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은 Gertrude Huehns의 견해를 따라서, 반율법주의는 낮은 칼빈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반동으로 1640년대 영국에서 발생했다고 제시했다(김재성: 2003, 391). 반율법주의 교설(敎說)은 교회사에서 정통 교리를 거역하는 정형화된 이설(異說)이다. 반율법주의는 무율법주의, 방종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루터와 아그리콜라 논쟁(Johann Agricola, 1494-1566)이 있고(율법폐기론), 칼빈 시대에 리베르땅(Libertines) 혹은 자유주의로 불리는 방종주의가 있다. 루터는 1539년 <율법폐기론에 대항해서>(Against the Antinomuans)에서 반율법주의를 명백하게 거부했고, 아그리콜라는 루터의 권면을 따라 율법폐기론을 철회했다.

그런데 제네바에서 방종주의는 세르베투스와 연합해서 칼빈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1553년 세르베투스가 화형된 뒤로 칼빈을 괴롭히지 못했지만, 세르베투스의 후예들은 소시니안으로 유니테리안으로 변화하며 유럽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개혁교의학>(1928-1930)을 읽으면 소시니안이 그 당시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반율법주의의 기원을 영국으로 보는 것은 영국에서 자기 논리 체계를 확립했기 때문일 것이다. 율법주의(Legalism or Nomism)를 반대한 것이 반율법주의라면, 반율법주의를 반대한 신율법주의(Neonomianism)도 발생했다. 20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새관점학파(NPP)는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를 제창하기도 했다.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는 반율법주의와 소시니안(유니테리언)을 적극 거부한다.

“낮은 칼빈주의(Low Calvinism)”는 아미랄디즘(Amyraldism)인데, 1633년부터 1664년까지 프랑스 소뮈르에서 모이즈 아미로(Mouse Amyrault)가 높은 칼빈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형성된 칼빈주의이다(the School of Saumur). 낮은 칼빈주의는 제한속죄에 대해서 부정하여, 4 point 칼빈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TULIP에서 L(Limited Atonement)에 빠진 TUIP이다. 아미로의 입장은 이후에 소뮈르 신학교의 카메론, 리차드 백스터, 존 번연, 새뮤얼 홉킨스, 하인리히 헤페 등의 학자들에 의해 옹호되었다(고든 루이스 외:2010). 남침례신학교 브루스 웨어, 멀러는 칼빈주의에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통 칼빈주의자들은 일관되게 아미랄디즘을 거부했다. 아마도 반율법주의는 칼빈주의(orthodox Calvinism)를 반동하는 형태에서 발생한 것이 좀 더 타당할 것 같다.

반율법주의는 무엇일까? 반율법주의는 재세례파 등에서 기원했다. 신성로마제국에도 재세례파가 상당했고(토마스 뮌쳐), 스위스 칸톤에도 상당하게 활동했다. 네덜란드 등으로 확장되면서 활동했다. 재세례파는 스위스에서 츠빙글리와 칼빈에게서 대립했다. 최덕성 박사는 세르베투스도 재세례파로 분류했고, 칼빈은 재세례파에서 회심한 한 여인(이들레트)과 결혼했다.

칼빈은 재세례파 논박(1544년)으로 비판했다. 칼빈은 재세례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비판한 학자이다. 최덕성 박사는 재세례파의 오류는 첫째 유아세례, 둘째 출교가 시행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주장, 셋째 세상 권력의 무력 부정으로 공무원 등을 금지함 등을 제시했다. 최덕성 박사는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2015년), 제13장 '재세례파'에 정리해서 출판했다. 참고로 최 박사는 뱁티스마를 침례(浸禮)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잠기는 예식이기 때문에 잠례(潛禮, immersion)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잠례 혹은 세례로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반율법주의적인 칼빈주의는 토비아스 크리스프(Tobias Crisp, 1600–1643)이다. 그는 율법주의 알미니안에서 갑작스럽게 무율법주의 칼빈주의로 전향했다. 그는 다른 반율법주의자들처럼 회중교회적인 독립파에 속했고, 극소수만 취득할 수 있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탁월한 학문성을 소유했다.

김재성은 크리스프 이전에 반율법주의 지도자를 존 이튼(John Eaton, 1575-1642)으로 제시했다. 존 살트마쉬(John Saltmarsh, ?-1647)도 반율법주의에 가담했고, 올리버 크롬웰의 의회파 군인목사로 활동했다(김재성: 2003, 391-392). 반율법주의자들은 칭의를 세 단계로 주장했다. 영원한 칭의(eternal Justification), 실제적 칭의( virtual justification), 구체적 칭의(actual justification)이다(김재성: 2003, 392). [※ 참고로 박재은은 영원한 칭의를 말하기 때문에 반율법주의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주장했다(박재은: 2016, 41-49). 김재성 교수가 번역한 “실제적 칭의, virtual justification”는 “가상적 칭의”로 번역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도덕률폐기론주의를 더욱 주의 깊게 다루었다. WCF 7장 5절에서는 율법을 은혜언약으로 설명하면서 도덕률폐기론주의를 논박하였다. WCF 11장은 칭의 교리와 관련하여 믿음과 믿음의 확신에 대한 주의 깊은 서술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것은 총회에서 도덕률폐기론 논쟁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WCF 13장은 성화를 선택 사양으로 보는 도덕률폐기론주의가 오류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WCF 19장 전체는 물론이거니와 특별히 19장 5절에서 ‘도덕법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복종을 요구한다’는 서술은 직접적으로 도덕률폐기론주의를 논박하는 것이다”(김홍만: 2014).

그러나 반율법주의자들은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회중파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은 신대륙으로 1633년 이주했을 때 교회 안에 있는 반율법주의를 배격했다(김재성: 2003, 401). 이 때 동조한 두 명의 회중파 신학자는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와 토마스 쉐퍼드(Thomas Shepard, 1605-1649)였다. 코튼과 후커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초대를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다(김재성: 2003, 402).

쉐퍼드는 하버드 대학 설립을 주도했다. 그리고 소위 예비주의(Preparationism, 회심준비주의)이라고 알려진 케임브리지의 체험주의(Experimentalism)를 미국에 실현한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허치슨 부인의 견해와 전혀 달랐다. 간략하게 줄이면 칭의를 얻기 이전에 성화의 표시들을 통해서 증거를 확보한다는 실천적 삼단논법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칭의를 얻기 이전에 성도가 반드시 거쳐할 체험의 단계들을 상세하게 가르친다. 단순하게 구원얻는 믿음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통회자복, 회개 등을 강조한다. 예비주의는 정통 개혁주의 교회에서 강조한 것을 넘어서서 상당 부분은 지나친 감이 있는데, 그것은 허치슨 부인의 반율법주의에 대항하려는 반작용에서 나온 산물이기도 하다(김재성: 2003, 402-403).

<바른믿음>에 김리훈은 구원파에 대해서 기고했다. 구원파에 두 계열로 제시했는데, 정동섭 교수는 유병언(권신찬) 계열, 이요한(본명 이복칠) 계열, 박옥수 계열, 3개파로 구분했다. 윤방무(Peter Yoon), 서달석 등은 유사한 교리와 사상으로 분류했다. 구원파의 시작은 권신찬과 그의 사위 유벙언으로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길기수: Case Glass)와 미국 선교사 Dick York 등이 활동했다.

김길수는 웩(WEC) 선교회로 1956년에 들어와서 1975년까지 활동했다. 김길수는 딕 욕 등과 연합해서 정통 복음주의 신학교를 설립했고, 1기 졸업생이 박옥수이다. Dick York은 Shield of Faith Mission International을 설립해서 대한민국과 브라질 등에 포교활동을 하는데, 그들의 선언문에 삼위일체 신앙고백이 없다.

김리훈과 정동섭은 깨달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임박한 심판을 주장하며(종말위기의식 고취) 과도한 압박으로 강요한다고 제시했다. 정동섭은 구원파가 현대판 영지주의의 재현이고, 율법과 종교에서 해방되었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반율법주의라고 규정했다. 반율법주의은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명백하게 거부되었다. 그리고 21세기 교회에서도 거부해야 할 이설(異說)이다.


<참고도서>

김재성, 『개혁신학의 정수』(서울: 이레서원, 2003).

박재은, 『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고든 루이스, 브루스 데머리스트, 김귀탁 역, 『통합신학2』(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R.C. 스프라울, 『기독교의 핵심진리 102가지』(서울: 생명의말씀사, 2013).
Gertrude Huehns, Antinomianism in English History(London: Cresset, 1951).

김홍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특징들”, 기독교학술원 학술대회, 2014년.

정동섭, “유병언·이요한·박옥수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교회와 신앙>, 2013.06.05.

김리훈, “구원파, 십자가 대속을 깨닫는 것이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바른믿음>,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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