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신학자인가?

그렇다면 도올은 신학자일까? 분명 유사 신학 도서나 성경 강해서를 쏟아냈으니 신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신학의 맛(한신대 중퇴)을 보았으며 이미 청년 시절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의 정통 과정을 끝까지 이수한 적은 없으며 교회 교역자로 봉사한 경험은 없다. 그런데 왜 계속 교회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일정한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명하는 것일까? 신학자가 아님에도 이미 그는 신학의 딜레탕트를 넘어선 사람이다.

기독교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정통 신학자는 아니기에 신학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문제는 기독교 교리와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그가 기독교 사상적 선지자를 자처하기 때문에 늘 논란은 증폭되어 왔다는 점이다. 신학을 잠시 배운 학자로서 더 늦기 전 신학계에도 돌 하나라도 얹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유년의 신앙에 대한 막연한 회귀 본능일까? 그는 분명 신앙과 성경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박식함과 레토릭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누구도 함부로 그의 신학에 직설적으로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필자는 비록 도올이 다방면에 탁월한 학자임은 잘 아나 정통 신학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유효한가라는 질문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보스턴 대학의 생화학 교수를 지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창세기 전반부(1-11장)를 강해한 전례가 있다(In the Beginning, Crown Publishers, INC., 1981). 성경 강해에 있어 도올의 선배인 셈이다. 생화학자임에도 그는 J 문서, P 문서와 같은 구약학자들의 새로운 견해를 활용하고 있다. 도올이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현학적으로 구사하는 것도 아시모프와 유사하다. 두 사람은 모두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조직신학자 스탠리 그랜츠(S. Grenz)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신학자다(Grenz & Olson, Who Needs Theology?, IVP, 12). 신학적 행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바른 신학, 나쁜 신학, 미숙한 신학, 가짜 신학 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도올은 정통신학자는 아닐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신학이라는 거창한 학문적 틀보다 그의 세계관 들여다보기를 통해 왜 철학과 사상이 아닌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까지 21세기 선지자가 되려 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도올은 이미 EBS 강좌를 책으로 내면서 자신이 인과율로 엮어진 물리적 환경 속에 살면서 “예수” 사건은 끊임없이 불화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과학적 세계관>을 고백하고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2007. 11). 그랜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는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는 신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과학적 세계관이 신앙과 신학에서 발휘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버트란트 러셀이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과학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과학은 과학주의가 아니다. 과학주의도 과학이 아니다. 과학주의란 모든 사상을 과학적 지식과 무의미한 생각(nonsense)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눌 뿐이다. 즉 그들은 발견해야 할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며, 과학적 지식 외에는 유효한 지식이란 없다고 본다. 그렇게 볼 때 도올은 이미 자신은 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세계관은 안중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그는 분명 다른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의 과학적 세계관

과학적 해석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수용하고 있는 그의 “상식적 전제”는 그의 철학사상과 더불어 도올의 신앙과 신학을 늘 자신의 고향 천안 삼거리처럼 초월의 신앙과 내재의 과학적·철학적 사고 체계 사이를 서성이게 만들어 버린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있는 삼거리는 분명 즐거우나 삼거리 신학은 다른 문제다.

이 같은 삼거리 신앙과 신학은 그의 『요한복음강해』(통나무, 2007)에 그대로 드러난다. 요한복음은 기독론이 중심이 되는 책이다. 그 기독론은 “창조”와 “믿음”을 전제한다. 요한복음에서 ‘믿는다’는 단어는 98번이나 언급된다. 이것은 공관복음이 34번(마태복음 14회, 마가복음 11회, 누가복음 9회) 언급하는 것과 비교할 때 압도적이다. 도올이 좋아하는 불교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요한복음을 접근하는 화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중심에는 바로 기독론이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육신하신 분이요 창조주다(요 1:3). 즉 “로고스”는 세상의 창조자다(요 1:1-8). 물을 포도주로 바꾼 가나에서의 최초 이적 사건도 실은 내재의 세상에 임한 창조 사건이다(요 2장 참조). 필자는 식품제조가공기사와 Q.C. 자격증을 가진 대학원에서 환경화학공학을 전공한 신학자지만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는 식품과학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생화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다.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은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닌 것이다. 즉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이 이적 사건은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를 미리 드러내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소박해 보이지만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밝힌 실은 위대한 “창조주 선포”였다.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선지자로?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도올이 이 “포도주 창조 사건”을 믿을 리가 없다. 따라서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는 전통적 교회의 성령 역사의 교리를 필연적으로 이탈하면서 세상 속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영혼은 과학과 더불어 신나는 유희를 즐긴다. 이적으로 가득 찬 요한복음은 사상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 대중들은 “호산나” 외치던 손으로 신나게 박수를 친다. 눈물의 예레미야는 사라지고 하나냐(Hananiah) 같은 축복과 번영의 거짓선지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런데 도올은 요한복음의 예수를 창조의 주요, 믿음의 주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할지 늘 서성인다. 이걸 정면으로 거부하여 기독교를 모독하고 최대 이단이 되는 길을 떳떳하게(?) 갈 것인지 아니면 삼거리를 서성이는 모호한 전략으로 나아가 범 기독교의 곁에 밀착하여 방어벽을 치고 선지자적 명성(?)도 유지할 것인지 주춤거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의 마지노선은 이렇게 늘 안개 속에 덮여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성경관을 다룬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의 제 1장에서부터 예수의 이적을 다루면서 자신은 과학적 해석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수용하고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1쪽)고 했으니 삼위일체 창조주로서의 예수(요 1:3; 고전 8:6)든 예수의 이적이든 그에게 있어서는 온통 “과학적·합리적 세계관을 지니지 못한 세계관 발생 이전의, 비이성적 세계관의 사람들의 특수한 인식체계일 뿐”이라고 신앙과 기독교 교리의 역사(Norma Normata)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 1장 예수의 이적, 14쪽).

그러고도 자신은 그러한 "인식체계의 특수한 문학 장르의 표현기법으로서 합리적인 해석을 얼마든지 멋있게 해낼 수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4쪽)고 했다. 과학주의 사상가, 철학자답게 그는 철학의 출발 본질이었던 자연철학(Physica)으로 성경을 아주 멋지게 요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믿음에 대한 자신만의 만용을 자랑한다. 그가 온 천하에 선포하는 자신의 성경관이요 신앙관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시 삼거리로 나아가 모호 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야 끝까지 정통 교회와 신앙과 신학을 농락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일까? 모호함이든 스파이 전략이든 그는 이미 자신의 신앙관만큼은 적나라하게 고백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여기서 그의 참 선지자관이 나오게 된다. 모든 교회와 신학은 철저히 무시되고 자신은 미래 한민족의 유일한 참 된 선지자로 우뚝 선다.

도올의 요한복음강해<“자가 복음”을 만들어내는 도올의 급진적 시도들>

도올의 요한복음

그의 내면에 흐르는 제천인(堤川人)의 기질은 이때 발휘된다. 창조와 믿음을 배제한 채 과학적 사고를 따르는 도올은 아예 스스로 신학 창조의 radical한 시도를 밀어붙인다. "자가 복음"이요 "자기 복음"이다. 역사 속 정통 신학이란 그에게 있어 적폐 신학일 뿐이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이 아니라 도올의 요한복음을 만들어버린다. 그 뿐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기독교 관련 책들에서 정통 밖의 유사 서적들을 적절히 부활시킨다. 앵벌이에 나서는 유사 시민 단체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나듯 이들 유사서적들은 뜸팡이가 아닌 유해한 곰팡이를 피워댄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위해성을 평가할 신앙의 DNA나 FDA가 부족하기에 유해한 포자를 그대로 흡입해버린다.

그렇게 내재(內在)의 눈으로 볼 때 초월의 창조나 창조주는 사라지고 삼위일체로서의 성령의 역사란 유치한 시대의 낡은 개념으로 추락해버린다. 그 같은 세상을 보며 도올은 빌라도나 유대 지식인 뺨치는 자신의 저력이 성령의 역사로 이어져온 성경 속 “예수의 모형”(Norma Normans) 저격에 성공했다고 분명 자기의 골방에 은밀히 들어가 그 특유의 “개콘” 스타일로 박장대소할 것이다.

도올의 성령론

성령론에 있어서도 그 전략은 유효하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로 설명한다(요 14:16, 26; 15:26; 16:7). 성령에 대해 가장 명백하게 가르치는 요한복음을 폄훼해야 도올은 자신의 모호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 도올은 예수는 “예수의 재림을 보혜사라 하는 성령의 인격체로 대치하여 재림의 물리적 성격을 완화시켰다”고 했다(『요한복음 강해』, 389). 아주 독특한 해석법이다. 이게 그의 요한복음 성령론의 전부다. 참으로 허망하다. 말이 요한복음 강해서이지 그는 요한복음 서(序)와 1장 강해에 집중할 뿐이다. 

도올의 요한복음 1장 강해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되어있다. 도올은 자신의 책 요한복음 강해에서 장황한 서론(1-67쪽)을 뺀 21장 강해 414쪽(68-481쪽) 가운데 오직 1장에만 무려 109쪽(68-176쪽)을 할애하고 있다. 전체 강해의 25%가 넘는 분량이다. 나머지 20장 강해 분량은 평균 15쪽이다. 사실 삽입된 요한복음(영어 성경 RSV와 한글 신 개역) 본문을 빼면 나머지 강해는 그 분량에 있어 아주 소박하다. 예를 들어 설교자들이 중시하는 예수의 마지막 고별 기도(The Farewell Prayer)가 담긴 요한복음 17장 강해는 성경 본문(RSV, 신 개역)만 7쪽이요 도올의 본문강해는 렘브란트 삽화 포함 겨우 두 쪽 분량에 불과하다. 부실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면 전혀 있을 수 없는 본문 해석이다. “인간을 진리로써,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라!”는 이 한 메시지(17장 17절)가 요한복음의 전체 테마인 동시에 모든 인간의 종교·철학·문학·예술의 보편 테마라고 도올이 주장하기에 더욱 그렇다. 즉 그는 요한복음 1장에서 실은 자신의 세계관과 주요 사상을 몽땅 말해버렸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도올은 요한복음 1장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놀랍게도 그는 요한복음 1장의 중요한 기독론인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요 1:3; 10)을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그의 과학적 세계관 속 신앙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것을 숨기기 위한 삼거리 두리번거림의 전략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는 "말씀"(logos)을 믿고 해석하기보다 이 “로고스”를 자신의 현란한 현학적 철학 지식을 자랑하는 데 집중한다. 마치 철학 물 좀 먹었다는 형이 동네 후배들 모아 놓고 고향 삼거리 능수버들 아래서 막걸리 한잔하고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세상을 논하듯 그는 자신의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요한의 “말씀”을 철학의 “로고스”로 치환한다.

초대 철학자들이 질료의 운동성 문제를 다루며 만유의 실체가 변화하는 지 아니면 영원히 불변의 존재로 항존하는 지를 고민할 때 두 철학자가 등장한다. 에베소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영원한 실체는 우주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불”을 근원으로 부단히 <변화 한다>고 본 반면 형이상학적 엘리아학파의 한 사람이었던 파르메니데스는 우주를 단일한 <항존적 존재>로 그렸다. 도올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명제는 파르메니데스적 세계관을 나타낸다고 보았고, 제2절과 제3절의 “로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세계관을 나타낸다“(『요한복음강해』, 제 1장, 100쪽)고 보았다. 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분열과 융합이 요한복음의 끊임없는 주제를 형성하니, 우리는 분열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도 안 되고 융합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같은 책, 100쪽)는 것이 요한복음을 읽어나가는 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올은 아무도 헤라클레이토스와 요한복음의 저자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서 헤라클레이토스를 이해하면 요한의 로고스기독론(Logos-Christology)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실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요한복음강해서』, 78-80). 신학자가 강단에서 신학도들에게 헬라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이 같은 배경 강의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사나 신학자가 이 같은 강해서를 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을 넘어 즉시 해괴하고 유치한 담론으로 매장될 것이다. 이것이 도올의 신학이다. 그 당돌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로고스기독론은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사실 로고스기독론은 교리사에서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알렉산드리아신학이 말하는 로고스 사상(기독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둘 다 정확한 진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피조물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다룬 교리사 초기의 중요한 논쟁점이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기에 이 같은 오묘한 섭리를 완벽하게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그 참 된 본질과 속성을 사실 제대로 이해하거나 체험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기 때문일까? 온전한 예수의 상(像)을 그리지 못할지라도 인간은 그 속성상 자신 앞에 놓인 과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인격과 본성들에 대한 교리를 기독교는 그동안 기독론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다.. 기독론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기독교의 교리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에 예언되고 신약에 묘사된 예수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고스 기독론은 바로 그 해석의 역사 속에서 나온 견해였다.

헬라어의  로고스(logos)는 본래 “말씀”, “생각”, “이성”, “강론”, “논리”, “생각의 표현”, “인간 정신”, “사물의 근거”, 수학에서는 “비례”, “척도” 등 다양하게 사용되던 단어다.  기록 속의 이 단어는 호머의 <일리어드>에 나타난 비전문적 용어였다. 그런데 철학적 의미로 이 로고스를 처음 사용한 철학자는 도올의 설명대로 불(火)을 만물의 기원이라고 생각한 에베소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주전 500년 경)였다. 그는 로고스를 사물의 배후에 있는 세계의 신적 정신이요 유동(변)하는 우주에서 오직 단 하나의 안정적인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플라톤(주전 427-347)은 로고스를 마음과 더 밀접한 것으로 본 소피스트들과 유사하게 로고스를 사상과 말과 사물을 결합한 보다 큰 실재로 보았다. 다만 그 로고스는 사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또한 사물을 해석한다고 보아 이데아와 구분하고 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는 로고스를 말과 이해력으로서의 로고스와 말과 이해력의 결과로서의 이해력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로고스는 행동으로 옮겨지기에 인간 특유의 덕(德)이 나오는 원천으로 간주했다. 스토아학파는 헤라클리투스와 유사하게 로고스를 ”우주 만물을 합목적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으로 이해한다.

헬라적 유대교인이었던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는 이 용어를 세상이 창조될 때 사용된 도구요,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과 물질세계를 잇는 다리로 이해했다.

성경에 “말씀”으로 번역된 이 "로고스(Logos)"는 본래 라틴어, 독일어, 영어에는 동일한 어의(語義)가 없는 헬라어만의 아주 독특한 단어다. 이 용어를 사도 요한은 “예수”가 곧 헬라어의 “로고스(말씀)”이라는 놀라운 계시를 요한복음(1:1-3)에 기록한다. 이렇게 “로고스”는 성경 칠십인 역(譯)과 신약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단어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육신 기독론>과 안디옥의 <말씀-인간 기독론>의 충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 사상(<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과 안디옥(시리아) 기독론(<말씀-인간> 기독론)이 충돌한다. <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통합된 위격으로 본다. 이 개념을 최초 만든 사람은 수리아지역 라오디게아의 주교였던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라) 또는 apollinarios(英), 약310-390)였다. 아리우스에 반대하던 그는 그리스도의 참 된 신성을 옹호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기독론의 견해가 알렉산드리아파의 주장으로 알려진 것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이 조심스럽지만 아폴리나리스의 견해를 따랐기 때문이다. 아폴리나리스는 예수가 신적인 로고스와 인간 육신의 결합으로, 예수는 “하나의 본성(one nature)"을 보여준다.

이 주장에는 완전 통합되었다면 인성의 불완전함 또는 신성의 가변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안디옥(시리아) 기독론인 <말씀(로고스)-인간> 기독론은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진 분으로 본 것이다. 이 주장의 주창자는 몹스에스티아(다소의 동쪽)의 데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약 350-428)였다. 이 주장에는 위격의 나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논쟁의 발생은 인간은 성육신의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상호 관련 되는 지 살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심각성은 이 논쟁이 개인적 감정싸움으로 더욱 크게 확대되고 촉발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가 경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권력은 로마에 있었다.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는데 좀 더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논쟁과 토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감정싸움으로 번져 상대를 그만 서로 파문과 추방이라는 정치적 행위로 해결하려한 안타까움이 역사 속에 남아있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시릴(Cyril, 444년 사망)과 안디옥의 견해를 대변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훗날 동방의 경교로 발전) 사이의 충돌로 시릴의 강한 성격은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논쟁 중에 그만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말았다(431년 에베소 공의회).

네스토리우스뿐 아니라 아폴리나리스도 아리우스(도올은 물론 이 아리우스도 적절히 두둔하면서 부활시키고 있다)를 반대했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한 이단으로 정죄(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된 것을 볼 때 참 된 진리의 바른 신학의 길로 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깨닫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초대 교회가 좀 더 냉철하고 치열한 논쟁과 토의 속에서 각자의 견해 속에 있는 서로간의 주장 속에 있는 쟁점의 장단점들을 잘 판단하고 기도하면서 서로를 끝까지 설득하고 끝까지 보듬어 안으면서 일치된 결론을 도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의 죄성과 미숙함 때문이라 해야 할까? 이 논쟁의 내막을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인 존재인가를 느끼게 된다. 아무튼 역사는 이 주제에 관한한 알렉산드리아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미세조정의) 논의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로고스기독론 신학에 대한 도올의 인식

이만큼 로고스기독론 논쟁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올은 마치 로고스기독론을 잘 아는 것처럼 가볍게 지나쳐버린다. 그뿐이 아니다. 한술 더 떠 그는 불트만을 동원하여 세례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의 신화적 구조에서 왔다거나, 영지주의 만다이즘(Mandaeanism)과의 직접적 교섭에서 생겨났을 거라고 소개(Jesus and the World 24)하거나 “세례는 동방에서 왔다”며 실상은 “우리나라 무속에서 발견된다는 정화예식이 오히려 기독교세례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일지 모른다”고 예수의 세례 받음을 격하시킨다. “한국 교계의 가장 큰 맹점이 교리적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 오류를 광정하는 데 도마복음서가 한없이 유용한 자료를 제공한다”(『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98)는 도올의 주장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지주의 위서들까지 동원해 한국 기독교신앙의 환단고기화 작업까지 나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카고 드폴대학의 역사적 예수연구가 존 도미닉 크로쌍(J. D. Crossan)을 동원해 “야고보가 예수 가족 중 맏형으로 동생 예수의 천국운동을 뒤에서 후원한 사람”이라기에 하는 말이다(『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264). 이렇게 예수의 기독론은 도올의 “아래로부터의 신학”에 의해 일거에 무시당해 버려진 주제가 되어버렸다.<계속>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