우 사랑하고 칭송하고 숭배한다. 웨신서를 향한 나의 사랑이 지나치고 다 함이 없이 그만 기진하여 몸살을 앓을 뻔했던 적이 여러번이었다. 참으로 웨신서의 모든 내용은 참으로 감미로운 영혼의 참된 양식이다. 나는 웨신서의 말씀들이 너무 달고 오묘하여 마치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정확무오한 말씀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되기도 한다. 웨신서 없는 신앙과 목회는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이 아담을 영생도 없고 하나님 백성도 아닌 자로 만들고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영생을 주고 그를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 주기로 계약했다는 웨신서 19장의 이상한 내용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반드시 이 내용은 무시되거나 개정되어야 할 내용이다. 바로 이 내용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으로서 한 법을 주셨다. 그 법으로 그와 그의 모든 후손에게 개인적이고 온전하고 정확하게 영구히 순종할 의무를 가지게 하셨다. 그 법을 성취하면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법을 위반하면 사망을 내리실 것을 경고하시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웨신서 19:1항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법을 주시고,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각각 그 법을 완전하게 실천하면 생명을 주시고, 실천하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기로 언약을 세우셨다고 한다. 이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것을 기독교의 진리로 안고 가게 만들어 버렸다.

1) 아담은 생명 얻기 위한 '시험기간' 또는 '수습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

2) 아담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지으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하신 이상한 분이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식도 아니고 오래 살지도 못할 사람을 만드실 것이면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하신 이상한 분이다. 

5)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드시고 자기의 소중한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자"(칭 1:26)라고 하신 앞뒤가 안 맞는 분이다.

6) 아담은 영생을 누릴 행위의 의(율법의 의)가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으므로 만일 예수님의 죄용서를 받을지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영생을 위한 율법의 의를 얻어야 할 행위계약 상태의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닌 중간 상태의 사람으로 남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하여 의에 관한 온전한 법칙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선포되어 두 돌판에 기록되었으니, 첫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른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WCF, 19:2).

19장 2항의 내용은 더욱 더 이상하다. 하나님이 영생을 위해 아담에게 지키라고 주신 그 법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으로 우리에게 왔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이상한 내용들이 또 우리에게 참된 믿음으로 강요되는 것이다. 

1) 아담이 우상숭배, 간음, 부모공경, 살인, 안식일 준수 등을 바르게 하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율법은 죄가 들어와 사람을 지배하게 된 후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가이드로 왔다는 것이 성경의 진정한 가르침이다. 

2)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메시야는 필히 아담 대신 십계명을 철저하게 준수함으로 우리를 구원하게 된다는 구원론으로 귀결되게 된다. 즉,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비성경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율법의 모든 지시와 요구가 완전하게 실현된 창조주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가진 사람으로 오시었다고 가르친다. 그는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을 준수해야 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자기의 의를 주시기 위해 율법의 정죄를 받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리고 자기를 죄인들에게 연합시킴으로 자기의 의에 의해 죄인들도 '하나님의 의'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22).

이와 같이 웨스터민스터의 행위계약 신학은 바른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는데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바른믿음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웨스트민스터의 행위계약 신앙과 무관한 바른믿음의 길을 걸었다. 어떤 사람들이 그리했는지 살펴보자. 

 

 

1. 존 칼빈

칼빈이 생존했을 때 웨스트민스터의 행위계약 이론이 등장했다면, 과연 칼빈은 지지했을까? 칼빈의 다음의 말들을 보면, 칼빈은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은 처음부터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이 그가 반역죄를 범하자 박탈하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칼빈은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처음의 영원한 생명의 상태를 지금까지 유지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교만해져서 범죄함으로 영원한 생명과 모든 하나님의 복을 잃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2.1).

칼빈은 아담이 교만해져서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보았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1:4). 요한의 의도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찬송하는데 있었다. 사람이 그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생물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게 되었고, 지성의 빛과 결합된 특별한 생명을 얻었음으로 무수한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결국 이 말씀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자,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타락 이전 아담에게서 드러난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탁월함이다” (기독교강요 1.15.4).

칼빈은 태초의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피조물들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생명을 가졌다고 보았다. 

“또한 하나님은 여기에 의지를 결합 시켜주셔서 선택을 좌우하게 하셨다. 최초의 상태에서는 사람에게서 이 탁월한 기능들이 뛰어나게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리하여 그의 이성, 지성, 분별, 판단 등이 이 땅의 삶의 방향을 위해 충족했음은 물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영원한 복락에까지 올라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에게 인내를 주셔서 본래의 상태대로 유지되게 하실 수 있었는데도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속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탐구하기를 절제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기독교강요 1.15.8).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자로 창조하셨고, 그에게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고 말했다. 

이상으로 살벼본 것처럼, 칼빈에게는 아담이 율법을 지키는 자기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어야 했다는 아담의 '시험기간' 또는 '수습기간' 창조론이 수용될 수가 없었다. 


2. 웨민총회에 참석했던 총대들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행위언약' 사상이 대두되자 그곳의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으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칼빈의 은혜의 신학에서 벗어나 율법주의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크게 비판하였다 (Letham 2014, 81, 229).
 


3. 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는 아담에게 율법을 준수하여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라는 행위언약을 하나님이 내셨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려하고 경계하였다.

“우리는 기필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이 가르치는 행위언약 사상과 율법준수로 구원 얻는다는 주장을 물리쳐야 하고 신약의 가르침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율법준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서철원 2021)
 

 

4. 원종천 박사

원종천 박사는 웨스트민스터의 행위계약 개념과 동일한 내용이 그 이전 50년 전에 주장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바로 청교도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이다. 원종천 박사는 현재의 웨신서에 있는 행위계약 내용이 칼빈의 신학과는 다르고, 청교도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의 언약 사상과 같다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리고 퍼킨스의 행위언약 개념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다르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서 벗어났다(능가했다)고 하였다. 

퍼킨스의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 퍼킨스에게 중요한 것은 언약신학의 존재 이유였다. 그에게 언약 신학의 비중은 칼빈보다 훨씬 크고, 그 용도는 예정론을 더 피부에 와 닿게 구체화시키는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성도들의 신앙행활에 경건을 불러일으키며 신학의 개념이 삶과 경건으로 직결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퍼킨스의 언약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다르면 그들을 능가하고 있다." (원종천 2018, 52-53)
 

 

5. 황대우 박사

고신의 황대우 교수(역사신학)도 자신의 소논문 “개혁파의 선택론과 언약론”에서 다음과 같이 행위언약 사상이 칼빈의 신학과 다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칼빈의 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조언약, 행위언약'과 같은, 후기 개혁파의 언약신학을 특징 지우는 개념들은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러한 불링거의 언약사상에 의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황대우 2006)

또한 황 박사는 최근 행위언약 사상이 칼빈에게서 기원되었다는 주장에 큰 힘을 실어주었던 미국의 피터 릴백의 논문도 연구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칼빈과 행위언약 개념을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피터 릴백 (Peter A. Lillback)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과 여러 잡지의 기고 글을 통해 칼빈의 언약론에서도 쮜리히 신학자들의 '조건적 언약신학' (conditional covenant theology)에서 볼 수 있는 '언약의 조건성 (conditionality of the covenant)'이 발견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근거로 언약론을 칼빈 신학의 기초로 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구절로 제시하는 창세기 17장에 대한 칼빈 주석들은 문맥상 큰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릴백은 칼빈이 그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 자신의 선택과 부르심을 근거로 자신의 백성을 세상과 구분하신다고 보는 핵심적 요소를 간과한다.” (황대우 2006)

 

 

6. 이상규 박사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이상규 박사도 자신의 소논문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에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 칼빈의 신학과 이후 웨신서 등을 중심으로 발전된 신학 사시에 불일치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칼빈과 웨신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후 개혁신학 사이의 불일치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행위언약 개념이다.

"이들 대부분의 학자들은 17세기 돌트신경(1619)과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1647) 속에 요약된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 자신의 사상과는 다른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변화는 이미 베자(Theodore Beza)의 사상 속에 뚜렷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상규 2003)
 

7. 패리 밀러(Perry Miller)

비록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으나 미국의 일반 역사에 대한 대단한 연구 업적으로 인해 널리 존경받았던 역사학자 패리 밀러는 미국의 청교도들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언약사상 (현재의 행위언약)이 칼빈주의에서 청교도주의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신학이라고 진단했다. 즉,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에게서 발전된 칼빈주의 신학이 아니고 청교도들에 의해 발전된 청교도주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언약신학, 위키백과).

 

 

8. 정이철 목사

정이철은 다음과 같이 웨신서의 행위언약이 비성경적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을 만들고서 그의 목에 영생을 얻을 기준을 걸어주고 '그대로 하면 살리고 그대로 못하면 죽이겠다!'고 하는 신이 악마이지 어떻게 성경의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이런 내용을 대체 성경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청교도들의 그런 신학은 국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청교도 운동을 쏘아 올리고 전파하기 위한 신학이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설명하는 신학은 아니었습니다." (정이철. 2021)

 

9. 임진남 목사

임진남 목사도 웨신서의 행위언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웨민에 나오는 행위언약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 성경에서 단 한 번도 말씀하지 않는 것이다. 일부 회중파 청교도들(그리고 후에 그 사상에 동조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일부 선조들)의 행위언약 가르침을 제쳐놓고서라도 콕케이우스가 제기한 행위언약은 너무나 비성경적이고 사변적인 주장인 것은 사실이다." (임진남 2021). 

 

 

10. 이창모 목사

이창모 목사도 웨신서의 행위언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는 웨신서 7조 2항에서는 아담에게 주시지도 않은 영생을 다시 빼앗겠다고 하시는 모순된 하나님, 억지를 부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웨신서 7조 2항은 반드시,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창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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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Cited

존 칼빈. 기독교강요

황대우 2006. 개혁파의 선택론과 언약론,
Accessed: https://m.blog.naver.com/junam67/150009007103 (2021년 12월 21일)

이상규 2003.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 (교회와 신앙, 2003년 2월 12일)

이승구 2008.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
Accessed: https://blog.daum.net/7gnak/14580195

언약신학. Accessed: https://blog.daum.net/7gnak/14580195

Letham, Robert. 2009. The Westminster Assembly. New Jersey: P&R Publishing

정이철. 2021. Accessed: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470

임진남. 2021. Accessed: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046

이창모/ 2021. Accessed: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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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