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교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합니다. 로마교회 교황의 수위권이란 무엇일까요?

“교황의 사목적인 권한: 교황 고유의 최고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고 교회의 규율과 다스림에 관한 것이다.” (천주교 용어 사전-‘수위권’)

로마교회에서 교황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존재이고,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존재로서 신자들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천국과 지옥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교황에게는 어떤 사람들에 천국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또한 닫아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권세가 있다고 합니다. 과연 천주교의 교황의 수위권이라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을까요?

“모든 주교 가운데 제1의 지위인 교황이 가진 권한을 수위권이라 한다. 이 수위권은 교회의 창설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권한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교회의 반석이라 부르고, 그 반석 위에다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였다(마태 16: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이루어졌다. 부활한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세 번씩이나 당부하셨다 (요한 21:15-17). 이러한 베드로의 수위권은 그를 계승한 후임 교황들에게 전수되었다.” (카톨릭 대사전-‘수위권’)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자신의 수위권을 베드로에게 주시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로마의 초대 감독이었고, 로마의 감독이 시간이 지나면서 천주교의 교황으로 변천되었습니다. 로마의 감독 사도 자연히 베드로를 계승하는 천주교의 교황에게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넘기신 수위권이 승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감독’이라는 직분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전파하는 목회자를 ‘장로’, 또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장로와 감독 사이에 서열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권에서는 신약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회자를 장로라고 호칭했고, 그리이스 문화권에서는 정부의 관리를 의미하는 호칭 ‘감독’을 목사의 의미로 상황화시켜 사용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장로라는 호칭은 생소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시대부터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각 도시의 장로를 세우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각 도시 교회들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목회자가 될 사람에게 신앙의 열매를 확인하고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 적용해야 할 성경적인 기준들을 엄격하게 시행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목양과 설교를 위해 합당한 사람이 하나님의 소명을 공적으로 검증받은 후 최종적으로 그 교회의 신자들의 동의를 얻은 후 목회사역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교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역 단위로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작은 도시에는 한 명의 장로(감독)을 세웠습니다. 여러 개의 교회가 필요한 큰 규모의 도시에서는 적당한 크기로 지역을 나누었습니다. 나누어진 지역들을 단위로 교회가 형성되었고, 그 교회들에서 말씀을 전하는 장로(감독)이 세워졌습니다.

한 도시에 여러 명의 목회자들이 활동하면서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목회자들 중에서 이단에 빠지거나, 목회자 자신의 부족한 행실이나 허물로 인해 교회와 신자들이 상하는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의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동시에 그 도시의 다른 목회자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서열이 높고 특별한 권한을 가진 목회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만 ‘감독’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의 감독, 안디옥의 감독,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 이렇게 대 도시마다 자기의 로칼 교회를 목양하면서 동시에 도시의 다른 목회자들을 대표하고 관리하는 감독이 존재하게 었습니다. 천주교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9)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정말 베드로 한 사람에게 그 권세가 주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로마 감독직을 계승하는 교황이 그 권세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실제로 천국 문의 열쇠를 주었거나, 베드로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게 한다는 것으로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고백하였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즉 장차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 의해 전파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베드로가 실제로 로마에 갔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증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AD 67년에 시작된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했다는 것은 역사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때는 대략 AD 33년경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베드로가 지상에서 살았던 시간은 대략 34년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 약 20년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성경의 많은 중요한 사건들 속에 항상 베드로가 보입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 2:11,12)

위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때는 AD 56년경으로 봅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갔을 때는 대략 AD 56년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잠시 머물고 곧 바로 로마로 갔다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대략 12년 정도 살다 순교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핍박의 때가 순교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지 수년 전까지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4-5년 전에 저술된 로마서에는 베드로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미 로마에 가 있었다면,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 로마서에 베드로의 이름이 한 번 정도는 나올 법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수년전가지 베드로는 로마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행 28:14,15)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했을 때, 로마의 많은 성도들이 바울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베드로는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니, 그가 만일 로마에 있었다면 성경은 분명히 그의 이름을 특별하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후 바울은 로마에서 연금된 상태에서 복음전하였고, 동시에 여러 곳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베드로가 로마에 있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빌 2:19, 20)

바울은 로마에서 연금 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돕는 사람은 디모데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일을 위해 떠났다고 합니다. 만일 이때 베드로가 로마에 목회일을 하고 있었다면, 바울이 이렇게 외롭고 힘들도록 방치했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전도하고 목회하였다는 천주교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6장에서 천주교의 직분제도와 교황직에 대한 천주교 측의 모든 이론들을 다루고 난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 이제 카톨릭 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그들의 수위권을 찾도록 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근거는 지극히 빈약하다.” (기독교강요, 4.6.15)


오늘 날 천주교의 교황의 위세를 보십시오. 그가 어떤 나라에 방문하면, 그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공항까지 직접 나가서 맞이합니다. 각 나라의 대통령들이 교황을 부르는 공식적인 호칭은 'Holy Father'입니다. 세계의 대통령이고 대통령들의 대통령인 미국의 대통령도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라고 호칭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부 하나님만 우리의 아버지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이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성부 하나님에게만 돌려드려야 할 그 호칭을 교황의 공식적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교황이 그리스도에게서 땅에서 천국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부여받은 베드로의 로마 감독직을 계승하였다는 이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천주교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지하에 베드로의 실제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무덤 위에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무덤에 있는 유골은 과연 누구의 유골일까요?

이런 것이 바로 종교의 함정입니다. 거대한 종교와 결부된 일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이성의 기능으로 대처하거나 반응하지 못합니다. 작은 부족의 무당 종교로부터 세계에서 제일 위세가 큰 로마의 교황 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들에게는 이와 같은 거짓된 능력이 있습니다. 신들의 능력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보통 사람의 힘으로 이긴다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천주교에만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따르고 믿는 많은 가르침들 속에 성경의 진리와 무관한 교묘한 거짓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동 교리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있고 불과 100년도 되기 전에 또 다시 사탄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심장 속에 그런 무서운 속임수를 심어두었던 것입니다.

두려워하며 항상 깨어서 성경으로, 계시의 정신으로 살펴야 합니다. 교묘하게 성경의 옷을 입고 있는 그릇된 가르침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게 하시고, 그것과 싸우도록 역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싸우는 사람들을 향하여 대다수가 이렇게 말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시비를 거네! 자기가 구약의 선지자나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야! 이번에 누굴 죽이고 나면, 또 다른 사냥감을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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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