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울노회는 ‘<바른믿음>과 정이철 목사가 부정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행위언약, 율법의 제3용도 및 원죄의 생식에 의한 전가 등의 교리에 대한 총회 신학위원회 판단 청원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합신 교단의 총회 소식을 전하는 한 신문의 기사에 위의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어떤 분이 알려주었다. 정이철 목사에 대한 헌의안을 올린 합신의 동서울 노회는 <바른믿음>에서 심각하게 비판받았던 합신의 노승수 목사가 소속한 노회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부터 노승수 목사가 <바른믿음>으로 인해 자신의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교단에 이런 호소를 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으나 이 일이 노승수 목사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1)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2)행위언약
3)율법의 제 3용도
4)원죄의 생식에 의한 전가

정이철 목사의 신학적인 문제점이라고 제기한 내용들을 위와 같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바른믿음>의 독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오해와 혼동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미리 공개적으로 본인의 신학적 입장을 떳떳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쉬운 순서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1)행위언약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s)이란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영생을 위해 지켜야할 율법(행위)들에 대한 상호간의 계약이 있었고, 아담이 그 계약을 위반하여 영생에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행위언약 사상을 가장 먼저 도입한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이다. 퍼킨스의 행위언약에 대한 말을 직접 보자.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7)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8)

아담과 하나님 상호간의 의무와 역할에 의해 아담에게 영생이나 죽음이 주어지기로 계약했다는 퍼킨스의 이론이 1600년대 초에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영생을 위해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상호간의 의무와 역할을 약속하였다는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인간이 노력으로 자신의 영생을 획득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는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영생과 모든 풍성한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아담이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았으므로 영생을 잃고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고 가르쳤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영생과 모든 은혜와 은사를 풍성하게 받은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배반한 것으로 원죄를 이해하였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조건으로서의 계명을 준수하기를 명하셨다는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과는 무관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2.1)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영생을 위한 조건이나 상호간의 역할에 대한 계약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하나님 백성인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반역으로 아담에게 저주가 임했다고 설명한다.
 

"행위언약은 위의 언약체결 논의에서 살폈듯이 잘못 설정된 언약개념이다. 처음 창조 시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셔서 계명을 지키면 영생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시사는 없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과 그 준수 강조를 행위언약으로 바꾼 것이다."(서철원 박사, 인간론, 168-171)

“인류의 원죄는 하나님 밑에서 왕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같이 되려는 데서 성립한다.”(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 163.)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 되었다(창 2:17).”(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166)

또한 서철원 박사는 행위언약과 구원의 방법에 대해 기술하는 웨민고백 19장 1-2항의 내용과 구약의 아브라함 등의 구원의 과정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이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서철원 박사, 왜 웨민(WCF의 구원론과 아브라함의 구원이 맞지 않습니까?, 바른믿음, 2019.7.1)
 

2)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의 교리는 회중파 청교도가 도입한 행위언약의 부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담이 영생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하나님이 제시한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저주 받았으므로 그리스도가 아담의 그 부분을 대신 회복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었다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었고(수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는 우리에게 영생을 위한 자격인 하나님의 의를 주었다는 주장이다(능동적 순종).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을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의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로 인한 죄사함으로부터 왔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성경에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었다는 가르침이 일체 나오지 않고,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내용도 일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담의 타락은 처음부터 율법과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빈도 죄인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의가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부터 온다고 가르쳤다.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전통적 신학에서 예수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 십자가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이라고 한 구분과 가르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 아니고, 피 흘려 죄 값을 다 치르므로 죄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를 받아 우리가 영생하게 되었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쿰란, 2018), 167)

전통적 신학이 제시하는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은 전적으로 그릇된 사변적 산물이다 ... 이런 것은 성경에 맞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죄 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쿰란, 2018), 147)

"능동적 순종의 의, 수동적 순종의 의 교리는 전적으로 사변의 산물이고 신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죄용서 받아 영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죗값을 그의 피로 갚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용서를 가져오고 능동적 순종으로 의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전가함으로 영생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신약에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서철원 박사, 능동순종, 종교개혁 허물어 다시 율법주의-로마교회로 복귀", 바른믿음)

 

3) 율법의 제 3용도

율법의 제 3 용도라는 가르침의 핵심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서 율법이 말하는 삶의 내용이 성령의 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율법은 신약 성도의 삶이 성경적인지 비추어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가 인위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새 사람으로 지어지는 신자의 삶에서 율법의 내용뿐 아니라 그 정신까지 ‘성령의 법’을 따라 자연스럽게 실현되어진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율법이 성도의 올바른 신앙과 삶을 점검하고 비추어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본인이 율법의 제 3 용도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글들을 쓰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내용도 부지중에 나타났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본인은 율법의 제 3 용도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전에 쓴 기사들 가운데 율법의 3용도를 언급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그래서 개혁신학자들은 십계명 등의 율법이 우리의 삶에서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방식 안에서 구약의 십계명 등의 율법이 여전히 우리의 신앙과 연관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칼빈과 종교개혁 신학이 가르치는 율법의 제 3 용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제 3 용법과 청교도들에게서 나타났던 ‘신율법주의’는 전혀 다릅니다. 율법폐기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율법은 필요하지 않다고 그릇된 사상이고, 반대로 청교도들의 신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후 율법을 더 잘 지키고 행해야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상입니다."(정이철, “이동훈(Daniel Lee) 목사의 율법적용 복음적용 주장은 사변”, 바른믿음, 2010.7.17)

“회중파 청교도의 율법주의가 바로 저런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율법주의로 종교개혁으로 탄생된 교회를 망쳐버렸습니다. 칼빈과 개혁자들이 천주교의 율법주의로부터 교회를 해방시켜 놓았는데, 청교도들은 교회를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칼빈이 가르친 대로 율법은 제 3 용도,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점검하고 비추어 보게 하는 기능만 있습니다. 청교도들처럼 인위적인 율법 준수를 가르치면 철지난 몽학선생이 장성한 주인의 아들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구약의 율법을 청교도들처럼 적용하고 강조하면 성령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천한 몽학선생의 지배 아래 있게 만드는 그릇된 주장으로 가게 됩니다.”(정이철, “이동훈(Daniel Lee) 목사의 율법적용 복음적용 주장은 사변”, 바른믿음, 2019.7.17)

정이철 목사는 서철원 박사의 신약 시대의 율법의 기능에 대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죄를 좋아하고 죄의 욕망을 따르면, 범죄하고 그 결과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율법을 선포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즉 죄를 피하고 믿음의 삶에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을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선포해야 한다. 즉 그렇게 육의 욕망을 따라가면 범죄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율법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율법으로 사람을 고치려고 책망하고 꾸짖으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반발과 반감만 갖는다. 율법을 가르치고 전파해서는 결코 죄짓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행실을 고칠 수도 없다." (서철원, 교회론, 99)
 

4)원죄의 생식에 의한 전가

원죄가 유전된다는 신학적인 진술은 아담의 원죄가 부모의 생식 활동에 의해 자식에게 전가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생식활동을 수단으로 모든 인간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 방법으로 태어나는 모든 자연인들에게 아담의 원죄가 전가된다는 것이다. 아담의 원죄에 관한 죄책과 오염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직접적인 수단이 부모의 생식활동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만일 부모의 생식활동이 원죄의 죄책과 오염을 자식에게 전가되게 만드는 직접적 통로라면 문선명, 박태선의 피가름 교리를 비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어떻게 원죄에 대한 죄책과 오염이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신학의 역사에서 매우 어려운 주제였고, 또한 난해하고 신비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아담의 원죄가 부모의 생식활동을 통해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설은 종교개혁 정통신학이 수납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담의 원죄가 모든 자연인들에게 영적으로 유전된다고 말함이 가장 무난하고 옳다.
 

바른믿음을 통해 신학적 비판을 받았던 노승수 목사 (합신, 동서울 노회)

그러나 노승수 목사는 아담의 원죄가 부모의 생식활동을 통해 후손에게 전가되고, 모든 인간의 몸에 원죄의 세력이 베여있다고 말함으로 부모의 피나 유전적인 요소를 통해 자식에게 원죄가 전달된다고 주장하는 심각한 우를 범하였다.

“정통교의에서 성화란 죄의 바로 이렇게 우리 몸과 영혼에 스며있는 죄의 실제적 세력을 제거로 설명하는데 ...”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19일)

“우리 몸에 베여있는 실질적인 원죄의 세력에 대한 ...”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19일)

“셋째, 범책은 부모로부터 전달(propagation)받는 방식, 벌책은 행위언약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매개 없이 전가(imputation)되는 방식입니다.” (노 목사 페이스북, 2019년 2월 3일

“ㅈ o ㅊ 이 나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오염의 생식법에 의한 전달의 교리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영적 전가를 주장했다.”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19일)

“원죄가 부모를 매개로 전달된다는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며 동시에 그 결과는 전통적 원죄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19일)

이 외에도 노승수 목사는 그리스도께서도 율법을 지켜서 먼저 자신을 구원했다는 심각한 비성경적 구원론을 주장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 (노승수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그리고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7년 12월 14일)

“이 때 칭의란 바로 그리스도 속죄를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2일)

또한 노승수 목사는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도 범책이 제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벌책이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으로 제거되며 범책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제거되지만 그냥 칭의에 의해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때, 은혜가 성령으로 부어짐으로 성도의 죽음으로 그 성화가 완성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제거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3일)

“정통 개혁파 교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은혜의 수단을 신자가 능동적으로 사용할 때만 죄의 세력과 그 제거되기 때문에 성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참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행위와 공로를 모두 그리스도께 돌리고 그럼에도 남은 범책과 부패는 신자가 성실하게 은혜의 수단을 교회로부터 받아 사용함으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3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할 경우, 개혁파 신학 체계에 발생하는 결정적 하자는 바로 범책이 칭의에 의해서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제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구멍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3일)

또한 노승수 목사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이 능동순종이라는 전혀 근거없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 구조다” (노 목사의 2.2일 페이스 북)

“이 지점을 생각하면 종교개혁 신학이 그 출발선상에서부터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얼마나 중요한 개념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정할 경우, 결국 이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게 되냐면 우리의 행위가 대신하게 됩니다.” (노 목사의 2.2일 페이스 북)

(많은 사람들이 노승수 목사의 세 권의 책에 문제의 내용들이 많다고 하므로 이후 시간을 내어 읽고 무슨 심각한 이단성이 나타나면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 이상으로 설명한 것처럼, 예장 합신 총회(동서울 노회)에 정이철 목사의 신학적인 문제라고 제기한 내용들은 사실 지금까지 당연시되었던 그릇된 주장들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정당하고 파격적인 문제제기이다. 지금까지 똑 같은 시비를 여러 번 받았으나 “이전에 유명한 누구도 같은 교리를 주장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참에 공개적으로, 온 한국교회가 주목하게 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토론의 공방을 벌임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바르게 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신문지상을 통해, 또한 정이철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여 합신의 신학위원회의 교수님들, 목회자님들과 직접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지하고도 뜨겁게 논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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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