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언론인 김갑수 님이 “내가 기독교인이 아닌 이유”를 말했다. 대부분의 비기독교인이 적극적으로 동감할만한 잘 정리된 내용이었다. 철학자 버트란트 럿셀과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와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제목으로 글을 썼다. 이에 대해서 여러 기독교인이 반박하는 글을 썼고 나도 많은 글을 썼다. 그는 모든 반박 내용이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사탄’이라는 폭력적 단어를 사용하며 항변하므로 시끄러워서 그동안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작정하고 비판하겠다며 직설적으로 독설을 날렸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독설에 우선 감사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올리며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해명해 보려 한다 (김갑수가 주장한 내용은 칼라로 처리되었다: 편집인 설명).
 

1. 탐욕의 종교

고대에는 기독교가 통치 수단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다가 18세기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종교 서비스 역할을 하게되었다. 목사는 출생과 죽음, 결혼과 같이 격식을 갖춰야하는 중요한 행사에 특유의 종교 언어를 사용해서 의식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매주마다 설교 서비스를 제공해주며 헌금을 강요한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단인 것처럼 말하지만 행동은 거의 없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교회는 헌금의 겨우 3%만 사회복지에 환언한다고 한다. 헌금의 대부분은 교회의 영업을 위해서 사용한다. 대형교회의 경우 목사 사례비는 대기업 임원의 수준이고 더 나아가 땅과 건물을 사서 자녀에게 물려주기까지 한다.

한국 기독교는 부동산의 종교다. 교회가 세워지면 먼저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다. 절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있는데 교회는 시내 중심을 점령해서 거주 공간을 더욱 부족하게 만든다. 땅과 건물의 구입을 위해서 교회는 천박하고 적나라하게 돈 타령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기 때문에 아주 합리적이고 떳떳하다.

세상도 여자나 돈에 대해서 탐욕이 있지만 억누른 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며, 특히 공공 자리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칭 성스럽다는 교회는 대놓고 뻔뻔하게 돈을 요구한다. “아무개는 전 재산을 다 바쳐서 교회를 세웠더니 하나님이 두배로 축복하셨다”고 간증한다. 목사는 교인의 투자를 도와주는 사람인가? 교회는 투자자를 모집하는 곳인가?

모든 목사는 아니지만 많은 목사에게 해당하는 뼈아픈 지적이다. 교회 헌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십일조다. 십일조는 구약시대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에게 명령된 헌금이었다. 이스라엘에는 12지파가 있었는데 레위지파는 아무런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은 성전을 관리하고 속죄의 제사를 주관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지파들은 농업이나 목축 등에서 생산한 것 중에서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바쳐서 레위지파가 살아가도록 했다. 마치 세금과 같은 것이었다.

이후 예언처럼 예수님이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성전도 없어지고 레위인도 없어졌다. 성전은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레위인은 뿔뿔히 흩어졌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님 이후로 죄인들이 다시는 동물로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처럼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도 교회는 헌금을 드리고 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친교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교회를 유지하고, 또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고, 그리고 선교를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바른 길로 권면하고 고통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은 목사가 갖는 특권이자 기쁨이다. 교회가 그들의 수고에 약간의 사례비를 드리는 것은 적절하겠지만 큰 돈을 드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목사로 하여금 마치 하나님의 대리자인 양 착각하게 하고 타락하게 하는 지름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목사들은 하나도 예외없이 타락했다. 타락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돈이 그렇게 만들어줬다.

사도 바울은 복음 사역으로 가장 분주한 사람이었지만 천막을 지어 팔며 자신의 생계를 유지했다. 지금도 여러 목사들이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순차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있다. 그들의 설교는 결코 허술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깊었다. 밤을 세워 설교를 준비할 때 금전적인 댓가는 없었어도 큰 기쁨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목회와 직장이라는 두개의 일을 할 능력이 안된다면 목회에만 전념해도 괜찮겠다. 그러나 교회건물을 구입하는 것은 반대한다. 일주일에 몇 번 사용하는 건물을 구태어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학교 강당이나 오피스 회의실 등을 빌려 사용하면 어떻까?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유익한 점은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교회가 문을 닫고 매각하면서 그 거대한 액수의 사용처 때문에 갈등하고 범죄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게 된다.

자체 건물이 없다면 화려하게 치장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성전은 하나님이 스스로 제한하셔서 임재하시며 인간들을 만나주시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금과 은으로 성전을 화려하고 웅대하고 지어 바쳤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그분을 믿는 우리 개개인이 성전이 되었다. 지금의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단지 예배당일 뿐이다. 그곳은 예배와 친교와 성경공부를 위한 공간이므로 그런 편리함만 갖추면 된다.

교회들이 비싸고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한 것은 로마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교황들은 최고로 비싼 성당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권세를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성당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모든 종교의 성전들은 최고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먹을 것이 없으면서도 가장 화려하게 절을 짓고 모스크를 짓고 성당을 짓기 위해서 모든 돈을 바쳤다. 그래야 자기의 신이 기뻐하고 복을 줄 것이라고 착각한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

목사들이 우상숭배하는 종교의 교주들로부터 배워서, 많은 성도가 모이고 큰 성전을 지을 때 자신의 능력과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한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동기로 목회를 시작하지만 부흥하고 유명해지면서 교만하고 타락하고 패망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

타락과 패망은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앙과 상관없이 교회가 부여하는 장로나 권사나 집사 등의 직분도 교인들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 부장이나 차장같은 서열이나 계급처럼 생각해서 직분 때문에 스스로 교만해지거나 열등해지기도 한다. 직분을 받으며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강요받고 지불하는 교회들도 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세상에서 지탄받는 것은 단연코 지도자인 목사들의 책임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몰라서 짓는 죄보다 알면서 짓는 죄의 위중도는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여전히 잠잠하실까?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죄인들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
 

2. 증오의 종교

기독교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증오의 종교다. 그들은 공산주의, 진보정당, 동성애, 낙태, 타종교, 이단 등등 자신과 다른 것을 악마라고 칭하며 저주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적들을 만들어서 공격하고 투쟁하는 증오의 종교다. 이런 종교에 몸담으면 세뇌되어서 선한 인성도 사납게 바뀌어 버릴까봐 교회라는 곳에 갈 수가 없다.

쓰나미나 태풍같은 자연재해, 선박 침몰이나 비행기 추락같은 대형사고로 곳곳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을 때 유명 목사는 이것이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유명 신학자도 "모든 재난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자 심판이고 징벌이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대자들을 저주하는 집단이다.

기독교는 성경과 배치되는 사상을 비진리라며 배척하고 미워한다. 그것은 인간을 망하게 하고 죽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비진리 자체를 미워할 뿐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진리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순교하기도 한다. 그럼 비진리들이 왜 나쁘며 왜 성경이 금지하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본다.
 

공산주의가 왜 나쁠까?

기독교는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만물보다 귀하다고 믿는다. 반면 공산주의는 영혼의 가치와 정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물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인명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이 소속한 일루미나티의 사상을 연구하면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기독교 멸절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은 공식적으로 ‘루시퍼’를 숭배한다. 로마가톨릭 신자였던 마르크스가 예수회 신부를 만나면서 사탄교에 입교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이라는 아름다운 구회를 외쳤지만, 사실은 시민들에게 혁명과 투쟁을 부추기며 기존세력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무신론과 유물론에 입각한 공산주의는 사상적 갈등을 만들어 서로 전쟁하고 죽이도록 했다. 그들의 목적은 잘 성취되어서 인류역사에서 일억 오천만명 이상의 인명이 살해되었다.
 

그럼 기독교는 보수파를 지지하고 진보파를 미워할까?

물론 아니다. 성경의 진리는 영원히 변치않으므로 정통성과 보수성을 고수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각각의 의견이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파를 지지한다. 그래서 전광훈 목사를 지지하는 극우파 기독교인들로부터 친공주의자냐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물론 나는 반공주의자다.
 

동성애는 왜 나쁠까?

동성애는 각자의 취향이며 선택이라고들 말한다. 누구를 해치는 것이 아니므로 죄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유전적이고 선천적이라서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동성애자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강력한 성적 쾌락의 추구다.

쾌락의 극단적 추구는 어린아이에 대한 소아성애, 동물과의 수간, 친족과의 근친간 같은 엽기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성 행위가 엽기적으로 보여도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될 것이다. 동성애가 그렇듯이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법적으로 허락될 것이다.

지금 미국은 소아성애와 전쟁 중이다. 소아성애에 빠진 미국의 정치계, 재계, 연예계 거물들로 인해서 어린이 납치, 매매, 살해가 빈번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라서 믿을 수 없었지만 많은 증거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소아성애 피해자인 사라 에쉬크래프트는 “미국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아동 유괴와 아동 인신매매의 99%가 CIA의 소행이다”고 폭로했다. 전 FBI 국장도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극심한 성적 타락으로 멸망당한 나라다. 성경은 그곳에서 만연했던 동성애와 근친상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멸망한 폼페이와 로마제국도 역사 기록과 유적에 의하면 성적 타락이 극심했던 나라다. 그곳에도 늘 동성애가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기 전에 성적 타락이 극심한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무분별한 성 행위는 건강에 치명적인 에이즈를 일으킬 수 있고 전염성도 매우 강하다.

성 충동이 강한 사람이 범법할 때 그들은 유전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며 합리화할 수 없다. 어렵지만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남의 물건이 탐날 때 본능과 유혹을 억제해야 하는 것처럼 동성애도 그렇다. 이성애도 마찬가지다.
 

낙태는 왜 나쁠까?

통계에 의하면 낙태의 절반이 결혼하지 않은 경우였다. 낙태를 허용할 때 성적 방종을 지지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마구 방종하고 마구 낙태할 때 건강은 크게 상하게 될 것이다.

낙태는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도 크게 상하게 만든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낙태를 경험한 남녀에게 “낙태란 어떤 경험일까. 막연히 어두운 기억일 뿐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경험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태아를 생명이라고 보는 때문이 아닐까? 범죄 중에서 가장 위중한 것이 살인인 것처럼 낙태의 경험이 평생동안 죄의식을 따라 다니게 만든 것이다.
 

타 종교는 왜 나쁠까?

그것은 인간의 창조주이자 구원주이자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흉내내는 우상(가짜 신)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인간에게 경배를 받고 싶어하며 많은 우상들과 많은 종교들을 만들어 냈다. 사탄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유혹하다가 결국은 멸망시키고 죽인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처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말할 때 독선이고 망언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 자신이 성경에서 계시하심으로써 인간이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호나 취향에 의해서 선택되거나 배척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는 다음 장에서 증거한다.)

종교에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과거 로마가톨릭은 타종교인들을 협박 강탈 추방 살해하며 강제개종시켰지만 지금은 누구나 마음대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든 종교를 다 용납하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우리는 우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선택에는 물론 책임과 결과가 따른다.
 

이단은 왜 나쁠까?

그것은 기독교와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중간에 변질되어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맺는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교만함이 생길 때 사탄에게 속아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며 스스로 교주가 된다. 이단들은 신적 능력이나 신박한 가르침 등으로 사람들을 매혹하지만 결말은 가정파괴, 재산몰수, 사회고립 등과 같이 항상 파괴적이었다.

기독교에는 유독 이단이 많다. 다른 종교는 이단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분파나 새로운 종교로 만들어지지만, 기독교는 그 안에 머물러 조금씩 왜곡시키면서 이단으로 파생된다. 그들이 새로운 종교 대신 기독교 이단이 되는 이유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복음에 너무나 좋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복음은 죄를 용서하시고 심판에서 건지시는 메시야, 죽음 이후에 갈 천국, 기적과 축복 등이 포함된다.

이단은 성경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복음을 옳바로 깨닫지 못하면 자칫 빠져들 수 있다. 잘못된 해석과 비유풀이로 인한 기존 교리의 훼손, 자의적 성경해석으로 새로운 교리의 창작, 목사의 메시야화나 신비화, 무례한 언행, 폭력, 비방, 헌금강요, 성적유린, 공포조성, 복종유도, 공동체 생활, 감금 등의 불법행위를 할 때 이단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모든 이단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타 종교와의 융합이다.
 

그럼 기독교는 자신과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까?

기독교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은 성경과 다른 사상이나 종교이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독교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속임당하고 틀린 길을 가는 사람들을 미워하는게 아니라 불쌍히 여기며, 그들이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생명까지도 바치며 순교도 한다.

과거에 로마가톨릭은 타종교인을 살해, 추방, 재산몰수 등의 방법으로 강제개종시키면서 종교세력을 확장시켜서 세계 최대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힘으로 강제해서 믿게 된 종교는 당연히 가짜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반대자들에게 폭력이라는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말과 희생과 기도로써 인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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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옥 선교사는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 산호제바이블컬리지에서 신학, 산호제주립대대학원에서 소셜웤을 전공했다. 서울과 산호제에서 다년간 직장을 다녔고 산호제에서는 교회에서 전도사로도 일했다. 현재는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수많은 오해들에 대해 답변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저서 <예수신화?예수실화!>는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기록된 역사서며,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변증한다. <시대읽기>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혼합해서 파괴하려는 반기독교적 세상의 정체와 그것의 반인륜적인 역사를 폭로한다. 이들 내용을 요약하고 추가해서 <예수는 실화다>와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했다. 최근 출간된 <다시살다>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개인 이야기를 간증한다. 번역서로는 <당신은 괜찮습니까?>와 <회복프라소>가 있는데 성경적 회개와 용서와 예수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다. joook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