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준비론(Preparation)과 청교도 개혁운동의 관계를 살펴보자. 1580년대 말, 1590년대 초는 잉글랜드 청교도 개혁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그때까지 잉글랜드 국교회 청교도들의 주요 주장은 잉글랜드 국교회를 장로교회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장로교회 운동이 그때까지 청교도 운동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 국왕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은 청교도들의 장로교회 개혁운동을 ‘적들의 준동’으로 여기고 핍박하였다. 칼빈의 장로교회 사상이 도입되면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어 교회까지도 통제하는 국왕의 절대 권력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각 교회의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장로들이 등장하면 국교회의 감독들의 자리도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약 20년 동안 진행되었던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전환시키자는 국교회 청교도 목회자들의 개혁운동은 국왕과 국교회 감독들의 핍박으로 1580년대 말에 종식되었다. 그때부터 잉글랜드에 국한되었던 청교도 개혁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분리파 청교도

일련의 무리가 국교회를 떠나 새로운 청교도 개혁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네덜란드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은 회중교회를 세웠다. 교인자격 획득 과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았던 일종의 충성맹세 제도(교회언약)를 발전시켰다. 이들이 얼마 후 먼저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미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과 문명과 교회(회중교회)를 세웠다.


장로파 청교도

이들은 국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았던 국교회 성직자들이고, 숫적으로 가장 다수였다. 장로교회 설립을 말할 수 없으므로 겉으로는 포기한척 하면서 속으로 여전히 장로교회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았다. 청교도들 가운데 이들의 숫자가 가장 다수였으므로 훗날 잉글랜드 내전과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렸을 때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청교도들 거의 대부분이 장로교회파들이었다.  
 

국교회파 청교도

이들은 매우 소수였고, 국교회의 성직자로 남았다는 점에서 장로파들과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국교회 신학과 제도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동시에 국교회 체제에 도전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장로교회 설립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선두주자인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3)와 그를 존경하는 청교도 무리들은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국교회를 무너뜨리는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국교회 신자들 각 사람이 자기의 구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개인적 경건,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주일성수와 경건생활, 그리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는 자세를 요청하는 설교, 출판 사역에 전념했다.
 

독립파 청교도

한때 분리파 청교도였던 헨리 제이콥스라는 국교회 성직자에 의해 독립파가 시작되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분리주의 청교도 회중교회 목회 생활을 청산하고 런던으로 돌아가서 다시 국교회 성직자로 복귀했다. 그리고 국교회에 속하면서도 국교회 감독들의 통치를 받지 않는 청교도 회중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국교회에 속하면서도 감독들의 통치를 받지 않는 독립된 회중교회를 추구했으므로 ‘독립파’라고 불리운다. 퍼킨스의 제자들과 제이콥스의 제자들이 모두 국교회의 성직자 적을 가지고있으므로 양측의 사상이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하여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신학적으로는 퍼킨스의 사상을 가졌고 교회정치에 대해서는 제이콥스의 회중교회 사상을 가졌던 소수의 ‘독립파’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시종일관 장로교회로 존재했지 청교도 개혁운동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까지 함께 통치하는 제임스 1세가 되어 장로교회를 말살하고 국교회를 강요하자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협력하였다.

대표적인 신학자 로버트 롤록이 1590년대에 출판한 책에서부터 잉글랜드의 퍼킨스의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사상의 영향이 나타났다. 퍼킨스의 책으로부터 영향받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에도 일찌감치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640년의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스코틀랜드 신학자들도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개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말았다.

 

이상의 그룹들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청교도주의를 먼저 발전시킨 그룹은 국교회파 청교도, 즉 퍼킨스 일당이었다. 퍼킨스는 국교회 체제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국교회 신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분투하게 만들었다. 감독들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원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그것을 위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칼빈의 하나님 주권과 은혜에 기반하는 신학으로는 그것이 어려우므로 칼빈의 신학에서 조금 벗어나서 구원을 위한 개인의 참여, 노력, 헌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 출발점이 바로 아담이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면 하나님이 그를 자기 백성으로 삼고 영생을 주시로 언약했다는 거짓된 '행위언약' 개념의 도입이었다. 그리고 아담이 성공하지 못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대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도 들어섰다. 능동순종으로 행위언약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수동순종으로 행위언약을 위반한 죄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은혜언약' 개념도 들어섰다.

퍼킨스의 신학을 따르는 국교회파 청교도들의 목회 신학도 더불어 성경에서 이탈되었다. 그들은 행위언약의 저주 상태에서 태어난 신자들을 은혜언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목회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먼저 신자들이 행위언약을 완성하지 못하여 저주받은 상태 속에 있음을 알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회의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보다는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신물 나게 먹이는 특이한 목회 방식이 형성되었다. 

청교도 목사들이 선포하는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 선포에 기죽어 자신이 하나님의 눈엣가시이고 지옥 백성인 것으로 깨달은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를 적시에 포착하는 것이 청교도 목회자들의 특별한 기술이었다. 그 시기를 포작하여 적당히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처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청교도 목회자들은 스스로 탁월한  ‘영혼의 의사’라고 자부했다.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에게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자격을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처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회 기술이었다. 행위언약의 저주에서 벗어나 은혜언약으로 이동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청교도 목사들의 최고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동-수종순종으로 은혜언약으로 이동되게 할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해 알게 된다고 그 효력을 즉시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의 공로의 적용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알지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청교도 목회신학 회심준비론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영적각성된 신자들에게 계속 회개하고, 기도하고, 소망하고, 예배하고, 율법준수하고, 심지어 (에드워즈는) 자선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능동-수동순종으로 구원의 자격을 만드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회심되게 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시간이 영혼의 피를 말리는 과정이어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을 심히 괴롭게 했다. "회심되지 못할 바에는차라지 죽는 것이 좋다"고 여기고 극단적으로 결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이다. 회심준비론 목회는 신자들에게 행위언약의 저주를 알게 한 후 은혜언약으로 이끌어가는 목회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의 공로가 적용되게 하는 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가 회심준비론을 버린다는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1>
국교회파 청교도들에 의해 처음 도입되어 잉글랜드 장로파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자들에게 전파되어 나중에 웨신서에도 삽입되고 이후 바빙크, 벌코프, 후크마 등이 개혁신학으로 가르친 그릇된 ‘행위언약-은혜언약’ 개념을 버리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첫언약-새언약’, 즉 예를들어 서철원 박사가 제시하는 언약신학으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 개념도 버린다는 의미이다. 율법 선포로 신자들이 영적각성되어 행위언약의 저주를 알고 슬퍼하면,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의 공로를 적용하여 은혜언약으로 이동되게 만드는 것이 회심준비론 목회이다. 행위언약의 저주 하에 신음하는 사람에게 능동-수동순종으로 의로움을 획득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편하게 은혜언약으로 들어갈 수있다고 가르쳤다. 

회심준비론과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 교리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개념을 버리지 않으면서 회심준비론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언약'을 파괴하고 반역한 아담의 반역죄에 대한 죗값으로 자기의 목숨을 드리신 죄없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세워진 '새언약'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적 신학으로 돌아서야 진정으로 회심준비론의 비성경적인 점들을 깨달은 것이다.  

 

능동순종 사상을 버려야 하는 이유

그리스도는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의로움을 얻으려고 성육신하신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보내신 율법을 통해 장차 구원자로 오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미리 계시하셨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히 10:1)로서 특별계시였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고 제시한 구원의 완전한 자격을 가진 사람, 즉 율법의 모든 요구와 지시가 다 실현된 의롭고 거룩하신 분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는 시종일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불순종과 반역의 죗값을 하나님께 갚아드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죄인들에 대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하여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으신 것이 아니다. 율법이 지시하고 요구하는 완전한 의인으로 오시어 율법의 요구에 의해 죽어야 할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시고 저주 속에서 죽으셨다 (갈 3:13).

회심준비론의 문제점들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이라는 거짓 교리마져도 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이 계시하신 모든 의로움이 실현된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율법이 지적하는 죄와 저주에 잡혀있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순종으로 우리에게 죄용서-칭의를 주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여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시려고 왔을 뿐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히 이루어진다. 구원을 위한 다른 조건은 없다. 하나라도 있다고 하면 이단이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율법이 없었다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다고 가르쳤다. 참으로 망령된 자들의 괴이한 사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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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