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건전한 자들에 의해 성령세례의 징조로 둔갑

교회를 말씀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사탄의 무기는 거짓 은사이다. 신자들이 마귀가 풀어놓은 거짓 은사의 세계에 빠져들면 건전한 ‘신앙의 틀’이 급속하게 변형된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확신, 헌신, 열정이 일어난다. 그래서 미혹의 영이 일으키는 거짓된 은사를 분별하는 싸움은 그 어떤 문제보다 어렵고 고약하다. 바른 말을 해 주어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성령훼방’을 들먹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성령훼방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죄악을 뜻하는 무서운 말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계시가 전파되도록 역사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지상에 오신 성령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전도이다. 성령이 하시는 모든 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에게 알리시고 적용시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성령훼방’이란 말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구원 진리를 알아가는 거룩한 사역을 방해하는 극악한 죄악을 뜻하는 것이다. 이 일은 사탄이 벌이는 일이므로 그 일에 쓰임받는 사람에게는 죄사함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무서운 말씀을 자기의 사욕을 위해 사용한다. 성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 느낌을 성령이 행하시는 일이라고 우기면서, 그 일을 분별하려는 사람을 향해 성령훼방 죄악을 범하여 영원히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과 무관한 거짓 방언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이 말이 흔하게 들려온다. 귀신의 거짓 방언을 분별하여 하나님과 무관한 가증한 일임을 담대하게 증거하면 "성령훼방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더럽히고 있는 경우를 나는 자주 보았다. 지금 이 시대에 만연해 있는 성령과 무관한 거짓된 방언 현상들이 시연되는 실제 장면을 보자.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성경의 방언이라고 오도되어 지금 교회에 정착되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자. 


교회사 속의 성경의 방언

방언이라고 오도되는 옹알거림 현상은 무슬림, 힌두교, 몰몬교, 불교, 샤마니즘, 최면실습 등의 다양한 다른 종교들에서도 나타난다. 과연 성경의 방언이 지금도 존재하며 신자들의 신앙을 돕고 있는  현재의 성령의 은사인가? 하는 문제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나는 성경의 방언을 사모하고 있고, 성경의 방언이 지금 전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사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약 150년경부터 1800년 말까지 살았던 모범적인 성도들과 목회자들 중에서 성경의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이나 증거나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계시의 완성과 신약 교회가 설립된 이후 종결되었다라고 이해한다. 개혁주의 신학이 성경의 방언이 없어졌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 이후 역사 속에서 교회사 속에서 성경의 방언의 실제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그렇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은사주의에서는 초대교회 이후 세상의 영향을 받아 교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교회로, 세상의 관료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어 방언이 없어지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 
 

1. 이레네우스의 간접 증언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을 통하여 사도들의 신앙을 접했던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 이레니우스(Irenaeus, 135-202)가 남긴 글에서 성경의 방언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그 내용은 이레네우스 자신에게서 성경의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거나 그의 교회에서 방언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다는 내용이 아니다. 이레네우스는 방언을 말하고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레네우스가 자신의 책에서 방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의 교회 속에서 성경의 방언이 완전히 끊어졌었는지,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레네우스 자신에게서 성경의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고, 또한 그 당시의 교회에서 성경의 방언이 사도들의 시대와 같이 흔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레네우스가 전혀 배운 적이 전혀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성경의 방언 은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은 성경의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에 의해 성경저술이 실질적으로 완료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구별이 철폐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후 실질적으로 교회에서 보기 힘들어졌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2.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의 직접적인 증언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대주교였던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은 고린도전서를 해석하면서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였던 성경의 방언은 이미 사라졌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경의 방언에 대하여 가장 많은 가르침을 남긴 사도 바울의 신학을 계승하여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의 발판이 된 스승이라고 평가되는 어거스틴(Augustine, 354-430)도 고린도전서를 강해할 때 실제 외국어였던 성경의 방언이 사라졌고, 그 당시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3.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증언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성경의 방언은 나타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의 방언에 관한 견해는 그 이전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와 동일했다. 초대교회 이후 조용히 사라진 성경의 방언이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도 성경의 방언이 초대교회 이후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였고, 고린도전서를 강해하면서 성경의 방언이 그 시대의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였다고 가르쳤다.
 

4. 초대교회 이후 방언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이단들

1906년부터 미국의 이단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옹알거림 현상이 확산되기 이전에도 사이비 방언은 2,000년 교회사 속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성령운동 그룹이었던 몬타누스파(Montanist)에게서 성경의 방언과 유사한 사이비 현상이 나타났으나, 몬타누스가 자신이 요한복음의 보혜사의 사도라고 주장하고, 성령이 새로이 부어진다고 하고, 자신이 새 예루살렘의 선지자라고 주장함으로 인해 A.D 230년 이고니움 회의를 통해 몬나누스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신앙이 정죄되었다. 중세 시대에도 신비주의 그룹들에게서 사이비 방언 현상이 더러 나타났으나, 정통교회의 신앙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3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교회에서 성경의 방언이 나타났다는 증거는 거의 전무하다. 만일 성경의 방언이 기독교를 확립하는데 사용된 초대교회의 특별하고 일시적인 수단, 즉 사도적인 은사가 아니었다면 왜 초대교회 이후 이렇게 오랜 동안 방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방언 은사주의자들은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가 아테네 중심의 지성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지식 중심의 종교로 변질되었고, 성령의 역사하심보다는 이성적인 논리와 사유를 더 중시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다. 가장 설득력있는 대답은 만일 성경의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예언이 주어지는 것이고, 예언이 지금 존재한다면 성경의 완성을 통하여 확립된 계시의 종결성과 충족성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기둥이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방언을 거두어가셨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이비 방언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1800년대 말의 영국 사람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이다. 1828년부터 그에게 특별한 영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며 그의 신학이 변질되어 인간의 타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였고, 환상 등의 신비한 체험을 중시하였다. 그때 그에게서 옹알거리는 괴이한 소리 현상이 나타났고, 연구자들은 그것을 현대의 거짓 방언의 기원으로 간주한다. 


방언 운동의 아버지 찰스 펄햄은 이단

▲ 찰스 펄햄

현대 방언운동의 직접적인 기원은 1901년 1월이다. 캔자스 주 토페카(Topeka)에서 ‘벧엘성경학교’(Bethel Bible School)라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찰스 펄햄(Charles Parham, 1873-1929)과 그의 학생들에게서 현대 방언운동의 문을 여는 현상이 발생했다. 펄햄은 괴이한 소리현상을 체험하고서 종말의 대 부흥을 가져올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세례가 재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외국에 선교를 떠나기 위해 외국어를 힘들여서 공부할 필요가 없이 그 방언을 받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당시에는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아 외국에 나가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나, 훗날 외국에 나가서 자신들의 방언을 현지인들을 상대로 실험해 본 사람들은 크게 낙심하게 되었다. 그들이 받은 방언은 외국의 어떤 나라의 언어와 비슷한 사운드를 가졌을 뿐 현지의 언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리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의 사이비 방언을 경계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은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이단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찰스 펄햄도 이단이었다. 그는 ‘불 세례성결교회’(Fire-Baptisted Holyiness Church)를 운영했던 벤자민 어윈(Benjamin Irwin)에게서 크게 영향받았다. 어윈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완전(perfection)과 권능을 가지기 위해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는 소리를 지르는 현상, 입신, 방언, 특별한 춤(holy dances, 성령춤?), 이상한 웃음(holy laught, 거룩한 웃음?)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지저분한 신사도 운동 집회가 이미 그 당시에 등장한 것이다. 

펄햄은 퀘이커 교도인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고, 1896년 12월 그의 손녀와 결혼하였다. 그래서 펄햄도 퀘이커 교회의 이단 사상을 수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자들에게 임하는 영원한 심판을 부정하였고, 이단 ‘여호와 증인’, ‘안식일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소멸된다고 가르쳤다. 

찰스 펄햄은 메인(Maine) 주의 더햄(Durham)에서 ‘실로’(Shiloh)라는 신앙공동체와 ‘성령과 우리성경학교’(The Holy Ghost and Us Bible School)라는 신학교를 운영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기사와 이적’(sings and wonders)을 일으키시는 마지막 시대의 부흥이 일어난다고 가르쳤던 프랭크 샌포드(Frank Sanford)에게서도 크게 영향받았다. 당시 샌포드가 주장했던 내용은 피터 와그너가 주창한 제 3의 물결의 선두주자 존 윔버가 일으킨 빈야드 운동의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사상과 거의 유사하였다. 

샌포드는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들의 삶과 능력을 재현시킬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샌포드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사모하는 경향이 함께 나타났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신앙능력의 회복되기 위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들이 다시 나타나면서 종말의 대부흥이 시작된다는 그릇된 사상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샌포드 자신도 1901년까지 방언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펄햄이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을 외국어라고 믿고 사도들의 신앙이 재현되는 종말의 부흥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단에게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펄햄은 신약의 교회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에 대해서 오해한 샌포드의 ‘앵글로-이스라엘주의’(Anglo-Israelism)이라는 이단사상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펄햄은 ‘앵글로-색슨’(Anglo-Saxons)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의 후손이라고 가르쳤고, 현재의 영국과 미국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은혜를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펄햄은 1900년 10월 그의 나이 27세였을 때 캔자스 주 토페카(Topeka)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으나,  그의 사이비 방언 운동에 대해 다수의 학생들이 반발하자 폐교하고 떠나야만 했다. 1905년 택사스(Texas) 주 휴스턴(Huston)에 정착하여 더욱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의 사상을 요약하자면 ‘사도적인 신앙’(Apostolic Faith)이었다. 펄햄은 자신이 저술한「사도의 믿음의 설계자」(the Projector of Apostolic Faith)라는 책에서 자신이 새로운 성령의 시대를 개막시키는 세례요한이라고 말하였다. 미혹하는 영이 좋아하는 거짓 은사를 추구하다가 그만 확실하게 이단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펄햄은 더욱 더 이상한 행동을 했고 점점 이상해졌다. 1905년에 자신의 이단 사상을 따르는 약 25명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복을 입히고서 함께 휴스턴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자신들이 오순절 군대라고 선포하며, ‘사도적 기독교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선언하였다. 마귀가 준 옹알거림 현상을 외국어 방언이라고 믿으면서 시작된 이단광증이 점점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만난 커더로스(W. Faye Carothers) 목사의 교회를 본부로 삼고서 본격적으로 ‘사도적 믿음 운동’(Apostolic Faith Movement)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신사도 운동, 즉 사도들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여 종말의 대부흥이 나타난다는 요설의 시작이었다. 오늘 날 전 세계 교회의 30% 정도가 크게 영향받고 있는 사이비 방언운동이 이렇게 등장한 더러운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이반 로버츠의 이단성

1904년에 일어났던 웨일즈 부흥(Welsh Revival)에서도 사이비 방언이 나타났다. 웨일즈 부흥의 중심인물은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라고 하는 청년 목회자 지망생이었다. 1906년에 시작된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옹알거림-성령세례’ 현상이 이반 로버츠를 통하여서도 나타났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굴복하기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반 로버츠는 사람들에게 성령에게 굴복할 것을 매우 강조하면서 성령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고, 그때 옹알거림 현상을 비롯한 비성경적인 성령세례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반 로버츠는 영적으로 매우 불건전한 사람이었다. 오늘 날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신사도 운동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환상과 같은 신비주의 현상이 그에게 나타났다. 이반 로버츠의 이단성이 그 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은 신사도 운동을 옹호하는데 크게 기여한 신사도 운동 신학자 예영수 목사가 발행한「카리스월드」에 소개되었던 웨일즈 부흥의 대표 이반 로버츠에 대한 내용이다. 

“1904년 봄 어느 금요일 밤, 로버츠는 침대 옆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1시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과 공간이 없는 위대한 ‘거대함’으로 들리어져 갔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움에 쌓여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4시간 동안 마치 친구와 대면하여 말을 나누듯이 하나님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5시경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는 5시부터 9시까지 잠을 잤는데 또다시 9시부터 12시나 오후 1시까지 같은 체험을 했다. 그는 이 체험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것 외에는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3-4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이런 대화가 계속됐다. 그 결과 로버츠의 성격이 변화되었으며,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웨일스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사 하실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로버츠는 새벽 1시마다 깨어나서 4시간 동안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 그 4시간 동안 그는 분명히 많은 환상을 체험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환상 중의 하나는 달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달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펼친 팔과 손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1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환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부흥운동이 웨일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웨일스에 부흥운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말하고 사역 팀을 구성했다.”

“10월이 지나자 로버츠는 환상 가운데 자신이 고향 로우골에 있는 교회에서 특별히 젊은 사람들과 옛 동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환상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써도 계속 그 환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10월 30(일) 저녁예배 때 주님은 그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알았어요!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가겠어요.’라고 했더니 환상이 즉시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찬란한 빛을 경험했다. ‘온 교회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서 단 위에 계시는 목사님이 희미하게 보였어요. 목사님과 나 사이에 태양 빛과 같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이후 갑자기 부흥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여 지칠 줄 모르게 지속됐다.” 


현대 방언의 시초인 아주사 부흥은 이단운동

옹알거림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주사 부흥’의 대표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의 신앙을 살펴보면 우리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이모어는 ‘하나님의 부흥운동’(Church of God Reformation Movement)을 이끌었던 마틴 냅(Martin Knapps)에게서 크게 영향받았다. 마틴 냅은 이미 성령을 받아 중생한 사람에게 다시 성령의 추가적인 임재가 있으며, 성도는 마땅히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는 매우 비성경적인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의 이런 사상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강조하였던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개념을 신자들이 노력함으로 추가적으로 경험하는 성령체험으로 변형시키는 그릇된 운동으로부터 나왔다. 마틴 냅은 자신이 역사의 종말 시대에 살고 있고,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큰 성령의 은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대 부흥이 일어난다는 말씀이 없다. 오히려 거짓 기사와 이적으로 미혹하는 이단 운동이 많아진다고 경고하는 말씀이 많다. 세이모어는 그런 류의 이단에게 매료되어 분별하지 못하고 빠졌다. 세미모어는 마틴 냅이 운영하는 신학교 ‘하나님의 성경학교’(God's Bible School)에 입학하여 부지런히 공부했다. 이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성도들”(Evening Light Saints)이라는 신앙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거듭난 신자에게 성령의 두 번째 은총이 임하여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성화될 수 있다고 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학습하게 되었다. 

세이모어는 1905년 휴스턴에서 찰스 펄햄이 두 번째로 운영하였던 신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이곳에서 펄햄에게서 그릇된 ‘방언-성령세례’ 사상을 배우면서 이단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마틴 냅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미 성령받아 거듭난 신자에게 또 다시 임하는 성령의 축복에 대한 그릇된 신학이론을 먼저 접하였으므로, 펄햄이 가르치는 ‘방언-성령세례’ 이론에 곧 바로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이모어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 190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으나 이단 사상으로 인하여 곧 바로 추방되었다. 방황하던 중 아주사(Azusa)의 한 성도의 집에서 몇 사람이 모여 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그곳에서 옹알거림 현상을 비롯하여, 끄적거리는 영서, 쓰러짐, 특이한 춤, 구르기 ... 등의 지금의 지저분한 신사도 집회의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미 말한 것처럼, 펄햄이 아주사에 방문하여 그러한 현상들을 직접 보고서 ‘영적인 매춘행위’를 중지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비판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불편한 사이가 되었고, 펄햄은 아주사에서 기껏 두 번 설교하고 소외되어 떠나야만 했다. 두 사람은 이때 결별하였고 이후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도 않았고 화해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아주 부흥의 실상이었고, 이렇게 등장한 옹알거림 현상이 전 세례로 확산되어 초창기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라고 주장되었고, 해외 여행이 많아지면서 실상이 드러나자 ‘영의 언어’라고 말이 달라졌다. 
 

아주사 부흥은 사실상 신사도 거짓 부흥

옹알거림 현상이 1900년대 초에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처음 시작될 때에는 추종하는 신자의 수가 매우 희박했다. 1900년대 초에는 세계 교회의 전체 신자들 중에서 불과 0.2% 정도가 이것을 성령의 방언이라고 믿으며 추종하였다. 그때 옹알거리는 현상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성령 안에서의 안식한다고 주장되는 ‘쓰러짐’ 또는 ‘무아지경’, 영계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를 받아쓴다는 끄적거리는 ‘영서’, ‘성령춤’이라고도 하고 ‘홀리댄스’라고도 하는 이상한 춤사위,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에 가락을 실어서 부르는 노래,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말해지는 떼굴떼굴 구르기 ... 등이 함께 나타났다. 

1906년에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괴상한 운동의 실상을 직접 읽어보도록 하자. 다음은 당시 아주사 부흥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이 쓴 책, 잡지, 홍보지 등에 실렸던 내용들이다. 아주사 부흥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였던 존 G. 레이크라는 사람이 저술한「하나님과의 모험」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 당시에 이미 방언찬양이라는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이 흔하게 나타났음을 기술하고 있다.    

“집회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천상의 합창단’이다. 몇 몇 사람, 혹은 20명 정도가 알지 못할 방언으로 노래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지시 하에 이뤄졌다. 참으로 하늘이 지상에 임했다.”

다음은 1906년 아주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미화하는 글을 써서 널리 홍보하였던 프랭크 바클맨(Frank Bartleman, 1871-1935)이 자신의 저서「아주사의 거리」에서 쓴 내용이다. 그때 쓰러지고 구르는 현상이 매우 흔했을 말해준다.   

“누군가 말하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회중 위에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강단 초청을 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전투에서 칼에 맞은 것처럼 집안 여기저기에 쓰러지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 무더기로 강단을 향해 돌진했다.”

다음은 아주사 부흥을 일으킨 지도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가 자신의 신앙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창간한 잡지 “사도적 믿음” 제 1권, 제 6호에다 기술한 무엇을 받아서 쓰는 끄적거리는 영서에 관한 내용이다. 

“3월 21일 워싱톤 주 스포케인 - 하나님께 감사하자. 성령의 역사가 이 땅 끝까지 뻗어가고 있다. 30명 이상이 지난 며칠 동안 이곳 스포케인에서 오순절을 받았다. 이들은 방언을 하고, 글을 쓰며(영서?)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당시 윌리엄 세이모어는 이러한 일들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스승 찰스 펄햄(Charles Parham)을 아주사로 초청하였다. 세이모는 자신의 선생으로부터 격려와 칭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펄햄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서 도저히 성령의 역사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고, 두 사람은 사이가 나빠져서 더 교제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때 섭섭하게 헤어지고 난 후 죽는 날까지 만나지 않았다. 

“최면술사들과 심령술사들이 집회를 다 점령해 버렸다!”

“우리는 ‘홀리 로울러’(holy rollers, 집회 중에 바닥에서 뒹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들이 운동선수처럼 몸을 뒤트는 것에 동조하거나 찬성하지 않습니다.”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으로 진행

추잡하고 거짓된 소리 현상을 방언이라고 받들면서 추앙하는 일이 처름 시작될 때, 그 당시 복음적인 교회들은 이런 현상에 동조하는 목회자가 나타나면 성도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치리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세력이 커졌고, ‘오순절 운동’(Pantecostal Movement)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1914년에는 이 운동을 전면적으로 표방하는 새로운 오순절 운동 교단,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가 창립되었다. 이후 짧은 시간 동안에 오순절 운동은 더욱 확산되었고, 1930년대에는 오순절 운동을 추구하는 교단의 수가 약 30여개로 확대되었다.  

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운동의 여세가 약화되는 듯했으나, 60년대에 ‘은사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나타나서 다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이 운동을 거부했던 개신교의 많은 복음주의 교단의 교회들 속으로 이 운동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 속으로도 이 운동이 전파되어 더욱 그 세력이 확대되었다. 

80년대 이후 이 운동은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조금 특징을 달리하여 ‘신사도 운동(빈야드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새롭게 다가와서 큰 파도를 일으키며 전 세계 교회를 공략하였다. 특히 이 운동은 제 3세계 국가들 속으로 스며들어 이후 “제 3세계의 교회들이 두드러지게 부흥한다!”라는 그릇된 말이 생겨났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지금 전 세계 교회의 약 30%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이 운동에 물들었다고 한다. 

 

정이철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목사,
           바른믿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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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