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목사와 한국청교도사상가들의 논쟁 4

과연 기독교에서 다음과 같은 신학은 언제부터 통용되었을까?

1)행위언약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지킬 능력을 주시고 아담이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주시기로 언약하였다.

2) 능동순종의 의

율법의 선행에 실패한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에 순종하여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획득하여 전가하셨다.

3)은혜언약

아무 구원의 자격이 없는 우리가 율법순종으로 구원의 자격을 획득하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형벌의 면제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4)회심준비론

그리스도의 복음을 곧장 믿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먼저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아 소망없는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난후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에게 진정한 구원이 주어진다.

이런 신학은 신약의 사도들의 글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천주교에 의해 비틀어진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를 다시 회복한 칼빈의 글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사상은 1600년대 영국의 청교도 운동 시대에 등장한 청교도들의 신학이다. 청교도들 중에서도 잉글랜드 국교회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에게서 먼저 발전되었고, 이후 서서히 잉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칼빈과 사도들의 신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주장과 한국 청교도사상가들(한청사)의 주장을 비교해 보자. (한청사는 실제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고, 청교도주의자들과 정이철 목사의 토론을 위해 설정한 가상의 이름이다.)

정 목사 주장 4>
“이런 사상(행위언약, 능동순종)은 윌리엄 퍼킨스가 처음 도입해서 1600년대 초에 확산되었으며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들의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들어갔다.”

한청사 반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는 회중파 청교도에서 기원했거나 그 영향 아래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 테면 능동적 순종을 지지한 윌리엄 가우지, 조지 워커, 죠수아 호일, 허버트 파머, 데니엘 피틀리 등은 회중파 청교도가 아니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영향력을 주었던 사무엘 러더포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전이나 이후나 개혁 교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한 교리입니다.”
 

능동순종 교리는 행위언약의 부산물이다. 율법준수의 선행으로 영생을 얻기로 하나님과 계약한 아담이 실패했으므로 하나님의 성육신자가 오시어 아담 대신 율법의 선행에 성공하여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이 능동순종이다. 행위언약이 없으면 능동순종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 속으로 행위언약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아야 한다.

행위언약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은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엄 퍼킨스이다. 그는 1580년대에 국교회 속으로 장로교회 제도를 도입하자는 청교도들의 개혁안이 완전히 좌절되고, 그 주장을 지속하면 청교도들에게 더 이상 설 자리가 주어지지 않게 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로버트 브라운과 달리 국교회의 체제와 조직에 도전하지 않는 국교회의 목회자로 남아서 개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퍼킨스의 개혁운동의 초점은 구원을 위한 개인의 경건, 헌신, 자발적이고 책임있는 신앙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퍼킨스와 그의 제자들은 국교회가 방해할 이유가 없는 설교 운동과 출판 운동을 수단으로 삼고 국민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개혁운동을 적극적으로 전파하였다.

신약 성경과 칼빈의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으로는 구원을 위한 개인의 헌신과 자발적이고 책임있는 신앙을 촉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구원을 위한 각 개인들의 헌신과 책임있는 신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신학이 제시되어야 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적인 의무와 조건을 제시하는 신학이 수립되어야 각 사람에게 구원을 위한 헌신과 경건, 그리고 자발적이고 책임있는 신앙 자세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퍼킨스가 본격으로 도입한 신학 개념이 행위언약이었다. 행위언약 개념이 퍼킨스에게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고, 그 이전의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전개되었었다. 그러나 아담이 영생에 합당한 율법의 선행에 성공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쌍방간의 언약을 맺었다는 행위사상은 1590년대 초 퍼킨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행위언약 사상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율법중심의 회심준비주의, 그리고 은혜언약 개념을 수반한다. 행위언약 홀로 나타나지 않았다. 1591년에 출판된 퍼킨스의 <황금사슬>에서 이런 사상이 나타나는 것을 필자는 확인하였다. 그 무렵에 퍼킨스의 제자들이 비슷한 내용의 책들을 잉글랜드에서 많이 출판했다. 그 내용은 대부분 행위언약에 대한 것이었다.

왜 행위언약에 대한 내용을 진술하는 책들이 1590년대에 잉글랜드에서 쏟아졌을까? 당시 잉글랜드 국교회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체제와 조직에 도전하지 않고 구원을 위한 국민 개인들의 경건, 헌신, 의무, 역할, 자발적이고 책임성있는 신앙을 강조하는 개혁운동을 힘차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칼빈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택하심, 은혜, 그리고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퍼킨스가 처음 시작한 것을 본받아서 사람의 행위와 경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율법의 선행, 그리고 구원을 위한 노력과 자격을 구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사실이나, 사람이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상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설립자이며 칼빈의 제자인 존 낙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사상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최초의 언약신학자로 불리우고, 나중에 실질적으로 국교회로 전향해 버린 로버트 롤록이 1596년에 저술한 책에서 이 같은 사상이 나타났다. 잉글랜드 국교회 청교도들(회중파)의 사상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칼빈의 신학도 퍼킨스의 영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대표로 웨민총회에도 참석했던 사무엘 러더포드가 1655년에 출판한 책에서도 퍼킨의 언약 신학과 같은 내용의 언약 사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러더포드마져도 웨민총회에 참석하여 퍼킨스에게서 시작된 사상에 동조했음을 뜻한다. 15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퍼킨스의 새로운 신학과 구원을 위한 헌신, 경건, 의무를 강조하는 청교도 운동의 영향이 생각보다 급속하에 주변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1640년대에 회집된 웨민총회 때에는 그 사상이 단지 이미 사망한(1602년) 퍼킨스의 제자들과 후배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잉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 많이 전파되어 있었다. 웨민총회에서는 논쟁의 양상은 꼭 장로교회파와 회중교회파 간의 논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상 퍼킨스주의자들과 칼빈주의자들의 논쟁이 치열했다고 보아야 한다. 장로교회파 청교도들 안에 이미 퍼킨스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여러 문헌들을 보면 장로교회주의자들과 ‘독립파’(independents, 독립회중파)라고 나오므로 혼란이 일어난다.

“이를 테면 능동적 순종을 지지한 윌리엄 가우지, 조지 워커, 죠수아 호일, 허버트 파머, 데니엘 피틀리 등은 회중파 청교도가 아니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영향력을 주었던 사무엘 러더포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전이나 이후나 개혁 교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한 교리입니다.”(한청사 주장)

그러므로 한청사의 이와 같은 주장, 즉 많은 장로교회 인물들이 웨민총회에서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했으므로 행위언약-능동순종이 본래 장로교회의 신학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한 장로교회 청교도들은 사실 자신들이 따라야 할 칼빈주의를 떠나 퍼킨스주의로 기울어진 분별력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 웨민총회와 그 이전과 그 이후에 퍼킨스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특별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하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행위언약-능동순종은 1600년대에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거짓 신학이다. 그래서 웨민총회에서 불행하게도 행위언약은 비교적 순조롭게 기술되었어도, 노골적인 능동순종 개념이 대두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저항했다. 심지어 반대하는 칼빈주의자들이 퍼킨스주의자들을 향하여 제임스 1세가 역사적으로 그 어떤 공의회와 교부들이 가르친 적이 없었던 능동순종 개념을 더 논의하지 말라고 남긴 글을 제시하기도 했다.

행위언약-능동순종 사상은 성경에서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사변적인 추론으로 신학을 전개하였던 영국 청교도들의 개신교 스콜라주의로 인해 나타난 사변일 뿐이다. 거기에 동조했던 장로교회 인물들은 분별력과 신학적 사고가 미숙하여 칼빈주의를 떠나 퍼킨스주의로 넘어간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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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