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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 신학은 성경적 근거없는 폐기처분해야 할 거짓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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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 신학은 성경적 근거없는 폐기처분해야 할 거짓 신학
  • 서철원
  • 승인 2021.04.2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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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능동적 순종: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얻은 의를 전가하여 택자들에게 영생을 수여한다는 주장


17세기 때부터 개혁파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2가지로 구분하여 전개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작정을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어 피 흘리심으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한 것과 그리스도가 입법자로서 율법순종의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하여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이룩하였으므로 그 의를 백성들에게 전가하여 백성들이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하여 지켰으므로 이것이 능동적 순종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어 피 흘리심으로 백성들의 죄를 갚아 죄 용서를 받게 하였으므로 이것이 수동적 순종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획득하였으므로 이것이 능동적 순종이라는 것이다.

이 신학적 논의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죗값을 다 갚아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여 영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피 흘리심으로 죄용서만 이룩하였을 뿐이고 그를 믿는 자들로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신 율법을 지켜 영생을 획득해야 했다. 이것은 신약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또 이런 구원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옆으로 밀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얻은 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2. 능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로 얻은 의는 그리스도 자신의 의가 되게 했다는 것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율법을 준수하여 획득한 의를 백성들에게 전가하여 백성들로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이룩한 의는 자기의 의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한낱 인간일 뿐이고 구원 얻어야할 죄인으로 만드는 반 기독교적인 사설 (허위주장)이다.

3. 능동적 순종 논의: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 때 시작


능동적 순종 논의는 종교개혁자들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17세기 소위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 혹은 개신교정통주의 시대 때 시작하였다. 칼빈이나 루터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획득하였으므로 그것이 의가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얻은 의를 백성에 전가하므로 백성들이 영생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청천벽력과 같은 기상천외한 것이다. 또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얻은 의를 자기 의로 삼았다는 주장은 가공할 사항이었다. 종교개혁을 근본에서 완전히 허는 주장이었다.

17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교회인 루터교회와 개혁교회가 다 같이 이신칭의 교리에 근거해서 신학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신학을 체계화하려면 신학을 표현할 언어가 있어야 한다. 당시 신학자들은 다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용어들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17세기에 근세철학을 연 데카르트의 철학은 신학체계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못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교회 신학자들도 중세 스콜라 신학이 했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언어를 사용하기로 하므로 사변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능동적 순종 논의도 17세기 사변적으로 신학하기로 함으로 생겨난 사변적 논의일 뿐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의 황태자로 알려진 존 오윈이 능동적 순종의 논의를 시발하였다고 알려졌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어 속죄하므로 구속사역을 다 하였다면 그렇게 오래 사실 필요가 없었다. 33년이나 오래 산 것은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본래 율법수여자로서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지만 율법을 준수하기 시작하였다. 율법준수로 의를 이루어 그 의를 백성들에게 전가하므로 백성들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능동적 순종 논의를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 칼빈신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리차드 멀러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이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이런 논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능동적 순종 논의:
신약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종교개혁의 모토 중 하나가 오직 성경으로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칼빈이 주장하고 가르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데까지 가고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신학은 바른 신학이 아니다. 성경대로 구성된 신학이 개혁신학이다.

신약의 가르침의 핵심은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용서 받아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주장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에 대한 시사도 없다. 능동적 순종은 신약에 근거해서 구성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사변에서 나온 사변의 산물일 뿐이다. 모든 신학은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의 승인을 받을 때만 정당한 신학이 된다.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신약의 가르침의 공식화일 뿐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이신칭의 교리를 만들었다면 그들이 로마교회의 핍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자들 살해위협으로 협박하였다. 그런데 성경에 있지도 않은 교리를 가지고 어떻게 로마교회의 살해위협을 이겨내고 교황주의자들의 신학적 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겠는가? 신약 성경이 이신칭의를 명확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교회의 가르침에 대항해서 담대히 진리를 개진하고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고 반박하였다.

능동적 순종으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의를 성취하여 신자들에게 전가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였다는 주장은 신약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 주장이 어떤 개혁신학자에 의해 나왔다고 하여도 성경적 승인을 받지 못하면 성립할 수 없다.

신약은 하박국 2장 4절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롬 1:17, 갈 3:11, 히 10:38에 인용하였다. 그런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우리 성경 번역은 본문대로 바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하박국 2:4도 “믿음 안에” 혹은 “믿음에 근거한 의인이 살리라” 라고 해야 하고, 신약의 인용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 혹은 “믿음으로 의로운 자가 살리라”라고 번역해야한다. 의인 된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 것이다. 어떻게 의인이 되어서 살기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믿음에서 의로운 자가 살리라”이다. 의인이 되어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살고 영생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자기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로써 영생한다고 명시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고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리스도는 그 다음에 세상을 속량하기 위해 대속물로 왔음을 밝히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여기서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심만 있지 율법을 지킴은 전혀 자리가 없다, 또 요한도 그리스도가 대신 속죄제사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심만 알고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어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 두 절이 다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 사람들로 영생에 이르게 한다는 주장은 신약에 없다. 그런 논의와 주장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사변으로 만들어낸 신학일 뿐이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5).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영생을 주신다는 시사나 암시가 전혀 없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 3:36).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는다. 그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으므로 영생에 이른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로 영생을 얻는 것은 성경에 전혀 자리가 없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학은 바른 신학이 아니다. 요한복음 6장 29~40절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요한복음 7장 37~39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생수의 강이 그 안에서 흘러넘치므로 영생한다”고 가르친다. 요한복음 11징 25~27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한다”고 그리스도 자신이 널리 밝혔고 내가 율법을 지켜 너희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없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다 이루셨다고 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구속사역 외에 다른 구원사역을 성경은 알지 못한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예수를 믿음으로 그의 이름으로 영생 얻는다”고 선언한다.

이제 바울의 주저서 중 하나인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복음과 율법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영생에 이르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다(갈 1: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 복음에다가 율법준수를 더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갈 1:7~9). 사람이 의롭게 되어 영생하게 되는 것은 대신 속죄 죽음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된다(갈 2:16~21).

예수 믿어 성령을 받는데 성령을 받은 것은 구원과 영생을 받았다는 확증이다(갈 3:1-8). 율법준수로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어서 멸망에 이를 뿐이다(갈 3:9~1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갈 3:16~2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어 죗값을 다 갚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영생에 이르렀는데 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구속사역을 무시하고 율법준수로 영생을 주시려고 하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5. 성경이 신학의 최종 심판관이다.

성경이 신지식의 원천이다. 성경에서만 바른 하나님 지식을 얻는다. 또 성경은 신학의 규범이다. 신학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구성해야 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면 당장 그런 신학을 버려야 한다. 혹은 반문하기를 우리가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른다고 하면 이신칭의 교리에 어긋나지만,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셔서 영생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바른 신학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성경 어디에 그런 가르침이 있는가? 그것은 거짓 신학이다.

ֱ모든 신학을 판정하는 것은 성경이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잘 구성된 신학이라고 하더라도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그 신학은 바르지 못하는 신학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폐기처분한다. 능동적 순종 주장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와 지지가 없다. 그러므로 능동적 순종 주장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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