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성경은 왜 요셉이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려갔다고 다르게 서술하는 지 궁금합니다. 

A.) 성경에 수많은(많게는 수천 군데) 난해 구절들이 있는 데 질문하신 내용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에 대해서는 학자들끼리도 일치된 견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가능성은 살펴 볼 수 있겠습니다.
 

(1) 미디안과 이스마엘은 혈통적으로 같은 사람인가?

일반적으로 미디안(창 25:1-2; 대상 1:32)은 아브라함과 그의 세 번째 아내(또는 후처) 그두라 사이에 태어난 네 번째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애굽 출신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삭의 이복 형(창 25:12; 대상 1:28)이므로 분명 이들 두 족속은 다른 조상을 가진 족속으로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2)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들을 동일시해도 되나?

야곱의 여러 아들 가운데 요셉은 성경 창세기 37장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37장에서 성경은 17세 소년 요셉을 형들이 죽이려다 유다의 제안으로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이 누구에게 팔렸는지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들 두 족속은 분명 다른 민족임이 분명한데 창세기 37장(25, 27, 28, 36)과 39장(1절)은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3) 이 난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 문제를 풀려면 지금 우리들의 상식과 판단이 아닌 모세 오경이 기록된 당시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사기에도 보면 이스마엘 족속과 미디안 족속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드온이 물리친 미디안군 조직은 엉뚱하게도 이스마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지요(참조 삿 8:24). 

오늘날 아랍이 비 이스라엘 후손들의 연합체인 것처럼 이미 모세 시대 때도 족속 간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에는 미디안 족속과 이스마엘 족속을 비록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족속이었음에도 같은 아브라함의 후처들 후손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구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해석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세가 요셉이 팔려간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두 족속의 관계를 불분명하게 표현했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4) 우리 역사를 통해 보는 옛 사람들의 역사 서술 방식

한 가지 역사적 보기를 들어보면 과거 한반도의 삼국시대, 중국 사람들이 볼 때 부여나 고구려나 백제는 전혀 다른 나라인 동시에 고구려나 백제가 모두 부여에서 분파된 '부여의 별종(別種)'들로 서술하여도 큰 혼란이 없던 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또한 주후 1-4세기 중국인들이 보기에 왜(倭)가 사는 지역은 지금의 일본이 아니라 중국 동부 해안 지역, 요동 해안 지역, 발해만 지역, 한반도 서·남부 해안 지역이 모두 왜(倭)의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이 교류도 쉽지 않고 국가 형성도 되지 않은 일본의 야요이(弥生) 시대(주전 3-주후 3년) 사람들에 지극한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광개토 비문에 나타난 '왜(倭)'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일본 땅 왜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 집니다. 왜가 일본을 상징하게 된 것은 광개토 대왕 이후 야마토 정권이 지금의 오사카 지역에 성립된 이후입니다. 8세기 성립된 일본이라는 국호조차 본래 일본이 창안한 이름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실로서의 기록(미디안과 이스마엘은 분명 다르다는 사실)과 보통사람들이 인식하고 통용하던 사회적 인식(비 야곱 후손들인 미디안과 이스마엘에 대한 구별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인식)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중화사상 가운데 주변 민족들(동/서/남/북 변방의 민족들)을 뭉뚱그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비하(卑下)하여 표현한 것이 그 보기입니다. 그럴 경우 중국인들이 보기에 자기들 동쪽에 있는 민족들은 자기들 멋대로 동이도 되고 조선도 되고 예맥도 되고 맥족도 되며 읍루도 되고, 부여도 되고, 고구려도 되고 발해도 되고 옥저도 되고 말갈로도 불렀을 것입니다.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인 셈이지요.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보기에 문제될 만큼 잘못된 명칭도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 모세 시대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지 않는 족속은 비록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일지라도 미디안이든 이스마엘이든 그저 비 이스라엘 족속일 뿐인 것이지요. 창세기가 요셉이 팔려간 사건을 기록하면서 혈통적 아브라함 후손들인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거라고 봅니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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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