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信條)는 영, Creed, 라, Credo(Credomus)에 대한 번역이다. 신조는 증표, 상징이라는 의미로서 영, Symbol, 라 Symbolum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신조는 신경(信經)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도신조’보다 ‘신도신경’이라는 용어를 더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니케아 신조 혹은 니케아 신경으로 사용한다. 신조는 교리와 동의어이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교리보다 신앙고백이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교리가 결정되기 전부터 있었던 문장이기 때문이다. 교리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이다. 기독교 교리는 삼위일체(동일실체, homoouison)과 그리스도 양성교리(theotokos, Dei Genetrix)이다. 또 한 문장은 아타나시우스 신조(Quicumque, Symbolum Athanasianum, Athanasian Creed)이다.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공교회(에큐메니칼 회의)에서 결정한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며, 또 문서 작성자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용만 좋으면 됐지 저자가 중요한가?라고 질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교회 문서는 저자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도신경은 공교회 문서가 작성되기 전부터 교회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니케야 신조와 권위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로마 교회를 시작해서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절대문서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는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라고 사용한다. 게요(揭要)의 ‘게(揭)’는 ‘게양(揭揚)’에 사용되는 어휘로, 높이 든다는 의미이다. ‘요(要)’는 중요(重要), 요약(要約), 긴요(緊要) 등의 의미이다. 게요는 “믿음의 문장을 높이 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군대(軍隊)의 군기(軍旗)가 될 것이다. 우리는 ‘신도게요’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의미를 알면 좀 더 명확한 어휘이다. 장로파 신도게요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다. 그것은 장로파 군대의 군기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영, Confession, 라, Confessio에 대한 번역이다. 루터파와 칼빈파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루터(M. Luther, 1483-1546)는 1529년 대,소요리문답을 집필했다. 그리고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멜랑톤(Philipp Melanchthon,1497-1560)이 작성했고 루터가 인준했다. 루터파(Gnesio-Lutherans)는 멜랑톤(the Philippists) 사후 20년이 지난 1577년, 1580년에 서로 화해와 일치를 위해 새로운 신앙고백, 일치신조(Formula of Concord)을 채택했다. 칼빈파는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에서 정착했다. 칼빈파는 각 지역마다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신앙고백서는 믿음 문장으로 표준문서(standard text)를 작성한 것이고, 요리문답(要理問答, Catechism)은 믿음 문장을 훈련하기 위한 방편이다. 칼빈은 제네바로 귀환하여 1542년 제네바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루터와 칼빈은 신앙고백서가 작성되기 전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이들의 요리문답은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을 기본 골격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칼빈파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그에 문서를 교육하기 위해서 요리문답을 구성했다.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를 작성했는데, 팔즈에서 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를 근본으로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가 아우구스부르크 협약(The Peace of Augsburg, 1555년)을 근거해서 구교도 루터파도 아닌 팔츠에 개혁신학(칼빈파)을 제거하려고 할 때,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III, 1515-1576)가 불링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불링거는 '참된 기독교를 위한 바른 신앙과 보편타당한 교리', 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를 지원했다.

네덜란드 개혁파는 벨직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 신경을 일치신조(Three Forms of Unity)로 채택했다. 프랑스신앙고백서(Gallic or French Confession of Faith, 1599년)은 요리문답을 작성하지 못하고 소산되었다. 벨직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1561년)도 그렇지만 네덜란드 교회가 표준문서로 채택해서 보존되었다. 이러한 문서는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 생존할 때 작성된 문서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과정에는 트렌트 종교회의(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앙고백서’를 ‘신조’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도르트 신조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1618년에 개최된 도르트 공의회이다. 도르트 회의는 국제회의이고 유럽의 모든 개신교 사역자들이 참가한 유일한 국제, 공적 회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르트는 공회의적 성격이 있지만, 칼빈파의 공회의이다. 한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 The Universal Church)의 공회의(The Council)는 아니다. 트렌트 종교회의도 교황주의의 종교회의이다. 보편교회의 회의는 1054년 이후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개혁교회는 454년 칼게돈 공교회(칼케돈 신경)까지는 보편교회의 신조로 인준한다. 7회 공회의에서 4회 문서만 바른 문서로 채택한다. 도르트 신경은 개혁파(칼빈파)의 문서이다.

325년 니케야 신경,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 431년 에베소 신경, 451년 칼케돈 신경이 에큐메니칼 신조이다. 신조는 기독교의 문서이다. 개신교는 루터가 선언한 “이신칭의”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으로 신봉한다. 개신교 안에도 신인협력(Synergism) 요소를 용인하는 진영과 거부하는 진영으로 현격하게 구분된다. 루터파나 칼빈파는 신인협력을 전혀 용인하지 않는다. 루터파나 칼빈파에서 작성한 문서는 신앙고백서로서, 각 진영의 표준문서이다. 다른 개신교 종파들도 각각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그 신앙고백서가 자기 믿음의 기본 신앙 정체성이다.

한국 장로교는 1907년 독노회에서 12신조를 표준문서로 채택했다. 2012년 김길성 박사와 최성헌 박사는 공통으로 “합동과 통합 등 4개 장로 교단 신앙고백서 분석”했다. 합동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와 대소요리문답 그대로 수용했고(1963년), 고신 교단은 성령과 선교 관련해서 첨가된 2 장(35장)이 있는 문서를 수용했고(1969년, 1975년), 통합 교단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 위해 ‘21세기 신앙고백서’ 채택했고(1986년, 1997년), 기장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버리고 진보적 성향의 신앙고백서 작성했다(1972년)고 발표했다.

교단은 자기 표준 문서를 밝히는 것이 교단의 기본이다. 신앙고백서를 바르게 밝히고 탐구하는 것이 교단 신학자와 목사의 기본 훈련이다. 그것은 곧 고대 신조와 성경으로 믿음을 일치시키는 한 방법이다. 믿음 훈련은 곧 믿음의 주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믿는가? 그 믿음의 주께서 세상에서 자기를 누구라고 말하는가?를 질문하신다. 그 때 우리는 다시 믿음 고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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