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02:05 (일)
길게 기도해야 깊은 기도를 경험한다는 사상은 이방 종교인들의 믿음
상태바
길게 기도해야 깊은 기도를 경험한다는 사상은 이방 종교인들의 믿음
  • 정이철
  • 승인 2020.12.01 0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질문>
목사님! 어떤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다음의 설교 내용에 대하여 목사님의 견해를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로 기도가 기도되어지고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딱 기도를 끌고 들어가면, 보통 2시간 이상씩 해야 되요. 제가 기도할 때 2시간 이상씩 기도 들어가면 성령께서 딱 붙잡아 가지고 끌고 들어가는데, 성령께서 끌고 들어가면 내가 생각했던 기도는 다 사라져 버려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끌고 들어갑니다. 성령께서, 그러면 그때 되어지는 기도는 뭐냐? 내가 생각하는 기도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시는 그 기도하고 있어요. 해보시면 안다니까요. 2시간 이상만 딱 제대로 딱 기도 들어가 보세요.

한번이라도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단 한번만이라도 그런 기회를 ... 한번 가져봤으면 딱 좋겠어요. 그러면 지금 제가 말하는 이 내용이 ‘아! 이런 거였구나!’하는 것을 대번에 알아요. 그러면서 얼마나 저차원적 기도, 허공에 뜬 기도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지 ... 대부분의 신앙인이 그러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기도 생활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신앙인들 8-90%가 다 그래요.”(어떤 한국 목사님의 설교, 2018. 7. 16)

 

답변>
저의 말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도 기도에 관해 마치 자로 재듯이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비한 영역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기도에는 신비한 영역이 있다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성경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친히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또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고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십자가)으로 죄용서 받은 성도 안으로 임재하신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기도에도, 찬양에도, 회개에도, 전도에도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수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는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기도의 신비가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기도의 신비주의’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기도의 신비한 부분에 대한 인정은 건전하고 성경적인 신앙에 해당하지만, 기도의 신비주의는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위 내용에서 기도의 신비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기도의 신비주의’에 해당되는 내용이 더 많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말이 100%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참작하시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끌고 들어가면 내가 생각했던 기도는 다 사라져 버려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끌고 들어갑니다. 성령께서, 그러면 그때 되어지는 기도는 뭐냐? 내가 생각하는 기도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내가 처음에 하려고 했던 기도의 내용은 사라지고 처음에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을 기도하게 된다는 것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기도에 관한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어떤 교회를 소개해 주는 어떤 분의 권유를 받고, 그 교회에 이력서를 보내기 전에 기도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도우시지 않으므로 그 일에 대한 기도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억지로 기도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내용의 기도를 하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 원래 간구하려고 했던 기도의 내용이 사라지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주관적 영역이므로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 재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가능성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고심하면서 하려고 했던 기도의 내용이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돕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그런 내용의 기도를 계속 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다른 어떠한 곳에서 사용하시고자 계획하고 계시는데, 갑자기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일을 위해 관심을 두고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므로, 저의 기도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단들에게서 일어나는 거짓 하나님의 특별계시(직통계시)가 아닙니다. 특별계시(직통계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예언의 은사,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 환상, 꿈, 들리는 음성 등으로 직접 우리에게 말하는 현상인데,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경 66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언의 은사,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 환상, 꿈, 들리는 음성 등은 성경 66권의 특별계시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특별한 일들이었습니다.

처음에 기도하려고 생각했던 내용이 기도하는 가운데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다른 내용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계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생각하지 않았던 기도의 내용이 나오게 된다는 위 목사님의 설교는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신비’에 속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도의 신비주의’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기도의 신비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나, 기도의 신비주의는 성령을 모조하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기도의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람의 어떤 유형의 조건, 공로, 노력, 자질이 그 사람의 기도에 합하여져서 특별하고 신비한 결과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긴 시간을 기도해야 한다.”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몇 장씩 읽으면서 기도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밤 12시에 기도해야 한다.”
“목욕하고 기도해야 한다.”
“철야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그 사람의 기도와 함께 연합됨으로 신비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신비주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하도록 허락하여 주신 것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서는 순간 즉사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과 감사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더해지면 이방종교과 같아집니다. 

믿음과 감사만이 기도의 조건이라는 것은 우리의 그 어떤 것도 기도의 효력이 나타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지런지 기도해도 하나님이 외면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소원을 위해 기도로 아무리 용을 써도 하나님의 주권(절대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고유한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늘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가 참된 신앙의 최고의 봉우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아무리 기도하고, 하나님께 몸부림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소원했을찌라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기도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것이 그 사람의 기도와 함께 묶이면 신비한 일을 주장한다면, 그것을 기도를 빙자한 사이비 종교로 변질되게 됩니다.

“긴 시간을 기도해야 한다.”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몇 장씩 읽으면서 기도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밤 12시에 기도해야 한다.”
“목욕하고 기도해야 한다.”
“철야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강조되는 기도 생활과 함께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은 성경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비주의란 단지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비한 일이 벌어지기는 한데, 그것의 성경적인 정당성 또는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비주의라는 용어는 사실상 성령으로 모조하는 악령(마귀)의 역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딱 기도를 끌고 들어가면, 보통 2시간 이상씩 해야 되요.”
“2시간 이상씩 기도 들어가면 성령께서 딱 붙잡아 가지고 끌고 들어가는데”
“2시간 이상만 딱 제대로 딱 기도 들어가 보세요.”
“얼마나 저차원적 기도, 허공에 뜬 기도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지”
“신앙인들 8-90%가 다 그래요.”

기도를 시작할 때 하려고 마음먹었던 기도의 내용이 사라지고 다른 기도를 하게 되고, 깊은 찬양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교 내용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위 목사님은 이와 같이 긴 시간을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끌고 들어가는 기도를 경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끌고 들어가서 2시간 정도의 깊은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은 성령의 성품을 왜곡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무속인들에게 임하는 신내림 같은 것에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방언기도입니다. 성령이 방언(타문화권의 언어)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는 은사는 성경에 있으나, 성령의 역사로 뜻도 없는 방언기도를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오래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 목사님처럼, 2시간 정도 오래 기도해야 성령이 역사하는 깊은 경지의 기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은 대부분 방언기도로 연결되거나, 방언기도 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조용기 목사 등 잘못된 것을 가르친 사람들로 인해 한국 교회에 기도에 관한 이러한 미혹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기독교의 기도와 이방 종교인들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인격과 최고의 경배의 표시이고, 또한 최고의 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목사님 같이, 일단 길게 해야 깊은 기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 앞에서 일단 오래 중얼거리고 시부렁거리면서 시간을 끌어야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린다는 괴상한 주장과 같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 2:$)

페르시아 황제가 폐허가 된 조국의 부흥을 소원하면서 기도하는 느헤미야에게 “왜 네 얼굴이 그리 어두우냐?”라고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기도했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소리 내지 않고 마음으로 짧은 순간 기도하였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 순간의 짧은 기도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8)

성경은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언제나 기도하라고 합니다. ‘무시로’라는 말은 하루 두 시간씩 또는 그 이상으로 길게, 새벽이나 특정한 시간에, 밤새도록 철야하면서, 금식하면서 ... 라는 단서가 요구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상식적인 인격과 세련된 지성의 기반 위에서 믿음과 감사로 늘 기도하기를 힘쓰고 중시하라는 뜻입니다. 기도에 사람의 인위적인 노력, 공로, 정성이 추가되어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주로 이단들이 강조하는 신비주의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어떤 응답이 올지라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