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교해 보자.

1. 타락에 관하여

1) 칼빈주의 
     T: Total Depravity(Corruption, Inability)
     전적 타락(전적 부패, 전적 무능력)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죽은 상태이며 구원에 관한 한 전적으로 무능력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믿음을 주셔야 믿는다.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것이다.

2) 알미니안주의 - 자연적 무능력

인간의 전적타락은 인정하나 하나님께서 선행은총으로 인간 안에 복음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회복시켜 주셨다. 구원 얻는 믿음은 죄인(인간)의 것이다.
 

2. 선택에 관하여

1) 칼빈주의
     
U: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하나님 자신의 전적인 주권과 감추어진 뜻(비의)으로 창세 전에 택자의 선택과 비택자의 유기(버림)도 예정하셨다(칼빈주의 이중예정). 선택의 이유가 선행, 돈, 지위 등 그 어떤 인간의 조건이 아니다. 심지어 믿음도 선택의 조건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선택한 결과이다.

- 칼빈주의 이중예정에 관한 질문(유기에 관하여)
지옥에 보내시려고 창조 하셨는가? 악인을 창조 하셨는가? 죄 혹은 악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닌가?

- 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질문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 받는다. 그러면 누가 선택 되었는가? 칼빈도 이 세상에서 누가 선택 되었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누가 선택 받고 누가 유기되었는가 ?)을 안다는 것은 마치 빗자루가 들어있는 광문을 열고 그 안을 드려다 보는것과 같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광문을 열고 그 안을 보았더니 환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캄캄하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의 비의(감추인 깊은 뜻)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을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로 혹은 환상이나 체험으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구원의 여부를 간절히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칼빈은 성화가 택자의 증거임을 또한 역설하였다. 여기서 칼빈의 실천적 삼단논법이 나온다.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응용),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대전제: ‘택자’ 라고 하자. 
소전제(응용 부분): ‘A’는 택자 처럼 산다. ‘B’는 비택자 처럼 산다. 
결론: ‘A’는 택자 이다. ‘B’는 비택자이다.

칼빈은 ”당신은 택자인가? 그렇다고 하면 택자처럼 살아라!”라고 말한다. 이렇듯 칼빈은 성화를 중시하였다. 칼빈은,”성화 없는 칭의 없고 칭의 없는 성화 없다”고 말함으로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았다. 칼빈은 ‘성화의 신학자’로 불리우며 또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율법주의자’ 혹은 ‘유대주의자’로 부른것이다. 반면 루터는 이신칭의를 강조한 나머지 성화를 경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행위를 강조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에서는 "내가 택자인가?" 혹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내 심령속에 뿌려 졌는가?"(제한속죄)를 항상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여기서 칼빈주의의 도덕적 윤리적 추진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내가 택자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내 심령속에 뿌려진 자 즉 성령세례 받은자 즉 중생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자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며,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심판 하신다"고 하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성령으로 인도되는 삶은 다음과 같다. 

• 나의 모든 일을 통해 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나타난다. 세례요한 처럼 나는 쇠하고 그리스도가 흥해야 한다. 장성일 목사님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주장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 가운데 행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사람 자체가 아니다(전 12:13).

•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양심이 그리스도의 피에 적셔졌기 때문에 죄에 대해 민감하다.

•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의무에 신실하다.

• 개인 종말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심판을 준비하며 산다

•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칼빈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성화를 통해 나의 믿음과 칭의를 확인하며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면서 성화의 삶이 나오지 않고 변화가 없고 죄된 육신의 삶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는 칼빈주의를 따르는 사람도 아니고 애당초 구원받은 사람도 아니다. 그가 택자라면,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는 더 이상 허물과 죄로 죽은 시체가 아니다.

2) 알미니우스주의
     
조건적 선택: 믿음은 인간의 것이고 믿어서 선택 되었다

알미니안주의는 예지예정, 즉 하나님이 믿을 자를 미리 아시고 선택하셨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 하지는 않는다(알미니우스의 중간지식).

- 알미니우스의 문제점:
인간의 믿음으로 선택된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예정하셨나? 인간이 결정한 것을 하나님이 승인만 하신것인가? 예정이 아니라 후정이 아닌가? 후정은 아무것도 예정 안하신다는 이야기 아닌가?
 

3. 속죄의 범위에 관하여

1) 칼빈주의
     
L: Limited Atonement
     제
한속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택자 만을 위한 것이다.

칼빈주의의 ‘제한속죄’교리는 칼빈주의의 심장부이다. ‘제한속죄’ 교리가 칼빈주의의 성화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고경태 박사의 글에서와 같이 칼빈 사후 ‘제한속죄’ 교리를 없애려는 악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 교리를 없애면 칼빈주의는 Hyper-Calvinism 으로 전환되어 회개와 성화가 실종된 구원파로 전락되고 만다. 요즈음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안식교 목사 손계문, 회복교회 김관운 전도사, 통탄명성교회의 정병진 목사외 여러 사람들은, “현재 한국교회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유가 칼빈주의의 그릇된 예정론에서 비롯 되었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어불성설 이다.

이러한 이유는 그들이 칼빈주의를 모르고 칼빈주의에서 ‘제한속죄’를 뺀 Hyper-Calvinism으로 오해한 그들의 무지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미혹되지 말기 바란다. 사람이 심장이 없으면 죽는것처럼, 칼빈주의에서 심장부인 ‘제한속죄’교리를 없애면 칼빈주의는 Hyper-Calvinism 혹은 구원파신학으로 전락되어 죽은 교리가 되고 만다.

2) 알미니안주의:
    
보편속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것이다.

그리스도가 모두를 위해 피를 흘리셨지만, 속죄의 은혜는 믿을 때만 적용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칼빈주의나 알마니우스주의는 ‘보편구원’은 반대한다. 보편구원은 맏든지 안 믿든지 종국에는 다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4. 은혜의 속성에 관하여

1) 칼빈주의
     
I: Irresistible Grace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선택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뿌리칠 수 없으며 거부할 수 없다. 구원얻는 믿음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죄인은 안 믿을 수 없다. 인간이 문을 닫을지라도 그가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님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신다.

2) 알미니안주의
     
저항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믿음은 인간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셨으니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 얻는다. “예수를 믿으십니까? 구원얻기 위해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라고 구원을 초청할 수 있다.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다. 만약 인간이 복음을 거부하면 하나님도 인간의 결정에 따른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문을 안 열면 주님도 못 들어 가신다.

 

5. 성도의 견인에 관하여

1) 칼빈주의
     
Perseverance of the Saint(무조건적 구원):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 하신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하나님이 선택 하셔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택자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반드시 구원 받는다.

2) 알미니안 주의
    
조건적 구원:

내가 믿기로 결단하여 구원 받았으니 내가 도중에 실족하여 믿음을 버린다면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종국에 구원 받는다. 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구원’으로부터 알미니안주의의 도덕적 윤리적 추진력이 나온다. 알미니안주의는 우리가 예수를 믿어 선택 받았고 구원 받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로 예수를 믿었으니 내가 믿음을 끝까지 지키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도중에 실족하여 믿음을 버리면(저항할 수 있는 은혜),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힘써 노력해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구원받는 다는 조건적 구원이다. 알미니안주의는 내가 처음 믿을 때 받은 구원은 완전하지 않고 인간이 힘써 노력해야 종국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주교의 의화교리, 새관점 학파의 이중칭의, 김세윤의 유보적인 칭의, 그리고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와 상통한다.

• 천주교의 의화교리
내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선행을 할 수 있는 의(은총)가 내 안에 주입된다. 그리고 나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의(구원)가 완성된다.

• 새관점학파의 이중칭의
내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는 개종 칭의가 주어진다. 최후의 심판 때 행위에 따라 의롭다함 받는 종말 칭의가 주어진다.

•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
내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 때까지 칭의가 유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믿을 때 주어진 한 번의 칭의는 ‘가칭의’ 혹은 ‘허구’란 말인가? 김세윤 박사에 의하면 칭의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 때 혹은 예수님이 우주적으로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김세윤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 문제에 대해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안식교 혹은 재침례파 신학과 일치한다. 안식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악인이나 의인이나 똑같이 그들의 영혼이 무덤 속에서 수면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 재림시(우주적 종말시) 악인은 불로 소멸하고(악인의 영혼과 몸이 불로 소멸됨: 조건적 영혼 멸절설과 악인소멸설), 의인의 영혼과 몸이 부활한다고 한다(조건적 부활설).

•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제사는 죄인의 죄를 용서했지만 그의 죄를 완전히 말소한 것은 아니다. 그의 남아있는 죄 때문에 하늘성소가 더러워졌다. 예수님은 1844년 10월 22일(대실망의 날)에 지상에 가시적으로 재림한 것이 아니라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죄인들의 죄를 조사해서 심판하심으로 성소 정결작업을 시작하셨다.

죄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 흠도 티가 없어야 조사심판에 합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큰 구원을 얻고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안식교의 창시자 헬렌 화이트(Ellen G White) 여사는 원래 감리교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알미니안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군다나 아이러니한 것은 안식교의 조사심판교리가 못 마땅하여 안식교를 탈퇴한 대다수의 사람들도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영향을 받은 교단이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오순절 교회, 천주교, 일반 침례교, 그리고 안식교 등이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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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장로는 Nevada주의 Las Vegas에 거주하며, 갈보리장로교회(협동장로)에 출석한다.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라스베가스의 '김리훈 보철치과'의 원장이다. 남가주대학(USC), 캘리포니아대학(UCLA, 치의학박사), 미시간대학(U of M, 보철전문의 석사)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또한 미주 총신(M.Div)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