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사람이 예장 합동의 존경하는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합동이 소중하게 여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하 WCF)에 비성경적인 회중파 청교도(회중교회)의 행위언약 사상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WCF의 7장의 제목은 “사람과 하나님의 언약에 관하여”이고, 2항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WCF 7.2)

이 내용은 아담이 하나님이 제시하는 모든 조건들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겠다는 언약이 태초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심각한 왜곡이 따라오게 된다.

1) 하나님은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대충 사람을 만드시고 “이제 너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 백성의 신분과 영생을 획득하기 바란다!”라고 제시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노력하여 영생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불교, 힌두교, 뉴에이지, 영지주의 등과 기독교와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사상이다.

2) 하나님게서 다른 피조물들을 다 지으신 후 6일째 되는 날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고 창세기는 말한다. 우주와 삼라만상이 먼저 조성되고 난 후에 아담이 지어졌다는 것은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 백성 지으심이고, 지구와 우주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김을 위하여 살아가는 공간으로 창조되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창조를 다 마치고 안식하셨다는 것은 아담과 피조세계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WCF 7장 2항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창세기에 대한 이런 해석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백성되지도 못한 아담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위 WCF의 내용이 진리라면 창세기 1장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인가?

3) 아직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죽음과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를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지구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더욱 더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그런 불안정한 아담을 향하여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자평하셨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다.

4) 칼빈도 성경을 잘 몰라서 아담이 영생을 소유하였으나 타락함으로 영생의 은사를 박탈당했다고 잘못 가르쳤다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2)
 


웨민고백 7.2의 행위언약의 문제성 

WCF의 7장의 행위언약 이론은 기독교를 훼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게 하는 문제 있는 사상이다. 교황과 천주교의 사슬에서 피 흘리는 싸움을 통해 해방된 종교개혁 교회들이 불과 100년 만에 다시 마귀의 사슬에 묶여버린 것이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준수했어야 할 조건들이 무엇인지도 설명되어야만 행위언약이 하나의 이론으로 설 수 있다. 그래서 WCF는 아담이 이행했어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훗날 모세를 통해 기록된 10 계명이 아담이 지켰어야 할 영생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WCF 19장 1,2항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2)

이 내용을 그대로 믿는 회중파 청교도(회중교회)들은 아담 때에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에 10 계명의 내용을 심어주셨고, 아담의 타락 후 후손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마음에 심어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모세를 통하여 돌판에 10 계명 형태로 기록하여 주셨다고 한다. 회충파 청교도(회중교회) 신학자 프롱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프롱크, 26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프롱크, 258)
 

WCF의 행위언약을 설명하는 회중교회 신학자들의 말이 옳다면, 또 다른 모순들이 일어나게 된다.

1) 하나님이 “보기기에 심히 좋았더라”하신 피조세계에 사탄의 우상들이 많았으므로 아담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셔야만 했다는 것이다.

2) 죄를 이길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가진 타락 이전의 아담과 완전히 죄의 종(사탄의 노예) 되어 죄를 범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동일한 방식으로 지도했다는 것이다.

3) 10 계명은 모세를 통해 처음 주어졌다는 사도 요한의 말(요 1:17)과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죄가 먼저 들어왔다는 사도 바울의 말(롬 5:13), 율법이 모세를 통하여 처음 주어졌다는 예수님의 말(요 7:19)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4) “아브라함이 죽은 후 400이 지난 후에 율법이 첨가되었다”(기독교강요, 2.7.1)라고 가르친 칼빈도 성경을 몰랐다는 것이다.
 

언약신학의 발전 과정

왜 WCF속에 문제되는 사상이 들어있는 것인가? 웨스민스터신앙고백서는 장로교의 조상들(스코틀랜드 언약도), 회중교의 조상들(회중파 청교도, 독립파 청교도), 그리고 다른 종파들의 조상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모두 서명하도록 유도되었다. 각 종파들의 신학이 고루 반영되어야 했으므로 각 종파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천 명 이상의 학자들이 4년 동안 천 번 이상 모였다. 각 종파의 신학의 특징들이 고루 반영되는 신앙고백서가 되기 위해 그리했던 것이다.

필자는 WCF의 행위언약 사상이 회중교회 조상들에게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는 짐작했다. 회중교회(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엄 퍼킨스(Willam Perkins, 1558-1603)가 행위언약 사상을 본격적으로 고안하였음을 이제서야 확인하였다. 그 동안 퍼킨스가 비성경적인 회중교회의 회심준비론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의 근본바탕이 되는 행위언약 사상을 도입하는데 가장 앞장선 사람도 바로 퍼킨스였다.

행위언약 사상은 1580년대 말, 1590년대 초에 시작된 청교도 운동의 노선 변경과 관련되었다. 그 전까지 청교도들은 국가의 체제를 고치는 종교개혁을 추구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전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교회의 감독들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청교도들은 고립되었고, 그때부터 종교개혁의 방향을 바꾸었다. 국가의 체제를 고치는 개혁을 포기하고 국가가 싫어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개인의 경건, 가족 신앙, 주일성수, 실천적 신학 등의 영역으로 청교도 운동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때까지 언약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츠빙글리가 재세례파들을 물리치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그리고 신구약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언약신학을 개진하였고, 그의 후계자 블링거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믿음을 강조하는 조금 비성경적인 언약신학을 개진했다. 불링거의 언약 사상이 행위언약과 유사성이 있기는 하나, 행위언약이라는 용어, 개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칼빈은 언약 신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지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구원받을 자들에 대한 예정이었으므로 칼빈의 언약이해는 츠빙글리와 같은 내용이었다.

조금 다른 언약 이해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을 작성한 자카리우스 우르사이누스(Zacharius Ursinus, 1534-1583)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1560년에 먼저 ‘자연언약’(Natural Covenant, 또는 율법언약(Legal Covenant)) 개념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재세례파들에게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차원에서 나타난 이론이었다. 그는 다시 1562년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이론을 발전시키어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고, 이후의 모든 인류가 그 언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우르사이누스는 ‘행위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주장은 행위언약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우르사이누스의 주장은 그 당시 개혁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나 1580년대 말, 159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의 청교도들에게서 그의 언약 신학이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이 국가적 규모의 체제를 바꾸려는 전략에서 개인의 경건, 가족 신앙, 주일성수 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츠빙글리와 칼빈의 언약 사상으로는 구원을 위한 개인의 적극적 헌신과 능동적 참여를 독려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문제였다. 츠빙글리와 칼빈의 언약 사상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예정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행위언약 사상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의 작품

영국의 청교도들은 개인의 경건과 헌신을 요구하고, 자극하고, 격려하기에 적합한 다른 언약 사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가르침보다는 구원을 얻기 위해 각 개인들에게 요구되는 의무, 헌신, 조건 수행을 강조하는 언약 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더들리 패너(Dudley Fenner, 1558-1587),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윌리엄 퍼킨스, 로버트 롤락(Robert Rollock, 1555-1599) 등이 그 동안 무관심했던 우르사이누스의 언약 사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인지를 확실하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은혜언약’으로,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행위언약’으로 구분하는 사상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모든 영국 국민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상태에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교회에 다니지만 구원받지 못한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을 행위언약에 집어넣었고, 또한 앞으로 변화되어 은혜언약으로 들어가야 할 사람들로 간주하였다. 행위언약에 속한 사람을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방법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는 율법이었다. 율법준수를 강조하고, 율법에 의해 저주받은 영혼의 비참함을 깨닫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구원의 복음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성령의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 행위언약에 속한 사람들이 은혜언약으로 이동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를 믿어 이미 은혜언약 속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도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보았다. 구원 후에도 행위언약에서 중시하는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여 자신의 경건을 늘 강화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행위언약 사상으로 영국의 전 국민을 청교도 개혁운동의 대상으로 만들어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청교도 신자로 만들려는 그들의 전략이 이렇게 무르익었던 것이다. 유명한 ‘청교도의 율법주의’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이 작업을 가장 앞장서 수행한 사람이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였다. 그는 <금사슬>(Golden Chaine)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행위언약 사상을 체계화시켰다. 퍼킨스는 행위언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을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윌리엄 퍼킨스)

퍼킨스의 언약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롱하는 거짓된 주장이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그가 말하는 구원을 위한 조건적인 계약이라고 할 내용은 없었다. 기독교를 파괴하려고 마귀가 퍼킨스를 통해 만들어 낸 이단사상일 뿐이다. 어거스틴, 칼빈 등 정상적인 교회사의 위인들 가운데 퍼킨스 같이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해석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퍼킨스이 만든 이 행위언약 신학은 또 다른 많은 나쁜 것들을 발생시켰다.

1) 회중파 청교도(회중교회)의 특징 율법주의

2)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의 자격, 권리를 취득했다는 능동순종

3) 율법으로 겁박하는 회중파청교도(회중교회)의 회심준비론

4) 회중파 청교도의 성령의 내적인 확신과 성령의 신적인 빛: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의를 얻는 ‘법정적 칭의’를 가르쳤으나, 회중교회는 구원을 점검할 때 행위언약의 율법준수와 성령의 내적인 확신에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훗날 신자에게 체험으로 다가오는 성령의 성화 신비주의가 태동했다.


합동은 서철원 박사의 '첫 언약', '새 언약'으로 

그러면 이제 우리 합동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 합동은 어떻게 언약신학을 정리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필자는 서철원 박사의 언약 신학이 합동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신학이 선악과를 영생 얻기 위한 조건적 율법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약화되었다. 서철원 박사는 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언약,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드는 언약 하나만 있다고 가르친다. 창세기의 선악과를 아담이 하나님의 백성 될 것을 약정하는 ‘첫 언약’으로 보아야 하고, 신약의 언약은 실패한 첫 언약을 회복하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맺어진 ‘새 언약’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구도로 개혁신학의 언약 신학이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 전체의 제시에 의하면 하나님은 창조경륜에서 자기의 백성을 가지실 것을 작정하셨다. 이 작정에 의해 자기의 백성을 가지시려고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백성은 창조주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책임을 갖는다. 이 책임이 언약체결로 주어졌다.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면 언제든지 백성들이 의존해서 살 생활의 규범을 주셨다. 이 규범에 의해서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선악과 계명을 주셨다. 

첫 언약에 상응해서 새 언약이 신약에 제시되었다(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히 8:8). 전통적인 개혁파 신학자들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도식으로 사고함으로 새 언약을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첫 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새 언약은 첫 언약의 성취이다. 두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가지시는 경륜을 온전하게 이루신다.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 된 아담과 하와와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자기의 백성 삼으신 것을 명백히 하셨다. 이 성경적 언약 개념으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3: 인간론>, 30)

 

 

끝으로 WCF에 대한 필자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린다. "성경도 아닌 문서가 이 정도로 성경적인 내용을 많이 품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전집>보다 조금 약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참고해야 할 귀한 내용이 무척 많은 성경적인 문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에서 장로파 청교도들과 함께 활동했던 회중파 청교도 등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비성경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되었으니, 걸러 낼 것들을 거르면 개혁교회와 신학에 큰 유익이 된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전히 WCF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목사가 될 때, WCF에 대해 손을 들고 따르겠다고 선서했으니 일체 이견을 말하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앙과 양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정이철 목사) 

 

--- 참고 문헌 ---

1)존 칼빈, <기독교강요>
2)서철원, <교의신학전집3: 인간론>
3)웨민고백서(WCF)
4)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e: ..." The Works, vol 1.
5)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원종천 교수의 이 책이 이 글을 위해 가장 많이 참고되었다.
6)코르넬리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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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