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교수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구원 신학과 성경의 구원론, 특히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방법이 일치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무런 행위를 하기 전에 오직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준 신앙고백서에는 원래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계명준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웨민고백서 19장 1항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켜야 할 법을 주시고, 그것을 완전하게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위반하면 죽음에 처한다고 경고하시면서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2)

웨민고백서 19장 2항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도 그 법에 완전하게 순종하도록 요구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법을 훗날 시내산에서 돌 판에 기록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결국 아담은 십계명 등의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처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 나라 건설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브라함의 구원은 거짓 구원이었을까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로 불리워지는 웨민고백서에 나오는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답변>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여 대신 속죄 제사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므로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속죄제사를 세우셨읍니다. 구약의 속죄제사는 실제로 죄를 제거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예표하고 가르치고 지시하는 역할만을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씩 유월절에 백성을 위해 대속의 제사를 드린 것도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예표였고 죄를 속한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 대속죄 제사를 위해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았는데, 그 어린양으로 제사하여 속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속죄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드린 대신 속죄제사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유월절에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은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잡기 위한 연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기 위한 연습을 1500년 동안 열심히 하다가 예수그리스도를 잡아 십자가에 달므로 그들의 소임을 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제사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70년 로마 디도장군의 손으로 성전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몰살시켰습니다. 이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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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