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은 사실 현대 과학의 복잡한 우주 기원론이나 생명기원론 등 고차원의 과학과 기술의 언어가 동원된 계시가 아니다. 평이한 단어들로 서술된 총 31절에 불과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계시이다. 그런데 단순 용이하게 묘사된 창세기 1장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부딪히는 딜레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온갖 창조론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엄청난 신학적 이론이 난무하게 되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파생된 기독교 외의 로마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까지 포함하면, 창조 계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이 ‘딜레마’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다. 그 딜레마는 어디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그 근원적 요소들부터 살펴보자.

히브리 성경 이전의 계시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성경 창세기 1장 계시 이전에 어떤 문제는 없는가?)
 

1. 최초의 언어는?

언어는 어디서 왔을까? 성경은 에덴동산에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된 언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성경 토라의 언어(히브리어) 이전에도 문자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다. 인류가 지금까지 확인한 가장 오래된 문자와 언어로는 히브리어 이전 수메르의 설형문자(쐐기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있었다.

이 가운데 세계 최초의 문자 발명 증거가 노출된 곳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수메르 도시 우륵(현재의 Warka; 성경에서는 Erech, 창 10:10)이었다. 궁정의 방백들과 사제, 상인(술 빚는 사람, 빵 굽는 사람, 대장장이 등)을 제외하면 주민들 대부분 목자(牧者)와 농부들이었다. 우륵에서 출토된 진흙 판에 새겨진 최초 문자는 신전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 곡식의 포대 수와 가축의 수를 적어놓았다.

곡선을 즐겨 사용하던 이들 원시 그림문자는 주전 2900년경 곡선을 진흙에 새겨 넣는 어려움에 따라 한쪽 끝이 뾰족한 갈대를 사용하면서 쐐기꼴의 문자로 바뀐다. 이 특징으로 인해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라고 불리는 바로 그 문자다. 이 말은 '쐐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cuneus‘에서 왔다. 이 설형 문자는 수메르 고어(古語)에서 시작하여 주변의 고대 아카드, 바벨론, 앗수르, 신바벨론 문자로 연결된다. 지역과 국가는 달라도 이들 설형 문자는 문자적 유사성을 지니기에 식별이 용이하고 동일한 기원을 가진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 학문적 성과가 곧바로 최초의 언어를 찾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들이 수고하고 추적해 발견해 낸 현재의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2.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어는?

그런데 노아와 그 가족이 쓰던 언어와 글의 원형이 무엇이고, 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는 증거는 성경을 포함하여 오늘날 전혀 추적이 가능하지 않다. 바벨탑 언어 혼잡 사건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모세 이전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요 이스마엘 후손들의 조상도 되는 아브라함이 히브리어를 창시하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은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창세기 대홍수 이후 바벨론에서 언어가 혼잡 된 이래, 진정한 언어적 세계 통일은 쉽지 않게 되었다(창 11:9).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온 땅의 인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분명 히브리어가 아닌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통용되던 언어에 능숙했을 것이다. 그곳은 바로 ‘쐐기문자(cunéiform)’가 통용되던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주전 3,000-4,000년 사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계곡에 도시들을 구축하면서 이 문자를 창안했다고 알려진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에게는 독립된 언어나 성경적 바른 믿음이 없었다(수 24:2). 즉 그들은 그곳의 문화와 우상에 젖어, 바로 이 최초 문자의 영역 속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학생들이 기억해야 하는 문자는 600여개였고, 단어와 음절, 한정사를 모두 포함하면 166-188개의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모세 이전 창조 계시가 없었다고 볼 수 없기에, 알파벳 이전 이 쐐기문자의 한계와 우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은 창조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손 모세와 그 백성들이 400여 년간 하층 생활을 영위하던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익혀야 하는 상형문자가 100여개밖에 되지 않을 만큼, 어휘가 풍부하지 못한 문자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언어의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는 분명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보다 풍부한 어휘를 가진 문자가 전혀 아니었다. 즉 언어의 엔트로피는 오히려 아브라함 후손들 속에서 증가했다.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아브라함 후손들이 처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점점 더 그 명료함을 상실해 갔을 것이다.


3. 창조 계시 보존의 험난한 과정

이렇게 아브라함 이후 야곱의 후손들은 그들 선조들의 본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보다 언어적으로 더 낙후된 환경 속에서 종교와 문화적 향유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환경에서 이방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계시를 보존해왔다고 보아야 한다.

즉 창조 계시는 ‘아담과 하와의 언어→ 노아 언어→ 홍수 이후 바벨탑 혼잡 언어 속 보존→ 인류 최초 등장한 비(非)알파벳 문자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의 쐐기문자(일명 설형문자) 아래 다른 신들(우상들, 수 24:2)을 섬기던 아브라함 조상(아버지 데라 등) 속의 계시 보존(?)→ 하나님의 친구가 된 아브라함(대하 20:7)의 언어 환경(수메르어?) 속 보존(?)→ 야곱 후손들의 이집트 상형 문자와 언어 속 보존(?)→ 출애굽한 모세 집단의 언어(히브리어의 잉태 시기?) 속 보존→ 알파벳 셈족어에서 파생된 초기 히브리 언어 등장(토라 생성 시기)→ 현대 히브리어에 보존→ 성경 원본 상실→ 다양한 사본(寫本) 속 보존→ 다양한 역본(譯本)들 속의 보존’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단순 명료한 창조 계시(창세기 1-11장)가 실은 지난(至難)한 과정을 겪어온 셈이다.
 

4. 첫 알파벳의 등장

설형 문자와 상형 문자를 거쳐, 역사적으로 흔적이 나타나는 확실한 첫 번째 알파벳은 주전 14세기 나타난 우가리트 알파벳이었다. 현재 시리아에서 발굴된 이 가나안 셈어군은 문자 모양은 쐐기형이었으나 모양만 닮았을 뿐 모음과 자음의 음가를 가진 알파벳 글자의 원형(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가리트 알파벳이 수메르-아카디아 철자들에서 파생되어 출현한 알파벳인 반면, 비슷한 시기 이집트 상형 문자로부터 비롯된 알파벳이 시나이 반도에 나타났다.

이집트 사람들은 한 문자가 한 단일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글자가 한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알파벳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귀족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알파벳 체계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한글을 창안한 이후에도 여전히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복잡한 한문을 선호하던 것과 유사하다.

반면 원(原)시나이어(원셈어) 알파벳으로 불리는 이 알파벳이 바로 가나안, 페니키아, 아람, 그리스 문자들과 고대 히브리어로 발전된 원시 문자였으니, 이 알파벳에서 라틴어와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현재 유럽의 알파벳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셈어의 원형은 시나이반도에서 파생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애굽의 상형문자와 수메르의 설형문자는 시나이반도와 팔레스틴 지방에서 극적인 융합이 일어나면서 오늘날 유럽의 알파벳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언어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그 복잡한 계보는 언어학자들도 파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탁월한 언어학자가 나와 좀 더 뚜렷한 계보를 제공할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5. 히브리 알파벳의 원형을 가진 창세기와 토라의 탄생

이렇게 문자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면, 알파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자를 융합하면서 시나이 반도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 모세(애굽 탈출 시대)와 다윗 시대(가나안 입성 시대) 사이에 히브리인들은 자신들만의 히브리어를 구축해 가면서 원셈어와 여기서 파생된 다른 셈어 문자들의 단어에 담긴 우상 문화 코드들을 구분·정리하고, 히브리 민족에게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기술할 필요가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여기서 비로소 오늘날 아담의 언어가 아닌 인류가 접하는 히브리어로 된 창세기 1장과 토라의 원본이 탄생했다. 물론 그것도 원본은 분실되었다. 성경 사본의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것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원시 히브리어 속 보존된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를 만든다.

다시 말하면 딜레마의 원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언어를 포함한 모든 인류 역사와 문화의 엔트로피는 증가하였다. 즉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 것은 죄악에 물든 우리 인간의 문제였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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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