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7 13:07 (월)
이전과 달리 그리스도가 순종으로 얻었다는 의를 말하지 않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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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리 그리스도가 순종으로 얻었다는 의를 말하지 않으시네요.
  • 정이철
  • 승인 2021.07.06 12: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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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이철 목사님, 이게 목사입니까? 들어보시고 공개적으로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조금 성급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들어보니 문제가 될 내용이 없습니다. 한 문장도 빠지지 않고 녹취를 했으니, 여기서 문제가 될 내용이 무엇인지 지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통스럽고 때로는 앞이 안보이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중에 오직 유일한 복음, 굿뉴스(Good News),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합니다. 그 복음,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행하심, 예수님의 인격 외에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참된 생명, 영생을 찾을 수가 없어요. 다 일시적인 것이고 구름 같은 것이고 바람같은 것이고 잠시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고 꿈과 같은 것이예요.

예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이라고 하는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속에는 그의 순종이라는 하는 내용이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요소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제가 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희생적 순종 또는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적 순종, 이렇게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또는 수동적 순종, 여러 측면으로 설명이 되어지는 예수님의 순종의 내용을 이 책에서 나누어 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귀한 구원의 진리를 분명히 더 확신할 수 있다! ... 이렇게 제시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살펴보면, 특히 매우 중요한 로마서 12절부터 19절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은 불순종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하셨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짜기 순종하셨음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오신 것이 예수님의 목표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어요. 그러니까 인류 구원을 성취하기기 위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 성부와 성자 사이의 깊은 상호 교류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인성(Human nature), 인간의 모든 아름다운 모습을 완벽하게,완전하게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온전하신 순종이라고 ... 주님을 본 받아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리 앞에, 그의 교훈 앞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부디 이 책을 읽고 순종의 삶에 열심을 내면 큰 영적인 유익이 구원의 감격이 풍성하게 될 모든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서 덕을 세우는 향기를 발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순종을 닮아가는 인생을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김재성 교수)
 

김재성 교수께서 뭔가 심각성을 느끼시고 문제가 될 내용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전통적 표현), 또는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이승구 교수의 표현), 또는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김재성 교수의 표현) 교리의 핵심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적극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적극적으로 순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이만희에게 물어보아도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온전하게 순종했다고 당연히 인정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실천으로, 또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으로, 또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으로 '의로움을 얻었다'는 주장(교리)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는 단지 죄용서만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 십자가의 죄용서의 공로 외에 다른 적극적인 의로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또는 적극적인 순종으로(이승구), 또는 온전하신 순종으로(김재성)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 의로움을 획득하였다고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리스도 자신도 율법에 대한 완전하고 온전하고 적극적인 순종의 공로를 통해 획득한 의로움으로 천국에 갔고, 우리에게도 그 의로움이 전가되어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또는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 또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의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단사상입니다.

1)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죄와 무관한 인간으로 출생하시었고, 우리의 죗값을 지시고 대신 죽음으로 우리에게 죄용서를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어지는 죄용서가 곧 우리의 의로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리스도가 율법이나 다른 무엇에 대해 완전하게 또는 적극적으로 또는 온전하게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었다는 교리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모욕하고, 그 목적을 훼손하는 이단사상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완전한(온전한, 적극적인) 순종을 위해 성육신하신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단사상입니다.

2) 성경은 율법에 순종함으로 의로움을 얻는 길이 있다가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율법이 오직 죄를 지적하여 죄를 대속하시러 오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왔다고 합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사람이 율법을 적극적으로, 온전하게, 완전하게 순종하여 천국에 갈 의로움을 얻을 수 없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서 의로움을 얻었고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교리는 율법주의의 극치입니다. 결국 구원이 율법에서 나온다는 이단사상입니다. 지금보다 율법이 더 중요시 되었던 구약 시대에도 구원 얻기 전에 율법준수를 요구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율법준수를 요구받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울타리 같은 것이었지, 결코 구원의 기준이나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대신 지켜서 천국에 갈 자격, 즉 의로움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교리는 이단사상입니다.

위 영상에서 김재성 교수가 한 말 속에서 이러한 이단사상을 주장하는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하되, 그리스도가 순종하여 의로움을 획득했다는 말만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 하신 방법을 두 글자로 요약하면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사함과 의가 되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까지의 순종하심이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갚으신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올바른 개혁신학자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롬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 (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165)
 

 

“우리의 죗값을 배상하는 제물은 여러 모양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자기의 피와 생명을 우리 죗값으로 드리심이 최고의 순종이었고 순종의 완성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죗값으로 받으신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 그리스도가 자기의 흠 없는 몸과 영혼과 피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신 순종에 완전히 만족하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사역을 받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기시기로 작정하셨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죄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시니, 우리와 그리스도가 연합되었다. 죄용서 받은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로 연합시키셨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죄과 무관하게 의로운 분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우리의 의로움으로 간주되었다.” (정이철, “김재성 박사의 신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바른믿음, 2021.6.21.)

그리스도는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배상하셨습니다. 순종하심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 즉 의로움을 획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순종하시어 의로움을 획득하셨다고 주장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석가 그리스도'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결국 이단으로 지목되어 일평생의 명예를 다 잃게 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김재성 교수가 그리스도가 순종하심으로 의로움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보이던 행보와 다릅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순종을 닮아가는 인생을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라고 하신 부분이 조금 걸립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으신 것처럼, 우리도 율법적 삶에 성공하여 삶의 의로움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능동순종 주장자들에게서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김재성 교수님의 우리도 예수님의 순종의 삶을 닮아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은 죄용서 받은 성도에게 내주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공로의 적용하시어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새 사람으로 살아감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전과 달리 김재성 교수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온전한, 적극적 실천으로 그리스도가 의로움을 얻었다는 이단사상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는 참 놀라운 일입니다. 김재성 교수는 자신이 잘못하여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지라도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절대로 인정하고 고칠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차라리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지, 절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실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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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2021-07-10 22:56:54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느 신학자나 자기의 의견을 굽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청교도의 사상은 그 시대의 사조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시대였으므로 ‘회심준비론’의 과정을 통해 참신자(알곡)와 거짓신자(가라지)를 가르는 작업을 했습니다. 시민들 또한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의 지침과 그들의 삶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교회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즉 교회가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다원화된 그리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현대시대애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요즘과 같이 복음전도가 힘든 이 시대에 그러한 과정을 적용것 자체가 어불성설 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구원 받기 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 어떤 학습이나 교육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예수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자신도 의롭게 되어 그 의로우심을 믿는자에게 전가시켰다는 ‘능동순종’ 교리는, ‘예수도 구원받을 대상’으로 보는 안식교 기독론과 일치하며 비성경적 사상 입니다. 또한 제가 지적하고 싶은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갚으라는 율법의 요구대로 스스로가 대속의 희생물이 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사상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동물의 희생으로 전락시키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적극 반대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육신하셔서(인류의 역사속에 직접 뛰어 드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여러 성경 구절들이 있지만 한가지만 열거 하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5). 여기에 대해 이의가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공개토론을 할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택자)을 사랑하셔서 마지못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즉 율법의 마침이 되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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