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성 목사의 복음주의 비판(1)

 

1.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마셀러스 킥은,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자는 신앙과 행위의 법칙으로서 성경의 절대적 우위성(sola scriptura)과 값없는 은혜로(sola gratia) 믿음으로 얻는 의롭다 하심을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을 믿는 개신교회들을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부정 혹은 왜곡시키고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강조했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해서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성경에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개신교회들에 퍼지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1940년대에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입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지키기 위해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근본주의’도 복음주의이었다. 조지 마스든은, “미국에서의 근본주의는 전투적으로 반현대주의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 운동으로 가장 잘 정의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다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복음을 믿는 개신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교회들의 자유주의 신학과의 싸움에서 오늘날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복음주의는 오늘날에 무엇을 뜻하는가?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미국의 복음주의적 개신교회들은 두 입장과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을 배척하는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전자의 입장을 신복음주의라 불렀고 후자의 것을 근본주의라 불렀다. 그러나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점차 사용되지 않고 복음주의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신복음주의’라는 말이 더러 사용되지만,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다. 어떤 이들은 신복음주의를 성경 무오를 부정하거나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 등 부분적인 신학적 탈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런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신복음주의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1920년대의 소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 간의 논쟁에서 외형적으로 현대주의가 승리하고 근본주의가 패배한 이후, 1930년대에 성경적 교회들이 포용적인 대교단들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1940년대에 와서 그 분리된 교회들 가운데서 ‘신복음주의’라는 한 새로운 경향이 일어났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기보다 안정을 더 좋아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입장을 주창했던 이들은 성경을 믿는 보수적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포용적 교회들에 속한 자들을 포함하는 폭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제의 원리를 따르기보다 단순히 넓은 교제를 좋아하였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Fuller) 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이었다. 1948년 그는 풀러 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1930년 보수적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하였지만, 1936년 북장로교회의 분리시 메이천을 따르기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재능이 탁월한 그는 1942년 미국 복음주의자협회(NAE)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고, 1947년 풀러 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33년간 보스톤의 파크 스트릿 교회의 담임목사이었고, 25년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이사장이었고, 빌리 그레이엄의 친구이며 조언자이었다.

오켕가는 풀러 신학교 교장 취임시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그는 1957년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고 후에 “신복음주의는 분리주의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말하였다. 신복음주의 기관들로, 1942년 미국 복음주의자협회가 조직되었고, 1947년 풀러 신학교가 설립되었고, 1951년에는 20개국의 복음주의협회들이 모여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가 조직되었고, 1956년에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다.

신복음주의는 그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던 해롤드 오켕가의 생각대로 근본주의의 분리의 입장을 반대하는 것을 본질로 했다. 대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넓어진’ 교회들을 ‘배교’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변론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1920년대의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자유주의)의 갈등은 여하튼 외형적으로는 현대주의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대교단들은 ‘넓어진’ 교회가 되었고 그 후 대교단들 안에는 더 이상 자유주의를 배제하려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대교단들에서 분리되어 나온 소수의 보수적 교회들은 자신들이 과연 기독교회를 계승할 수 있는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확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켕가의 말대로, 분리의 입장을 포기하고 ‘침투’의 입장을 취하고 그 입장을 정당화하면서 넓어진 대교단 속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대교단으로 들어가 그 교단를 개혁시키고 회복시키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시작된 운동이었고, 그것이 신복음주의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라는 말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사용하게 되었을 때, 복음주의는 전통적 의미와 다른 현대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조지 마스든의 말대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리는 것이다. 각국의 복음주의자협회(NAE)나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다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였으나,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는 성경적 교제의 원리를 지키려는 근본주의와 구별되고, 신복음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고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윌리엄 애쉬브룩은 오늘날의 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혹평하며 자유주의에 대해 동정적인 ‘신중립주의’로 묘사했다. 그 증거들로 그는 이 입장의 주창자 해롤드 오켕가의 반(反)분리주의적 발언과 행위들을 들었다. 또 그는 신복음주의의 확신과 이념의 대변자로 여겨진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방침의 변경을 다른 한 증거로 든다. 그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의 본래 입장은 건전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1951년 4월 파일롯(Pilot)지에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주의도 너그럽게 보거나 교제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1952년 6월 3일자 밥 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현대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스보로와 슈립포트 외에 어느 도시에서나 교회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의 전도집회에서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받았다. 애쉬브룩은 또 복음주의의 포용적 증거의 예들로 크리스챤 라이프지 1957년 4월호가 넬스 페레, 라인홀드 니이버, 해롤드 피 등의 자유주의자를 정통 기독교인과 거리가 멀지 않은 자들로 묘사한 것이라든가, 에드워드 카넬이 칼 바르트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라는 것 등도 들었다.

촬스 우드브릿지는 신복음주의를 자유주의자들의 포용과 그들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정의했다. 그는 그 증거로 풀러 신학교가 프린스톤 신학교 전교장 신정통주의자 죤 매케이를 강사로 초청하는 것과 같은 빈번한 일들, 또 크리스챤 라이프, 무디 먼슬리,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이터니티 등이 자유주의자들의 책이나 집회 광고를 싣는 일,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일, 또 빌리 그레이엄의 협력 전도와 같은 포용적 방법을 채택하는 것 등을 들었다.

특히 그는 빌리 그레이엄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전도집회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케네디 감독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라는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명확히 부정한 자라고 지적하였다. 우드브릿지는 또한 이러한 타협적 태도의 결과로서 성경의 정경성, 완전 영감, 무오(無誤)에 대한 회의와 진보적 창조 개념의 수납 등의 신학적 변질과, 춤, 영화 등에 대한 개방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윤리적 세속화도 지적하였다.

개리 코우언은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입장을 전도활동의 측면에서 정의하기를, “자유주의자들이 이단이 아니고 견해가 다른 형제들이며 따라서 그들을 주님의 일, 특히 전도의 일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입장” 즉 자유주의자들과의 협력적 전도를 주장하고 정당화하는 입장이라고 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는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자유주의가 득세(得勢)하고 근본주의가 실세(失勢)한 데 대한 반발로 어떤 보수주의 신학교육을 받은 소장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과의 타협을 감행하기로 발족한 새 신학 운동”이라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은 요지로 논평하였다.

첫째로,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해 학문성 결여, 반교파주의, 세대주의, 부정주의 등의 말로 가혹히 비판한다. 그러나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

둘째로,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타협하는 경향이 있다. 신정통주의는 성경의 파괴적 비평을 받아들이는데, 과연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무오(無誤)를 부정하고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평한다.

셋째로, 신복음주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이적 부인의 경향을 띤다.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에 대해 진화론적 개념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교리를 중요치 않게 여긴다.

넷째로, 신복음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사회복음운동에 따라간다. 오켕가는 말하기를,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회피한 사회적 난제들을 취급하기를 의욕함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 . . 개인 복음과 사회 복음 사이에 이분설이 있을 필요가 없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구원의 개인적 초자연적 경험과 사회 철학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은 민권 투쟁, 빈민 행진 등 과격한 사회정치활동에 참여한다.

다섯째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협력적 관계를 가지고 배교적 교단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신학적 대화를 원하고 그들을 강사로 초청한다. 또 빌리 그레이엄의 경우와 같이,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들과 협력하여 전도대회를 연다.

박형룡 박사는 결론적으로 신복음주의자들을 잘못 아는 형제들이거나 열렬하지 않은 이단자들이라고 논평하였다.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에 대한 이상의 진술들은 오늘날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적 교단들과 분리하지 않고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복음주의가 신학적 탈선들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으나, 그것은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와 협력에서 생긴 당연한 결과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본질은 교제의 문제에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 혹은 포용주의 교단들과의 분리를 반대하고 그들을 포용하고 인정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는 입장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를 포함하여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을 이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겠는가?

이단은 죄 중에 큰 죄이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는 교회들은 자유주의 이단을 용납하거나 포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교회들이 이단을 용납한다는 것은 그 교회들이 배교한 교회들이든지 심히 무지하거나 해이해진 교회들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단들을 용납하는 것은 구약성경뿐 아니라, 신약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교훈, 특히 교제의 원리를 가르치는 교훈을 거역하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신명기 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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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