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혁 교수의 '언약신학' 2장 : 윌리엄 퍼킨스 부분에 대한 첫 번째 소감

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의 저서 <언약신학>을 독서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신앙이 기독교에 해를 미치고 있고, 특히 그들의 개혁운동의 시작인 행위계약 사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안 교수의 책 1장에 대한 소감 “내 사랑​​ 웨민고백속의 행위계약 다루는 안상혁 교수 책”에서는 행위계약의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추론으로 나온 교리를 그 근거로 의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안 교수에게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지 않음도 확인했다. 2장의 리처드 그림햄(Richard Greenham, 1535-1594) 부분에 대한 소감 “안 교수님! 행위계약-회심준비론의 연관성을 알아야 해요!”를 통해 목회자들이 비성경적인 행위계약 사상을 기초로 목양에 힘쓰면 회심준비론이라는 더욱 비성경적인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2장의 뒷부분 윌리엄 퍼킨스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햄이 사망할 즈음, 곧 16세기 말부터 언약 신학은 본격적으로 영국 청교도 사이에 가장 주목받는 주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윌리엄 퍼킨스를 비롯하여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존 볼(John Ball, 1585-1640), 그리고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 등과 같은 청교도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두 언약 신학에 관한 중요한 저서들을 출판했다.”(안 교수의 말/ 108 페이지)

안 교수는 그린햄이 죽을 무렵에 영국에서 언약 신학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무렵에 잉글랜드의 어지간한 목사들 대부분이 언약 신학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 내막을 알아야 한다.

그린햄은 1594년에 죽었는데, 그 무렵은 1558년에 등극한 엘리자베스 여왕(1603년 사망)이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을 통치하고 있을 때였다. 잉글랜드에서 언약 신학에 대한 관심은 15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도 쯔빙글리, 볼링거, 텐데일, 칼빈, 울시누스 등을 통해 성경의 언약에 대한 부분적인 언급과 관심이 간헐적으로 일어났었다.

그러나 언약 신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5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 원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서 자기의 입지를 튼튼하게 세우는 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1564년, 캔터베리 대주교 매튜 파커(Matthew Parker)가 여왕에게 올린 보고서(논문? 책?)에서 국교회의 공동기도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Puritans’(청결한 사람들), ‘Gehnnial’(지옥의 사람들), ‘Presbyterian’(장로교주의자들), ‘Precisian’(까다로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 때 파커가 언급한 특별한 말들 가운데 ‘Puritans’이라는 단어가 여왕과 국교회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잉글랜드의 개혁자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이 청교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사람들의 주된 주장은 영국에 칼빈의 장로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왕은 장로제도가 도입되면 국교회의 감독제도가 약화될 것이므로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배척했다. 엘리자베스 치하에서 청교도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개혁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더 이상 왕의 도움을 받아 종교개혁을 진행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창안한 새로운 개혁운동 전략은 사회의 낮은 계층의 일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종교를 개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작업의 선두주자가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윌리엄 퍼킨스였다. 장로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던 잉글랜드의 청교도 운동이 신학과 사상 중심의 개혁운동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왕이 싫어하는 것을 주장하지 않고 영국의 국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개혁운동이 되도록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퍼킨스가 주도하여 개혁의 중심적 이슈를 사상과 신학으로 전환시켰다.

왕국 국교회 측에서는 청교도들의 새로운 전략에 대해 주의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청교도들의 새로운 전략은 불과 몇 십년 후에 큰 열매로 나타났다. 1640년대 초, 잉글랜드 국왕과 국교회를 대적하는 내전이 일어났을 때, 청교도 개혁운동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청교도들의 새로운 전략의 결실이었다. 권력층의 관심을 끌지 않는 사상과 신학의 개혁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개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과 구원을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으므로, 청교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의회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 변화가 시작된 때가 그린햄이 죽을 무렵이었다.
 


안 교수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전까지 잉글랜드의 개혁자들은 특별한 신학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유럽에서 칼빈이 이루어 놓은 종교개혁 신학을 따르는 것을 당연시했다. 북쪽 스코틀랜드에서 이미 진행된 종교개혁은 칼빈과 기독교강요의 결과물이라고 할 정도로 존 낙스가 칼빈에게서 배운 것이 그대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새로운 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퍼킨스의 생각은 존 낙스와 매우 달랐다. 낙스처럼 칼빈에게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신학으로는 잉글랜드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종교를 개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칼빈의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은 국민들을 더 나태하게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퍼킨스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잉글랜드 백성들이 스스로의 종교를 개혁하는데 더 유리하도록 수정하기 시작했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 3:22)고 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기독교강요, 4.14.12)

"루터교회는 아담의 창조시 그가 이미 영생을 소유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하늘의 영생에 이르기 위하여 하나님과 언약 체결이 필요 없는 것으로 보나, 개혁 신학은 아담의 목표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길의 시작점에 서 있었으므로 더 높은 영광에로 이월하거나 죄에로의 타락 상태에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생에 이르기 위해 언약을 통하여 자발적이고 완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바쳐드려야 할 것으로 가르쳐 왔다."(하나님의 구속경륜, 40-41)

이와 같이 루터와 칼빈 등의 정통 신학자들은 아담이 영생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퍼킨스는 아담의 창조에서부터 루커와 칼빈의 성경 해석을 수정했다.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무관하게 영생의 수단이 되는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왜곡했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스스로 영생에 합당한 최선의 행위(율법준수)에 도달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기로 상호간의 계약을 했다고 성경과 칼빈의 신학을 각색했다.

영생이 없는 아담이 영생을 위해 스스로 노력했어야 했다는 창조론-인간론, 이것이 바로 청교도 언약 신학의 출발이다. 이것이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과 장로파 청교들과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함께 만든 웨민고백서에 기술되어 있는 행위계약 사상이다. 퍼킨스가 도입하여 청교도 언약 신학으로 자리잡은 행위계약은 권력층의 핍박을 받지 않고 국민들이 스스로 자기의 종교를 개혁하게 만들기 위한 청교도들의 신학적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퍼킨스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원래 사람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도록 창조되었다!”라고 신천지 같이 모략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국민들은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얻는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이 노력하여 얻는 것이라 믿고 구원을 위해 몸부림치는 거짓 부흥의 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청교도 부흥운동의 뼈대가 되어 훗날 신대륙의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에서도 중요한 흐름이 되었다.

“청교도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두 언약 신학에 관한 중요한 저서들을 출판했다.”(안 교수의 말)

안 교수의 이 말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모르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다. 거짓된 행위계약 신학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니,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믿고 교회 생활의 나태함을 버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열심을 내는 눈에 보이는 거짓 부흥이 일어났다.

안 교수는 2장의 앞부분 그린햄 부분에서 행위계약 사상에 근거한 목회를 충실했던 청교도 목사 그린햄이 목회 상담에 능했는데, 그의 신자들이 자주 "목사님, 과연 저는 구원 받도록 예정되었을까요?"라고 상담했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은혜-주권, 그리고 사람의 영적 각성과 노력이 협력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청교도 신학으로 인해 나타나는 목회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린햄이 죽던 무렵,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이 언약 신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기술하는 책을 집필했던 이유는 행위계약 거짓 신학의 바이러스에 전염된 청교도 영성 확진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위 언약 신학에 대한 책을 부지런히 쓰기 시작했고, 그들의 책들이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청교도 고전으로 읽혀지고 있다.

잉글랜드 청교도들이 집필한 책들이 스코틀랜드에도 전파되었고, 스코틀랜드 언약도(장로교)의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그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확진자가 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안 교수가 최근 번약하여 출판한 책 <생명언약>을 저술한 사무엘 루더포드이다. 루터포드는 이미 행위계약과 능동순종 바이러스에 전염된 스코틀랜드 거짓 개혁 운동의 확진자였는데, 스코틀랜드 언약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웨민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루더포드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언약도 대표들은 웨민총회의 투표권이 없는 참관인들이었으나, 먼저 종교개혁을 이루었고 또한 군사적으로 잉글랜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웨민총회의 다른 총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웨민고백서 7, 19장에 회중교회의 아버지 퍼킨스에 의해 도입된 비성경적인 행위계약 사상이 기술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그림햄이 사망할 즈음, 곧 16세기 말부터 언약 신학은 본격적으로 영국 청교도 사이에 가장 주목받는 주제가 되었다.”(안 교수의 말)

그린햄이 죽을 무렵에 언약 신학(행위계약)이 잉글랜드 청교도들에게서 가장 주목 받는 주제로 떠 오른 이유는 권력층과 충돌하지 않는 새로운 청교도 개혁운동 전략을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관심두지 않는 사상과 신학을 통한 국민 개인들의 신앙 개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것은 종교개혁 완성자 칼빈의 이신칭의 신학과 예정 신학이 청교도들에 의해 수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칼빈의 하나님의 은혜, 예정,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으로는 국민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개혁 운동을 이루어낼 수 없다고 그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퍼킨스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각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내는 거짓 신학의 힘이 당구공의 히네루 같이 잉글랜드 국민들의 영혼들을 팽팽 돌게 만들었다.

“퍼킨스는 당대의 가장 주목받는 청교도 지도자들 가운데 대표적자였다. 그린햄과 마찬가지로 퍼킨스의 설교와 저작들 또한 청교도의 목회 현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안 부루워드(Iam Breward)는 퍼킨스로 말미암아 실천 신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안 교수의 말/ 109 페이지)

안 교수는 퍼킨스로 말미암아 청교도의 실천신학이 시작되었다고 부루워드가 평가했다고 소개했다. 영생 없이 창조된 아담이 스스로 완전한 행위(율법)를 통해 영생을 얻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던 것처럼, 구원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이 노력하여 얻는 것이라는 행위계약의 거짓 신앙이 청교도 목사들 교회의 신자들의 영혼을 팽팽 돌리는 히네루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퍼킨스의 행위계약 신학으로 인해 드디어 청교도 목회가 크게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안 교수가 먼저 소개한 그림햄의 회심준비론 목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부터 행위구원론, 신인협력 구원론, 알미니안 구원론, 펠라기안 구원론이 더 교묘한 모습으로 잉글랜드 청교도 교회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회중파 청교도 목회의 실천신학인 회심준비론을 통해 그런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

“존 모르건에 따르면 퍼킨스의 신학적 틀을 형성했던 것은 바로 언약 개념이었다. 언약 신학 안에서 퍼킨스는 하나님의 예정과 성도의 경건한 삶(성화)을 조화롭게 연결지었다.”(안 교수의 말/ 109-110 페이지)

안 교수는 거짓된 행위계약 신학이 퍼킨스의 사상의 근본이라고 평가한 모르건의 말도 소개했다. 모르건은 퍼킨스가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받은 자의 경건한 삶(성화)를 조화되게 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신천지의 모략 같은 깊은 속임수가 자리한다. 칼빈은 오직 선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입어 예수 믿음에 도달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했다. 성화는 구원에 1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칼빈의 신학의 핵심이다. 칼빈은 성화가 오직 선택과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과 동시에 시작되는 구원의 열매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퍼킨스는 교묘하게 하나님의 선택과 사람의 경건한 삶(성화)이 협력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언약 신학을 가르쳤다. 칼빈의 개혁신학에 대한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잉글랜드의 백성들이 스스로 구원을 위해 노력하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그런 교묘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 모략을 청교도들과 청교도 추종자들이 다음과 같이 표현하므로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언약 신학 안에서 퍼킨스는 하나님의 예정과 성도의 경건한 삶(성화)을 조화롭게 연결지었다.”


맺는 말

우리는 청교도 운동의 동기와 발전 과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장로제도를 주장했던 청교도 운동이 언약신학(행위계약)을 만들면서 변곡점을 이루었고, 비성경적인 신학 운동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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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