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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회심준비론 설교-목회 제대로하면 우울증, 자살자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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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회심준비론 설교-목회 제대로하면 우울증, 자살자 쏟아진다
  • 정이철
  • 승인 2021.03.04 10:3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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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35년 동안 에드워즈의 1차 부흥이 일어났다. 이 부흥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고 1740-42년에 일어난 2차 부흥만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부흥을 사람들은 대각성이라고 한다. 1737년에 출판된 에드워즈의 책 <놀라운 회심 이야기>는 2차 부흥이 아니라 1차 부흥의 이야기이다.

흉한 사건이 일어나 에드워즈의 1차 부흥에 찬 물을 끼얹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 실제로 자살에 성공하여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또한 이것과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회 방식이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한 사람이 거의 없다.

1차 부흥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들의 자살에 대해 정리하여 보았다.

1) 1735년 3월 25일, 에드워즈의 교인 토마스 스테빈스(Thomas Stebbins)가 자신의 목을 잘라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조지 M. 마스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한동수 역)(부흥과 개혁사, 2006), 248). 이 사건은 처음 나타난 일이었고 본인이 죽지 않았으므로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고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다. 그 사람은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2) 1735년 6월 1일 주일 아침, 에드워즈의 교회의 핵심인물이며 에드워즈의 이모부인 조셉 홀리 2세(Joseph Hawlwt Ⅱ)가 칼로 자기의 목을 잘랐고 30분 만에 죽었다.(앞의 책, 247)

이 사건은 에드워즈와 교인들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고, 그때까지 이어지던 부흥의 분위기는 이 사건으로 끝나버렸다. 죽은 홀리의 집안도 유전적 우울증이 있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특히 홀리는 죽기 2-3개월 전부터 불면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회 방식이 우울증을 가진 홀리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죽은 홀리의 아들 요셉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삼촌인 에드워즈 목사의 설교로 인해 점점 낙담에 빠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의 인생을 파멸시킨 에드워즈 목사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 청교도 운동과 미국의 역사에 대해 깊이 연구한 패리 밀러(Perry Miller)가 그렇게 분석하고 기록하였다.(이안 머레이, <조나단 에드워즈: 삶과 신앙>(윤상문, 전광규 역)(이레서원, 2009), 456.) 실제로 죽은 홀리의 아들 요셉은 훗날 자신의 삼촌인 에드워즈 목사를 그 교회에서 추방하는데 가장 앞장선 인물이 되었다.

요셉이 왜 자살한 아버지 홀리의 우울증이 에드워즈의 설교 때문에 더 심화되었다고 여겼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1734-35년에 일어난 에드워즈의 부흥은 회심준비론 목회를 통해 나타난 부흥이었다. 이것을 감안하면 에드워즈의 설교와 홀리의 우울증과 자살의 상관관계가 전무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에드워즈는 1737년에 이 부흥의 이야기를 <놀라운 회심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죄인을 향한 율법의 자주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선포 받아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하나님의 회심의 은혜를 사모하였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회심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놀라운 회심체험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기술되었다.

그러나 회심준비론 목회는 거짓 신학이고 이단 사상이다. 사람이 구원 받기 전에 스스로 죄를 깨닫고 지옥으로 향하는 자기의 비참한 영적인 상태를 인지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구원 받기 전의 인간이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공로가 적용됨으로 구원되기를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간구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모습을 실제로 모인다면, 그 사람은 매우 심각한 정신병적인 상태에 있거나 구원에 대한 나쁜 가르침에 의해 세뇌되어 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구원을 얻는데 사람의 준비라는 것은 전혀 없다. 구원은 복음선포와 함께 그리스도 믿게 하시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일어난다. 구원은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도록 준비시키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회심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소원하는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강요하는 목회는 사람 잡는 목회이다. 반드시 신자들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한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죽은 상태이므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아무 가치 없고 전혀 준비가 안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죄를 용서하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들의 분명한 특징은 평안과 기쁨이다. 구원 이후의 죄를 버리는 성화는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의 역사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일어남으로 되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구원 받기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회심되기를 기다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회심된 후에는 흠 없고 거룩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기 위해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과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준비하고,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성화를 보여야 한다고 설교하니, 정신이 미약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베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우울증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서 먼저 탈이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1차 부흥 운동 당시 에드워즈는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그 진노가 여러분의 머리 위에 극도로 임하지 않도록 노력할 때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 그 분은 여러분을 부르시기 위해 저를 보내셨습니다. 저는 그 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분께 나오십시오.”(조지 마스덴, 252)

“이 땅 전역에서 우리의 신앙이 명성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과 우리의 영향력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서 다른 도시들이 우리 안에 있는 기독교 신아의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합시다.”(조지 마스덴, 250)

에드워즈의 이런 내용의 설교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서 그 마을이 천국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교회의 핵심 멤버인 홀리의 자살로 인해 완전히 찬물이 끼얹어지고 말았다.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설교와 목회 방식이 근본적으로 정신이 약한 사람들에게 우울감과 자살 충동을 유발한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3) 1735년 여름, 한 두 사람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자살충동이 일어났다. 이전에 우울증을 보였던 적이 없는 사람들 다수에게서 목을 잘라서 죽으려는 충동이 일어났다.(조지 마스덴, 254-55)

에드워즈 자신도 1년 후 자신의 글에서 이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일 후 이 마을을 비롯한 다른 마을에서 많은 남자들이 그 남자가 했던 했던 일을 자기들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무 우울증도 없어 보이던 많은 사람들,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 특별한 의심이나 어두움도 없고 영적으로든 세상적으로든 정신에 특별한 고통이나 염려가 없던 경건한 사람들이 이상한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그들에게 ‘네 목을 따! 지금이 좋은 때야! 바로 지금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도 모른 채 사력을 다해 그 충동에 저항해야 했습니다.”(고언 편집, <부흥론: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7권> (양낙홍 역)(부흥과개혁사, 2005), 73-74)

4) 1735년 7월 13일, 메사츠세츠 주에서 에드워즈의 영향 하에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에드워즈의 사촌 스티브 윌리엄스는 자신의 일기에서 신자 한 명이 자살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조지 마스텐, 255)

이상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에드워즈의 부흥의 때에 일어난 자살 현상은 우연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흥을 이끌었던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회 방식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즈에게서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의 설교와 목회에서도 자살이 일어났으므로, 근본적인 원인이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회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 설교와 목회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지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청교도들은 모두 회심준비론자들이었고, 특히 에드워즈는 최고 전문가였다.

청교도들과 에드워즈가 최고로 중시하고 강조한 것은 회심준비 과정을 거치다가 드디어 성령의 회심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구원에 확신’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의 연구와 분석에 의하면, 바로 이것 때문에 당시 부흥운동의 와중에서 자살자들이 나왔다고 한다. 회심된 사람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아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에드워즈 측 사람들(새빛파)은 ‘확신’이 구원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확신(성령의 회심체험)이 구원의 증거라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와 무관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교도들 사이에서 구원의 확신, 즉 성령의 회심체험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아졌다. 그들의 규칙에 의하면, 그것을 간증하지 못하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들은 고민하다가 규칙을 바꾸기도 했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규칙을 무시하였다. 되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못하는 것을 분들었던 청교도들의 신념과 이단 사상으로 인해 뻔뻔하지 못하고 순진한 사람들, 특히 우울증 기질이 있었던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청교도들과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설교와 목회가 우울증과 자살을 초래했다고 보는 에드워즈 전집 편집자 고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는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을 대할 때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만난 어떤 권면자들의 말에 따르면, 만일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구원받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죄를 더 많이 짓고 나의 죄책은 더 증가할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통해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 헷갈린 정신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살에 성공했다.”(고언 편집, <부흥론: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7권> (양낙홍 역)(부흥과개혁사, 2005), 74)

개인적 구원의 확신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 특히 우울증 기질의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오래 살면서 죄를 지으면 훗날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이 더 증가되므로 차라리 죽어 죄를 덜 짓자는 심정으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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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현 2021-03-17 16:33:59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의 성경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 오른편 강도와 같은,
구원의 희망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
을 바라보며, 그것도 벌거벗고, 비참하게 죽어가시는
성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분이, 구원자라는 것을
알아보는, 택한 백성!의 믿음.....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선별하여 구원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십니다.
자기의 성경적인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지 마세요!
교만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만이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승현 2021-03-08 21:40:39
율법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복음' 입니다!
이제, 성도는, 율법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켜야 되느니, 마느니, 논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율법과 씨름하지 말고
복음과 씨름하면 됩니다. 율법은 오직, '복음의 영광'
을 위하여 존재했을 뿐입니다.

오승현 2021-03-07 23:36:09
그러므로, "성도는 율법을 지켜야 되며 신성한
것이다"라는 이런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신성한 율법인 것은 성도는 다 압니다!
초등학문 격인 율법보다, 더 위대하고 위대한,
이런 대학문은 결코, 나올 수 없다는 절대 지존의
학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입니다.
더 이상 초등학문 격인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논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젠, 복음에 대해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과 주님을
더 알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율법울 저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이철 2021-03-05 07:27:33
장로님의 "서 박사님의 말 처럼,”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완전히 면제 되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합니다. 서 박사님은 율법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구약의 율법을 구약의 방식으로 지켜야 할 의무가 면제 폐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해도 죄가 아니라는 뜻일까요? 무슨 일을 해도 성도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여전히 율법의 정신과 요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남으로 유법의 겉 모양뿐 아니라 율법의 정신까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율법의 기능중 하나가 여전히 유효한데, 그것은 신자에게 남아있는 죄를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이기는 방식이 구약의 신자들처럼 육신의 힘으로, 이성으로,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남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김리훈 2021-03-05 04:24:47
Jonathan Edwards는 그의 책,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우울증 환자를 영적으로 치유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Depression도 일종의 정신질환이고 영적으로 말하면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거의 모든 정신병 환자들은 약으로 temporally 치료 될 수 있을 뿐 영구히 완전히 치료되지는 못합니다. 어느 정신병 의사와 6개월 전에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정신병 환자들과 상담할 때 그들의 눈을보면 그들의 눈빛이 두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내용이 정상이 아니고 영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자주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았을때 귀신들렸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 현시대에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 요 얼마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입양아 정인이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정인이의 양 부모가 기독인들 이고 그들의 부모가 목사님들 이라는 것을 떠나서 정인이를 살해한 그 부모들도 정신 병자들로 보면 됩니다. 일종의 귀신들린 사람들 입니다. 그들이 정상인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일을 할 수 없거든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사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 못한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꾸짖고, “기도와 금식”이외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제가 저번에도 강조했듯이 ‘회심준비론’을 구원 받은, 즉 성령받은 이후의 과정으로 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성령 받았다면 말로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 뿐만 아니라
1.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2. 진리 가운데 행 해야 하며
3. 믿음 생활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만을 나타내며
4. 성령의 열매(윤리 도덕적인 것들)를 맺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완전성화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죄’,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죄’는 범하지 않습니다. 서 박사님의 말 처럼,”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완전히 면제 되었다”고 하여 율법을 범하여 죄를 짓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이것이 구원파의 논조 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내가 육신적으로 죄를 짓더라도 그것이 영혼의 구원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판 영지주의 이단(율법 폐기론) 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율법은 더이상 그들을 정죄하거나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유롭게 하며 온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지킴을 넘어 율법을 사랑해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랴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그리고 구원의 문제도,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셔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시대에도 팽배했습니다. 렘 7:8-11에서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자기들은 구원받았다 이야기 하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무익한 거짓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14).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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