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2)


2. 거짓 교회에서 분리하지 않는 오류

칼빈은 거짓교회에서 분리하지 않는 오류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의 근본에 해당하는 교리와 참된 예배에서 떠난 종교집단은 참교회가 아니다.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집행되지 않는 교회는 배격되어야 한다. 참교회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조들이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곳에만 존재한다.

칼빈은 초기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능동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분리의 능동적 주체는 종교개혁자들이 아니라 칼빈 자신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을 더 이상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쫓아낸 자들이라고 말했다. 기성교회가 자신들을 쫓아냈다(nos expulerunt)는 것과 추방되었다(eiectos esse nos)는 점을 강조했다. 교회분열의 능동적인 원인을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운동에 돌리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I.2.6.). 칼빈은 종교개혁운동 초기에 자신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강요』 제4권 2장에서는 로마가톨릭교회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자가 분리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참교회가 아닌 집단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거짓이 종교생활의 요새에 침입하면 중추적인 교리와 성례의 효험을 파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교회는 틀림없이 죽게 된다. 사람이 목을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죽게 되는 것과 같이, 필수 교리와 성례의 효험이 파괴되면 그러한 신앙공동체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다”(엡2:20)고 한 말에도 이 점이 뚜렷이 나타난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교훈이다. 교회를 지탱하는 이 핵심 교훈이 제거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존립할 수 없다. 이 기초가 무너지면 교회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이다(딤전3:15). 거짓말과 거짓행위가 지배하는 곳에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IV.2.1.).

칼빈은 교회라고 하는 집단이 외형을 갖추고 있어도 참교회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교회조직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의 지배 아래에 있는 교회에는 정교한 조직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로 그 조직이 복음의 순수한 빛을 꺼버리기도 하고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로 성찬 자리에는 더러운 모독 행위가 자리를 잡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여러 가지 미신으로 더렵혀져 있다. 기독교의 본질에 속하는 근본 교리가 완전히 매장되고 제거되었다. 공중 집회는 우상숭배와 불경건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로마가톨릭교회가 저지르는 수많은 치명적인 비행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교통은 그것이 우상숭배와 불경건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기타 악폐에 우리를 빠뜨리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리에 복종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IV.2.2.).

둘째, 영적 은사, 순교자, 사도로부터 계승되었다고 하는 주교좌(감독좌)를 가졌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자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분리주의자(Schismatics)로 단정한다. 자파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을 이단자로 여긴다. 로마가톨릭교회 외에는 지상에 참교회가 없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주교좌를 그 근거로 삼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톨릭교회는 자신이 참교회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건전한 교리 위에 교회들을 세우고 또 피를 흘려 그 교리와 교회를 확립한 거룩한 사람들을 자기의 기원으로 삼는다. 영적 은사, 순교자, 주교좌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익하다. 동방교회의 주교좌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동방교회는 이른바 ‘사도의 교구’에서 분리했다. 그렇다고 하여 누가 그 교회를 분파 집단 또는 분리주의파라고 할 것인가? (IV.2.2.).

셋째, 성전(聖殿)과 의식(儀式)과 사제가 있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상태는 옛날 유태인들이 불경건과 우상숭배로 예언자들의 책망을 듣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전과 의식과 제사장의 역할을 자랑한다. 외양을 자랑한다. 그것들은 참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이 없어도 교회는 훌륭히 존립할 수 있다. 주께서는 주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것이 양심에 맞게 준수되는 곳이 아니면 어떤 성전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성소의 그룹 사이에 머물며(겔10:4), 그곳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사악한 미신으로 예배를 부패시켰을 때에 그의 영광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성소에서 거룩을 제거했다.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 성별된 듯이 보이던 성전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불경한 곳이 되었다. 주교직의 상속에 의해 교회가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부들을 잘못 끌어들인 것이다. 사도성은 사도들이 전한 교리의 전승에 달린 것이지 주교좌의 계승에 달려 있지 않다. 교회의 출발 때부터 교부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리에 변동이 전혀 없었다. 교부들은 이 한 가지 원칙을 채택하여 사도시대부터 확고하게 만장일치로 유지되어 온 가르침 곧 중추적인 교리를 가지고 모든 새로운 오류에 맞섰다(IV.2.3.).

넷째,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외형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름과 외형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있는 곳(롬9:6)에 항상 계시는 분이 아니다. 가야바의 집안에 경건한 제사장이 많았고 제사장직이 계승되었다고 하여 사악한 무리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대적이면서도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전과 사제직과 그 밖의 외적인 것들을 유지하고 있지만 단순한 사람들의 눈이나 멀게 할 헛된 번쩍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곳에는 교회가 없다. 표지가 없는 곳에는 참교회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교회의 기초는 사람의 판단이나 사제직이 아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교훈이다(요8:47). 지극히 거룩한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IV.2.4.).

칼빈은 참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어느 신앙공동체가 기존교회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교리와 다른 교리를 선포하며 별도의 집회를 갖고 세례를 베풀며 성만찬과 기타 거룩한 활동을 한다고 하여, 그 신앙공동체를 두고 참교회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교회가 분파와 이단의 죄를 짓는 것으로 취급한다. 개혁된 교회를 공연히 쓸데없는 논쟁을 일으켜 교회와 교통(communion)을 파괴하는 이단자, 분리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정한 교통은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애에 의해 유지된다. 어거스틴은 이단과 분파를 구별했다. 그는, 이단자는 거짓된 교리로 진실한 마음을 부패시키는 자이고, 분리주의자는 같은 믿음을 가졌으면서도 가끔 친교를 깨뜨리는 자라고 했다. 사랑의 결합은 믿음의 일치에 달려 있다. 바울은 우리가 교회와 연합할 것을 권하면서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엡4:5)라고 강조한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신자간의 일치가 없고 오직 악한 사람들의 파당만이 있을 뿐이다(IV.2.5.).

둘째,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곳에 참교회가 있다. 신자의 연합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믿음이다. 키프리안이 말했듯이 교회의 일치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감독으로 모실 때만 가능하다. 이단과 분파 행동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진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리이신 분을 찾지 않고, 하늘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개혁된 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분리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교회가 진리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우리에 대해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문과 저주로 수진수난(守眞受難) 신자를 추방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도들을 분파주의자라고 정죄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회당에서 쫓겨나리라고 경고했다(요16:2). 주께서 말씀하신 그 회당들은 당시에 합법적 교회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표지로 여기는 우리는 쫓겨났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쫓겨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기 위해서는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야만 한다”(IV.2.6.).

셋째, 공공연하게 주님의 말씀을 짓밟고 순수한 말씀의 선포를 파괴하는 종교기구는 참교회가 아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여로보암 때의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유태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의 율법을 지키는 동안에는 그들 가운데에 진정한 교회가 있었다. 율법에서 진리의 교리를 얻었으며,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 종교에 입문하고 기타 성례를 행함으로써 믿음을 강화했다. 그들은 주께서 교회에 주신 영예로운 칭호들을 의심할 바 없이 자신들의 사회에 적용했다. 그 뒤에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져 그 특권을 부분적으로 상실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맡기신 백성에게서 누가 감히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빼앗았는가? 주님의 말씀을 공공연하게 짓밟고도 벌을 받지 않으며, 교회의 가장 중요한 힘과 생명 자체가 되는 말씀의 선포를 파괴해 버리는 무리를 누가 감히 ‘교회’라고 부를 것인가?(IV.2.7.).

넷째, 가짜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참교회가 아니다. 유태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고, 제사장 계급을 갖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조예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불법적인 성소를 봉헌하여 종교를 완전히 부패시켰다(왕상 12:28이하). 르호보암 통치 하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타락한 의식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여전히 율법이 가르쳐지고 있었으며, 제사장 계급이 있었다. 그 밖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식들이 존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에게 괜찮은 교회가 있었다(IV.2.8.). 여로보암의 명령에 따라 할례가 존속했고, 제물을 드렸다. 사람들은 거룩한 율법을 지켰고, 조상의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금지된 모조예배 때문에 거기서 행한 일을 모두 인정하지 않고 정죄했다(왕상12:31). 벧엘에서 예배하거나 제사를 드린 예언자나 경건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 반드시 신성모독이 되며, 몸이 오염되리라는 것을 알았다(IV.2.10.).

 

칼빈은 이상의 논거에 따라 우상숭배를 행하거나 교리가 순수하지 않거나 배교하는 교회를 배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교회와 교제를 단절하고 분리해야 한다. 신성모독적인(사1:14) 모임을 승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다. 만약 기존 교회(로마가톨릭교회)가 참교회라면 교회는 진리의 기둥(딤전3:15)이 아니라 거짓의 버팀목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막이 아니라 우상의 소굴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악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 집회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에 오염된 종교집단과 완전한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중대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참교회라면 ‘천국열쇠’의 권한이 교황에게 있다고 하는 주장이 옳을 수 있다. 그 열쇠는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 안에는 말씀이 파괴되어 있다. 만일 그들의 교회가 참교회라면 “네가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마16:19; 18:18; 요20:23)고 말한 그리스도의 약속이 그들 사이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교통을 끊었다. 그리스도의 약속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집단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IV.2.10.).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제1장에서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부패한 유태종교의 상태를 보면서도 그들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지 않은 점을 말한다.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약간 있다고 하여 교회의 교통에서 즉각 벗어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IV.1.18). 제2장은 예언자들이 부패한 종교에서 분리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그 까닭을 논한다. 레위족 제사장들은 거룩한 의식을 집행하는 자로 임명을 받은 상태였고(출29:9), 파면된 일이 없었으므로 여전히 그 직무를 행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미신적인 예배를 강요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제정한 의식 이외의 것을 행하거나 그러한 예식에 참석하라고 강요받지 않았다(IV.2.9.).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부패한 유태의 종교 상태를 보면서도 그들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종파를 만들거나 새로운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은 로마가톨릭교회를 단호하게 반대했다. 교황주의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면 우상숭배로 더러워지게 마련이며, 그들의 미사(성찬식)는 최대의 신성모독이라고 지탄한다. 모독적인 예배를 드리는 집단은 참교회가 아니므로 그들과 교통을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에 따르면, 교황제도 아래에도 교회의 흔적은 남아있다. 건물이 헐려도 그 터가 남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까지 완전히 파괴하여 평지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의 말씀을 멸시한 사람들의 배은망덕을 징계하기 위해 교회가 무서운 동요와 분열을 겪는 것을 허락했지만 건물이 절반쯤 남도록 했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여호와의 언약의 증거인 세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IV.2.11.).

그러나 그 집단 안에 건전한 요소가 약간 남아 있다고 하여 배교하는 교회가 참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주의 집단은 ‘교회’가 아니다. 다니엘(단9:27)과 바울(살후2:4)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교황은 사악하고 가증스러운 왕국의 지도자이며 기수이다. 신성 모독적인 불경건으로 교회를 더럽히고, 잔인한 지배자처럼 괴롭히고, 독약처럼 악하고 치명적인 교리로 부패시켜 거의 죽게 했다. 

그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거의 묻히고 복음은 폐지되어 있다. 경건은 사라졌으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거의 멸절되어 있다.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 바벨론과 같이 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자들 사이에도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악마의 간계와 인간의 패악에도 불구하고 파괴할 수 없는 교회의 표지가 다소 남아 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에는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보아 합법적인 교회의 형태와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IV.2.12.).

칼빈이 말하는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교회’는 무엇인가? 종교개혁운동은 교회관의 개혁운동이었다. 칼빈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구성된 사제계급(hierarchy)을 교회로 보는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을 알고 있었다. 교황이 적그리스도이면 그의 통치를 받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단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무엇인가?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있는 일부 지역교회들을 말하는 것인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왈도파, 영국의 존 위클리프가 이끈 롤라즈 무리, 보헤미아 지역의 얀 후스의 개혁신앙을 추종하는 후스파와 타볼파, 플로렌스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추종하는 무리들, 마르틴 루터가 속한 어거스틴 수도회와 같은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운동과 관련된 신앙공동체들을 말하는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칼빈이 『기독교강요』 제4권 20장과 사돌레토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조하는 종교집단 곧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틀림이 없다.
 

원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교회관"(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위 글은 최덕성 박사가 2012년 10월 경에 어느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의 전반부이다. 최덕ㅅ성 박사가 곧 출간할 예정인 <신사참배거부운동>에 포함되어 있다. 최덕성 박사의 홈페이지 리포르만다에서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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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는 고신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D),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고,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였고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였으며,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의 총장이다. ‘신학자대상작’으로 선정된「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을 비롯한 약 20여권의 귀중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하였다. 신학-복음전문방송 <빵티비>(BREADTV)의 대표이며, 온라인 신학저널 <리포르만다>(REFORMANDA)를 운영하며 한국 교회에 개혁신학을 공급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