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어떤 태국 해외선교사가 목사님과 서철원 박사님이 청교도 신학의 회심준비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율법은 죄를 알게 한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서 반문하고, 진용식 목사와 목사님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주장이 다르다고 반문하네요. 이를 어찌 판단하시는지 목사님의 고견을 여쭙니다.

답변>
사람들이 '미친 태국남'이라고 하고, '쇠파이프 면직범'이라고도 하는 그 이가 저와 서 박사님과 진용식 목사에 대해 인격모독, 명예훼손 내용의 영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재밋거리를 주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아예 보지를 않고, 알려주지도 말고, 더 이상 그런 류에 대해서는 저에게 말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간 낭비이고 정력 낭비이기 때문이다.

청교도 신학에 미쳐서 저와 서 박사님, 임진남 목사, 그리고 이창모 목사를 논리에도 안 맞는 소리들을 하면서 나름 저격한다고 용쓰는 박주동(박개동?)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그마치 저를 비판한다는 글 약 70개 써서 올렸다고 하는데, 정말로 저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에게 그런 정도의 관심을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제가 그 정도로 큰 인물이 아니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초기에 누가 보내는 준 그 이의 글 하나를 보니 제가 박영돈 교수의 ‘성령사역’ 개념을 비판한 내용을 제가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으로 표현을 조작하여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사역’은 인간에 의해 주도되는 거짓 성령의 역사를 뜻하는 말이고, ‘성령의 사역’은 성령 하나님이 스스로 권위와 주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대리하시는 사역을 하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중간에 ‘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뜻이 마치 점 하나에 의해 ‘님’과 ‘남’의 것처럼 달라집니다.

그 글을 보고 그 이의 정신이 박약하고 산만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여러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그 이가 쓴 글에 대해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알려주지 마세요! 가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도 "목사님의 말이 맞더라구요! 정신이 정상이 아닌 듯 보여요!"라고 했습니다.

그 이가 서 박사님까지 감히 입에 올리고 함부로 지껄이니, 이단연구가들이 내년 쯤에 헌의안을 상정하여 이단으로 규정하여 끝내겠다고 합니다. 지금 차근차근 근거들이 수집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태국 미치광이’, ‘쇠파이프 면직범’이라고 불리우는 전광훈 추종자도 나타나서 저와 진용식 목사와 서철원 박사에 대해서도 유사한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알려준 사람에게도 "이후 그런 것을 또 보더라도 더 이상 말하지도, 보여주지도, 언급하지도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단연구가들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료를 수집해 달라고만 했습니다. 

이미 파송교회에서 버려지고, 소속 노회에서도 면직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던 합동 교단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기까지 하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면 머지 않아 악신의 역사가 극에 달할 것입니다. 더 미쳐 날뛰게 될 것이고, 스스로 붕괴되어 어쩌면 스스로 인생을 끝내게 되거나, 불행한 일로 강제적으로 인생이 멈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까지 한 사람이므로 하나님께서 더 오래 참고 보시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불쌍하게 여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전직 선교사이니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죄를 알게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두 가지 면에서 그 사람이 말한 것과 다릅니다.

첫째로, 율법은 아무런 대안(해결책)이 없이 정죄만 합니다. 오래 동안 병으로 고생한 사람에게는 무슨 병인지 알기만 해도 마음의 답답함이 조금은 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병에 대한 아무런 해결 방책이 없으면 사실상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절망이 있을 뿐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사람에게 무한의 정죄만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 무한대의 좌절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율법 자체에게는 그런 것 외에 다른 기능이 없습니다. 너 죽어야 해! 너 죽어야 해! 너는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어! ... 이것이 구약의 율법의 기능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율법의 기능을 말했습니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19)

율법이 하는 일은 율법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을 알게 된들 고칠 방법을 알지 못하면 뭐합니까? 그러면 죽는 날 받아 놓았다는 것을 아는 외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것이 바로 율법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율법을 보내셨을까요? 죽을 날만 받아 놓은 죄인을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으로 오시어 죄인들이 받을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을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 외에는 죄인이 구원을 받을 길이 없으므로, 먼저 구약의 율법을 보내 우리가 죽을 날 받아 놓은 사형수 신세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 위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자발적 사형수가 되시어 대신 죽으셨음을 믿게 했습니다. 

둘째로, 죄 때문에 심판(죽을 날)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율법의 기능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죽을 날만 받아놓은 사형수 신세였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시어 대신 죽으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진짜 사형수들이 사형집행에서 면제되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살리는 지난 인류의 사 속에서 율법이 먼저 와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미 오시어 피 흘리고 죽으신 이후 복음으로 구원 받는 신약 시대에도 먼저 율법으로 죄를 깨달아야 한다는 청교도 회심준비론 사상을 지지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이단들이 성경을 이용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경을 가장 잘 이용하는 청교도들처럼 기독교에 해가 되는 이단은 드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율법이 왔으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율법을 전하여 죄를 깨닫게 해야 한다는 청교도 신학의 주장은 이단사상입니다.

이 점이 어느 정도 설명되어 더 이상 회심준비론을 주장할 수 없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우리의 삶을 주관하여 예수의 복음을 받아드리기 좋도록 만들어 놓으시는 것을 회심준비론이라고 우긴다고 합니다. 이단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구약의 시인은 악한 인간들을 향하여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라”(시 36:1; 롬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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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