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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훈 교수(고신)는 루터와 칼빈의 글을 바르게 읽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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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훈 교수(고신)는 루터와 칼빈의 글을 바르게 읽지 못하였다
  • 정이철
  • 승인 2021.04.17 03: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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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우병훈 교수가 자신의 논문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에서 교회사의 인물들이 능동순종 교리를 지지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살퍼보도록 하자.

1. 이레나이우스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Irenaeus)의 총괄갱신설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우리의 구속을 위해 필수적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확장하고 성취하는 분이실 뿐 아니라, 성취하신 율법의 의들을 우리에게 심으신 분이시라고 주장한다.”(우병훈)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의를 얻으시고 우리에게 전가(심으신)했다는 이레네우스의 주장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주장이다. 누구나 주장은 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 개인의 주장일 뿐이었으므로 그 내용이 공교회의 신학과 교리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실천하여 영생의 의로움을 얻었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고, 오히려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이므로 공교회의 신학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성경은 이와 같이 율법으로는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을 믿음으로만 의로움을 얻는다고 한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준수 칭의획득의 방식으로 구원이 일어나게 된다는 하나님의 예언도 없었다. 그래서 비록 명망이 있었던 이레나이우스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칭의획득 복음을 주장했을지라도 공교회는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고 교리로 받은 적이 없다. 여러 종류의 주장은 항상 누구에게나 있다. 
 

2. 아타나시우스

“4세기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로고스께서 성육신 하신 목적이 율법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가르쳤다. 그에 따르면, 로고스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또한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율법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시다.”(우병훈)

아타나시우스의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죽으심으로 율법을 해결하셨다는 주장은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 하나 하나를 지켜서 영생하게 하는 율법의 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아니다. 사람의 죄에 대해 율법이 지적하는 대로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아타나시우스는 능동순종 사상을 가졌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이루어 내신 죄사함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라는 지극히 성경적인 신학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우병훈 교수가 잘못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타나시우스의 이해는 다음의 성경의 말씀들과 일치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3. 아우구스티누스

“5세기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갈 4:4~5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갇힌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율법 아래 들어오셨고 율법과 함께 계시면서 율법의 성취자가 되셨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 사상’을 제시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신자들이 행한 일이 되기에,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자들도 역시 율법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우병훈)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도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을 하나씩 모두 지켜서 율법이 주는 의로움을 얻었다는 내용으로 보이지 않는다. 성육신으로부터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셨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으로 칭의가 주어진다는 주장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도 능동순종 교리와 맞지 않다.
 

4. 안셀무스

“11세기의 안셀무스(Anselm)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단지 십자가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전생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전 생애에 걸쳐 진리와 정의를 행하신 분이시다.”(우병훈)

안세무스의 사상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의를 획득했다는 능동순종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안셀무스는 그리스도가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순종하고 의로운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죄에 대한 완전한 배상을 드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보는 성경적인 신학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5. 베르나르두스

“12세기에 베르나르두스(Bernard of Clairvaux)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구원을 이뤄내시면서, 삶 가운데 ‘수동적 행위’를 가지셨고, 죽음 가운데 ‘능동적 수난’을 견뎌내셨다.’라고 설교했는데, 17세기 능동적 순종 교리를 다뤘던 신학자들은 이 표현을 좋아했다.“(우병훈)

베르나르두스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능동적인 것으로 온전하신 순종의 생애를 수동적인 것으로 보았으니, 지금 문제가 되는 능동순종 주장과는 전혀 반대 개념을 가졌던 사람이다.
 

6. 토마스 아퀴나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에 나기를 원하셨는데,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였다(갈 4:4~5). 또한 ‘율법의 칭의’가 그의 지체들에게 영적으로 성취되기 위해서였다.”(우병훈)

토마스 아퀴나스도 그리스도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기 위해 율법 아래 나셨는데, 그것은 율법적 칭의를 성취하기 위해서였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율법을 모두 지켜서 율법의 칭의를 얻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킨다 한들 율법으로부터 칭의를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만일 아퀴나스가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 준수로 의로움을 얻었다는 것으로 가르쳤으면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고, 우병훈 교수 역시 아퀴나스가 능동순종을 가르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병훈 교수는 안세무스, 베르나두스, 안퀴나스, 이 세 사람의 중세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능동순종 개념을 가르치지 않은 것으로 말하였다.
 


7. 루터

“16세기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신 3:21, 요 1:6, 갈 4:5, 갈 3:13에 대한 설명에서, 때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칭의의 근거가 된다고 볼 때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여 각각이 우리를 위한 순종의 행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1535년에 출간된 대(大) <갈라디아서 주석>의 갈 4:5에 대한 설명에서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서 행하신 능동적 순종이 신자들의 공로가 된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우병훈)

우병훈은 루터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칭의의 근거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갈 4:5절의 주석에서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우리의 칭의의 근거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루터가 칭의에 대해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우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루터가 능동순종 개념을 말했다는 갈 4:4,5절은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을 모두 지켜서 우리 대신 영생의 의를 얻었다는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자기보다 먼저 보내신 율법으로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신 후 자신이 우리의 죄에 대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따라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다는 뜻이다. 전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주장과 맞지 않는 내용이므로, (우 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루터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진단해야 옳다. 필자는 루터의 글을 직접 보지 못하였으나, 우병훈이 루터의 글을 오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8. 칼빈

“존 칼빈(John Calvin)은 롬 3:22에 대한 주석에서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주장한다. 롬 3:31에 대한 주석에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의를 가진 분으로 묘사하며, 그러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칭의가 일어나며 성화가 이뤄진다고 설명한다.”(우병훈)

우병훈은 칼빈이 롬 3:22절, 롬 3:31절 주석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이라도 사도 바울의 성경과 다른 주장을 하면 이단이 되거나 거짓 신학자로 전락하는 것이 기독교의 절대적인 법칙이다. 사도 바울은 그 누구도 율법 조항들을 지켜서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신약 성경이 이와 같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는데, 칼빈이 그것과 다른 주장을 했다면 그 주장이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칼빈이 다루었던 롬 3:22절과 3:31절은 전혀 율법의 의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사도 바울의 이 구절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직 율법대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바로 앞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라고 말했다. 설마 사도가 바로 앞에서 율법준수로 칭의 획득이 불가능하고 말하고 바로 뒤에서는 그리스도가 율법 준수로 칭의를 획득하여 전가했다고 말하였을까? 필자는 칼빈의 그 부분의 주석을 보지 못했다. 만일 칼빈이 정말 그런 식으로 설명했다면 실수한 것이다. 그러나 우병훈이 칼빈의 글을 오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롬 3: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으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칭의획득 거짓 주장과 아무 연관이 없다. 단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에게 성령의 은혜와 사역으로 구약의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어지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의 역사로 율법의 겉과 내면의 정신까지도 성취되는 성화의 삶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성도는 율법과 무관한 삶을 살지 않고 율법의 정신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우병훈 교수가 주장하는 칼빈의 말을 직접 보지 못했으

나, 칼빈이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로 설명했다면 실수한 것이다. 그러나 우병훈 교수가 칼빈을 오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2.12.3에서 롬 5:12~21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따로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23에서 칼빈은 롬 5:19를 인용하여,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칭의에 필수적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다.”(우병훈)

우병훈은 칼빈이 기독교강요(2.12.3)에서 롬 5:12-21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을 따로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롬 5장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와 십자가 사역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사도는 롬 5장에서 첫 사람 아담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과 반역죄로 인해 온 인류가 정죄 받았으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정죄에서 벗어나 의로움을 얻었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롬 5:12-21절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칭의획득 교리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바로 앞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 피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라고 말했다. 의로움과 죄용서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바울이 딴 소리를 했을까? 만일 칼빈이 그렇게 해석했다면, 그것은 단지 칼빈의 실수일 뿐이다. 그러나 우병훈이 칼빈을 오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칼빈의 기독교강요 그 부분(2.12.3)을 보니 사실상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칼빈은 단지 아담과 아담의 후손이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을 받으면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것 뿐이나, 그리스도가 죄 없는 참 사람으로 오시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그 몸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설명했을 뿐이다. 전혀 능동순종 사상을 주장하지 않았다.

“불복종으로 멸망한 사람을 바로 고쳐서 불복종을 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대로 이행하며,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 주께서는 참 사람으로 나타나시며 아담의 몸과 이름을 취하셔서 아담 대신에 아버지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대로 이행하는 값으로서 우리의 육신을 바치시며, 같은 육신으로 우리가 받을 벌을 받으셨다.”(기독교강요, 2.12.3)

또한 우병훈은 칼빈이 기독교강요(3.11.23)에서 롬 5:19절에 근거하여 능동순종의 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롬 5:19절의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그리스도의 율법 조항들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순종하시는 삶을 사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을 뜻한다. 바로 앞에서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롬 5:18)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뜻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근거로 칼빈이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를 말했다면, 그것도 칼빈의 실수일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우병훈이 말한 기독교강요의 그 부분을 보니 아니었다. 우병훈이 칼빈을 오독하였다.

“자기 밖에서 의를 찾으라는 지시를 받는 사람은 그 자신 안에 의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뿐 아니라, 사도는 극히 분명하게 주장한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우리의 의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우리가 의를 소유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기 때문이란 것을 여 기서 알 수 있다. 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의를 완전히 또 풍부하게 가졌다.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를 정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이루어졌다고(롬 8:3-4) 가르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기독교강요,3.11.23)

여기서 칼빈은 지극한 단순한 다음의 성경적 진리를 말했을 뿐이다.

1)영생을 위한 의로움은 사람의 율법준수나 선한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그 분에게서 나온다.
2)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의로움이 얻어졌다.
3)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죄없는 자기의 육신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율법의 정죄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칼빈의 글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칭의획득 교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병훈 교수는 칼빈의 글을 바르게 읽지를 못하고 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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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리 2021-04-19 14: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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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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