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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교수(하바드대학 M.Div, 옥스퍼드대학 Ph.D) /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정성욱 교수의 “한국교회에 들어와 있는 5가지 ‘가짜복음’”(크리스천투데이, 11월19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왜냐하면 매우 분별하기 어려운 거짓 복음의 사도 조나단 에드워즈를 한국 교회에서 최고의 우상이 되고, 거의 예수 그리스도와 맞먹는 신의 자리에 앉게 만든 대표적인 사람들 가운에 한 사람이 바로 정성욱 교수이기 때문이다. 과연 정성욱 교수는 무엇을 한국 교회를 망치는 가짜 복음이라고 진단하였을까? 정성욱 교수는 한국 교회를 망치는 가짜 복음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진단했다.

1) 교회 내적인 위기: 거짓 복음

“교회의 내적 위기는 또한 여러 가지 다른 복음, 가짜 복음이 한국교회 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과 깊이 관련된다. 그 다른 복음들에는 기복/번영주의, 율법주의, 방종주의, 신비주의, 영지주의 등이 포함된다.”(정성욱 교수)

2) 교회 외적인 위기 : 이단들

“교회 외적 위기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 여호와의 증인이 최근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몰몬교도 속도는 더디지만 증가하고 있다. 신천지가 벌써 20만이 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안증회)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구원파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선명 사후 통일교의 영향력은 많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정성욱 교수)

3) 사회윤리 붕괴 :

“성적 타락이 매우 심각한 ... 가정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혼율이 점증하고 있으며 ... 물질에 대한 탐욕이 ... 동성애 결혼과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세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정성욱 교수)

4) 정치적인 위기 :

“친북 주사파세력, 김일성주의자들이 정치 권력을 잡은 이후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고, 건전한 정치문화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와 그 궤를 같이 한다.”(정성욱 교수)

이와 같은 정성욱 교수의 진단은 과연 맞을까? 3,4번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1,2번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는 있으나, 정성욱 교수가 할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성욱 교수의 우상 조나단 에드워즈도 한국 교회를 죽이는 이단들 가운데 가장 분별하기 어려운 이단이기 때문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핵심 사상은 한국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거짓 복음이다.

필자는 정성욱 교수가 진정 한국 교회를 위하고 걱정한다면, 먼저 자신의 우상인 조나단 에드워즈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이단과 거짓 복음을 섬기면서 한국 교회가 거짓 복음과 이단 때문에 망해간다고 걱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자신부터 이단과 거짓 복음을 버리고 난 후에 한국 교회를 걱정해야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임을 정성욱 교수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성욱 교수가 아직까지 에드워드의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필자가 지금 말하는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성욱 교수가 사랑하는 우상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심각한 이단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없다.
 


1)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사상

에드워즈는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은 몸부림치면서 준비하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저주의 율법과 하나님의 진노를 접하여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후 사람이 영적으로 각성되어 자신의 영혼의 운명을 위해 염려하고 근심해야 하고, 그리고 사람이 스스로 예배, 기도, 봉사, 자선, 회개, 율법준수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언제 주실지 모를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비참한 상태를 스스로 깨닫고 염려하고, 예배와 기도, 회개준수에 힘을 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실 구원을 얻기 위한 자격을 갖춘다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바로 이것이 이단사상이 아니면 무엇이 무엇인가? 정성욱 교수는 이단들에게 눌려가는 한국 교회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단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2)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인합일 신비주의

에드워즈는 일찍부터 신비한 체험을 자주하였다. '묵상'(?)이라는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고, 또한 신비롭게도 삼위일체 하나님를 직접 경험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직통의 임재, 그리고 내면의(주관적인) 세계로 달콤하게 찾아오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만끽하면서 황홀하고 감미로운 시간을 가지는 신비적인 사람이었다.

에드워즈의 그런 모습은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가 아니고, 성령의 조명하심의 역사도 아니다. 에드워즈의 그런 체험은 중세의 버나드 등이 추구한 신인합일 신비체험이다.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은 신비적 명상을 통해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현상을 신인합일 체험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사람에게 거룩과 성화를 주고, 삶의 큰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런 체험은 수도사들에게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위해 일평생 명상하는 것을 매우 가치있게 여겼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그런 체험을 매우 자주 했으니, 명상 신비주의 세계의 최고 거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3)조나단 에드워즈의 거짓 성령의 역사

에드워즈가 설교하고 집회를 인도하면 어김없이 사람들에게서 기운이 빠지고, 움직이지를 못하고, 비정상적인 슬픔이나 통곡, 그리고 입신, 환상 등의 불건전한 체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에드워즈는 이런 현상들을 성령의 '신적인 빛'이라고 두둔하였고, 그것을 통해 거룩과 성화를 누리게 된다고 옹호하였다.

대각성 운동 중에 에드워즈가 벌이고 다닌 일들은 오늘 날 신사도운동 집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에드워즈를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으면서 신사도 운동을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성욱 교수는 답해 보기 바란다. 근본적으로 에드워즈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자가의 피의 구속을 신자와 교회에 적용하는 신약의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에드워즈는 성령을 부흥을 위해 아무 때나 하늘에서 땅으로 출몰하여 부흥을 도모하고 떠나는 하나님의 능력 정도로 보았다. 그러므로 성경의 성령은 그에게 역사하시지 못하였고 대신에 성령을 모조하는 악신이 재미나게 에드워즈와 함께 놀아났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에드워즈가 <신앙감정론> 저술을 통해 자신의 성령사역의 문제점을 반성했다고 하지만, 필자가 읽어보니 전부 다른 사람들과 마귀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한 감정의 문제라고 하였다. 에드워즈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자신의 신학적인 문제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부흥이 끝나고 해명하고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 여러 글들에서도 에드워즈는 결코 자신의 이단성을 반성한 적이 없다. 언제나 연약한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치부하였고, 때로는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정성욱 교수는 대체 뭐가 좋아서 아직까지 에드우즈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 교회가 이단 때문에 어려워지고 있다고 걱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섬기는 이단에게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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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