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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가 이단이면 한국 장로교회가 다 이단이란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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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가 이단이면 한국 장로교회가 다 이단이란 말인가요?
  • 정이철
  • 승인 2019.09.02 07:5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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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청교도를 이단이라고 하면 한국 장로교회는 거의 다 이단이란 말인가요?

 

답변>
참 좋은 질문이고 문제제기입니다. 먼저 우리가 청교도라 부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청교도에 대한 정의

영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교회를 청교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구성되어 있었던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의 수장령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517년부터 대륙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여 천주교 교황의 위세가 약화되지 교황에게 불만을 품은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도 1534년에 영국의 교회가 로마교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통제를 받는 새로운 종교개혁 교회임을 선포했습니다. 청교도는 이때 탄생한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가 아닙니다. 영국 국교회를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본 받아 더욱 더 성경에 합당한 교회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의 개혁자들과 교회들이 청교도입니다.

그런데 영국 국교회를 성경대로 더욱 더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청교도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종파들이 혼재했습니다. 

1) 스코틀랜드 언약도

중심인물은 스위스에서 칼빈을 만나 배운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년)였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다른 가르침에 매우 충실했습니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언약도라는 이름으로 일어났으나 나중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로 자리잡았습니다.

2) 잉글랜드 장로파

중심인물은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였고, 칼빈과 칼빈 사후 그의 제자 데오도르 베자(Théodore de Bèze, 1519 ~ 1605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신학의 개혁보다는 교회 정치제도 개혁에 강조를 두었고, 상대적으로 세력이 미약하여 큰 역사적 흔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3) 잉글랜드 회중파

중심인물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년)와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칼빈의 제자였으나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지 못하였다고 평가되는 베자에게서 영향받았습니다. 이 그룹 속에 영국 국교회를 교회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개혁을 추구했던 독립회중파와 영국 국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고 뛰쳐나가 일찍부터 목숨 걸고 새로운 교회(회중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분리회중파가 있었습니다.

청교도 운동을 지지한 잉글랜드의 의회 세력과 영국 국교회를 지지한 잉글랜드의 국왕 세력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지도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년 - 1658년)이 독립회중파 신자였고, 독립회중파의 대표적인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 1616 - 1683년)이 그의 궁정목사(종교자문)였으므로 회중파 청교도는 영국의 청교도운동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4) 잉글랜드 침례파

중심인물은 원래 분리회중파 목회자였던 존 스미스(John Smyth, 1570 ~ 1612년)입니다. 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재세례파 사상을 접하였고, 1608년부터 침례파 청교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의 한 분파로 시작된 침례파는 후에 신대륙으로 전파되어 영국에서보다 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존 스미스가 원래 영국 국교회 속의 분리회중파 목사였으므로 회중파 청교도 신학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일랜드와 웨일즈에서 일어난 청교도 운동이 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당시 그 두 나라는 잉글랜드에 복속되었거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에서 일어나는 종교개혁과 청교도 운동이 그 두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뿌리

한국의 장로교회는 위의 어느 청교도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요? 스코틀랜드 장로파 청교도(장로교회)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년)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대륙의 회중교회가 자신들의 신학교들 세웠습니다. 하바드 대학이 1636년에 세워졌고, 하바드 대학에 알미니안 신학이 침투하자 1701년 예일대학을 세웠습니다. 회중파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세운 회중교회는 알미니안 신학을 거부하는 특징이 강했는데 이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정통 종교개혁 신앙이라고 오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장로파 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가 회중파 청교도들보다 늦었으므로 장로교회는 더 늦게  생겨났고 그 세력이 회중교회에 비해 약했습니다. 초기에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이주해 온 장로교인들이 마땅한 교회가 없으므로 대부분 회중교회에 출석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신대륙의 장로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성장한 윌리엄 테넌트(William Tennent, 1673-1746년) 목사입니다. 그는 1717년에 신대륙으로 이주하였고 1727년에 신대륙의 최초의 장로교 신학교 '통나무 대학'(the Log college)를 세웠습니다.

1740년대 초에 신대륙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중심의 위험 요소가 많았던 대각성이 일어났을 때, 이 학교 출신 목사들도 상당히 활약했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 길버트 테넌트(Gilbert Tennent, 1703–1764년) 목사는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와 함께 부흥운동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장로교회의 신학은 회중교회의 신학과 일찌감치 혼합되어 버렸습니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의 거짓 신학 요소들로 인해 신대륙의 교회들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고, 에드워즈의 부흥을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신대륙의 교회는 분열되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신학교가 뉴저지(1746년)에 탄생했는데, 그 학교가 지금 현재의 프린스턴 대학입니다. 장로교 신학교였던 '통나무 신학교'는 에드워즈 부흥 추종세력들과 함께 이 학교를 만드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진정한 장로교회의 신학이 신대륙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장로교회와 회중교회가 합세하여 탄생시킨 프린스턴 대학에 훗날 자유주의 신학 바람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메이첸 등의 신학자들이 그곳을 떠나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er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29년)를 세웠습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필라델피아의 웨민신학교를 가장 정통한 장로교 신학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웨민신학교의 전신인 프린스턴 대학때부터 순수한 장로교 신학이 발전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린스턴에서 웨민신학교가 갈라져 나올 때, 자유주의 신학을 경계하고 제거하는 일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나 회중교회 신학을 제거하는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현재 웨민신학교를 비롯한 모든 신학교에 회중파 신학 요소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칼빈신학교도 회중교회 신학과 장로교회 신학을 완전히 혼동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멀러 테제'(Muller Thesis)라는 것은 회중교회 신학을 정통 개혁신학으로 둔갑시키는 사탄의 고급기술입니다. 칼빈신학교 근처에서 조엘 비키가 학장으로 있으면서 운영하는 '청교도 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ucal Seminary)는 회중파 신학원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한국과 전 세계 교회에서 회중파 신학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분리회중파와 신대륙 

잉글랜드의 분리회중파는 일찍부터 영국 내에서 새교회(회중교회)를 세우려고 시도하다 죽임을 당하거나, 네덜란드 등으로 망명하여 회중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세력에서 1620년에 작은 배 한척을 타고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신대륙(미국)에서 회중교회를 세웠고 훗날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분리회중파는 일찍부터 영국 국교회를 박차고 나갔으므로 영국 내에서 벌어진 웨민고백서 작성 등의 종교개혁 활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독립회중파는 영국 국교회 속에 남아서 종교개혁을 추구했으므로 웨민고백서 작성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를 계승한 제임스 1세 국왕이 “(영국 국교회의) 감독이 없으면 왕도 없다!”, “청교도주의와 군주제는 하나님과 마귀처럼 닮은 곳이 없다!”라고 하면서 청교도를 박해하였습니다. 독립회중파들도 영국 내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분리회중파들이 세운 신대륙의 회중교회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1세 국왕이 등극하여 더욱 청교도를 박해하고 영국 국교회를 강력하게 보호하였습니다. 소망을 잃은 더 많은 독립회중파들이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회중교회에 합류하였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회중파 청교도 운동은 1662년 완전히 정권을 잡은 영국 국교회 세력의 대추방 정책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종식되었고, 다수가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회중교회에 합류하였습니다. 결국 잉글랜드의 회중파 청교도 운동은 미국의 회중교회로 귀결된 것입니다. 신대륙의 회중교회는 에드워즈의 대각성을 기점으로 심각한 내분과 소용돌이에 빠졌고, 이후 미국 교회를 타락시키는 자유주의 신학의 선봉에 섰습니다. 또한 유니테리안, 지방교회 등의 각종의 이단들과 연합하였고, 갈갈이 찢기고 쪼개져서 지금은 종적을 찾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조엘 오스틴이 아버지에게 물려 받아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교회가 원래 회중교회였습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주요 인물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윌리엄 퍼킨스
윌리엄 에임스
폴 베인즈
존 프레스턴
리처드 십스
존 코튼
존 오웬
리차드 백스터
토마스 굿윈
토마스 후커
토마스 쉐퍼드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적 특징으로 볼 때, 마틴 로이드존스까지 이 대열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위험한 신학적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칭송되기만 했습니다. 회중파 청교도가 발전키신 위험한 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죄론 변개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 6:7)

성경은 아담이 지은 죄(원죄)가 하나님께 반역한 죄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진 아담은 부족함이 없는 은혜와 은사들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한 반역을 품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저주와 죽음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는 태초에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영생에 관한 쌍방간의 계약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계약을 '행위언약'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윌리엄 퍼킨스)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그 조건을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윌리엄 퍼킨스)

회중파 청교도에 의해 아담의 원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서 하나님의 영생의 조건인 십계명 등의 율법 파기로 변개되었습니다. 원죄의 내용이 변개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도 변개되어졌습니다.

 

2. 구원론 변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반역한 아담과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이 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해소되고 죄책이 사라졌습니다. 최책이 사라짐이 곧 죄인에게 영생의 자격과 권리를 부여받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는 이미 원죄 신학이 비틀어 졌으므로 그리스도가 아담이 지키지 못한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거창하게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라고 주장합니다. 원죄신학과 구원론이 성경과 달라지면 그릇된 가르침이 발생합니다. 
 

3. 언약신학 변개

성경은 창세전에 구원받을 사람을 택하시고, 택하심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은혜(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시어 죄인이 스스로 즐거이 그리스도를 믿게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수행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나 의무 사항은 없습니다. 오직 창세전에 예비된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는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언약에 인간이 동의하고 승낙하고, 언약의 혜택을 누리기 위한 조건을 다 성실하게 이행해야 구원언약이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가 다 하시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승낙을 주어야 한다. 왕과 반항하여 떨어져나간 백성들 사이에 화합이 이루어지자면, 용서와 새로운 순종의 약속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자면,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하고, 그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경외심이 있어야 하고, 그를 우리의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리차드 십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를 가지심으로 그것으로 우리를 명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없이 수행을 안하시니 말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영생을 이루시지 않으신다."(리차드 십스)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죄인들이 구원을 얻었으나, 여전히 각 개인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율법의 선행을 힘써 하지 못하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 ‘이신칭의’와 ‘법정적 칭의’가 무너졌습니다.
 

4. 율법의 저주 선포가 우선

성경은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면 성령께서 택하신 자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도록 역사하시어 구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을 전파하라고 사도들은 교회에 명령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회중파 청교도들은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곧 바로 전하는 것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거는 격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전해야만 사람들의 마음이 겸비해지고, 그래야만 진심으로 회심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구원을 받기 전에 율법을 잘 지키면서 회개하고 성령의 회심의 은혜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청교도 목사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곧장 믿고 구원 받도록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은 비성경적인 일이고, 기존 교회의 신자들의 구원의 확신은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율법의 저주를 먼저 신물나게 경험하지 않고 예수 믿은 사람들의 구원은 거짓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회심준비론이라고 하는데,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5. 묵상이란 미명하에 하나님 체험 신비주의

회중파 청교도들은 성경이 절대로 금하는 현재적 계시 현상을 추구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신학이 매우 중시하는 성경 66권과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완성된 특별계시의 종결 신학을 거부하였습니다. 묵상이라는 미명하게 현대의 관상기도자들처럼 하나님 존재를 직접 체험하는 신비주의에 심취하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서전을 보십시오. 들판에서 묵상한다면서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과 내면 대화 ... 등에 심취하였던 흔적이 넘칩니다.  

 

6. 신사도 운동의 원조 거짓 성령체험

회중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수시로 임재하여 부흥을 일으키고, 성령이 반복적으로 임재할 때 사람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몸에 힘이 빠지고, 환상을 보고 ... 등의 거짓 성령(귀신)을 경배하는 이단들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인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그런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났고, 결국 그 지역의 교회는 사탄에게 농락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몰락하였습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격찬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론>(부흥과 개혁사, 2005)이라는 책에서 에드워즈가 직접 말하는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와 완전하심의 영광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혀 마치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쉽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누군가가 그에게 그 체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다가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럽게 감동받아 기력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데려다가 침대에 눕혀야 했습니다.” (254 페이지)

“한 번은 그가 동생에게 자기는 여러 날 밤낮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맛보면 즐겼다고 말했습니다.” (254 페이지)

대표적인 에드워즈 부흥 연구자 이안 머레이가 에드워즈의 부흥에 대해 쓴 책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Calisle, P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6) 내용의 일부를 보십시오. 청교도들의 성령의 역사는 이단들의 성령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날의 신사도 운동 집회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목회자들이 통제되지 않는 광신주의 성향을 제어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에드워즈의 친한 친구 데이비드 홀(David Hall)목사의 교회에는 98명의 새 신자들이 몰려왔으나, 그가 거짓된 불(wild-fire)을 통제하려고 시도하자 그들 대부분이 다시 떠나버렸다.”(220 페이지)

“노스 스토닝턴(North Stoninton)에서 목회하면서 에드워즈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죠셉 피쉬(Joseph Fish) 목사에게 일어난 일은 더욱 더 심각했다. 격렬한 흥분(violent agitations), 울부짖음(outcries), 무아지경(ecstasies), 환상(visions), 최면(trances, 입신), 내면의 계시(inward impressions) 등에 집착하는 신자들이 갑자기 그의 교회로 몰려왔다. 피쉬 목사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진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결국 그들이 그것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하자 거짓된 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던 그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교회를 떠나버렸다. 피쉬 목사는 큰 슬픔과 탄식 가운데 점점 시들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220 페이지)

“1742-43년 사이에 일어난 교회 파괴(교회 분열) 현상은 매우 흔한 일이었고, 특히 동부 코넥티컷에서 더욱 더 심각했다. 그 결과 거의 100개 정도의 갈라져 나온 교회들이 생겨났다.”(220 페이지)

지금 한국에서 청교도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대륙에 회중교회를 세우고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인물을 잉태한 회중파 청교도 신학입니다. 그들의 신학은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과 아무 연관이 없었습니다. 칼빈의 신학을 계승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의 장로파 청교도였습니다. 장로파 청교도들은 비록 잉글랜드 의회의 주도로 회중파 등과 함께 약 5년에 걸서 서로의 신학을 협의하는 작업을 한 후 웨민고백서를 공동으로 채택(1648년)하였으나, 바로 그 해에  회중파 청교도와 결별했습니다. 이후 다시 장로파와 회중파는 연합하지 않았고, 회중파는 웨민고백서를 거부하고 10년 후에 자신들의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년)을 작성함으로 자신들만의 신학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반영하여 이미 훌륭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Scottish Confession, 1560년)을 이미 작성하였으면서도 포기하고 회중파 청교도와의 연합을 위해 웨민고백서를 채택한 스코틀랜드 장로파 청교도는 회중파들이 갈라져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웨민고백서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웨민고백서가 마치 장로교회가 단독으로 작성한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처럼 오해받고 있습니다. 웨민고백서를 표준문서로 채택한 장로교회는 언약의 신실함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표준문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개혁파도 자기 지역이 아닌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을 일치신조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바른믿음>이 바판하는 청교도 신학은 진정한 장로교회 신학의 조상이 되는 청교도가 아니라, 회중파 청교도 사상입니다. 훗날 미국의 회중교회를 세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신학입니다.

윌리엄 퍼킨스
윌리엄 에임스

폴 베인즈
존 프레스턴
리처드 십스
존 코튼
존 오웬
리차드 백스터
토마스 굿윈
토마스 후커
토마스 쉐퍼드
조나단 에드워즈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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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19-09-02 15:11:34
회중파 청교도를 몸통으로 잡아서 전개하시는 것은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는 반드시 따로 언급하셔야 될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뿌리부분과 후기나 말기의 분화하는 과정에 대한 신학적 전개입니다.

고경태 목사님도 예전에 밀러테제와 멀러테제를 언급하시면서 지금은 밀러테제가 극도로 약화된 상태임을 언급하셨고, 또 송영재 박사님 의견을 인용하여
"제네바 전통과 취리히 전통" "초월신학과 내재신학" "칼빈파와 볼링거파" "유언신학과 계약(언약)신학"으로 불리우고 있는 두 라인이 융합될 수 없는 독특한 신학으로 발전했고
갈등 원인을 행위언약에 대한 논의로 연결했지만
은혜신학과 함께 속죄론에서 "공로"를 철저히 배격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한다는 근거 하에 칼빈파와 볼링거파의 비분리성을 주장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목사님께서도 근거로 볼링거와 칼빈이 작성 채택한 헬베티카2를 제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헬베티카2는 언약 개념을 한 번도 정의한 적이 없는 칼빈에게서 언약개념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근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정목사님께서는 은혜신학과 함께 속죄론에서 "공로"를 철저히 배격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칼빈파와 볼링거파의 분리성"을 연구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언약사상을 부활시킨 카이퍼와 바빙크의 주권주의 신학에서 주장하는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 사상과 신사도 운동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일곱 산(seven mountain) 사상 그리고 킹덤나우(Kingdom Now) 사상 비교와 함께
카이퍼와 바빙크의 언약사상도 반드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면,
회중파 청교도를 몸통으로 잡아서 전개하시는 것은 좋다고 생각되지만
반드시 결론부분에서는 볼링거파의 뿌리부분과, 후기에 분화되는 과정에서 부활한 카이퍼와 바빙크의 언약사상을 이어진 차기 연구과제 정도로라도 언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연구과제 역시 행위언약과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이며 실제적인 대안으로 서철원 박사님께서 교정하신 "행위언약 사상의 교정"을 제안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알력다툼이나 정치보다 진리선포를 우선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리훈 2019-09-02 23:22:10
글 감사합니다. 미국은 19세기 말 Darby의 세대주의, Charles G. Finney의 성결운동, 그리고 구 프린스턴 신학의 성서무오설의 영향으로 신앙의 색채는 매우 보수적 이었다. 신앙이 보수적이라 하여 엄격한 Calvin주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칼빈주의를 탈피하여 여러신학들이 혼합된 것 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정 목사님이 언급한 것 처럼 신대륙 미국에 뿌리내린 회중파 청교도들의 영향이다. 이러한 운동들 (세대주의, 성결운동, 성서무오설)이 D.L. Moody를 통해 집대성 되었으며 그가 조직한 ‘Student Volunteer Movement’를 통해 영향을 받은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 감리교의 아펜셀러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심지어 한국 장로교라 할지라도 회중파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에 개혁주의(칼빈주의)가 소개된 것은 구 프린스턴 출신 고 박형룡 박사님과 웨스트민스터 출신 고 박윤선 목사님 이다.

Minn 2019-09-03 16:57:52
현대 교회의 문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개혁교회 중 침례파가 센 것으로 아는데 글을 읽어보니 청교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TULIP만 따르면 칼빈주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조엘 비키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따르는 청교도 사상에 양념으로 칼빈을 인용하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칼빈이 능동, 수동적 순종 이론을 주장했다고 말합니다. Double obedience 라나요?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또 느낀 것은 하나님과 사단을 이중구도에 놓고 사람을 그 중간에 넣더군요. 마치 사람이 하나님과 사단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는 듯 말입니다. 선택이 법을 강조하고 악을 두려워 하게 함으로 가능하게 된다고 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칼빈주의자라고 한다면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능동/수동적 순종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타락 전 아담을 상당히 미화하는데 이것은 칼빈의 주장과도 맞지 않고, 성경과는 더더욱 반대됩니다.

고전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 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우동사리 2019-09-03 18:25:02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프롱크, 262)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다. 이 말에서 완전한 능력이 함의하는바는 완전에 반대되는 모든 불완전이 제거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불순종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가 없는 완전한 상태입니다. 완전을 넘어서고도 죄를 지어내는 아담은 이러한 모순을 불식시키는 전능한 존재라는 말인가요?

완전을 후퇴시켜 해석하더라도 문제가 되는게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도 못할 상태로 창조하셔놓고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기준을 제시한것이 됩니다. 정녕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원죄는 피조물이 하나님이 되고자한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반역이지 율법준수의 어떠함으로 연결하여 귀결시킨다면 모순은 끝도없이 등장할 것입니다.

성경이 지지해주지도 않은 이 사변으로 진리를 교란하고 농락하는 이게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이신가요?

그리고 율법준수에 실패한 인간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대신 지켜주시려고 성육신하셨다??? 물론 십자가도 지시고??

그러나 칼빈은 (기독교 강요(상)_제12장 4.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유일한 목적...)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유일한 목적은(성육신 그 자체만을 놓고 말하는)희생 제사속에 있는 택자를 향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제사장직으로 한정 귀결짓습니다. 다른것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동순종 사상은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을 위해 사람으로서 율법을 준수하여 사람에게 의롭다함을 전가시켜주기 위해 성육신이 필요했다는 성육신의 또 다른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Minn 2019-09-03 17:41:10
저도 관심이 갑니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은 보편적으로 불링거가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칼빈과 같이 썼다는 말은 고목사님 글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칼빈과 불링거는 언약에 있어서 모든 언약이 단 하나를 가르킨다는 점에 같은 입장입니다. 불링거는 "A Brief Exposition of the One and Eternal Testament or Covenant of God"에서 성도의 의무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것이 마치 언약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같이 해석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글 전체를 보면 그의 언약사상을 쌍무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인 듯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불링거의 글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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