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3)

 

초기 성경들 해석은 기독교의 전유물인가?

성경 고고학자들은 유대교,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조지아 정교,  콥트교, 프로테스탄트, 이슬람 등 다양한 신앙적 배경을 가진다. 따라서 이들 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 고고학적 발견 그리고 토라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다양한 역본들 사이에서 서로 간에 해석의 단절 현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창세기 1장의 경우 바로 필자가 지적한 인류 타락에 따른 "우주적 붕괴와 에덴동산 추방", 지구적 대격변을 초래한 "창세기 대홍수사건"과 홍수 이후 "바벨탑 인류 언어 혼잡"이라는 3 가지 결정적 사건 이외에도 창세기 1장 계시가 지니는 창조라는 초월적 대 사건에 대해 비교적 단순하고 용이한 서술 방식이 창세기 1장 해석의 모호성을 가지게 만든다.

​창세기 1장을 포함한 11장까지를 서론에서 “원역사”라 불려 진다고 했으나 창세기를 포함하여 오경 전체 역사가 하나님의 구속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의 처음 11장의 역사를 원역사보다는 태고사(太古史)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는 신학의 주장도 있다. 개신교 신학의 주된 입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토라가 개신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MIT 박사 출신의 물리학 교수요 이스라엘의 핵심 학교들인 와이즈만 연구소, 히브리대학, 볼카니 연구소에서 연구했으며 랍비 교육까지 필한 제럴드 슈뢰더(Gerald L. Schroeder)의 해석학적 제언에서 잘 드러난다.

슈뢰더의 명성은 1923년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옥스퍼드를 나와 킬 대학(20년), 옥스퍼드, 에버딘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와 여러 직책을 맡으며 50년 동안 무신론 철학자로 악명(?)을 떨치던 안토니 플루(Antony Flew) 교수가 슈뢰더의 『The Hidden Face of God』(번역 명 “신의 숨겨진 얼굴”)을 읽고 회심하였다는 고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본 필자도 이 말에 일부 동의한다. 생화학을 공부한 필자는 물리학자인 슈뢰더가 생화학에도 능한 학자라는 데 놀랐다.  

슈뢰더는 중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의 글을 인용하면서 "과학과 성경 사이의 갈등은 과학적 지식의 결핍과 성경에 대한 완전치 못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The Science of God, New York: Free Press, 1997, 3). 이것이 지속적인 불협화음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원본이 없는 상황에서 각각 다른 성경들(히브리어 다양한 사본들, 아람어 탈굼, 불가타역, 칠십인역 성경, KJV, 각 나라 역본 등)을 가지고 창세기 1장 1절의 해석부터 어긋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런 관점에서 슈뢰더는 우리 기독교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라고 번역한 것 자체가 진정한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슈뢰더는 기독교의 중요한 세 가지 번역(헬라어, 라틴, 영어) 성경에서 찾는다. 먼저 4세기경의 제롬의 라틴 불가타 성경(Latin Vulgate)과 오경을 제외하면 주로 주전 2-3 세기에 번역된 것으로 알려진 헬라어 70인 역(Septuagint) 그리고 70인 역을 기본으로 1611년 간행된 킹 제임스 흠정역(KJV)이라고 지적한다. 히브리어를 제외하면 오늘날 기독교가 중요시하는 핵심적인 헬라어, 라틴어, 영어 역본 모두를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슈뢰더는 “태초에”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베레쉬트(Bereshit)”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태초에”라는 의미가 아니고 ‘---의 시작에’라고 했다. 그리고 ‘---의’ 목적어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슈뢰더는 창세기를 아람어로 번역한 2100년 전 아람어 역본은 “베레쉬트”를 복합단어로 보고 접두사 “베”는 “더불어(with)”, "레쉬트"는 “최초의 지혜”(first wisdom)로 풀이하였다. 즉 창세기 1장의 첫 단어 “태초에”는 아람어 역으로 보면 ‘최초의 지혜와 더불어’이다. 즉 정통 기독교의 “태초” 해석과 첫 단추부터 전혀 달라진다. 그렇다면 아람어의 창세기 1장 번역은 “지혜와 더불어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셨다”가 된다.

​이 “지혜”를 바탕으로 슈뢰더는 디지털 세상이 온통 정보 속에 있듯이 물리학자답게 모든 미세 입자들은 단순한 미세 입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태초부터 “지혜와 더불어” 시작되었음을 바탕으로 창조주 하나님(여호와)의 정보가 담긴 입자(존재)라는 논리로 귀결한다.

​그러면서 슈뢰더는 과학자로서 이것이 최근의 입자물리학자들의 동향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우주가 일종의 “메트릭스”나 “시뮬레이션”이나 “컴퓨터 코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토의는 이미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으면서 옥스퍼드대 철학과 닉 보스트롬이 2003년 <Philosophical Quarterly>에 그 가능성을 주장한 이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을 지낸 메릴랜드 대학의 이론물리학자 제임스 게이츠(S. James Gates, JR)가 우주에는 에러를 스스로 고치는 코드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펴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우주는 슈퍼컴퓨터 상의 게임 캐릭터일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논란이 확장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렇게 볼 때 첫 단어부터 히브리어와 아람어와 또 다른 역본들(헬라어, 라틴어, 영역본 등)의 해석 자체가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점은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다. 영어 성경을 히브리성경을 참고하여 우리말로 직역해도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가 되어 일반 신자들을 당황케 만들 것이다. "천지"가 아니라 "하늘들과 땅"이라고? 왜냐하면 우리 정서와 우리말 어법에는 "하늘들"이라는 개념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130-200)와 어거스틴(354-430)과 세 가지 중심 되는 개혁파 신앙고백서(Reformed Confession of Faith)인 벨직·하이델베르크·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모두 무로부터의 창조를 믿을 뿐 아니라 심지어 현대 신학자 칼 바르트도 그의 『사도신경 해설』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롬 4:17)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토라를 신봉하는 일부 유대인들의 창세기 1장 1절 해석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 딜레마인 것이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