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우리에게 조나단 에드워즈는 ‘2000년 교회사의 최고의 지성이고 영적거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먼저 에드워즈를 연구했던 사람들이 그가 지성으로는 어거스틴과 칼빈을 능가하고 영성과 신앙체험으로는 감히 감히 그 누구도 에드워즈와 비교할 수 없다고 소개했다. (백금산,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부흥과개혁사, 2011), 45, 58)

신대륙의 가장 위대한 청교도 에드워즈는 마치 하늘에서 가장 똑똑하고 신실한 천사가 하나가 지상에서 목회하고 설교하고 저술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성육신한 것처럼 신성시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에드워즈는 가장 고상하고 신비한 이단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에드워즈는 관상기도 영성가들이 좋아하는 신비적이고 황홀한 하나님의 임재체험을 많이 경험했다. 명상하는 동안 특이하게 떠오르는 환상, 상상 속에서 하나님과 신비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자주 자연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달콤한 영광을 체험했다. 심지어 에드워즈는 명상하는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앞의 책, 166-181)

에드워즈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성자의 인격을 경험하는 신비 체험을 하기도 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너무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람의 모습으로(The person of Christ) 나에게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었으며, 인간의 모든 사상과 사고를 무색하게 만드는 너무나 장엄한 광경이었습니다. 그 환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나는 눈물이 강물을 이루는 가운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Jonathan Edwards, "Personal Narrative," Reader, 203.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85)

에드워즈가 남긴 기록에서 나오는 그의 이런 체험은 어떤 신비주의 이단들에게서 나타나는 비성경적인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중세 시대의 수도원에서 진행된 명상 활동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중세의 수도원 명상가들은 이런 체험이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것으로서 최고의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런 체험을 해 보는 것을 간절히 소원하였다.
 

 

중세의 대표적인 수도원 신비주의 명상가 성 버나드(St.Bernard, 1091-1153)는 이러한 신비적인 현상 체험을 신인합일이라고 이해하였다. 버나드는 명상 가운데 느껴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적 체험, 그리고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현존 체험이 명상의 최고의 그리고 궁극적 목적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영적합일이라고 가르쳤다.(원종천, <중세영성의 진수 성 버나드> (대한기독교서회, 2013), 125-28)

에드워즈에 대해 연구한 찰스 햄브릭스토우(Charles Hambrick-Stowe)는 하나님 체험을 지극히 강조했던 중세의 프랑스 수도사이고, 대표적인 관상기도 신비주의자였던 버나드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햄브릭스토우는 버나드의 책「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가 신대륙의 청교도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서적이었고, 에드워즈의 감각적인 하나님 임재 체험과 중세의 명상가 버나드의 체험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드워즈는 여기에서 달콤함이라는 말이 관능적인 인상을 갖지만, 알레고리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전통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최소한 중세의 신비주의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버나드)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의 책「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는 매우 유명하였고, 17세기 청교도들의 설교에 자주 인용되었습니다.”(D. G. 하트 외,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장호익 역)(부흥과개혁사, 2009), 134-35)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하나님 임재 체험을 즐기는 신비주의적 영성이 단지 에드워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청교도들 다수에게 연루된 문제였다. 그 동안 청교도들의 탁월한 경건 생활과 연결된 것처럼 홍보된 '청교도들의 묵상’이라는 것이 이런 심각한 이단성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청교도주의자들은 이런 심각한 내막을 말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에게 청교도들의 묵상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청교도주의자 김재성 교수도 청교도들과 에드워즈의 묵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교도는 묵상의 내용으로 성경을 읽고서 어떤 구절을 선택해서 집중하거나 비교적 쉬운 교리를 정해서 집중하라고 권면했다. 삼위일체 교리보다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묵상하는 것이 좋고, 한 번에 한 가지 주제를 묵상할 것을 추천했다. ...(중략)

청교도는 묵상의 마지막에는 생각한 모든 것을 확고한 결심으로 매듭지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가장 즐거이 했다는 것이 바로 묵상을 통한 결정이었다. 이 확신들은 죄와 더불어 싸우도록 마음에 심각성을 새겨 주었다.”(김재성, <청교도 사상과 경건의 역사> (세움북스, 2020), 125)

그런데 중세 버나드의 신비적 명상이 어떻게 청교도들에게서 다시 나타나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 연구되어진 좋은 자료를 아직 보지 못했다. 원종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7세기 영국 청교도 영성의 대표주자 리처드 십스에게 나타난 버나드 유형의 개신교적 신비주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원종천, 중세 영성의 진수 성 버나드, 226)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원종천 박사는 퍼킨스의 제자 리처드 십스에게 중세의 신비주의 명상가 버나드 유형의 영성이 나타났다고 했다. 십스의 신비주의 명상은 신대륙의 에드워즈에게 어떻게 전래되었을까? 초기 신대륙 청교도들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존 코튼이 십스의 제자였고, 그는 보스톤에서 목회할 때 서재에 십스의 사진을 걸어두었을 정도로 십스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십스의 신비주의 명상이 1633년에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한 코튼을 통해 신대륙의 청교도들에게 전파되었을 것일까? 그래서 1703년에 태어난 에드워즈도 신비주의 명상에 빠지게 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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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