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4)

근대 과학의 등장

인류 역사 속에 파편적인 과학적 사고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근대과학은 16세기에 본격적으로 서양에서 그 출발을 알렸다. 16세기 유럽은 걸출한 인물과 학자들이 배출된 시대였다.

대륙에서는 먼저 15C 태어나 16C 주로 활약한 종교 쪽의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마르틴 루터(1483-1546) 그리고 16C 태어나 활동한 요한 칼빈(1509-1564)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태어났고 독일에서는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 16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활발히 활동한 합리주의(rationalism)자 데카르트(1596-1650)가 태어났다. 영국에서는 진정한 근대과학의 원조인 경험주의자(empiricism)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등장했다. 이렇게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대표하는 걸출한 두 인물이 16세기 후반 유럽에서 태어났다. 


과학혁명의 시조 베이컨

​베이컨은 영국의 철학자, 과학자로 과학혁명의 시조라 불린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했듯이 그는 경험주의자로서 학문에 대한 굉장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좀 더 극찬한다면 데카르트는 유럽 대륙(합리론)을, 베이컨은 영국(경험론)을 대표하는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과학 방법의 길을 연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의 국새관이자 대법관인 니콜라스 베이컨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공부했다. 프랑스 유학을 거쳐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밑에서 국회의원, 제임스 1세 시절에 사법장관과 아버지와 같은 국새관(Lord Privy Seal)을 지낼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는 뇌물 수뢰 혐의로 부침을 겪기도 한다.
 

베이컨의 경험론

본래 경험론은 앎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Theory of knowledge)의 문제로 고대의 경험론은 존재론적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통상적 경험론은 근대 이후의 인식론 차원의 경험론을 말한다. 근대 과학은 귀납을 통해 이론적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고 이후 사회과학에도 적용되는 철학이다. 한때 국내에서는 귀납적 성경 해석이 큰 유행을 탔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귀납적 경험론은 논리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장점도 가진 방법론이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 『오르가눔』(Organum)을 대신하고자 “학문 대혁신”을 위한 전 6부작을 계획하였으나 실현된 것은 3부였다. 제 1부 『학문의 진보(1605)』를 거쳐 1620년 역작인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신기관’)을 집필해 귀납법을 제시하여 경험론(empiricism) 철학의 효시가 되었다. 즉 베이컨은 이 책에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경험뿐이라는 인식론을 전개한다. 베이컨은 과거의 궤변과 오류는 네 종류의 우상 탓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이 책의 1부에서 인간이 버리고 고쳐야할 우상(Idol)을 제시하고 2부에서는 우상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귀납을 제시했다.


베이컨이 말한 4개의 우상

베이컨은 인간이 이성적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4개의 우상(idola)이 있으니 바로 종족(種族)의 우상, 동굴(洞窟)의 우상, 시장(市場)의 우상, 극장(劇場)의 우상이라 했다. 앞의 둘은 개인의 내적 문제와, 뒤의 두 개는 사회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

특별히 온갖 편견과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오히려 "사이비들"이 일부 여론을 주도하는 수준 이하의 우리 사회 풍경을 보면 베이컨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종족의 우상(The idols of the tribe)은 온 인류 종족이 자연 현상들이 마치 거짓된 거울에 비추어진 양 공통적으로 어떤 것을 한번 믿으면 그와 일치하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사실은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이 같은 믿음에는 인간 개인이 가진 생물학적 특징이나 사회적 정서 및 편견들이 포함된다. 베이컨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거나 또한 자연을 의인화하여 본다거나 혹은 인간 자신이 목적적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자연에서도 목적을 찾는 것이 모두 종족의 우상이다.

동굴의 우상(The idols of the cave)은 인간 개개인은 어두운 동굴(개인의 동굴)에 갇힌 것처럼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기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성향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향들은 사람들이 어떤 지식을 받아들일 때 편견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걸러 듣게 만든다. 이는 빛(진리)을 차단하는 동굴과도 같아 동굴의 우상이라 한다.

시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marketplace)은 시장처럼 조심성 없는 언어들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부적당한 의사소통으로 운명이나 실체 등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붙인 단어일 뿐이므로 쓸데없는 논쟁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서로 교역하며 관련을 짓는 시장에서 사물들에게 적합지 못한 단어나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모양이라 시장의 우상이라 부른다.

극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theater)은 무대 위의 마술·허구에 미혹되듯이 자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기존 학문의 권위만 따라서 생겨나는 편견을 말한다. 역사적 전통에 충성하다보니 관련 없는 내용에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걸 운운하는 철학들이 이에 속한다. 베이컨이 살던 시절은 극장은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극장의 우상이라 부른다.


베이컨의 귀납법

베이컨은 이런 우상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귀납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사실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즉 이를 위해 첫째 발견 목록을 작성하는 단계가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 하면 실험과 관찰로 그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목록에 쓴다. 둘째 작성한 목록을 바탕으로 제거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세 번째 단계는 목록의 내용을 토대로 가설을 작성하는 일이다. 가설을 작성하는 것은 실험과 관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네 번째 단계는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반복하여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오류가 나타난다면 그 가설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베이컨은 자신의 저술에 정리한 귀납법이 올바른 과학적 방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식의 유용성과 실천적인 적용에 지나치리만큼 집착한 탓에 실제 과학 법칙이 발견되는 과정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또한 베이컨의 결정적 약점은 과학적 방법을 추구하면서도 베이컨 스스로 수학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수학에 탁월한 합리주의자 데카르트가 등장하기까지 경험론은 일정한 한계를 가진 방법론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는 논리학에서 귀납법의 위상을 확고히 했으며,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베이컨의 저작은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다방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 1623)에서 새로운 아틀란티스(호주 대륙의 남쪽 바다에 위치)에서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귀납적인 방법)으로 생산 증가를 꾀하고 플라톤의 정치 이념을 실행하려는 가상의 공동체를 묘사한다. 또 문명은 과학을 통해 진보하므로 학문을 연구하는 자연 과학 단체(대학)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 구상은 훗날 영국 왕립학회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로 실현되었고 이는 과학 혁명의 요람이 되었다. 즉 16세기에 이미 베이컨은 오늘날의 자연과학대학 설립 구상의 선구자가 된 셈이다.
 

창세기 “창조” 계시와 근대 과학의 조우

이렇게 근대 과학이 시작되면서 성경 해석은 또 다른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과연 수천 년 동안 자연과학적인 방법론 없이 해석되어 왔던 창세기 “창조” 계시가 과연 베이컨과 데카르트 이후 과학의 귀납법과 합리론을 가지고 창세기 “창조” 계시를 과학의 눈으로 수정하여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에 무지했던 베이컨 이전 성경 해석은 인류의 오점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인가? 초월을 내재의 학문인 과학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도대체 자연과학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창조” 해석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노정(露呈) 되었다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근대 과학이 점점 더 고도화 되면서 “창조”는 먼저 물리학과 천문학의 우주생성론과 우주기원론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일명 “코페르니쿠스적 우회” 사건은 바로 천체를 보는 시각에 있어 로마 교황청과 자연과학이 균열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또한 윌리엄 스미스나 제임스 허튼 등을 통해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지질학은 격변과 동일과정설이라는 지질학 용어를 통해 지구의 지층과 층서에 대해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창세기 창조 사건과 대홍수에 대해서도 과학적 언급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생물학과 화학은 인간과 생물의 존재와 분류가 창세기 1장의 “종류대로”의 동식물 창조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의 특별한 창조에 대한 설명에 과학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과학적 제사장이나 과학 선지자적인 우월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신학을 평가 절하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신학과 과학의 조우

그 유용성을 여부를 떠나 이렇게 필연적으로 신학의 해석이 자연 과학의 해석 방식과 조우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역사적 조우는 성경 창세기 해석의 다양성을 가져온 반면 새로운 혼돈을 야기 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접근 방식이 다른 신학과 자연 과학이라는 두 학문이 “창조”라는 초월 계시 사건의 해석을 가지고 만날 때 서로 다양한 융합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갈등, 독립, 대화, 통합, 대조, 접촉, 확증, 공명, 서로 보완, 공생 등 관련 학자들조차 일치되지 않는 다양한 조합을 제안하였다.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상응 관계에 대해 가장 먼저 눈 뜬 사람들은 초기 과학사회학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띠는 학자는 청교도주의와 17세기 영국 과학 부흥기의 직접적 상응관계를 감지했던 로버트 멀톤(Robert Merton)이다. 그는 청교도적인 성향이 지적으로 과학적 탐구와 추구에 적응성이 더 있었다고 논증한다. 호이카스(Hooykass)는 신앙과 자연 과학의 관계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한 학자였다. 자연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복지, 만인 제사장주의와  같은 주제들은 청교도적인 사유 속에 깊이 연관되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철저히 실증적인 과학이 교회의 위계 구조나 “왕권신수설”과 같은 것에 대해 자신들이 표현하는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의 한 표현일 뿐이라고 여겼다고 호이카스는 논의한다. 그들에게는 과학은 경험에 근거한 것이지, 고대인들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호이카스는 청교도 지질학자였던 나다나엘 카펜터(Nathanael Carpenter)의 과학적 저작들에 편만해 있는 철학적 자유의 정신을 온 분야에 대한 청교도들의 탐험 전체의 상징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협조” 모델의 지지자들은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철학에서는 마이클 포스터(Michael Foster)가 “기독교 창조론과 현대 자연 과학의 부흥”이라는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일찍이 이 입장을 옹호했고, 신학자로서는 토렌스(T. F. Torrance)가, 특히 우연적 피조계(a cotingent creation)에 대한 종교개혁의 재발견이 중세사상을 대치한 것을 강조하면서 이 입장을 지지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은 왕정 복고 이후의 영국에서 과학적 진보와 비국교파들(religious dissent)의 밀접한 연관을 발견해 내었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과학의 태동기에 희랍 사유형과 성경적 사유형의 독특한 종합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최근에는 협조 모델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IVP 신학 사전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독립(independence), 갈등(conflict), 상호 보완(complementarity), 공생(symbiosis)의 모델로 분류한다. 포스트모던 신학자인 테드 피터스는 과학과 종교가 어떤 영향과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해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연구하고 있다. 테드 피터스는 과학과 신학이 관계하는 여덟 가지 입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의 대안적 견해를 다루는 어휘를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하고자 하였다. 여기서도 핵심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탐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주의(scientism), 과학제국주의(scientific imperialism), 교회권위주의(ecclesiastical authoritarianism),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두 언어 모델(two-language theory), 가설적 조화(hypothetical consonance), 윤리적 중첩(ethical overlap), 뉴 에이지 영성(New Age spirituality) 등 8 가지 입장을 논증하기도 했다.

 그레거슨(Niels Henrik Gregersen)은 자신이 편집한 책에서 다원주의 세상에서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를 위한 6가지 모델을 제안한다. 이 6 가지 모델을 각 전문가가 논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안 바버(Ian Barbour)는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에서 갈등(conflict), 독립(independence), 대화(dialogue), 통합(integration) 이렇게 4 가지 이론으로 분류한다. 뎀스키는 과학과 신학의 작용에 대해 상호 무관, 다른 관점, 서로 갈등, 서로 긍정으로 나누고 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과 과학 분야의 방문교수를 지낸 칼슨(Richard F. Carlson)은 자신이 편집한 책에서 서로 다른 4 그룹의 학자들을 등장시켜 과학과 신학의 문제가 단 하나의 기독교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 4 그룹을 살펴보면 창조론(creationism)적 입장에 생물학계 원로인 웨인 프레어(Wayne Frair)와 화학 물리·고분자학을 전공한 게리 패터슨(Gary D. Patterson), 독립(independence) 이론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 폰드(Jean Louise Bertelson Pond), 조건적 일치(qualified agreement)에 1990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지적설계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 이론화 과정에 있는 파트너로서의 과학과 기독교 신학 사이의 파트너십(partnership) 관점에는 칼빈 대학의 물리학 및 천문학 명예 교수로 있는 하워드 반틸(Howard J. Van Till) 등이 있다.

이렇게 과학이 성경과 “창조” 해석에 뛰어들 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초월과 내재 사이를 오고가며 해석에 있어 복잡성만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 과학은 기독교(창세기)와 대면하면서 어떤 충돌을 유발하였을까? 분명 딜레마였다.<계속>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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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