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최초의 회심준비론(윌리엄 퍼킨스) 연구 1

회중파 청교도들에게서 기독교를 왜곡하는 회심준비론이 발전된 이유는 그들의 특별한 교회론 때문이다. 영국 국교회회가 전 국민을 교회의 회원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참을 수 없었다. 회중파 청교도 조상들의 그 관점은 옳았다. 그러나 오직 구원받은 참 신자들로만 구성되는 지상의 순결한 교회를 추구한 그들의 사상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자신의 구원의 증거를 분명하게 고백하는 사람만 추렸고, 기존의 교회 회원들이 그들의 교인 자격을 위해 투표하였고, 최종적으로 명문화된 교회의 회원의 의무와 자격에 관한 내용에 동의하고 서명한 사람을 교인으로 받았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오직 구원 받은 사람만 교회의 회원이 되어 성찬식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회중파 청교도들이 불신자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단계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회심준비론을 발전시키게 된 것은 그들의 교회론과 상당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교의 신학의 기초를 세운 종교개혁자 칼빈은 누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지에 대해 사람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쳤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특권이다 (딤후 2:19). 이것은 사람들의 경솔한 판단을 억제하시려는 조치였다. 또, 평상시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하나님의 은밀한 판단은 우리의 이해력이 도저히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전히 멸망해서 아무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부름을 받아 바른 길로 돌아오며, 누구보다도 굳건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넘어 진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에 따라 ‘밖에도 양이 많고 안에도 이리가 많다.’ 주께서는 주를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자들을 아시며 표를 해 두셨다. 주님의 눈만이 주의 휘장을 달고 다니는 자들 가운데서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들과 구원의 종점에 이르기까지(마 24:13) 참고 견딜 수 있는 자들을 알아보신다.” (『기독교강요』, 4.1.8)1)

회중파 청교도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주의 깊게 읽고 따랐다면 절대로 회심준비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비추어볼 때, 회심준비론이 칼빈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고 확신한다.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한 말들 속에는 회심준비론의 핵심적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내용들이 많다. 앞으로 차근차근 회심준비론의 문제점들을 분석하면서 칼빈의 말들을 소개할 것이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하여 자신들의 새 길을 개척한 초기 회중파 청교도들은 칼빈의 교회론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회중파 청교도 운동의 기초를 놓은 순교자 핸리 베로(Henry Barrow) 칼빈의 교회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2)

“(칼빈은) 교황제의 연기 자욱한 용광로에서 갓 벗어났기 때문에 시온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그것에 도달할 수도 없었다.”

“(칼빈은) 아무 정밀 심사도 없이 그 도시 전체, 심지어 모든 무지하고 독선적인 자들을 교회의 품으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성례를 집행했다.”

“(칼빈은) 온 유럽에 해로운 본이 되어 동일한 과오를 범하게 했다.”

회중파 청교도 초기 인물들에게 신학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칼빈이 아니고 그의 제자 데오도르 베자였다. 현재까지 파악된 내용에 의하면, 베자는 율법과 칭의의 관계에 관하여 칼빈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을 가장 먼저 입안한 사람은 윌리엄 퍼킨슨(William Perkins, 1558-1602)인데, 그는 베자에게서 신학을 배웠다.3)

양낙홍 교수의 연구를 보니, 최초로 회심준비론을 작성한 퍼킨슨은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과정을 열 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처음의 네 단계는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참석하는 것 등이 중시되는 ‘예비적인 과정’으로 분류될 수 있다.4)

특이한 점은 퍼킨슨이 네 번째 단계에서 ‘율법의 두려움’이라 개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5) 퍼킨슨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먼저 구약의 율법을 배우고 접하여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받아야 할 저주와 진노의 심각성을 알고 절망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퍼킨슨은 구원과 무관한 불신자도 이 단계에 까지 올 수 있으나, 오직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설명되는 구원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알게 하신다고 하였다.

이후 다른 회중파 청교도 목사들에 의해 나타난 회심준비론에서도 퍼킨슨이 강조한 복음보다 먼저 율법을 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은 ‘확실한 깨달음’(conviction), ‘겸비해짐’(humilliation) 등의 다른 표현으로 계속 등장하였다.6)

퍼킨슨은 회심과정의 네 번째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불꽃을 점화시켜 주신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점화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간절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게 된다고 퍼킨슨은 설명했다.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에 이르게 되고, ‘죄에 대한 비애’를 느끼면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율법)에 순종하고자 애쓰는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가르쳤다.7)

퍼킨슨에 의해 최초로 등장한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 속에 어떤 비성경적인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자. (오늘은 지면의 한계상 하나만 살펴보고 다음에 이어 가도록 하자).
 

1) 복음보다 율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위험한 사상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구약의 율법을 먼저 전하여 사람이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해야 한다는 퍼킨슨의 주장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필자도 어느 정도 성경을 안다고 자부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가르침을 성경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사도 바울이 퍼킨스의 이론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보다 구약의 율법을 먼저 철저하게 가르쳐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절망하게 하였던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37-39)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 17:2,3)

바울의 전도에 대한 성경의 말씀들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복음전도에 대한 주장과 다르다.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최고의 해설자였던 사도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약의 중요한 내용들을 해설하는 설교를 전하였다. 바울의 설교는 결코 ‘선율법 후복음’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항상 구약의 율법, 제사 등의 예비 복음과 그리스도 십자가를 연결시켜 설명하였다. 구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과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바울의 전도와 설교의 핵심이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11)

바울은 구약의 율법만 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느끼고 절망하게 하지 않았고, 항상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했다. 그때 바울의 사역과 함께 역사하셨던 성령이 구원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도록 역사하셨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스데반 집사, 사도 베드로 등의 설교의 내용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방식과 같았다. 그들은 결코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이 강조하는 것처럼, 먼저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의 사람들은 언제나 구약의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그리스도와 연결시켜서 해석하고 설명하였다.

정통 개혁신학의 기초를 세운 종교개혁자 칼빈의 『기독교강요』 어디에도 먼저 율법으로 사람들을 겸손(?)하게 낮추어 놓고 난 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없다. 칼빈도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라고 가르쳤다.

“이 일을 근거로 바울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고전 2:2).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21절) 증거했노라고 말하였다. 또 다른 구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다.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7-18).” (『기독교강요』, 3.2.1)8)

“이 점은 안디옥 설교도 분명히 확인한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느니라"(행 13:39 의역).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라면, 그리스도께서 그 짐을 담당하시고 마치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같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신 것이 공로가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주셨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사도가 다음에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가르친 것도 같은 뜻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려 하심이라’(갈 4:4-5).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율법 하에 두신 것은, 우리가 치를 수 없는 것을 그가 치르심으로써 우리에게 의를 얻어 주시려는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기독교강요』, 2.17.5)9)

정통 칼빈주의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율법을 전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전해야 사람이 예수 믿고 회개하는 열매를 얻는 다고 강조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선포할 때이다. 성령은 전도자이시지만, 자기 스스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복음선포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냥 예수 믿으라고 하는 단순한 권고는 성령이 일하시기에 합당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 성령은 전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전파하고 증거하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사역이 분명히 전파되는 곳이다 ... 이것이 효력있는 부르심이다. 효력 있는 부름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을 온전히 전하려면 창조경륜부터 시작해야 한다. 창조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언약을 체결하셔서 창조주만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셨다. 그런데 반역이 생겼고 그로써 죽음과 저주가 왔다.

하나님은 반역을 무효화하는 새로운 조치를 하셨다. 반역한 백성을 돌이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이 목적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피 흘리심으로 죗값을 지불하시고 죄를 용서하시어 자기 백성으로 돌이키는 일을 수행하셨다. 이 복음진리를 말해야 한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50-52)10)

서철원 박사의 말의 뜻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이 설교했던 방식, 즉 구약의 중요한 내용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연관되어 설명되어질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칼빈이나 서철원 박사 같은 정통 개혁신학자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평소에 자주 무서운 율법을 선포하고 강조하여 사람들이 기죽고 정신 바짝 차리게 한 후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성령의 은혜가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을까? 필자는 복음보다 율법을 더 먼저 강조해야 교회가 바르게 서고, 건강한 신앙의 성도가 많이 나타난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는 그런 식으로 율법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터와 루터교회는 율법이 사람으로 회개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 율법을 선포하면 회개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완고해져서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찾는다. 회개는 율법선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복음선포로 이루어진다 ... 그러므로 율법은 은혜의 방편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무엇이며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선포한다. 율법을 선포 받아서는 결코 회개에 이르지 않는다. 실제로는 율법을 선포 받아 죄를 아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선포 받으므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믿게 된다.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므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줄을 깨닫고 회개하여 믿고 의에 이른다 (롬 4:13-16). 율법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 죄를 알게 하고 피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선포해야 한다. 즉 그렇게 육의 욕망을 따라가면 범죄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율법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율법으로 사람을 고치려고 책망하고 꾸짖으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반발과 반감만 갖는다. 율법을 가르치고 전파해서는 결코 죄짓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행실을 고칠 수도 없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6: 교회론, 97-99)11)

"그리스도가 오신 후 율법은 구원의 길로서 폐지되었다. 이제 구원의 길은 예수 믿는 것뿐이다. 더 이상 구원의 길에 율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회개하고 예수 믿는 믿음은 복음의 선포로만 이루어지고 율법이 예배 과정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음에 율법준수를 병행하였다. 바로 이 방식으로 그들이 완전히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바울은 이 구원의 방식에 한사코 반대하였고, 복음의 선포와 그것을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이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밝혔다. 

율법은 본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시민생활에 악의 행함을 제재할 뿐이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길에는 절망과 멸망뿐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 율법이 몽학선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또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와서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열망하게 하므로 그 임무를 다한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98-99)12)      

 

--- 미주 ---

1) 존 칼빈,『기독교강요』(4.1.8)
2) 양낙홍,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부흥과개혁사, 2017), 30-31.
3) 서요한,『청교도 유산』(그리심, 2016), 100. 이상규,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
4) 양낙홍, 40.
5) 앞의 글.
6) 앞의 글.
7) 앞의 글, 41.
8) 존 칼빈,『기독교강요』(3.2.1)
9) 존 칼빈,『기독교강요』(2.17.5)
10)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쿰란, 2018), 50-52.
11)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6: 교회론』 (쿰란, 2018), 97-99.
12)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쿰란, 2018), 1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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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