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 목사
김현일 목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부합한 영적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에 필수적 요소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호흡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삶 가운데 상황과 닥쳐올 앞날에 대한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가는 기도는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힘써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택을 매일 받는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기도의 본질을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으뜸가는 특권이 기도이며 기도를 ‘믿음의 영속적 훈련’(perpetual exercise of faith)라고 부른다(기독교강요 III.xx.2). 즉 ‘우리의 심령 속에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즉시 터져 나온다’(칼빈의 마 21:22 주해). ‘기도를 통해서 믿음은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보화들을 캐낸다’(기독교강요 III.xx.1).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필요를 말로 알리는 믿음이다.‘(칼빈의 시 54:6 주해)라고 하였다. 기도를 하지 않거나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영적 게으름과 침체 더 나아가 죽은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너무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영적 호흡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하기를 항상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옥중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도로 항상 깨어 있기를 간절히 원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하였다. 즉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믿음과 소망을 가장 적합하게 행사하는 도구이며 방법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기도와 간구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응답을 받는 것이다. 간구는 주경학적 측면에서 ‘유개념(類槪念)’에 속하는 것이며 또한 ‘종개념(種槪念)’ 속한는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도로써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야고보도 확고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우리가 부족함 있어서나 한편으로는 감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기도의 간구가 없다면 우리 생활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을 만한 때에 찾으라고 말한다. 이유인즉 그의 시편 여러 곳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불만과 염려 골칫거리의 두려움과 그 외에 온갖 시련들이 우리를 너무도 가혹하게 짓누를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항상 초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항상” 기도하라는 그 명령의 말씀도 너무도 귀하고 참되다(엡6:18). 우리의 관점에 따라 아무리 만사가 형통하고 기뻐할 만한 일들로 가득 둘러 있어도 우리의 필요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강권하지 않는 때는 한순간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삶의 윤택함으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자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로 말미암지 않으면 한 조각의 빵도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위험이 매 순간 임박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기도하지 않는 때는 없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많은 세속의 것들과 죄악들이 언제 우리에게 죄책과 형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구하지 않고도 태평히 앉아 묵인하고 있을 것인가?

언제 세상의 유혹이 우리와 싸움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일을 불필요하게 할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열정에 가끔씩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기도해야 할 때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이들을 가까이 하실 것이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라 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더러운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갈망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시로 항상 힘써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힘쓰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칼테레시스(προσκαρτερησιs)"라는 말로서 이 말은 확고부동, 불변, 인내, 계속이라는 의미이다. 즉 기도를 할 때에 변함이 없이 인내하면서 끝 까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항상 깨어 계셨으며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비유의 말씀을 더하여 주셨다. 그 비유의 말씀이 누가복음 18장 1절이다.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표준 새번역에서)라고 했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응답을 받을 때까지 떼를 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해석하고 적용하려 하지만 이 비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인내하면서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때로는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어서 실망하고 낙망할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도 억울한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거나 아직 시기가 이르거나 우리가 잘못 구하여 들어주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은 편이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이미 기도는 다 들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끊임이 없이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비유의 말씀은 기도는 힘쓰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고 싶어서 기쁨으로 기도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 마음은 스스로 분주해져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보통 마음으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며 기도에 게으른 우리들의 말하는 소위 자기의 합리화이다.

그러므로 확신을 품고 수고로이 인내하며 기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기도를 계속할 수가 있다. 기도를 제대로 배워서 하려면 많은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다.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을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무시로 수시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깨어 항상 기도하게 될 때. 유혹을 이길 수 있으며 고난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쁘게 일할 수 있다.

구하기를 항상 힘쓰는 간절한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생명 없는 신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기도는 우리 영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한 해를 여시고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참조 딤전 4:4-5) 영적 승리를 할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칼빈의 기도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니고 결단코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리의 무가치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모든 신뢰를 내버리고 간청하는 자로 당신께 피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겸손하게 견인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께서는 진실하게 중심으로 당신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항상 함께 하시고 마침내 우리는 하늘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쌓아 놓으신 모든 복으로 충만할 것을 알게 하옵소서. 아멘.“[예레미야주석 66강 끝의 기도]

(예레미야 주석 2권 p.355)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