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독일고백교회, 헝가리개혁교회, 중국가정교회

독일교회―독일기독교연맹이 나치의 민족주의 정치이데올로기에 아부하고 있을 무렵, 이에 항거하는 교회들이 부페탈에 모여 ‘바르멘신학선언’(1934)을 채택하고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구성했다. 독일고백교회라는 새로운 교회조직을 출범시켰다. 

기존의 독일교회가 비기독교적인 것들과 타협하고 민족적인 것을 ‘신앙’하자 일부 교회들이 그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서 분리하여 새로운 교단을 조직했다. 한국의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독일고백교회운동을 영웅적인 행위로 칭송하면서 지도자들을 “신앙적 용사,” “영웅적 전사”26라고 극찬한다. 독일고백교회를 노바투스파나 도나투스파 또는 분리주의 교회관과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 출범을 완전주의 교회관의 결과로 보는 사람도 없다.

독일기독교연맹이 민족이데올로기라고 하는 ‘우상숭배적인 것’을 추종할 때,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우상숭배를 했다. 이교신을 예배했다. 독일기독교연맹에 견주어 볼 때 한국교회의 우상숭배와 배교의 정도는 훨씬 더 심각했다.

헝가리 개혁교회가 무신론적 공산주의 정권과 야합하면서 정치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을 무렵, 헝가리 지하교회는 그것에 항거하여 독자적인 교회를 구성했다. 이 교회는 공산통치가 끝난 뒤에도 독자적인 교회로 존재하고 있다. 이 교회를 분리주의와 동일시하거나 그들이 3세기와 그 이후의 분리주의자들, 노바투스주의나 도나투스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현재 약 6천만 명 또는 1억 명 이상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정부의 종교 정책과 삼자교회(三自敎會)라고 일컫는 국가공인 교회를 반대하고 지역마다 독자적인 교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교회는 통상적인 교회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없다. 총회도 연회도 노회도 당회도 없다. 동공회의(同公會議)라고 하는 지도자 모임이 교회를 지도한다. 오순절적인 성령의 역사와 정통신앙과 왕성한 선교의 열기가 있다.
 

 

20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스스로 우상숭배를 결정하고 그것을 강요한 경우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 교회가 공적으로 우상숭배를 결의한 바 없다. 우상숭배인식운동, 우상숭배 권유 운동을 펼치고, 배교하도록 권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축출한 전례는 없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제명하고 면직시키거나 스스로 교회를 해체하고, 이교와 혼합하여 폐합된 바 없다.

칼빈의 교회관에 따르면 이교예배, 이교교리, 이교의식을 가진 배교하는 교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이다. 독일 고백교회, 헝가리 지하교회, 중국 가정교회, 한국의 신사참배 거부운동 교회는 모두 승리하는 교회이며, 영광스런 교회이다. 한상동, 이기선, 채정민이 주도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신사불참배노회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정당하고도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그 지도자들을 3세기와 그 이후의 분리주의 집단과 동일시하거나, 그들이 완전주의 교회관을 가지고 교회를 분리하려고 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종교개혁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자리를 뒤바꾸어 평가하는 것과 같다. 한상동이 주도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루터와 칼빈이 주도한 16세기 교회개혁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이글의 원본이 최덕성 교수님의 '리포르만다'(크릭)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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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는 고신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D),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고,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였고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였으며,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의 총장이다. ‘신학자대상작’으로 선정된「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을 비롯한 약 20여권의 귀중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하였다. 신학-복음전문방송 <빵티비>(BREADTV)의 대표이며, 온라인 신학저널 <리포르만다>(REFORMANDA)를 운영하며 한국 교회에 개혁신학을 공급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