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의 사변적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통해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율법으로 사람을 의롭게 하거나 구원을 받는 방법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하여 칼빈도 갈라디아 강해설교에서 자세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약속은 적절하지 않으며 구원을 받는데 부분적인 도움밖에 주지 못한다고 잘못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필자 해석:복음의 약속으로 우리의 구원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의 기능을 검토해 보고 그것이 주어진 목적을 알아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 우리에게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받는 방법을 제공해 주려고 하지 않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성을 폭로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율법이 주어졌습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에 대해서 갑절의 벌을 받게 하고 또 그들의 위선과 자만과 변명하려는 마음과 그밖에 그와 유사한 죄는 헛되고 아무런 유익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롬4:15에서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만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칼빈의 갈라디아서 강해 상. 508-509p)

칼빈은 율법이 구원을 주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계속해서 칼빈은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율법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위의 책 510-511p)

칼빈은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설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말하자면 검으로 우리를 꿰뚫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서 하나님께로 피하도록 몰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우리를 ‘죽이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게 할 목적으로 율법을 보냈을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생명과 구원을 찾는 자들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칼빈의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하. 14p)

이처럼 칼빈은 아주 분명하게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따라서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이 의를 주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율법이 구원을 준다는 것처럼 구약에서 증거하는 것인지 우리는 고찰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율법과 복음이 마치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죄인이 산다고 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죄의 부패를 아시고 아무런 상을 언급하지 않으면 죄인들은 당장에라도 불만과 불평을 일으키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 산다고 하는 상을 말씀했다고 한다.

그러나 율법은 원래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의를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 율법의 제정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율법의 기능이라고 가르쳐 준다.

이처럼 칼빈의 신학에서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율법의 의가 성도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의만 존재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율법이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과 율법의 성취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율법에 순종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해 율법에 순종하신 것이다.

만약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룬다고 여긴다면, 계속해서 율법의 의를 주장하게 되다면 율법 자체가 의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율법이 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동물의 피의 제사를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며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예배하고 섬기며 사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은혜의 법인 것이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않고, 율법이 살리지 못하는 것인데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의를 획득하였다고 믿는 것인가?

성도는 오직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증거를 늘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믿는 자가 믿음으로 계속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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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