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추종자의 질문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겸손한 답변 1

 

필자가 김재성 교수의 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소감 두 번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재성 교수가 여전히 해어 나오지 못하는 거짓 신학(행위언약)에 의하면 기독교는 참 우스운 종교이다. 청교도들이 고안하여 웨신서에도 들어간 행위언약을 믿는 모든 분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그랬더니 한 독자가 답변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엉터리이다. 청교도 신학의 황당한 논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분이 반박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필자의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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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
“답변을 하라고 해서 부족하나마 한번 해 보았습니다. 정말 답변을 듣기 바라시는지 한번 지켜보지요. 목사님 의견을 반박하는 글은 늘 지우셨던 것이 이제껏 목사님이 보이신 태도입니다. 이번에도 그러시는지 안 그러시는지 지켜보겠습니다.

[1. 자기 백성도 아니고 영생도 없는 아담이 영생을 줄 수 있는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그를 특별히 저주하셨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그냥 버리고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드셨어야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정이철 목사의 말)]

아직도 이런 어리석은 주장을 하십니까? 아담이 영생이 있었다면, 아담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라는 말도 모르십니까? 목사님 말마따나, 아담이 영생이 있었는데도 영생을 박탈당했다면, 성도의 영생도 박탈당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논리는 성도의 견인을 부정하는 논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말 영생이라는 말뜻을 모르십니까?

그리고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계시를 받으셨습니까?”
 

정이철 목사의 답>
아담에게 영생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말이 성경에 어디에 나오느냐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정답은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입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고 하나님 섬기기로 언약한 아담이 영원히 언약백성으로 살면 이미 주어진 영원한 생명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언약의 담보물이었습니다.

아담이 매일 아침 생명나무 가지를 잘라서 고아 먹으면 그것으로 영생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주어진 영생과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사는 한 영원히 보장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 이미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성찬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그래서 칼빈과 모든 개혁주자들은 생명나무가 성례전적인 것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성경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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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2>
“[2. 아담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 율법을 지켰어야 했다고 하는데, 그 율법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성경 어디에 그것이 나오는가?(정이철 목사의 말)]

창세기 2:17에 나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율법에는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십계명도 주로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 하지 말라는 명령에 하라는 명령도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에는 필연으로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창 2:17에도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레 18:5)는 명령이 담겨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이중의 요구입니다. 하나는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을 하지 말라. 하면 죽는다”입니다. 만일 율법의 요구가 “이것을 하지 말라. 하면 죽는다”는 것만 있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엄하신 분이기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여 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율법을 지킬 능력을 주셨고, 또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아담이 지키기에 아주 쉬운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사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주셨습니다. 이는 아담에게 율법을 지킬 능력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모든 환경도 율법을 지키기에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동산의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으라고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그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선악과 계명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담은 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여 주는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율법의 요구와 영생의 약속을 없애 버린 목사님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지 못하는 신학입니다.

정이철 목사의 답>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해서도 매우 그릇되게 해석하셨습니다. 선악과는 아담이 언약 백성으로 사느냐, 언약을 파기하고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기를 원하느냐에 대한 결정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언약 백성의 신분을 떠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기로 결정한 후 그 의사를 행동으로 옮겼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저주를 받아 죽은 것입니다. 선악과 범행을 영생을 얻기 위해 지키라 명령한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더욱 저주했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종교 이론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능력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주장하면 이상한 종교인으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능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그 반대로 언제든지 스스로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는 능력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능력을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사용했으므로 합당하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레 18:5)이 내용을 율법적 행위구원론으로 연결시키면 이단으로 갑니다. 레위기의 그 본문을 보십시오.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 원주민들처럼 동성애, 수간, 친족성행위 등의 죄악을 범하지 않으면 이전 원주민들처럼 저주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엉뚱하게 인용하시면 안 됩니다. 바울도 로마서 10장 5절에서 레위기의 그 내용을 인용했습다. 얼른보면 율법적 행위구원론을 가르친 것 같으나, 결국 기독교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한 구원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율법적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사상을 반박하기 위해 인용했을 뿐입니다.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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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3>
“3. 청교도들은 아담이 지켰어야 할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가르쳤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고 ... 이런 십계명의 내용이 에덴동산의 아담의 상황과 맞다고 생각하는가?(정이철 목사의 말)]

에드워드 피셔는 <개혁 신앙의 정수>에서 왜 선악과 명령을 어긴 것이 십계명을 모두 어긴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율법: 아담이 십계명을 모두 어겼다고요? 왜 그런지 설명해주세요.

김복음 목사:

1계명: 마귀를 따르면서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자신에게 두었습니다.

2계명: “그들의 신은 배요”(빌 3:19)라고 한 사도의 말처럼 자기 배를 신으로 삼고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3계명: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했으며

4계명: 하나님이 주신 안식과 올곧은 상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5계명: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땅에서 그 생명이 길지 못했습니다.

6계명: 자신과 후손을 모두 대량학살했습니다.

7계명: 하와에게는 순결했을지 몰라도, 눈과 마음으로 영적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8계명: 아간처럼 하나님이 손대지 말라고 따로 떼어 놓으신 것을 훔쳐서 온 이스라엘, 즉 온 인류를 괴롭게 했습니다.

9계명: 하나님 대신 마귀의 증거를 믿어서 하나님에 대해 거짓 증거를 했습니다.

10계명: 암논과 같이 악한 마음으로 탐했기에 자기 생명과 모든 후손의 생명으로 값을 치뤄야 했습니다(삼하 13).

이 한 번의 죄로 얼마나 많은 악을 동시에 행했는지 생각한다면 무스쿨루스의 말처럼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의롭다고 찬송하며 우리 첫 부모의 죄를 정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아 네가 스스로를 패망하게 하였구나”(호 13:9, KJV) 한 것처럼, “온 인류야 네가 스스로를 패망하게 하였구나” 하고 탄식하며 정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이철 목사의 답>
억지스럽고 우스꽝스럽습니다. 아담의 선악과 범행과 훗날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이 다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합적인 범죄들, 즉 아담의 원죄로 인해 따라오는 필연적 결과들로서의 죄악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원죄와 원죄에 따르는 결과로서의 필연적 죄악들을 범하지 말라는 율법을 이미 주셨다는 것은 매우 뛰어난 소설이고 사변입니다.

청교도주의자들과 청교도 추종자들이 그런 일을 잘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십계명은 아담의 반역죄(원조)로 인해 들어온 죄의 오염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종합적, 전인격적 죄악을 드러내고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발생한 죄의 오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죄의 종합셋트에 지배되고 사는 보편 인류의 죄와 아담의 원죄를 같은 선상에서 설명하면 안 됩니다. 아담의 원죄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때 원죄로 인해 따라오는 자점죄들까지도 경계하는 율법을 아담의 마음에 기록하여 창조했다는 것은 무슨 추리 소설 같습니다.

아담의 마음과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제사장의 사명을 주신 내용들은 성경에 있어도, 아담의 마음에 타락 이후의 인류의 보편적 죄악을 다스리는 십계명에 대한 내용을 미리 심었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하품할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율법이 있기 전에 죄가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롬 5:13).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내용에 토를 달면 거짓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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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4>

“[4. 성경은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인간의 죄가 있었다고 하고(롬 5:13), 율법이 오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은 이미 율법과 무관하게 믿음으로 구원의 의를 얻었다고 한다(갈 3:17). 구원의 의를 얻는 것과 율법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김재성 교수와 청교도주의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영생과 율법을 직결시키는 신학을 주장하는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는가?(정이철 목사의 말)]

구원의 의를 얻는 것이 정말 율법과 관련이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율법의 요구가 ‘두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것과 “이것을 하지 말라. 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요구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고,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 두 요구를 우리 대신 모두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요구를 지킬 수 없다는 면에서는 이 요구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신 이 요구를 이루어 주셔야 했다는 면에서는 이 율법의 요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율법의 요구를 하나로 보십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하지 말라. 하면 죽는다”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요구가 이것 하나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목사님은 이 요구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 요구 자체가 폐기되었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이 요구, 곧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려고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이것은 여태껏 목사님이 해 오신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처럼 율법의 요구가 저주를 담당하는 것 하나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구원은 율법과 관련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요구를 우리 대신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요구를 이룰 수 없다는 면에서는 율법의 요구가 폐기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정이철 목사의 답>
이미 앞에서 제가 레위기의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레 18:5)를 악용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 신학의 한계입니다. 레위기는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동성애, 수간, 친족성행위 등의 이전 원주민들의 죄를 답습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땅에서 저주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일 뿐입니다.

레위기 내용을 악용하여 율법의 기능들 가운데 의로움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청교도들의 이단사상입니다. 더 이상 그것을 주장하면 같은 이단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오직 죄와 무관하게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미리 보내신 율법을 통해 지적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죄에서 해방됨이 곧 우리가 칭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다음에 나머지에 대한 답변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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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