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교회의 전도에 대한 가르침과 청교도(회중파) 거짓 개혁주의의 전도의 차이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조금 전에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페이스 북에 울리신 것을 보았다.

“(화란, 북미 개혁주의 vs 청교도 개혁주의?) 화란, 북미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회심의 단순성을 강조하고 있고, 청교도 개혁주의는 회심에 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이 모두가 다이아몬드의 커팅처럼 구원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한다.

사람이 회심을 하는 것은 백지상태에서 갑자기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고, 회심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성. 사람의 부패성.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신실한 설교. 예배참석. 교리교육. 묵상. 기도가 필요하다.

교회를 통해 제공되는 이 모든 외적인 도구들이 필연적으로 유효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영역이므로, 당연히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이러한 일반적이고 외적인 수단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란. 북미 개혁주의와 청교도 개혁주의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보완적이며, Two Sides of Coin이다.”

화란과 북미의 개혁교회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청교도 개혁주의는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나 서로 성경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그럴싸한 말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또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이 동의하면서 그간 청교도(회중파) 거짓 개혁주의의 회심준비론을 비판한 사람(정이철 목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결론에 동의합니다. 한 쪽만을 취하고, 한 쪽을 배격하는 것은 역사 인식조차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인지, 제대로 된 비판인지 상당히 의문스럽습니다.”

아직까지 청교도(회중파) 거짓 개혁주의 신학의 본질과 특성을 모르면서 어설프게 청교도 신학을 칭송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는 증거이다. 지난 수 백년 동안 굳어진 현상이므로 당연한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돌아보자!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시는 과정과 방법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복음선포가 요구된다.  복음선포 없이 나타나는 구원은 없다. 그러나 죄인들이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복음 듣기를 싫어하거나 무관심한 자세를 보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격, 가르치심,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피 흘리고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복음이 복음이 택함받은 죄인들에게 들려지게 만드신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죄인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고백’에만 근거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죄인이 믿음고백에 이르러 구원을 받는 이유는 성령께서 이미 그 죄인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어 선포되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작정되었다는 것과 같다. 단지 예정으로만 구원 받는 경우는 없고, 반드시 예정된 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따라 믿음고백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청교도(회중파) 거짓 개혁주의는 죄인의 영혼이 깨어나서 스스로 복음과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므로 결코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이라고 할 수 없다. 청교도(회중파) 거짓신학의 회심준비론은 불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고 한다. 불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주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매도한다. 청교도(회중파)는 죄인에게 주어야 할 것은 오직 구약의 저주의 율법이라고 주장한다. 저주의 율법을 들음으로 죄인이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깨닫고 무서워하고 두려워서 떨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러면 그 자신에게서 “아! 나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면 정말 좋겠다!”라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고, 그때부터 구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그 자신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사모하고 찾아가야 하고, 목회자는 그가 구원의 길을 잘 걸어가도록 도와야 한다.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저주 상태의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 스스로 복음을 설명하는 상담자를 찾아가서 대화하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예배드리고,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 이러한 회심준비 과정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어느 순간 성령의 회심의 역사가 임한다고 한다. 이 과정이 십년 정도, 또는 그 이상으로 길게 늘어질 수도 있다고 한니다.

과연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죽은 영혼의 사람이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목회자들과 성경 교사들에게 찾아가서 지도와 상담을 구하고, 자신의 기도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 공부 모임에 가는 등의 일들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죽은 영혼인가 산 영혼인가? 하나님께서 구원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선행하는 은총을 먼저 주시면 인간의 영혼이 반응하여 구원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간다는 알미니안 신학과 세미 펠라기안 신학의 가르침과 청교도(회중파)의 구원사상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청교도(회중파) 거짓 신학(회심준비론)이 불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지 말고 저주의 율법을 퍼부어야 하는 이유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보다 율법이 먼저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몽학선생인 율법이 먼저 왔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기 전에 먼저 몽학선생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교도 거짓 개혁주의가 가르치는 이런 내용은 그들이 기독교 신앙과 율법의 관계를 전혀 모르므로 하는 어리석은 말이다. 구약 시대부터 지금까지 율법이 구원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었거나 조건이었던 적이 없었다. 기독교의 구원과 율법은 한번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적이 없었다. 구약시대부터 구원은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 새 인류의 조상 노아를 보라!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은 흔적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라! 은혜로 먼저 부르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심으로 구원받았지, 무슨 율법을 조건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은 적이 없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청교도 거짓 개혁주의 신학의 율법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벗어났다. 구약 시대에도 율법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와 질서였을 뿐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이미 장차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구원을 얻은 백성들의 삶과 신앙의 원리로서 율법이 주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들을 받을 때, 이미 그 이전에 홍해와 구름의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홍해와 구름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구원 받았다는 것이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그러나 청교도(회중교회) 거짓 개혁주의는 태초부터 율법이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이라고 가르친다. 아담이 율법(십계명)을 지켜야만 영생을 얻는 불완전한 존재로 출발하였고, 율법(십계명) 주수를 거부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아담을 대신하여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하였다고 한다. 청교도 거짓 신학의 출발이고 핵심이다. 이런 그릇된 출발 때문에 회심준비론도 뒤따라 나타났다. 성경과 사도 바울등의 가르침과 같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지 말고 구약의 저주의 율법만 선포해야 한다고 한다. 

청교도(회중파)의 비성경적인 언약신학도 그릇된 원죄론 때문에 나타났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율법을 지키기를 거부한 죄인으로 저주받은 상태로 출생했다고 한다. 완전한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진 아담의 하나님 섬김을 거부한 반역의 죄 때문에 인류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죽음이 임했다고 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매우 내용이 많으나 기독교를 죽이는 이 심각한 독이 장로교 표준신앙 문서인 웨민고백서 7장 19장에도 들어있다. 그 사상이 ‘행위언약’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나 있다. 웨민고백서도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잘 지켰어야 할 것이 십계명이었고, 그것이 훗날 시내산에서 기록되어 주어졌다고 한다.

청교도 거짓 신학은 원죄에서부터 성경에서 벗어났으므로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십계명과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으셨고 새로운 십자가 어약으로 초대하였다는 거짓된 구원론까지 개진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율법준수하시고 그 공로 때문에 우리가 행위언약에서는 벗어났으나,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율법준수의 요구는 모든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공로없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어도, 여전히 아담에게 요구된었던 율법 준수의 의무는 남았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청교도 거짓 개혁주의의 율법사상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율법에 몽학선생의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도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여전이 몽학선생을 그리스도와 함께 섬기면 저주를 받을 다른복음 추종자라고 하였다. 성경은 율법을 어기지 않는 삶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열매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청교도 사상은 율법 잘 지킴이 구원의 증거이고, 또 일부에서는 구원 유지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도 한다. 이것 것을 가르치는 청교도(회중파)의 거짓 개혁주의를 어찌 건강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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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