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루터, 칼빈을 비롯한 정통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았다면 태초의 자연적 상태에서 그대로 영생을 누렸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생명나무를 세우시어 그 사실을 아담에게 영원히 언약하셨다고 이해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만든 대요리문답은 개혁교회의 신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신앙문서이다. 대요리문답의 20항은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면 영원히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생명 언약을 맺으셨고, 그 증거로 에덴 동산에 생명나무를 세우셨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21항에서는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태초의 그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한다.

범죄 이전의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태초의 그 상태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영원한 죽음의 심판에 처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죽이고 다시 흙으로 다른 아담을 창조하여 자기 백성 삼으실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아담에게 주신 처음의 언약을 복구하시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고 언약을 주셨던 아담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켜 영원히 살게 만드시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로 아담의 죄를 씻으시어 마치 죄가 없었던 것처럼 만드셨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범죄로 인해 한 번은 죽어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대신 속죄의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 결과적으로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사랑이 나타나게 만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얻은 아담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은 영원한 생명이니, 아담의 범죄가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경험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해야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 이해이다. 청교도들처럼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과는 관계없이 영생 획득의 수단인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면 기독교는 망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고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더 놀라운 은혜로 마치는 종교이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영생에 도달해야 하도록 하나님의 창조하셨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은혜를 죽이고 대신 인간의 공로의 빌미가 되는 율법 준수를 높인 것이다. 

바로 이 개념이 청교도 운동의 언약 신학, 즉 행위계약 사상이다. 청교도 사상이 성경적 신앙 노선과 일치하는지, 또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 같은 사상인지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도 바로 이 행위계약이다. 청교도들의 아버지 윌리암 퍼킨스가 아담의 원죄와 영생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과 칼빈의 성경적 사상과는 다른 내용의 행위계약 신학을 도입함으로 이후 청교도 신학은 거의 모든 면에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음에도 시정되지 못했고, 오히려 “개혁신학이 칼빈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되지도 못하는 주장이 더 강하게 나오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자유주의 신학교와 감리교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웠던 칼빈신학교의 교회사 교수 리차드 멀러였다. 리차드 멀러는 청교도 언약 신학의 출발점인 행위계약 사상의 정당성을 어떻게 설명하였을까? 놀랍게도 멀러는 행위계약의 정당성이 추론에 근거한다고 했다. 추론은 칼빈을 비롯한 정통 종교개혁 신학자들이 매우 경계하였던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천주교 신학자들이 아리스토 텔리스의 철학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수행했던 신학의 방법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경계했던 이것이 칼빈이 죽은 후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의 신학방법으로 다시 자리잡았다. 이것을 개신교 스콜라주의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청교도 신학자들은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들이었다.

청교도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 존 오웬에게서 나타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흔적을 보자.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율법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율법에 대한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151)

오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용서 얻게 하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십자가만으로는 우리를 천국에 가게 만들지는 못하였으므로 우리 대신 율법을 다 지키셔야만 했고, 그래서 더 일찍 죽으시지 않고 오래 사시면서 율법을 지키신 후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설명했다. 성경에서 1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괴변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대체 오웬은 왜 이런 황당한 거짓 신학의 늪에 빠지고 말았을까?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사람의 철학적 사변과 추론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의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먹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다. 그 시대의 학자들은 성경에서 명백한 근거를 찾을 수 없어도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의 방법을 따라 하나님과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그러다보니 죄와 무관한 출생으로 오시어 우리의 구원, 거룩, 의로우심, 지혜가 되신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사상과 가르침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행위계약 사상이 칼빈의 신학과 같은 내용의 신학이라고 오도하는 리차드 멀러 역시 추론을 중요한 신학의 방법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행위언약 교리는 17세기 개혁주의 신학 체계 속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교리로서 단순히 성경에 밝히 언급된 교리가 아니라 연관된 성경적 논제들 혹은 교리의 항목들을 조사하고 비교한 결과로 산출된 교리의 사례를 보여 준다.”(멀러의 말/ 429)

아담이 영생과 무관하게 창조되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얻도록 정해졌다는 청교도 신학의 출발점인 행위계약이 성경에 밝히 나타나는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고 다른 교리들과 비교함으로 얻어진 교리라고 멀러는 말한다. 즉 교리가 또 다른 교리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행위계약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의 특성이다.

“행위언약 개념은 비록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지지만 이차적인 혹은 파생적인 교리 범주에 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범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언급된 해석의 준칙에 잘 설명되어 있다.”(멀러의 말/ 429)

명확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 진 또 다른 이차적인 교리로서 행위계약이 탄생되었다는 뜻이다. 청교도 신학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멀러의 말의 의미를 금새 알아차린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고, 동시에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변으로서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영생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이것이 하나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또 다른 이차적 교리가 탄생되는 원리이다. 멀러는 행위계약이 이차적으로 파생된 교리라고 했다. 그러면 그 원인이 된 일차적인 교리는 무엇일까? 그것을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이다.

청교도 신학과 청교도 신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추론을 수단으로 하는 신학 방법 매우 당연시한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성경에 나오지 않은 내용을 추론함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고 주장한다. 멀러도 자신이 강조하는 추론에 근거하는 신학(청교도 신학)을 웨민고백서가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다음의 웨민고백서 내용을 인용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 인간의 구원, 신앙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관계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의논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멀러가 인용한 웨민고백서의 내용/ 429)

물론 추론을 통해 신학이 세워질 수도 있다. 성경에는 새벽기도회라는 것에 대해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전반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새벽에 모여 기도하는 것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추론에 근거하여 증명하고 설명할 수 있다. 금요기도회, 신년기도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와 영생에 대해 추론에 근거한 신학을 만들고,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칭의와 구원에 대해서도 추론을 통해 신학을 세운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뼈대가 되는 이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 성경은 명확하게 계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둥이 되는 교리는 반드시 성경 계시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렘 33:1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눅 23:47)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성경은 이와 같이 죄와 무관하게 출생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 구원, 거룩, 지혜가 되신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의 추론을 우상으로 삼는 청교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우리에게 의, 구원을 주었다고 지금까지 주장한다. 추론할 것이 있고 추론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청교도주의자들은 처음부터 몰랐다.

“행위언약 안에서 오류를 범하거나 그 언약을 부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은혜언약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보증에 대해서도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그의 능동적 순종이 택자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공로가 된다는 사실도 부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멀러가 인용한 브라클의 말/ 430)

청교도들은 추론으로 나온 능동순종 교리를 지지하지 위해 더 많이 추론하여 행위계약 신학을 만들었다. 장로교 역사신학자 윌리엄 커닝햄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도 성경이나 칼빈의 글에 나오지 않는 추론의 산물이라고 했다.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변(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m (Carlisle, PA: The Canner of Truth Trust, 1979), 404.)

멀러는 릴백의 말을 인용하여, 칼빈도 영생과 무관하게 창조된 아담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영생에 도달했어야 했다는 이해를 가졌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했던 말들을 보면, 그가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는 말을 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릴백은 행위언약 교리가 신학적 논증과 해석학적 논증을 통해 추론된 것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교리는 언약의 중세적인 개념과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다수의 선행자들의 개념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선행자들 중에 칼빈이 있으며, 비록 웨이어와 다른 학자들은 칼빈의 사상에서 행위언약 개념에 대한 일말의 암시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칼빈의 사상에는 비록 단순한 형태지만 행위언약 개념의 구체적인 암시가 발견된다.”(멀러의 말/ 433-434)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다시 돌려)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기독교강요, 4.14.12)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기독교강요, 2.1.5)

 

맺는 말

청교도들은 개혁운동의 성공을 위해 아담의 원죄와 영생에 대해 왜곡하는 행위계약 개념 만들어 우리의 신앙을 성경의 가르침과 어거스틴, 루터, 칼빈의 정통 신학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교리들은 명확한 성경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 추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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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