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503주년, 프로테스탄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인가?(2))

이런 거친 글을 쓰노라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핀잔할 것이다. 

“너무 나갔다”
“음모”
”무식한 확증편향증”
“이단”
“바티칸은 한번도 종교다원주의로 넘어간 적이 없는데...”
“사실 왜곡”

차라리 이런 빈정거림이 사실이었으면 좋겠지만, 소리 없는 영적전선(靈的戰線,엡 6)을 탐구하는 것은 복음 전도자에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지혜가 아닌가? 에덴 동산에서 거짓의 영 사탄은 이브에게 대화를 자청하였다. 대화가 아니라 진실을 가장한 선동 전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화의 상대가 아닌 거짓영의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다. 보통 기독교 통계에서 신.구교를 몽땅 싸잡아 얘기하는데, 이런 통계 수치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는 분별력이 없다. 로만 카톨릭 교인들과 교황과 신부들에게는 불교인이나 무슬림, 힌두교인 등과 똑 같은 이방 종교인으로 전도의 대상자들임을 기억해야한다.

앞의 글에서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과와 성경적 일치와 연합이 어떻게 다른 지 살펴보았다. 햇볕정책 같은 신구교 통합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왔으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III. 신구교 통합전략 어디까지 왔나?

A. 통합운동을 통한 기독교(개신교) 흡수전략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59.1.25)에서 “전 세계가 희망하는 은총과 형제애의 잔치에 갈라진 형제들을 새로이 초대한다” 라고 밝혔다. 그후 로마 카톨릭 교회 교황청 산하에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Pontificium Consilium ad Unitatem Christianorum Fovendam)라는 부서와 사무국을 신설하였고, 세부적으로 동방교회나 개신교 초교파주의 부서를 다룰 뿐만아니라, WCC, WEA같은 전위부대 역시 여기에서 다룬다.

이 사무국의 주도로 작성된 일치운동교령인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1964.11.21.) 운동이 반포됨으로써 로만카톨릭이 교회일치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길잡이를 하게 되었다. 이 일치교령은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진 형제들의 신앙생활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가 세우신 유일한 교회가 로만 가톨릭교회라는 사실을 재차 천명한다.

이 일치운동 교령의 3대 전략은 다음과 같다(신정훈신부, 가톨릭대)

1>
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치를 증진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지칭한다. 일치교령은 개별교회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고유성이 보편교회에 선익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이 원칙이 과거에 준수되지 않았음을 주지시키며 개별교회의 다양성이 일치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고 천명한다. 이로써 동방교회를 비롯한 개별 신앙 공동체의 고유한 교회생활이 가톨릭교회의 신학 안에 수용되고 신학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표현 방식 역시 상호보완적으로 계시의 이해를 돕는다고 일치 헌장은 가르친다.

2>
진리의 위계 -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신앙의 진리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진리가 같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중요한 교리에 있어서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갈라진 형제들이 믿는 바와 대부분 일치하고 오히려 교회의 삶과 관련되는 부분에서 차이가 많다. 후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전자가 일치한다는 것은 교회 일치운동에 밝은 전망을 준다. 전자를 바탕으로 후자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
동등성 - 일치교령은 가톨릭교회가 권위적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데서 그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사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만날 때 풍성한 결실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가톨릭교회는 교회 일치운동을 계시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상호 학습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면서 중세 종교재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십자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남미에서 컬럼버스일행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가? 1641년 아일랜드의 카톨릭들은 10월 23일(예수회,로욜라의 축일)을 살인의 날로 정해 하루에 15만 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였다고 한다. 세계 제2차대전의 백그라운드에 로만카톨릭 예수회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잔인무도한 집단이 종교개혁의 프로테스탄트를 뒤짚기 위해 신구교 일치 운동이라는 독사탕 발림 전법의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도한 획기적인 유인 전략으로 나타나 이제 지구촌의 더 많은 영혼을 사냥질하고 있다.

이 전략의 전위부대격인 WCC의 에큐메니칼운동은 1948년이래 다른 종교까지 포괄하여 줄기차게 괄목할 만한 결실을 하고 있다. WCC에 가입된 교단은 모두가 다 그 후 기독교(개신교)의 대부분의 교파들이 천주교와 이신칭의에 대한 신학적인 일치를 다시 조율하였고 본격적으로 개신교와 로마카톨릭의 흡수 통합운동(“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1994) 작전에 미국 내 Bill Bright(CCC), JamesPacker(청교도신학) 등 개신교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배서(背書)하여 이 타협 문서에 항복 싸인을 한 격이었다. 루터교는 독일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상징되는 의화논쟁(義化論爭)에 아예 종지부(1999)를 찍었다. 2015년이후 WCC와 긴밀한 협력체인 WEA(세계복음주의연맹,1846)는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덮어버리고 로만카톨릭과 본격적인 연합 운동을 하면서 “상대방 교회에 개종자를 갖지 않도록 전도하지 읺음“으로 로만카톨릭과 개신교가 가시적인 동일 교회 공동체라고 강조하였다. 이밖에 Cooperative Evangelism, Billy Graham Association, The Trinity Broadcasting Network, Promise Keepers, 각종 영성훈련프로그램, 이해와협력위원회(한국) 등을 전 세계적으로 풀 가동시켜 역사적인 종교개혁에 의해 야기된 단절을 무마시키고, 아무런 저항없이 로만카톨릭과 음행의 손을 내밀었다.

항간에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그 진리(眞理)에 대한 항거였는데 21세기 종교개혁의 모토는 "사랑을 통한 교회 일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의 싸움이 다 끝나버린 양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은 바로 사탄이 쌍수를 들고 바라는 일이다. 로만카톨릭 인사들이나 자격도 없는 친 카톨릭 인사들이 그럴듯한 논리로 마치 "화해와 일치"의 깃발을 들고 최선봉의 선장인 양 완장을 차고 나팔을 불고 있다면, 분명 이들은 양의 옷을 입고 성경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참교회의 순결을 해치려고 침투한 사탄의 세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기독교(개신교)라는 간판을 철거하고정치와 종교의 두얼굴 야누스인 로마카톨릭 큰 집(1.329 billion,2018)으로 되돌리려는 치밀한 대배도(大背道)의 고의적인 범죄행위이다.

B. 연합과 일치가 과연 합당한 목표인가?

최소한 참그리스도인이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성경 말씀에 기초한 개혁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거짓 진리에 대항한 영광스러운 그 진리의 승리였다. 만약 신천지가 이단이리도 다 버리고 주 앞으로 돌아온다면 쌍수를 들고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 말씀에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거짓 종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목격하면서도 손을 내밀어줌으로 로만카톨릭이 더 이상 “다른 복음”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손뼉을 쳐줌으로 더 이상 변증 전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진리를 위해 목숨을 던졌는데 그들의 영적 전쟁이 쓸데없는 허수아비 싸움이었다는 말인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손잡지 말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린도후서 6:14-17)라고 하였다.

그 말씀의 진리를 파괴하는 연합과 단결은 아무리 인간의 눈에 화려해도 결코 가치있는 목표가 아니다.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자들이 거짓 종교에서 과연 얼마나 생명을 살리려는전도를 해보았을까? 연합과 일치를 주장하는 자들은 로만카톨릭 교인들에게 더 이상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사탄의 졸병이 되어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천국 복음을 명확하게 증거하려 하지 않고 아주 혼합된 인간적 메시지로 대체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향하는 좁은 문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파멸과 지옥으로 이끄는 넓은 문과 넓은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선교필드에서 선교사가 “교회”가 있다고 하여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천주교회였고, 촛불을 켜고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천주교인들에게 변증 전도를 하다가, “오직 예수만 믿고 따를 사람은 다음 주에 저 망고나무 그늘로 모여라.”라고 시작한 아프리카 우간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 로만 카톨릭에서 개종한 신자들이다. 그들은 천주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였고, 다만 천주교의 성례전과 예식에 매여 있을 뿐이었다“ 고 고백하였다. 이들은 천주교의 맹목적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오직 예수, 나의구주 나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으로 비록 가난하지만 입가에 웃음이 가득함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는다.
 

IV. 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A. 함께 비진리 로만카톨릭에 대항하는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함께 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음을 위해 함께 서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유성(固有性,오직 예수)과 성육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독점성(獨占性), 배타성(排他性)에 대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인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NKJV)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 면전에서 담대하게 외친 선언은 오직 예수(Sola Christus)구원이요, 다른 인간의 노력이나 다른 이름의 가능성은 0%라고 딱짤라 선포하였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4:12,Nor is there salvation in any other,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among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NKJV)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1요5:12)

그리스도인 공동체안에서 서로의 교통이 불완전하더라도, 서로의 의견 차이가 깊어도 우리는 불가시적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뿐임을 인정한다. 예수그리스도는 한 분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에 한 교회가 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의 연합을 깨닫도록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큐메니칼 파트너십은 순수한 성경 말씀과 교리는 통합 휴전을 위해 잠시 제쳐두고 사회 문제나 공공의 유익을 위해 서로를 위한 협력자로서 통일부터 먼저하자는 전략인데 설상가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이러한 거짓 종교의 진흙탕물에 뛰어들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일치라는 이름으로 오직 예수 이신칭의 구원을 부인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런 비정상적인 연합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슬람의 알라도 똑 같은 하나님, 똑 같은 구원임으로 함께 연합을 빌미로 영혼을 구원하려는 기독교 선교를 봉쇄하려는 작전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즘은 진정한 일치도 아니요, 영혼을 훔치는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거짓, 흑백을 분명히 구분하여 성경적 복음의 순수성, 영적 순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점점 세상이 다원화, 회색 혼합주의로 흘러가는 대로 굴복하지 말고 함께 저항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는 현대의 다원주의, 포괄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기독교는 불변의 성경 말씀 진리의 독재(獨裁)를 말한다. 이 때문에 성도는 종종 편협하다는 비난을 받지만 실제로 종교적 길은 두 길인데 멸망으로 이끄는 광범위한 행위 구원과 영생으로 이끄는 유일한 예수 우리 구주에 대한 믿음, 좁은 길, 둘 중의 하나뿐이다.(마태7:13,14) 따라서 복음을 위해 함께 일어나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격하고 배도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세이다. (John MacArthur)

B. 함께 로만카톨릭 거짓종교에 타협하는 거짓 신학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인간은 아무도 지옥이나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진노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히9:27) 그리고 아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일”(히10:31)이 된 이유를 반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의와 진노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열린신학이다.“(보편구원론, Clark Pinnock) “사랑의 하나님,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분이 어떻게 자신의 피조물에게 악마처럼, 피에 굶주린 괴물처럼 잔인하고 보복적인 영원한 고문을 가하는 방식으로 투영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 이긴다. 지옥은 없다” "어떤 신이 사람들을 영원 토록 괴롭히는가? 영원한 고통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다. 지옥은 사랑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잔인하고 악의적인 폭군으로 만든다.“ ( Rob Bell, “Love Wins”, 2011)

로만카톨릭은 보편구원론 (만인구원설, 교황23세,1962)을 확정하였다.

이것을 보면, 저들이 성경을 믿지 않고 “성경을 새로 써야한다 “라고 하는 교황의 막말이 실지로 확증이 가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심판 교리를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지옥의 고통, 영벌을 거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옥, 보편구원론 (만인구원론, Apocatastasis)의 인기를 따라간다. 이것은 다 종교다원주의와 연결 고리가 되어 있다. 성경의 지옥을 부정하는 보편구원론은 예수그리스도가 친히 하신 말씀, 즉,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어두운 영역(마8:12,22:13), 불의 용광로 (마13:42,50, 막9:48,49), 영적 육체적 끝없는 고통(눅16:23,24, 마8:12)(잠15:9,사3:11,롬2:5)등 모두 헛소리로 취급한다.

결국 보편구원론의 핵심은 성경 말씀에 대한 불신(不信)이 그 바탕이다.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그리스도(요14:6)를 거부하고, 죄의 심각성을 제거함으로 그야말로 죄를 경시(輕視)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보편주의는 하나님을 악한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구원을 부정하고 복음을 전할 필요성이 전혀 없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보편주의와 연옥 외에는 단순히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 대신 영원한 “영혼 소멸”(전멸주의)이 된다는 것을 덧붙인다.

“그들은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예수님은 분명히 심판의 범위를 설명하셨다. 지옥의 영원한(aiōnios)형벌, 천국의 영원한 (aiōnios)생명인데 영원한 지옥이 없다면 영원한 천국도 없고 영원한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 분명함으로 그 천국은 영원하고 그 지옥도 마찬가지이다. 지옥에 대한 진실을 피하거나 뒤집으려는 시도는 성경과 복음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그러한 악령의 거짓말을 동조, 옹호, 타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회개, 지옥을 부정하고, 죄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하고, 가증스러운 불신을 조장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선교지에서 한번은 번영신학의 대가로 알려졌던 로버트 슐러 목사가 “유사한 정신, 믿음의 일치, 같은 철학”이라면 모든 종교가 연합하는 아이디어를 절대 옹호(CNN.1999) 하는 모습을 보며 자못 놀랐다. 조용기 목사도 동국대 초청(2004) 불교인들 질문에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라며 종교 간의 상생 대화를 강조하였다. 번영신학의 강조점은 하나님 말씀과 그 뜻에 있지 않고, 인간의 행복, 성공(成功)에 둔다. 성경적 바른 믿음이란 하나님 은혜에 의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자기를 날마다 부정하고 절대주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긍정적 적극적 사고 방식에 의해 죄의 회개 대신 긍정적 생각으로, 겸손대신 자존심과 자신만만함으로, 눈물과 수고, 정직, 성결에 의한 결실보다는 꿈과 환상을 통해 일확천금과 대성공(大成功)을 말한다. 결국 슐러주의는 허영심을 조장하여 성경적 신앙을 변질시켰고, 세상과 타협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적극적 사고 원리면에서 어떤 종교와 만남은 물론 하나님도 될 수 있고, 천국, 지옥, 구원도 자기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큰 소리친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나침반인 성경말씀의 진리를 믿고 죽도록 충성(忠誠)을 고백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비성경적 형태의 이단 신앙과 결코 악수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위해 함께 일어설 때, 우리는 또한 중요한 복음 진리의 이단적인 부패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C. 함께 로만카톨릭 연합일치 운동의 반대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예수님을 제외하고 이 땅에 진정으로 온전히 이타적이거나, 의롭거나 선한 능력 자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교회(성도)는 이기적인 본능을 가진 죄인들로 가득차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육신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셨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희생하며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성도들의 그 연합은 우리 주님의 격려이시다. 그것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영을 북돋우시고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의 짐을 짊어지고 거룩한 삶의 책임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 말씀의 진리를 온 세상에 선포하도록 우리를 담대하게 하신다. 특히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여 기도로, 말씀으로 서로 단합하여 서로 보호해야 한다.

오늘날 성도들은 복음 안에서 그저 단순히 함께 연대(聯隊)하여 뭉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연합(聯合)하여 무엇을 반대해야 할 것인지, 언제, 어떤 전략으로 움직일 것인지 파악해야 하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 이 점이 가장 힘드는 부분이다. 최근 한국교회가 교파를 초원하여 동성애 운동인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항에서 성도들이 서로 연대하고 저항한 것은 좋은 선례였다. 비진리 로만카톨릭과 연합에 대해 분명히 반대(NO)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진리에 대해 무지하거나 겁쟁이이거나 사탄의 졸병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 John MacArthur, Together Against 참조하였음)
 

나가면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위한 한국 교회에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1>
10월 31일은 로만카톨릭에서 할로인데이(Halloween Day, All Saints' Eve)이다. 모든 성인 대축일전야제가 종교개혁기념일(1517)을 덮어버렸다. 개혁 교회들은 10월 마지막 주일을 총회적으로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키면서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에 목숨을 걸었던 개혁가들의 신앙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2>
종교통합 운동의 앞장이 노릇을 하는 WCC, WEA같은 국제 단체의 영적 음행을 강력히 경고 규탄하면서 하루 속히 탈퇴를 하고 그렇지 않는 순수한 진리의 교단끼리 연합을 해야한다.

3>
암리에 신학교와 목회 현장에 침투한 영적 바이러스인 이단 신학들, 번영신학이나, 보편구원론, 행위구원청교도신학 등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신구교 통합작전의 하나로 로만 카톨릭 영성 훈련과 같은 맥락에서 유통되고 있는 내적치유(뜨레디아스), 알파코스, G12, D12, 셀, 빈야드/토론토브레싱, Promise Keeper(아버지학교), 신사도운동, 관상기도, 영성기도, 명상, 성령세례, 비전(환상), 래마(내적목소리), 황홀감과 엑스터시, 진위가 의심스러운 예언, 각종 방언기도 같은 카리스마 운동, YWAM등을 분별해야 한다.

5>
서구 신학에서 받아먹는 신학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이제 한국 교회에 업그래이드된 한국 개혁교회(Korean Reformed Chruch)의 신학을 전 세계 선교필드에 보급할 필요가 있다.

6>
각 신학교에서 천주교 비판 과목을 개설하여 그 실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일깨워야 한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24:11-12)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받으리라"(살후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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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선교사는 고신에서 공부하고 안수받았으며, 현재 KPM(고신총회세계선교회)와 NGO Good Partners(김인중 목사, 이사장)의 파송을 받아 우간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천주교와 오순절 운동 신학 류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성경적 복음을 우간다의 원주민들에게 전하고자 애쓴다. 우간다의 낙후된 여러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복음과 함께 의료 봉사로 영혼들을 섬기고 있고, 늘 기독교의 세계적 동향을 살피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